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라고 말할 수 있는 중국 - 쏭챵, 짱창창, 챠오벤, 꾸칭셩, 탕쩡위 공저
제2장 살아나는 용의 혼
5. 덩달아 중국제재에 나선 일본
일본은 비록 지리적으로는 아시아에 속하지만 정치개념으로 보면 서구 국가의 동맹이다. 특히 주의할 것은, 중국을 제재하려는 미국의 움직임에 일본이 의식적으로 끼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94~95년에 걸쳐 중국이 두 차례의 핵실험을 하자 일본에서는 중국이 아시아의 평화를 위협하고 있으니 대중국원조를 중단해야 한다는 소리가 높아졌고, 어떤 정치가는 대중국차관까지도 완전 동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인이 공공연하게 군사적으로 중국을 위협하고 있다면, 일본은 경제적으로 중국을 제재한다고 할 수 있다. 중국은 과연 핵실험을 할 권리가 없는 것일까? 프랑스, 중국. 영국, 미. 러시아 등 5개국이 핵실험 전면금지조약에 아직 서명도 안 한 상태이고, 중국 정부는 일단 이 조약이 발효되면 핵실험을 즉각 중단하겠다고 선포한 바 있다. 그러므로 중국의 핵실험은 법률적으로 아무런 하자가 없다. 미국이 1천8백 회 이상 핵실험을 한 데 비해 중국은 겨우 44회를 했을 뿐이며. 중국이 보유하고 있는 핵무기도 미국의 1.2퍼센트에 지나지 않는다. 중국은 1964년 10월에 첫 번째 원자탄을 터트린 이후 핵무기를 먼저 사용하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혔으나, 미국은 지금까지 이와 유사한 약속을 한 적이 없다. 한국전쟁중 미국은 중국에게 핵무기를 사용하겠다고 여러 차례 협박하였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중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는 목적은 핵의 독점을 막고 외세의 침략을 방어하려는 것으로 정당한 행위인 것이다. 중국 총리 리펑(李鵬)은 1995년, 일본의 중 .일 경제협회의 방문단을 접견하는 자리에서 '일본 군국주의 침략자들은 중국에 큰 손실을 안겨주었다. 이는 일본이 중국에 제공하는 차관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로 막대한 것이었다. 중국의 핵실험에 지나치게 민감한 반웅을 보여 경제적으로 중국에 압력을 가하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될 것이다'라고 솔직하게 말한 적이 있다. 이는 틀리지 않은 말이다. 과거에 일본은 중국을 침략하여 최소 1천억 달러 이상의 손해를 입혔다. 일본은 대중국원조나 차관을 동결하는 수법으로 중국을 제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발상이다. 중국은 아직 현대화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에 있으므로 외부의 원조가 필요한 처지이다. 그러나 소련이 기술인력을 철수할 때도, 미국이 중국에 대해 경제봉쇄를 시행할 때도 중국은 절대 고개를 숙인 적은 없었다. 일본이 원조를 동결하는 방법으로 중국을 위협하려 하는 것은 일본이 중국의 경제발전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제거리도 아닌 핵실험을 들고 나와 중국제재의 대열에 끼어든 것이다. 또 중국 핵실험문제로 논쟁을 벌이는 한편, 일본 국내언론은 중국 동해의 조어도(釣魚島) 주권문제를 들고 나와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심지어는 이 문제에 대해 미국이 간섭해 줄 것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대만 북단에 위치한 조어도는 줄곧 대만의 부속도서로 여겨져 왔으며 역사적으로도 중국의 영토였다. 갑오전쟁 이후 대만이 일본의 식민지가 되자 이 섬도 자연히 일본에게 뺏기게 되었다. 1945년 일본이 패망하자대만은 중국에 되돌려졌고 조어도는 너무 작고 사람이 살 수도 없는 섬이어서 그 귀속권문제를 중 . 일 어느 나라도 문제 삼지 않았었다. 그러다가 70년대에 이르러 섬 부근에서 석유가 탐사되자 비로소 주권문제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유엔의 아시아 및 원동경제위원회의 조사에 따르면 조어도 주변해역의 석유 매장량은 대략 44억 배럴에 이른다고 한다.자원이 빈약한 일본으로서는 탐을 낼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중 . 일 국교수립 이후 일본은 이 섬이 일본에 속한 것임을 분명히 해 줄 것을 중국에 여러 차례요구하였다. 중 . 일 외교 정상화를 위해 중국 정부는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을 회피하기도 하고 공동개발과 같은 제의를 하기도 하였다. 이는 대국의 아량을 보여 준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결코 우리의 영토를 나눠줄 생각은 없다. 우리는 이 작은 섬에 연연해 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섬은 작지만 국가의 주권은 작게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친구가 베이징 거리에서 이상한 현상 하나를 발견하였다고 한다. 