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 쏭챵, 짱창창, 챠오벤, 꾸칭셩, 탕쩡위 공저
제2장 살아나는 용의 혼
7. 중국은 굴복하지 않는다
2) 남의 목을 조르면 자기도 힘들다
만일 중국이 세계무역기구의 협상에서 완전히 철수해 버린다면 어떤 상황이 연출될까? 중국은 절대적으로 대외무역의 발전이 필요하다. 무역종사자들은 온갖지혜를 다 짜내어 세계에 중국상품을 내다팔아야 한다. 중국의 경제는 10년 동안의 개방과정을 거치는 사이 이제 세계와 뗄 수 없는 밀접한 관계에 놓이게 되었다. 중국이 세계를 필요로 하는 만큼 이 세계 역시 중국이 필요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얼마 전 중국 고위층 인사가 프랑스를 방문했을 때의 상황이 좋은 예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때 프랑스의 에어버스항공기회사 사장이 중국의 주문서를 받아들었을 때 얼마나 신이 났었을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불경기로 이 회사는 근 2년 동안 정말 어렵게 버티고 있었다. 1995년에는 이익은커녕 1억9천5백만 달러의 손실을 보고 있었다. 중국의 주문서는 많은 프랑스인들에게 생명줄을 던져 준 것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보잉항공사는 10년 간 줄곧 중국에 독점적으로 항공기를 공급하여 중국 항공기시장의 70퍼센트 이상을 독점했었다. 미국인으로서는 중국이 보잉항공기를 구입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미국이 무역제재라는 몽둥이를 제 편한 대로 흔들어도 피해 나갈 길이 있다는 것을 실제 행동으로 보여 주었다. 세계무역기구는 미국의 사주 아래 중국의 가입을 거절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 다른 국가의 무역까지도 완전히 저지할 수는 없다. 중국시장은 공평한 거래를 원하는 국가에게는 언제든지 열려 있지만 중국의 경제발전에 장애를 주는 나라에게는 그 문을 닫아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 중국이 참가하지 않은 세계무역기구가 세계적인 조직이라고 불릴 수 있는지 회의해 보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인은 중국의 가입을 거부할 수 있겠지만 중국 역시 완전히 자유롭게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행동할 수 있다. 10여 억 달러의 항공기 구입자금은 중국인이 피와 땀으로 벌어들인 돈이다. 이처럼 귀중한 돈을 중국의 경제발전에 방해만 하는 나라를 위해쓸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이다. 프랑스는 이미 후회하고 있었다. 4년 전 눈 앞의 이익에 급급하여 '하나의 중국' 정책을 어기고 대만에 60대의 '미라쥬' 전투기를 팔았다. 프랑스는 이때 중국이 꽝쩌우(光州)에 있는 그들의 영사관을 폐쇄시키리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이후 몇 년 동안 프랑스는 중국의 신임을 얻지 못했고 따라서 중국시장으로부터 주문을 받을 수도 없었다. 중국과 같이 빠른 발전을 하는 시장에서 몇 년 동안 소외되었을 때, 프랑스는 막대한 손해를 입기에 충분하였다. 대만은 매년 수백만 달러를 써가면서 미국 의회의 외유단체를 초청하였다. 이것은 당연히 미의회 결정에 어떤 영향을 주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중국은 이런 돈을 쓸 필요가 없다. 중국이 거액의 주문서를 미국 회사에 주느냐 마느냐가 이미 미국 기업에계 인사에게는 엄청난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아직도 10년 전의 진부한 사상에 얽매여 잘난 체하는 미의회 의원들은 대기업 사장의 호소를 묵살할 수 없을 것이다. 미국의 보잉항공사는 줄곧 이렇게 해 왔었다. 중국의 항공시장은 이후 10년 간 대략 8백대의 민형 비행기를 구입하게 된다. 이 거액의 주문서가 누구에게 돌아갈지, 또 중국이 어느 회사와 손잡고 자동차회사를 세우게 될지에 대해서 미국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3) 지금 필요한 것은 미래를 위한 민족주의
