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 쏭챵, 짱창창, 챠오벤, 꾸칭셩, 탕쩡위 공저
제3장 시들어 가는 미국, 일어서는 중국
2. 친 미 라는 젼염병의 감염경로
우리들이 친미감정의 회오리에 휘말리게 되는 단계는 정서적 감응으로부터 실리적 체득에 이르는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팔레스타인 학생대표단과 가졌던 좌담회에서 나는 시의(時意)와도 같은 충격을받았다. 이러한 충격이 진실이기는 하지만 그 자체를 완전히 신봉할 수는 없을 것이다. 10년 간의 신념이 10분 만에 무너진다면 10분 간의 신념은 1초 안에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펑(李鵬) 총리는 8년 전 어느 외국기자의 질문에 재미있게 대답한적이 있다. 외국기자가 질문한 내용은, 당시의 정치국 간부들 대부분이 소련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중국의 외교가 친소적 경향에 빠질 가능성이 많지 않느냐는 것이었다.이에 대해 리펑은 '50~60년대에는 소련이나 동구로 유학을 갈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배경이 있었을 뿐이기에 기자의 추측은 이치에 닷 지 않는다. 질문한 기자의 논리대로 라면 현재 수많은 중국학온이 미국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 장차 중국의 정치지도자는 모두 친미파가 된다는 말과 같지 않느냐?'라고 하여 한바탕 웃음을 자아낸 일이 있다. 리펑 총리의 말은 아주 명확한 것으로 대국의 정치인으로서 가져야 할 확고한 신념을 보여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그는 현재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 많은 학생들이 장차 학업을 마치고 돌아오게 되면 미래에 중국의 지도자층을 구성하는 중요한 인적자원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밝혔다고 보아진다. 나는 기자가 말한 현상에 대해서는 조금도 우려하지 않기 때문에 내 아내가 미국으로 떠난다고 해도 반대하지 않을 것이다. 지식이 많고 견문이 넓으며 진리가 무엇인지 가려낼 수 있는 사람이 국가의 동량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므로 이에대해서는 조금도 우려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피해 나갈 틈도 없이 무차별적인 공세를 펴고 있는 미국이라는 나라가 우리들의 마음속에 심어놓은 열병에 대해서는 해야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먼저 [讀者)라고 하는 잡지에 대해 이야기하겠다. 이 잡지는 원래 따루(大陸)출판사에서 [두저원짜이(讀者文摘)라는 이름으로 출판하고 있었으나 [두저원짜이]는 미국의 [리더스 다이제스트]의 중국어판 책명과 같았다. 이로 인해 지적재산권문제가 발생하여 [두저]로 바꾸게 된것이다. 나는 중국의 [두저]를 미국의 [두저원짜이]와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두저]의 편집 방향이나 추구하는 바,성향에 대해서 소상히 알고 있다. [두저]가 견지하는 태도에 대해 90년대 초 친구들과 함께 토론을 벌인 적이 있는데 그때 내린 결론은, [두저]는 실질적으로 '작은'소자산계급의 정신적 낙원이라는 것이었다. 내가 특별히 '작은'이라는 말을 덧붙이게 된 것은 의식형태의 칼로 사람을 치자는 것이 아니고,서구 세계에서의 '자산계급'이란 말이 사회학적 의미에서는 비판적 개념으로 쓰이고 있기 때문이다. [두저]와 친미라는 심리적 전염병의 상호관계는. 그렇고 그런 지식 수준이면서도 현상에 대해불안해 하고 있는 소인배들의 허영심을 최대한 만족시켜줌으로써 소자산 계급들로 하여금 별 볼일 없는 철리(哲理) 내지는 미학을 통하여 지식수준이 상숭된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하여 현실도피의 쾌감을 맛보게 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앞 장에서 언급하였던 {초원의 집}이라는 미국 드라마에서 당시 내가 가장 감명깊었던 것은 대강 아래와 같은 국회의 연설이었다.