거리를 가득 메운 일본의 '크라운 "브루버드 "두크'와 같은 자동차들이 미국에 있는 동류의 일본차보다 품질면에서 뒤떨어진다는 사실이었다. 이 차들의 엔진이나 기어박스는 같다 할지라도 다른 부문에서는 아주 큰 차이가 있다고 한다. 이 유학생의 일본제 니산자동차는 미국에서 11년을 달린 차였으나 차체의 도장상태는 여전히 사람 의 그림자가 비칠 정도로 좋았다고 한다.그러나 중국에 있는 일본의 '브루버드'는 이런 차가 한 대도 없었다.그는 이런 현상은 보존상의 문제가 아니고 품질의 문제라고 생각하였다. 1984년부터 일본자동차의 연료시스템은 전자분사장치를 장착하였으나 80년대말 중국에 수입된 '브루버드'는 여전히 기화기를 사용하였다. 그는 니산자동차회사의 중역과 이런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펄쩍 뛰었다 한다. 하지만 그 유학생이 구체적인 사례를 들자 중역은 난감해 하면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 학생은 매우 분개하여 '일본인은 일류상품은 구미에 수출하고 이류상품은 자신들이 쓰고 삼류상품을 중국인에게 팔고 있다'고 했었다. 1년 전에 베이징의 {중화공상시보}는 이 유학생의 견해를 증명해 주는 보도를 실은 적이 있다. 한 회사원이 혼자 자동차를 몰고 가다가 벽에 부딪히는 사고가 일어났다. 운전자가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이 차의 문제점이 드러났다. 핸들에 부착된 에어백이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은 것이다. 이 회사원은 혼다의 베이징사무소를 찾아갔으나 일본측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최소한의 성의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에어백이 펴지지 않은 것은 자동차가 충돌할 당시 일정한 속도에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변명하였다. 그러나 자동차전문가에 따르면 이런 논리는 성립될 수 없다고 하였다. 왜냐하면 자동차가 벽에 구멍을 낼 정도로 부딪혔다면 당시 속도는 상당히 빨랐다는 사실을 증명해 준다는 것이다, 만약 미국에서 이런상황이 벌어진다면 일본 자동차회사는 차주를 위해 수리기간 동안 동료의 자동차를 무상으로 임대해 준다는 것이다. 이 보도가 있은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국의 한 독자가 {중화공상시보}에 편지를 보냈다.그는 일본 컬러Tv 한 대를 구입하였으나 얼마 안돼 화면이 컴컴해져 버렸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곳에 호소하였으나 아직까지 아무런 응답이 없다는 것이다. 현재 중국의 거리에는 비싸게 수입한 일본차가 달리고 있으며, 웬만한 중국 가정이면 일본제 가전제품이 적어도 한 대 이상은 있다. 고급간부들은 어떻게 해서든 일본차로 바꾸려 한다. 어떤 사람이 '50년 전 일본은 군사적으로 중국을 쳐부수었지만, 50년 후인 지금은 경제적으로 중국을 쳐부수고 있다'라고 분노한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것 같다. 세계적인 무역개방 속에 품질이 더 낫다고 생각하여 일본차를 사는 것에 왈가왈부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런 경우도 있다. 중국 기자가 한국을 방문했을 때 그는 아주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서울의 거리를 달리고 있는 차들은 대부분이 한국산 자동차였고 외제차는 거의 보이지 않더라는 것이다. 한국인이 국산차를 선호하는 것은 결코 정부의 강요 때문만이 아니라, 국민들의 애국심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미국이 한국의 자동차시장을 개척하려고 안간힘을 쓰지만 지금까지 매년 2천여 대 정도 밖에 팔리지 않는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한국인들은 한국차가 세계에서 가장 우수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미국으로 이민을 간 후에도 미국차를 사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신들이 생산한 차를 세계 각국에 파는 일본에 대해 좀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미국은 일본의 자동차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일본과 자동차 무역협상을 벌이고 있으나 별다른 성과를 올리지 못하자. 무역제재를 가하겠다고 위협하였다. 그리하여 겨우 기본적인 타협을 보게 되었고 일본은 많든 적든 양보를 하였다. 그러나 미국 자동차회사의 대일본 연간 판매량은 1만 대를 넘지 못하는 수준이다. 국산품 사용을 주장하는 것이 민족주의로 간주된 적은 아직까지 없었다. 