육감의 세계 - 저 : 해롤드 셔어먼 / 역 : 안동민
제1장 상식을 초월하여
4. ESP 연구의 시작
심령현상을 과학적으로 조사하기 시작한 것은 지금부터 100년도 채 되지 않는다. 1882년에 케임브리지 대학의 학자들이 모여서 영국심령연구협회를 창립했다. 프랑스에서도 국제심령연구소가 창설되었는데, 그 목적은 서로 비슷한 것이었다. 신비스런 사건을 조사하여 그 성질과 기원을 알아내려고 한 데에 목적이 있었다. 두 단체가 모두 '그저 재미로 도깨비나 요귀를 연구하고 있다'고 비판하고, 우롱하는 19세기의 회의론자들이나 비웃음만 던지는 사람들로부터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치게 되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에 미국심령연구협회가 설립되었다. 그이후 이 세 그룹은 지금까지도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으며, 지금 급속한 발전을 이루고 있는 마음과 그 초감각적 잠재력에 관한 지식에 헤아릴 수 없을 만큼 수많은 공헌을 하고 있다. 다수의 저명한 학자들이 각기 자기가 속해 있는 심령연구단체의 발전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그들은 일반 대중을 옹호했고, 용기를 내어 그 분양의 연구로 사회적 신용을 높인 과학자들이었다. 소위 말하는 초자연적인 일의 발생은 과거에는 부정되기보다도 오히려 악마의 소행이라고 해석되었었다고 말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모든 종교가 영적 계시와 신의 존재를 인정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 위에다 혼란을 더하게 하고 반대자측을 더욱 기고만장하게 한 것은 정말로 협잡이나 사기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주술자나 사기꾼이 진짜 심령현상을 실현하다고 떠든 것이다. 이러한 사정 아래서 무지하고 자주 속아만 본 익숙치 못한 세상 사람들이 불가사의한 초능력이 있다는 것에 비웃음으로 대했다는 사실은 놀랄 만한 일이 못된다. 나무랄데 없는 인품을 갖춘 학자가 이 분야의 탐구를 권위와 존경의 바탕 위에 정립시켜 놓는다는 것은 한층 더 곤란했었다. 초감각적인 지각을 오늘날과 같은 경지에까지라도 높이는 데에 뛰어난 공헌을 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다.
영국-올리버 롯지, 윌리엄 클룩스, 아더 코오난 도일, 바르피르, 헤르딘, H, H, 프라이스, C , D , 브로드, 헨리, 시직윅, J, W, 던 소울, S, H, 솔트매시, 에드먼드 가아니, 테오도르 베스타맨, 와트리 캘링턴. 프랑스-카밀 프라마리옹, 샤를르 리세이, 알렉시 카렐, 유우진 오스티. 미국- 윌리엄 제임즈, 월터 플랭클린 프린스, 모우튼 프린스, 제임즈 히즈롭, 헬워드 캘링턴, 애프튼 싱클레어, 윌리엄 맥도우걸, J, B, 라인 박사, 가아드너 머피 박사.
이들 연구가의 업적을 기록한 책은 많다. 그리고 몇 천에 이르는 개인 기록이 조사되고 그 가치가 검토되었다. 심령연구의 정기간행물이나 회보의 보고서에서도 그 경과에 대한 수많은 자료가 게재되어 있으며, 많은 도시의 도서관에서 그것을 입수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중요한 것이었다 하더라도 과거의 연구를 백과사전처럼 기술하는 것이 이 책의 주된 취지는 아니다. 오히려 나 자신의 체험과 실험한 관점에서 밝혀진 일이라든가, 당신이 어떻게 하면 똑같은 결과를 얻을 수 있는가 하는 문제를 논의해 보려는 것이다. 이제까지의 인생에 있어서 나는 진실이라고 증명된 광범위에 걸친 초감각적인 체험을 얻었는데, 의식해서 유도한 것도 있거니와, 굳이 얻으려고 하지 않았는 데도 체험한 것도 있다. 이것은 몇 년이나 꾸준히 마음의 감수성을 뚜렷한 것으로 발달시켜 보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고, 육체적 오감을 초월한 것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생각되는 감각은 모두 기꺼이 받아 들이려고 했었기 때문이다.
