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 쏭챵, 짱창창, 챠오벤, 꾸칭셩, 탕쩡위 공저
제3장 시들어 가는 미국, 일어서는 중국
8. 발언을 준비하는 '침묵 속의 다수
닉슨은 '침묵하고 있는 다수'라는 한 마디로 정치 발전을 결정하는 내재적 동력이 무엇인가를 시사해 주었다. 유명인사가 벌이는 정치적 작태는 상당수가 매스컴을 장식하기 위한일종의 쇼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나 반전운동과 히피족이 그 시대 미국의사회적 분위기를 대표하는 상징물이었다는 점만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는 한참 인기 있는 인사나 유행하는 것들로 인해 진상을 바르게 파악하지 못하는 수가 있다. 마치 내가 당시 절찬리에 상연중이던(포레스트 검프}라는 미국영화를 보고, 혹은 당시 유행하던 {바람 속에 나부끼는 답안}이나 {샌프란시스코} 같은 노래를 반복해 들으면서 오랫동안 무언가를 착각하고 있었던 것도 같은 이치였다. 이 시기에 클린턴은 반전운동에 참가했었다. 그런데 왜 그는 그의 활약 상을 애써 부인하고 있으며, 그가 대마초를 피운 것도 그때의 시대상에 비추어보면 우연이었을텐데 채 또 미국 국민의 이해를 극구 구하는 것일까? 미국이 만든 '국지전'은 여전히 벌어지고 있고, 캄보디아는 지금도 화약연기로 자욱하며, 해안선에서는 예전과 다름없이 계속해서 수색이 벌어지고 있다. 이런 것이 미국의 기본적인 역사이고 지금의 모습이 아닐까? 그러므로 학생들의 시위나 알라바마에서 일어난 암살사건 등이 신문의 전면을 장식한다고 해서 이러한 것들이 미국의 현실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는 없을 것이다. 미국인들이 전파를 통해 이러한 뉴스를 전세계에 알리려고 애를 쓰고 있는 데는 자신들의 생명력을 과시하려는 저의가 숨어있는 것 같다. 나는 텐진(天津)에서 생산되는 미국 상표의 콜라를 마시는데 이 콜라는 순전히 미국 이외의 지역에만 팔도록 되어있는 상품이다. 이 콜라는 질릴 만큼 진한 설탕맛이 나지만 미국인들이 마시는 미국 국내용 콜라의 당도는 이렇게 높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다. 또 미국이 우리에게 수출하는 담배에는 자신들이 피우는 담배보다 니코틴이 더 많이 함유되어 있다고 한다. 자아, 이제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의 이러한 착각이 어디에서 나왔는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겠다. 내 나이 서른이 넘자 나도 '침묵하는 다수'에 가입하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다만 내 자신이 그다지 조용하지 않다는 것이 그들과 다를 뿐이었다. 나는 방송국의 일로 {미국의 소리} 방송과 업무상 관계를 가진 적이 있었다. 그쪽 사람들은 아주 진지하고 성실했으며, 보내온 자료를 보고는 그들의 재력이 매우 막강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나는 그들의 성의와 선심을 매우 고맙게 생각했었다. 나는 그들이 힘을 쓰는 중견세력은 아니었지만 나와 같은 '침묵하는' 중년세대라고 믿으며, 지금까지도 그들이 우리에게 베푼 성의와 업무상의 도움은 아주 유익했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에서 {미국의 소리}가 중국어는 물론이고 타밀어, 우즈베크어 등의 언어로 끊임없이 아시아 전역에 퍼져 나가지만 뉴스에서 록음악에 이르는 모든 프로그램이 진정으로 우리 아시아인의 마음을 사로잡은 적은 없었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들은 또 전세계를 향해 모종의 변화를 힘껏 부추기면서도 다른 한쪽에서 일어나고 있는 심각한 변화에 대해서는 눈을 돌린 적이 없었다. 세계적인 다수가 변화를 원할 때 미국은 말없이 조용하게 있었지만, 지금 이들은 이미 그때처럼 조용하게 침묵만을 지키는 '다수'가 아니다, '침묵하는 다수'라는 개념 혹은 사고방식은 먼저 우리에게도 해당된다. 오랫동안 우리는 정치인들은 천박한 방법을 능수능갈하게 즐겨 쓴다고 생각해 왔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던 이런 천박한 방식이란 밀실정치, 유명인사들의 국가 대사에 대한 살롱회담, 국가의 은밀한 소식을 전해 주는 권위 있는 창구가 따로 있다는 것등이었다. 정치에 관한 이런 얄팍한 견해는 천여 년 동안 이어져 내려 온 정치에 대한 특이한 열정-이라고 표현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오랫동안 받아왔던 정치적 압력 때문에 생긴 것이다. 오늘날에도 우리는 뉴스시간에 보도되는 정치권 소식을 의심하고 있으며, 이에 대해 큰 불만을 가지고 있다. 솔직히 말해 나도 그렇다. 