아주 깊은 안목을 가진 프랑스 학술원의 어느 원사(阮士)는 자신이 편찬한 [중국이 깨어나는 때]란 책에서 '중국의 12억 인구가 다같이 깨어나게 되면 세계는 변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사실 중국은 이미 깨어났다. 이런 상황하에서 미국이 어떤 식으로 중국에 압력을 가하든 말든 중국은 지금 정말로 깨어나기 시작했다. 21세기의 여명이 밝아오는 이때, 경제적으로 부단한 발전을 하고 군사적으로 강성하며 정치적으로 굳은 신념을 지닌 대국의 윤곽이 서서히 드러나기 시작했다. 1995년이 저물어가던 당시 베이징에는 시청 당국이 신규자동차등록세를 인상할 것이라는 소문이 퍼졌다. 이렇게 되자 베이징의 자동차 매매 시장에는 돈을 싸들고 차를 보러오는 시민들로 가득 찼다. 어느 직장의 수위아저씨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차창에 온갖 장식물을 단 소형차가 빈터에 가득히 주차되기 시작했다고 하였다. 물론 이들 차는 모두 자가용 승용차이다. 금년 설날에 필자는 가까운 친구들에게 전화로 새해인사를 하였다.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한 친구는 아주 흥분한 목소리로 그들 부부가 여행단을 따라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태국으로 해외여행을 떠나게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 쌍하이 시의 한 여행사 책임자는 동남아 단체여행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릴 줄은 몰랐다고 하였다. 몇 년 전만 해도 에어컨이 달린 전세버스를 타고 백화점으로 몰려드는 외국인들의 모습을 중국인들은 호기심과 부러움이 섞인 눈빛으로 보곤하였다. 그 시절에는 우리와 다른 복장을 하프 카메라를 멘 외국사람들이 아주 신기하게 느껴졌으나 지금은 외국으로 나가는 중국인들이 생기기 시작한 것이다. 얼마 전에 필자는 중국의 대학에 재직한 적이 있는 한 미국 교수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베이징에 나타난 '자동차 열풍'을 말하게 되었다. 이 미국인은 감개무량한 목소리로 이것은 그가 중국에 있었을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었다고 하였다. 사실 우리들도 그 당시에는 생각할 수조차 없었다. 어떤 이는. 19세기는 중국이 굴욕을 느낀 시대이며 20세기는 중국인이어려움을 겪는 시기라고 하였다.그러면 21세기는 어떠할까? 어떤 이는, 19세기는 영국인의 시대이고 20세기는 미국인의 시대라고 한다.그러면 21세기는 누구의 시대가 될까? 어떤 이는, 21세기는 중국이 다시 휘황찬란한 곳으로 발돋움하는 시기이며, 21세기는 중국인의 시대가 될 것이라고 한다.지금과 같은 사회 변화가 계속되기만 한다면 다음 세대의 중국인은 세계에서 가장 번영한 나라에서 살 수 있다. 문제는 그렇게 되기 위해 중국인이 앞으로 반드시 거쳐야 할 어려운 시기를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달려 있다. 역사 발전이 모든 민족에게 주는 기회는 평등하다고 봐야 할 것이다. 중국은 진정한 의미의 대국이 될 수 있는 유리한 조건을 많이 가지고 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경제력과 국민의 강한 의지력이다. 중국의 거리를 걷노라면 자신없어하는 중국인의 모습이 곳곳에서 느껴진다. 베이징의 한 입체교차로 옆에 우뚝 솟아있는 거대한 부동산 광고에는 '아시아 선수촌의 이웃, 중국의 롱아일랜드'라고 쓰여 있다. 쌍하이는 (浦東)지구 개발에 힘을 쏟으면서 쌍하이를 아시아의 금융중심으로 만들기 위해 금융발전구를 건설할 계획이었다. 이 계획 자체로도 이미 충분히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수 있었는데도 구태여 '동방의 맨하탄'이라고 선전하고 있다.