옛날 우리집에 의사 한 분이 계셨는데 사람들은 그를 '닥터 짱'이라고 불렀습니다. 닥터 짱은 늘 사람들의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사람들은 감기를 치료받고는 찐빵을 가져다주기도 하고 편두통을 치료받고는 파 한 다발을 가져다주기도 하였습니다. 어떤 때는 아무 것도 가져다주지 못했지만 마을 사람들 모두가 너무 가난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닥터 짱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닥터 짱은 '닥터짱 위층에 있음'이라는 액자를 문 앞에 걸어놓았기 때문에 마을 사람들은 아무 때나 닥터 짱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날씨를 예측하지 못하듯 닥터 짱도 병들 때가 있었고 끝내 병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례를 지내던 날 마을 사람들은 돈을 거두어 닥터 짱의 묘에 묘비를 세우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정말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닥터 짱의 문 앞에 걸어두었던 액자를 무덤의 꼭대기에 꽂아두었습니다. 그 뒤로 지나가는 사람들은 모두 '닥터 짱 위층에 있음'이라는 글귀를 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오늘 대통령이 서거하였습니다. 그가 생전에 애써왔던 국제연맹은 실현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역사는 그에게 '우드로우 윌슨 위층에 있음'이라는 묘비명을 써줄 것입니다. [두저]에 실리는 글들도 이와 닮아 심오하면서도 통속적이고, 정열적이면서도 자제력을 잃지 않고 있으며, 달콤하면서도 즙이 흘러내리지는 않으며. 산뜻한 맛이 나면서도 목구멍을 자극하지는 않는다. 할리우드에서 갈쩌우(蘭州)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도덕관, 십자군의 명예, 칼럼작가의 심미적 취향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독자들에게 미혹의 꿈을 실어 새로운 세대의 {초원의 집}을 길러내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이 가식에 찬 언론의 분위기는 미국 정치계나 사교계에 충만되어있어 장중한 성명(聲名)은 모두 시적(時的)이고 진실이 가득찬 듯이 기가 막히게 다듬어진 산문으로 발표되어 인간의 마음을 뒤흔든다. 이런 언어조작으로, 답답하고 지루한 팔고문(八理文)에 200여 년 동안 길들여진 중국 국민을 우롱하고 있는 것이다. '위층'에 사는 우드로우 윌슨은 이런 방법으로 전세계의 병을 치료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의연하게 중국의 이익을 희생시키고 칭따오(靑島)를 일본에 할양하였으며,그가 말하는 '국제연맹의 이상'도 사실은 유럽의 모든 나라가 윌슨이 함부로 날뛰는 꼴을 그냥 두고 보지 않았기 때문에 실현되지 않았을 뿐이다. 이와 같이 흥정과 이재에 밝은 윌슨과 '위층에 있는 닥터 짱'이 어떤 자연스러운 수사적 연관성이 있단 말인가? 망상에 사로잡힌 우리들의 마음은 미국의 정서에 쉽게 감동받고. 우리의 뱃속은 즉석음식을 배불리 먹어 생긴 트림으로 부글거리고 있다. 그런데도 우리는 흥미진진하게 미국식 염세적 고통에 탐닉하여 그들의 직설적인 솔직함과 순진함을 모방하느라 우리의 몸에 배어있던 함축적이고도 질박한 것과 의미심장한 간난신고()는 잃어버리게 된 것이다. 나는 취업한 지 2년이 되던 해에 해묵은 편지들을 정리하다가 대학에 다닐 때 내가 우리집으로 보냈던 엽서 몇 장을 발견하였는데 지금 그 내용을 보면 구토가 날 만큼 역겹고 엽서에 나타난 소위 '민주정신'이란 것이 나를 한없이 부끄럽게 만들었다
사랑하는 아버지 어머니.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저는 난징(南京)에서 까오여우(高郵)양쩌우(楊洲) 쩐장(鎭江)을 거쳐 지금 돌아왔습니다. 한동안 편지를 쓰지 않아 화가 나셨을 것 같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형식적인 것들이 좀 부족했다 하더라도 저는 아버지 어머니를 영원히 사랑한다는 점은 믿어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저는 쌍하이 런민(人民) 방송국 FM프로그램에서 미국 텍사스 주의 주가(州歌)인 {고향의 푸른 초원}이란 음악을 두 번이나 들었는데 따뜻한 감정이 저의 가슴을 가득 메우고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저의 장래를 위해 입당하라는 말씀을 하셨는데 이후로는 다시 하지 마십시오. 저는 아버지와 같이 당원생활을 하고 싶지도 않고 또 아버지와 서로 동지라고 부르는 것도 싫습니다.