그래도 뉴스에는 국가 발전에 대한 기본적인 소식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대중매체로 전해지는 모든 소식이 어느 정도는 진실하고 무게가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사실 국가 발전이나 사회 기풍의 변화 같은 것은 아주 평범한 뉴스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무엇 때문에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벌어지는 평범한 사건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미국의 소리} 방송에서 진리를 찾으려고 하는가?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미국의 도덕관과 자유사상을 맹목적으로 숭배하게 하는가? 그들은 저 멀리 떨어져 살면서도. 인공위성 한두 개를 띄워 중국의 후미진 산골에서 흉기를 들고 싸웠던 사건을 흠쳐 보고. 정치국 회의의 모든 발언 기록을 감시하는 척하며, 우리를 약소국으로 취급한다. 그들의 사설은 세계적으로 영향력이 있을 법한 모든 사건에 대해 제멋대로 지껄이며. 다른 나라의 지식인들에게 영향을 끼치려고 한다. 냉전 이후 {미국의 소리}는 미국의 마음에 들지 않는 나라에 대해서는 제멋대로 편집된 내용을 방송했다. 우리는 이런 식의 사실왜곡과 그 나라 기자들이 장난처럼 써대는 기사에 이골이 난 지도 오래 되었다. 미국의 매스컴 업계가 호황을 누리고 있고, 방송기법이 그렇게 발달하게 된 배후에는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반드시 무엇인가가 있을 것이다. 중국의 어느 소설가가 '소설이란 무엇인가? 소설의 언어는 '성경'의 언어와 같다. 소설가는 하느님처럼 말하기 때문이다'라고 한 말이 기억난다. 미국의 방송관계자들은 적어도 중국에 관계된 보도를 할 때는 이런 '성경식' 표현법을 쓰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들의 방송이나 신문기사를 접할 때. 감정적으로나 이성적으로 나쁜 인상을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예를 들어 만약 어떤 사건이 10개의 화면으로 이루어진다고 할 때,미국인은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몇 가지 화면을 편집해서 방송으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그 10개의 화면 중 그들에게 가장 유리하고 대중에게 가장 인상적일 것 같은 두세 컷을 수차례 계속 중복해서 내보낸다. 그들에게 이롭지 못하다고 판단되는 화면은 가차없이 잘라버리는 것이다. 미국의 신문은 정말 예술작품처럼 훌륭하고 아름답게 편집되어 있다. 그렇지만 나에게 누가 미국신문 볼래?"라고 묻는다면. 미안하지만 그 대답은 'NO, Bye Bye'일 것이다. 특히 미국인이 국제적인 중대한 사건을 여러 차례 왜곡해서 보도하는 것을 본 뒤부터 나는 내 생각이 옳다고 굳게 믿게 되었다. 미국이 이렇듯 사건을 왜곡하는 데에는 모종의 계략이 숨어있는 것이다. 동화 속의 피리부는 소년처럼. 미래에 세계 각국의 지도자가 될 이들을 성 밖으로 유인해 내어 그들에게 쉽게 접근하려는 것이 미국의 음모이다. 그러나 미국인들이 자신들의 방송에 도취되어 스스로 흡족해 하고 있을 때. 세계의 '침묵하던 다수'가 손을 들어 발언하려 하고 있다. 중국은 고립된 발언자가 되어본 적이 없었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중국 자체의 존재가 바로 다수인 것이다. 70년대 미국은 중국을 가리켜 '야심은 세계 제일이지만, 그 자신은 3등 국가'라고 비웃었다. 당시 정계의 주요 인물이 중국과 접촉을 할 때, 중국을 동정하고 중국인을 가엾게 여긴 것은 바로 이런 생각 때문이었다. 닉슨은 자질구레한 일에까지 온통 신경을 쓰는 인물이다. 그는 이리저리 둘러대어 이전에 상처받은 적이 있는 쩌우인라이의 마음을 위로하였다. 쩌우인라이가 받은 상처는 이런 것이다. 20년 전 제네바의 어느 빌딩에서 고개를 바짝 쳐들고 다가오는 미국무장관 둘리스에게 쩌우인라이가 악수를 청했다. 둘리스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고개를 저으며 'No!'라고 말하고는 그 자리를 훌쩍 떠나버렸다. 닉슨과 쩌우인라이의 악수는 전후 역사상 가장 큰 세계적인 사건 중의 하나가 되었다. 그러나 닉슨이 쩌우인라이에게 황급히 악수를 청하게 된 것은 완전히 그들의 오판 때문이었다. 이 오판으로 인해 그 당시에는 그다지 중요해 보이지 않은 것들이 중국과 미국의 상봉이 시작되던 그때부터 엇갈리기 시작했던 것이다. 중국이 날로 부강해 지는 지금에 와서야 미국은 그때의 판단이 잘못되었다고 깨닫기 시작했지만, 이미 바람은 불고 파도는 일렁이고 있는 셈이다. 어떤 사람은 중국의 대외원조정책의 변화에서 중국이 국제적으로 행사하는 영향력을 점차 상실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근래의 중국 외교정책은 중국과 상대국 국민에게 큰 공감을 얻어내었다. 