5. 수천 킬로나 전해진 상념
1937년의 가을과 1938년의 봄에 북극 탐험가 휴버트 윌킨즈 경과의 연속적인 장거리 텔레파시 실험에서 그와 같은 능력을 시험할 좋은 기회가 있었다. 그때 휴버트 경은 소련에서 북극을 가로 질러 미국에로의 무착륙 비행을 시도했다가 행방불명이 된 소련 비행사를 수색하기 위해서 뉴욕을 출발하여 북쪽으로 비행해 달라는 요청을 소련정부로부터 받고 있었다. 그런데 실종된 비행기는 북극에서 약 320킬로미터나 떨어진 지점에서 불시착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 위에 이 비행기의 무선장치가 고장이 나 쓸모가 없게 되었는데, 소련측은 비행사들이 북극 어딘가에 아직도 생존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수색대를 편성했다. 나는 시티클럽의 같은 회원으로서 휴버트 경을 만났다. 그러자 그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 느낀 가지각색의 일들 중 완전히 설명할 수 없는 육감에 대한 이야기를 말한 후,
"인간에게 지금껏 신비 속에 남겨져 있는 가장 위대하고 아직 연구되어 있지 않은 분야는 인간 자신의 마음의 분야입니다."
라고 확신하는 바를 말했다. 이렇게 하여 같은 분야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예의 정신감응에 관한 실험을 하기로 했던 것이다. 휴버트 경은 1주에 3일 밤, 즉 월요일과 화요일 그리고 목요일에 동부 표준시간으로 11시 20분부터 한밤중까지 나와 '상념을 맞추는 약속'을 하고 더 먼 북쪽을 비행하면서도 그 시차를 조정한다는 안을 내 놓았다. 그는 보내는 쪽이 되겠다고 결정했다. 받는 쪽의 역할을 하기로 한 나는 지정된 시간에 서재에 조용히 앉아서 오랜 세월에 걸친 개인적인 실지 연습에서 안출한 방법으로 정신을 받아 들이기 쉬운 상태에 두는 것이다. 나에게 나타나는 인상을 기록하고, 또 기록을 공평하게 관찰할 필요가 있었다. 다행히도 당시 콜롬비아 대학 심리학과 교수인 가아드너 머피 박사가 나의 자료를 증명하는 일을 맡아 주었다. 실험은 연구실에서 한 것이 아니어서 박사는 기록 맷체에 걸쳐서 심사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5개월 반의 연속적인 실험이 끝나자 머피 박사는, 내가 '받은 인상 전부의 사본을(정부의 소인으로 보호하여) 매일 밤 꼭꼭 그에게 우송햇다'라는 단서를 붙여 증명해 주었다. 이 일련의 실험에 대한 증인이 되어 준 사람은 다음과 같다.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영국정부 촉탁 신경외과 의사였던 초감각적 지각의 권위자 A, E, 스트러스 고오든 박사, 뉴욕 심령연구협회의 조사원인 S, W, 해드윅 q가사, 뉴욕 타임즈 지의 단파무선 주임기사인 레지널드 아이바슨, 그리고 시티 클럽의 일반회원인 삼 에멀리 였다. 실험이 끝난 후 윌킨즈씨의 일기나 일지와 대조해 보았더니 실험 기간 중에 기로간 몇백에 이르는 인상 가운데서 약 70%정도가 정확했엇음을 알았다. 레지널드 아이바슨의 증언은 여기에서 되풀이 할 만한 가치가 있으리라고 믿는다. 그는 그의 저서의 서약서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뉴욕 타임즈지의 무전기사인 나 레지널드 아이바슨은 휴버트 윌킨즈 경과 텔레파시 실험 중인 헤롤드 셔어먼씨가 연속적으로 접촉한 것을 증명한다. 윌킨즈 경과의 단파통신으로 셔어먼씨가 느낀 것을 대조하고, 그 결과의 보고는 순조롭게 돼 갈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 시간중 내게 자기와 태양 흑점의 상태가 너무나도 나빠서 윌킨즈 경과의 통신을 원할히 할 수 없었다. 1938년 2월 21일, 월요일 밤에 나는 아내와 함께 뉴욕시 리버사이드 드라이브 380번지의 헤롤드 셔어먼씨 댁을 방문했는데, 그때 그는 연구실에서 휴버트 윌킨즈 경으로부터 한참 텔레파시를 받고 있는 중이었다. 그리고 그때 휴버트 윌킨즈 경이 몇가지 통신을 단파무선으로 나에게 보내려 하고 있는 인상을 셔어먼씨는 기록했다. 나는 정말 그럴까 하고 의심했다. 그 이유는 내가 다음 화요일과 수요일 이틀간은 신문사에서 언제나처럼 B번임을 윌킨즈씨는 알고 있었으며, 이쪽이 일을 하고 있지 않은 것이 확실할 때 그는 좀처럼 연락을 취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타임즈사에 있는 우리 야간무선 기사가 이 통신을 전날 밤에 받고서 전화로 나에게 전하려고 했었던 것과, 해롤드 셔어먼씨가 똑같이 나의 면전에서 텔레 파시로 받아서 기록한 정보가 그 통신에 첨가되어 있엇던 것을 다음 날 아침이 되어 알게 되었다.