이 편지는 내가 22살 때 쓴 것으로 지금 다시 들여다보니 불경스럽기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이다. 심지어는 좀 모자라는 사람이 쓴 듯한 느낌이 들 정도여서 이 편지를 대하는 순간 머리에 떠오르는 첫 번째 생각은, 그 당시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었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아무렇게나 내갈겨 쓴 천박한 내용이 부모의 마음에 상처를 남겼을 것이고 또 내가 형편없는 웃음거리가 되었을 것이란 생각이다. 깊은 사상도 없으면서 심각한 척하고 억지로 꾸민 시건방이 나의 대학생활 전부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여실히 보여 주는 편지였다. 다시 현실로 돌아와, 대학 졸업 후 취업하고 결혼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나에게 아메리카합중국의 영향이 경감되기는커녕 갈수록 깊어만 가는데 이는 나의 생활 반경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내 주위에는 아주 긴 안목을 가진 사람들이 많아 이들 중 적어도 20명 이상이 미국으로 떠나버 렸다. 나는 이에 대해 놀람과 동시에 시기를 하였다, 사람들은 미국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왔다. 미국사회에 대한 나의 인식은 이미 감성수준에서 이성수준에 이른 것으로 믿는다. 미국은 사회적으로 안정되어 있고 법질서가 잘 지켜지고 있어 국가 전체가 질서있게 돌아가고 있다. 미국은 개인주의사회이기 때문에 사람의 권익이 극도로 존중되고 있다. 이민 온 사람이나 나와 같은 외국인에게도 미국인들은 아주 우호적으로 대해 주는데 이같이 사람과 사람 사이가 가까워 중국에서처럼 신적 존재의 인간도 나타날 수가 없다.미국에서는 지위의 높낮이도 중국처럼 그렇게 심하지 않아 미국은 정신적인 천당이라고 할 수 있다.' '미국은 사유재산제도가 극도로 보장되어 있기 때문에 정치가이든 평민이든 재벌이든 가난뱅이든 재산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지금은 공부를 하면서 일을 하고 있지만 지도교수를 비롯한 어느 누구도 이에 대해 비난하거나 지나친 요구를 하지않는데도 주위환경의 영향을 받아 내 스스로 분발하는 힘을 가지게 된다. 가끔은 이런 지나친 스트레스를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도 있는데 이것이 바로 적자생존의 치열한 경쟁인 것이다.' '미국인은 현재를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여 적극적으로 오늘을 즐긴다. 미국은 고도화된 사회이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일을 한 후에는 목숨을 걸고 휴가를 즐길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만약 패배주의자의 심정으로 친미감정을 비방한다면 나는 진실하지 못한 사람일 것이다. 우리는 국가관념이 성숙하지 못한 현상을 비판하거나 개인주의적 충동을 억제할 수는 있지만 절대로 자유와 행복을 추구하는 순수한 행위를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우리처럼 긴 역사와 문화 그리고 무게 있고 풍요로운 문학적 정서를 가진 대국이 미국인의 선전을 위한 쇼윈도가 되는 것은 절대로 참을 수 없다. 이것은 극단적이고 배타적인 민족주의나 위선자적 진부한 감정이 아니라 십수 년 간 우리들에게 누적된 감정이 범람하여 나온 결과이다. 과거 중국이 움직일 수도 없는 곤경에 처하여 간절하게 서양의 것을 배우고자 하였을 때도 오늘과 같지는 않았었다. 그때와는 달리 지금은 학술계로부터 일반 국민의 감정에 이르기까지 우리는 존엄성을 잊어버렸으며 심지어는 모든 민족의 상상력까지도 아메리카에 의해 견제당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쉬쯔모(徐志柰)가 하느님 아들의 '오만한 얼굴'을 묘사할 때 보였던 두려움을 기억하고 있고, 장지에쓰가 스틸웰(.. )사건 후 어느 집회에서 아주 격앙된 목소리로 '망할 놈들 모두 제국주의자였다'라고 일갈한 사실을 기억하고 있다. 나는 심지어 미국인의 매사에 거침없는 행동까지도 나와 같은 중국인들의 공포에 질려 불안해 하는 모습으로 길들여진 것이 아닌가 하고 의심할 때가 있다. 왜냐하면 아메리카는 확실히 축적된 문화가 없는 민족이고 그들은 개발도상국 국민의 겸허한 태도를 경멸하는 심리를 가지고 있을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경멸의 눈초리는 클린턴 대통령에 이르러 더욱 두드러지기 시작하였다. 미국이 외교나 국제문제의 처리에서 보여 주는 이러한 경멸심리에 대해서는 이후에 자세히 논급할 예정이다. 그러나 균형감각을 잃은 선진대국 숭배사상은 역경에 처한 인류의 약점이 아닐 수 없다. 예를 들면 어느 나라의 외무장관은 좋은 교육을 받았고 과거 한때는 세계를 주름잡던 나라를 대표하는 지위에 있었다. 그러나 그는 퇴임하자마자 유엔의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자국이나 같은 민족의 이익보다는 미국의 이익을 위해 미국인보다 더한 행동을 하였다. 그는 나약하고도 치욕적인 행동을 보여 조국의 국민들은 그를 목 매달아 죽여야 한다고 외치기까지 하였다. 외국에서는 선택의 여지없이 한 가지만 선택하도록 하는 방법을 '홉슨식 선택'이라고 한다. 이는 미국의 홉슨이란 상인이 말을 팔 때. 말을 매장으로 내보낼 때 문 앞에 가장 가까이 서있는 말만 선택할 수 있다는 조건을 붙여 고객이 선택할 여지가 없도록 한 데서 비롯된 말이라고 한다. 미국은 우리가 그 동안 쌓아온 외교경험을, 세계 조류에 역행하는 민족주의라고 몰아붙여 열등감을 갖게 한 뒤에 미국가치로 대표되는 세계주의적인 것만이 현대인이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것이라고 강요한다. 우리가 친미의 정서에 휩싸여 있을 때 홉슨식 선택이 살금살금 다가와 우리의 체내와 주위에 잠복하고 있는 가운데, 우리는 비자와 미국의 원조와 사상을 새로 수립하는 마술 계획의 진군을 찬양하는 데 가장 적극적이고 열정적인 전파자가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나는 다음 장에서 노예가 된 후에도 좋아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말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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