중국은 지금 강대국으로서의 외교능력을 함양하기 위한 공덕을 쌓고 있는 중이다. 세계의 모든 해방운동은 예외없이 중국사상의 밝은 햇살 아래서 빛을 보고 있으며 세계의 모든 평화적인 발전은 하나도 빠짐없이 중국의 은혜를 입고 있다. 중국의 인민외교만이 강대국에서는 결코 볼 수 없었던 숭고한 도덕적 풍모와 정의구현의 정신이 깃들어 있다. 아메리카합중국은 이미 죄악이 쌓일대로 쌓여 전세계로부터 끊임없는 대가를 치르고 있으며, 앞으로는 자신이 지은 모든 죄과를 깨끗이 청산해야 할 시기가 반드시 올 것이다. 미국 국력으로 세계를 마음대로 휘둘렀던 시대의 상징물인 유럽석탄철강공동체, 중앙조약기구( C E N T o), 중앙아메리카농산물회사 등은 지금 더욱 번창한 것도 있지만, 혁명으로 완전히 와해된 것도 있다. 의미심장한 변화가 있는 한 가지 예를 들어보겠다. 과거 국제회의장에서 미국의 행위를 비난하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미국대표는 항상 오만하게 일어서서 턱을 치켜 들고. 미국에 복종하던 유럽과 제3세계국가 대표들을 이끌고 조직폭력배 두목처럼 퇴장해 버렸었다. 하지만 지금은 미국이 아무리 턱을 높이 쳐들어도 그의 뒤를 따라나갈 나라는 거의 없다. 지난 몇 세기 동안 미국이 도덕적인 타락으로 쌓은 업보에 대해서는 더이상 예언성 발언을 할 필요는 없겠으며, 이에 반해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이 침묵의 다수'가 의욕적으로 발언하는 성숙한 세계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면 그만이다 이 세계는 위대한 중국의 외교시야를 무한히 넓혀 주고 있다. 전체주의 전통으로 인해 미국의 압박을 곱절로 받은 대국, 즉 러시아. 독일. 일본 같은 나라들이 권토중래하기 위해, 중국에게 국제무대에서의 충분한 발언권을 제공하였다. 세계대전 이후 혁명의 산실이라 할 수 있는 중소국가, 즉 월남. 쿠바, 남아프리카공화국, 팔레스타인 같은 나라들은 제3세계의 민의를 대표하여 선의와 진솔한 열정으로 중국에 희망을 걸고 있다. 세계의 주요 국가 및 국가 연맹들과 친밀한 교우를 맺을 수 있는 가능성을 따져 볼 때, 중국은 미국에 비해 국제적으로 대단히 유리한 위치에 있다. 중국은 세계의 희망이 될 것이다. 20세기 말 현재, 과거 토인비가 했던 예언은 더이상 예언에 그치지 않는다. 다시 그 내용을 명확히 살펴보자.
현재 중국의 경제발전은 70년대 일본의 발전과 무척 유사하다.게 다가 그 속도는 일본보다 빠르다. 중국은 다행히도 멕시코처럼 샛길 로 빠지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중국의 고위지도층에 있는 인물들이 이 위대한 책임을 완수할 수 있는 소질을 이미 다 갖추고 있다는 점 이다. 나라가 발전하고 있는데도 보고도 못 본 척하며 무어라고 떠들어 대는 사람들의 입을 막아야 한다. 과거에는 이런 사람들이 어느 정도 도움이 되었다. 지금은 세상을 가지고 노는 것에 모든 의미를 부여하 고 있고, 과거에 세상을 가지고 놀던 선각자들이 출세하여 국제적인 목소리를 내게 되었다. 중국은 내부적으로 이미 정의가 살아움직이 고 오랫동안 쌓은 공력으로 그 기운이 단전에 모두 몰려 있다, 중국 의 ' 침묵하는 다수'는 자유진영의 번화한 모습을 본 뒤부터 개인의 행복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으며, 국가발전의 위대한 기초를 건설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
우리 노동의 성과를 재평가할 때가 왔다. 우리 노동의 성과에 대한 가치를 정확히 계산함으로써 우리나라의 가치를 정확히 가늠할 때가왔다. 우리 주위에 보편적으로 흐르고 있는 원한의 정서를 깨끗이 없애고. 미래의 중국을 예찬해야 한다. 물의 흐름에 역행하는 발걸음을 막고, 고통을 겪은 후의 원숙하고 맑은 정신으로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불공평, 어리석음, 미친짓거리, 속임수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위에서 말한 모든 것과 우리의 앞날을 비추는 환한 불빛은. 똑같이 우리 중국민족의 감정을 풍요롭게 할 것이기 때문이다. 중화민족에게 강인하고 끈질긴 심지를 북돋아주어 아름다운 21세기로 나아갈 수 있게 하자. 21세기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세계무대에서 활동하면서 '하나가 전부이다[라는 이치가 차츰 현실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중국의 외침은 장차 다수의 목소리가 되고, 중국의 사상과 중국의 경영능력은 전세계에 깊은 영향을 끼쳐 인류의 미래를 이끌어갈 유일한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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