또한 각종 금융기관을 쌍하이 와이탄(外繼)에 재입주시켜 이곳을 쌍하이의 금융센터로 발전시킬 계획을 하고는 이곳을 구태여 '쌍하이의 월스트리트'로 불리게 하고 있다. 막대한 자기 비용을들인 중앙TV 고량주 광고방송에는 'OC주(酒), 중국인의 OO' 라는 프랑스 술에 대한 문구를 집어넣고 있다. 어떤 상황이든지 외국의 색채를 띠게 되면 더 고귀해진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이것은 지금의 중국사회가 안고 있는 기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는 담배를 파는 할머니조차 외국담배 상표가 새겨진 파라솔을 펴 놓고 있으면 더 많은 손님이 몰리는 것처럼 여기고 있는 듯하다. 이런 국민의식의 결여에 대해 중국인들은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미국과 인접한 캐나다는 비록 미국과 동일한 언어를 쓰고 있지만 캐나다인들은 자신의 민족문화 보호에 각별히 신경 쓰고 있다. 캐나다 정부는 캐나다 방송국이 미국가요를 내보내면 그 책임자는 반드시 연주자와 음반제작회사에 저작료를 내도록 규정하고 있다. 술집이나 식당에서 미국음악을 내보내도 역시 저작료를 내야 한다. 정부는 이 돈으로 재단을 설립하여 캐나다의 연주자와 음반제작회사를 지원하고 있다. 프랑스에서 유학하고 있는 내 친구의 경험에 의하면, 프랑스인에게 무심코 영어로 말하면 그 사람은 모르는 체하기 십상이라고 한다. 또 프랑스 방송국의 60퍼센트는 완전한 유럽 프로그램을 방송하도록 규정되어 있는데 이는 미국문화의 침투를 막고자 하는 것이다. 프랑스인은 우루과이라운드협상 때 영화관련상품의 논쟁에서 자신들의 의견을 끝까지 고수하였다. 이 협상에서 프랑스는 영화를 일반 협상항목에 넣는 것에 반대하고 영상관련상품을 '문화공업'이라고 불렀다.그들이 이렇게 하는 의도는 미국의 할리우드영화가 자국의 시장을 잠식하는 것을 막자는 데 있었다. 프랑스의 이런 주장은 유럽 다른 나라들의 호웅을 얻게 되었고 유럽연합은 성명을 발표하여 우루과이라운드협상에서 '현재와 미래'에 유럽의 영상공업에 대해 '특별대우'를 하라고 요구하였다, 통계숫자로도 이 분야에서 미국의 쇼비니슴을 들여다볼 수 있다. 1992년 미국이 유럽에 수출한 영화상품은 30억 달러에 달하나 유럽이 미국에 수출한 액수는 겨우 2억8천만 달러에 그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충분히 돈을 벌지 못했다'고 억지를 부리고 있으며 유럽 각국이 양보해 줄 것을 요구하였다. 하지만 유럽인들은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다. 싱가포르의 전 총리 리꽝야오(는 자기 국민들에게 반드시 중국어를 배워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싱가포르인들이 영어를 아무리 잘한다 해도 서양인들은 결코 싱가포르사람을 영국인이나 미국인으로 보지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민족이건 자기의 언어가 있어야 다른 민족의 존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에서는 미국에서 태어나 중국말을 못하는 중국인들을 ' A B c '라고 부른다. 그들의 외모는 중국인이나 영어만 할 줄 알고 사고방식 역시 미국식이다. 그러나 미국의 백인들의 눈에는 여전히 '중국인'일 뿐이고 화교사회에서는 그들을 '미국인'으로 치부해 버린다.백인에게는 백인의 사회가 있고 화교에게는 화교의 사회가 있으나 그들은 어느 사회에도 속할수 없는 처지인 것이다. 민족 개개인이 민족적 포부를 가지고 민족부흥에 노력할 때 그 민족에게는 비로소 밝은 미래가 있는 것이다. 아프리카에 사는 어떤 종류의 개미는 강물이 그들의 길을 막게 되면 서로 협력해 큰 무리를 이룬 다음 강을 건넌다고 한다. 이때 익사하는 불행한 개미도 있으나, 결국 이 개미들은 강 건너편의 언덕에 도달한다. 하나의 민족이 살아가는 길에 시련이 있을 때 필요한 것은 이와 같은 헌신적 정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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