6개월이라고 하는 기간중에 해롤드 셔어먼씨는 휴버트시나 그 북극에서의 여러 가지 활동 상황에 대한 정보를 한번도 문의해 오지 않았었다. 요컨대 내가 의심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우연히 안 일이지만, 단파무선으로 접촉을 유지한다는, 효과가 없는 시도로 얻은 것 이상으로 현실적으로 셔어먼씨 편이 행방불명이 된 러시아인 비행사를 수색중인 윌킨즈 경에게 일어나고 있는 사항을 텔레파시로 훨씬 더 상세하게 알고 있었던 것이었다. 이와 같은 실험-이 실험은 당시로서는 선구자적 입장에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이 있은 후 아마튜어는 물론 과학지식이 있는 사람들조차 초감각적 지각에 대한 관심이 한층 더 높아졌다. 오늘날 세게의 모든 초심리학연구소가 이 실험을 하고 있다. 생리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신경학, 심리학, 정신병학 등과 같은 분야에 관련이 있는 여러 가지 정신 현상면에 관한 책자나 논문이 수없이 씌어졌다. 인간의 마음의 연구는 마침내 본래의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고, 당연히 받아야 될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세속적인 성공이나, 단지 권력이나 부만을 손에 넣었다 하더라도 참다운 만족은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은, 육체적인 오감만의 세계로서는 인간에게 아직 완전한 만족을 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말해 주는 것이다. 인간에게 주어진 초감각적 지각 능력을 활동적인 것으로 만들어 개발하고 활용할 수만 있다면, 그때야말로 인간은 어떤 초월적인 힘과의 관계를 발견하고 자기 자신이나 온 인류가 평화로운 생활을 영위하는 데에 필요한 지도와 지혜를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다.
6. 잠재력과 무한한 가능성
위대한 사상가는 유익한 사상으로 인류를 깨우치고 문명에 커다란 발자취를 남겻다. 누구나 다 의식을 지능에 따라 개발하려고 생각하면 그것을 능히 할 수 있는 것처럼, 이 초자연적인 힘에 맞춤으로써 위대한 사상가들의 의식은 마음 속으로부터 광명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조로아스터, 노자, 석가모니, 마호멧공자, 모세, 그리스도, 그 밖의 신성한 지도자의 신자들은, 자기들의 지도자처럼 영감에 의한 깨달음과 천성에는 도저히 이르지 못하는 것이라고 믿고 있다. 지도자와 신도 사이에 있어서의 이질적인 느낌이 정신적 발달과 진보에 커다란 장애물이 된 것은 너무나도 비극적인 사실이다. 이들 신도의 대부분은 자기들이 지도자와 똑같이 신이 내린 재능을 받고 있다는 것을 믿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이 현실적으로 똑같은 정신적인 개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깨달을 수만 있었다면, 이 지상에 있어서의 인간 생명의 특질과 성격을 얼마든지 더 높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만한 초자연적인 힘이 자기 내부에서자기를 통하여 널리 발휘될 수 있다는 것을 언젠가는 인간들이 틀림없이 알게 될 것이다. 다행히도 현대의 몇몇 정신적 지도자는 자각의 중요성과 개인이 자기 자신의 정신 개발을 시도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조하기 시작하고 있다. 물리학자들은, 그것이 인간의 손에서 한번 떠나기만 하면 이 혹성 위에 존재하는 온 생명을 전멸시킬 수 있지 않을까하는 우려까지도 자아내게 하는 프랑켄시타인과 같은 괴물을 생산했다. 그래서 인간은 자기 자신의 정신적 마음의 창조성을 통하여 절대적 파괴력을 가진 무기로 무장하고 있는 듯하다.
자기 자신으로부터 자기를 구출해 낼 수도 있는 하나의 힘을 총괄적으로 자각하여 개발하는 일에는 이제까지의 인간에게는 결핍되어 있었다. 마음의 영역에서 이 모든 일들을 관찰하고 연구계획하고 있는 마음의 법칙을 이해하고 있는 사람들은 이 일이 전부가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것을 강조해서 표현하다면, 증오심은 언제나 증오심을 끌어 들이고, 사랑하는 마음은 언제나 사랑하는 마음을 끌어 당긴다. 신성한 지도자는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한 사람 빠짐없이 사랑의 힘을 배우고 증오심을 일으키지 말라고 경고했다. 그러나 인간이라고 하는 생물인 우리들은 이와 같은 경고를 망므에 새겨 두는 것을 거부한 것이다. 만약 그렇지만 않았다면 이 세상은 몇 세기 전에 이미 그전 생명력이 서로 조화를 이룬 낙원으로 틀림없이 되어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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