하물며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계가 진정하게 하나된 세상도 아니므로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특히 중국은 이제 막 자동차공업을 일으키려는 힘겨운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이에 국민 개개인의 관심과 보호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중국대표가 제네바에서 우리의 초보적 단계에 있는 민족공업을 보호하기 위해 침이 마르도록 외치고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근로자들이 피땀 흘려 번 외화로 자동차나 기타 제품을 수입 해 오면서 몇 푼의 관세를 거둔다 한들 이것이 우리 민족공업에 무슨 보 탬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닉슨은 그가 저술한 책에서 일본 상인에 관해 다음과 같이 묘사한 적이 있다. '그들은 경제개발원조와 투자 및 기술이전으로 다른 나라가 발전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중국 기업들은 여러 번 손해를 본 후에야 일본 기업과 합작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일본에서 기계를 구입하면 생산을 위해서 또 원료를 수입하여야 한다. 그들이 말하는 합작이란 것에 중요한 기술의 이전은 포함되어 있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일본인들은 결코 진실한 적이 없다. 드골은 그를 방문한 일본 수상에게 '반도체 외판원'이라고 꼬집어 말한 적이 있는데 이는 정말 일본인의 본성을 잘 지적한 것 같다. 일본인들은 중국에 얼마나 많은 자동차와 Tv를 팔 것인가에 관심이 있을 뿐 기술을 이전할 생각은 아예 없었다. 합작은 쌍방이 모두 원하고 서로에게 이익이 있어야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볼 때 일본은 합작의 파트너로서 적합하지 않다. 중국은 모든 중국인의 것이다. 일본차를 타고 일본 전자제품 쓰는 것을 즐거움으로 생각한다면 중국인은 결코 위대한 민족이 될 수 없다. 중국인 스스로가 자국 기업을 보호하지 않고 외국 상품을 선호한다면 위대한 국가가 되고자 하는 중국의 꿈은 영원히 실현되기 어려울 것이다. 중국의 민족기업이 외국의 힘에 의해 무너져 버린다면 중국인들은 무엇으로 일본산 자동차와 전자제품을 살 수 있겠는가? 일본은 경제뿐만 아니라 군사적인 측면에서도 중국제재의 행렬에 끼어들고 있다. 일본자위대는. 계급장을 붙인 제복차림이 23만 명이고 평복의 사무원과 기술관이 2만 5천 명이나 된다. 그 중 육상자위대는 13개 연대에 모두 15만 명의 군인과 1천2백 대의 탱크를 보유하고 있다. 군인의 수는 영국을 훨씬 능가하고 탱크 수량도 영국과 프랑스를 능가하고 있다.해상자위대는 160대의 군함을 가지고 있어 그 규모면에서는 영국과 이탈리아를 능가하는 세계 3위의 수준이고, 항공자위대는 512대의 작전용 비행기가 있어 영국이나 이탈리아의 수준과 비슷하다. 또 군비는 N A T o 의 표준에 따라 계산한다면 미국 다음으로. 세계 2위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일본의 자위대는 전세계에서 몇 안 되는 군사대국이다'고 밝힌 바 있다.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했을 때 일본을 점령한 맥아더는 요시다 수상에게 서신을 보내 혼란한 일본사회의 질서를 바로 잡기 위해 7만 5천 명의 경찰예비군을 창설하라고 명령하였다. 같은 해 8월에 경찰예비군이 창설되었고 일본은 이때부터 군비증강의 발걸음을 내디볐던 것이다. 해상경비대를 창설한 지 2년이 지난 1952년, 일본은 방위청을 신설하고 육상과 해상무장부대를 육상자위대와 해상자위대로 개명하는 동시에 항공자위대를 신설하였다. 이때부터 일본의 육 .해 .공 삼군의 틀이 황립되었으며 이후 끊임없는 발전을 거듭하였다. 자위대의 창설은 미국이 일본의 전범들에 대해 더이상 그 죄를 묻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로 당시 아시아에서 미국세력을 확장하려는 전략적 목적에서 나온 것이다. 한국전쟁 때 일본은 미국의 병참기지가 되어버렸고 얼마 후 미국은 일본과 '미 .일 안전조약'을 체결하여 법의 형식으로 일본을 미국의 세계전략체계 내에 포함시켰다. 1987년 당시 일본 수상인 나카소네는, 1976년 확정한 군비지출계획을 파기하기에 이르렀고 이후 일본의 군비지출은 계속 증가하였다. 1991년일본의 군비는 343억이었고 1995년에는 더욱 증가하여 472억 달러에 이르게 되었다. 군비가 급속도로 증가함에 따라 군사장비 역시 현대화되었다.군사증비의 교체기간은 이미 미국을 앞질렀다.일본 육상자위대는 최신형 89식자동소총을 영관급 이하 장병에게 지급하였고, 1995년 말에는 24대의 미국산 패트리어트 지대공미사일을 배치하였다. 육상자위대가 보유하고 있는 최신예 화생방차량은 현재 미국에서조차 만들지 못하는 것들이다. 해상자위대는 현재 최신형 일반 동력잠卞함을 16대나 보유하고 있다.중국과 가장 가까운 나가사키(長峰) 현의 사세보(佐世保)에는 세계에서 가장 진보된 구축함을 정박해 놓고 있으며 앞으로 3대를 더 배치할 계획이다. 일본의 구축함은 규모면에서 아시아 최대일 뿐 아니라 수뢰제거능력 역시 최강이다. 대잠수함작전능력 역시 미국과 러시아 다음이다. 항공자위대는 현재 160대의 F16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그 보유대수는 미국의 다음이다.게다가 차세대전투기 FS 기종을 미국과 공동으로 연구 제작하고 있으며 1998년에는 130기를 배치할 예정이다. 일본은 현재 100 대의 대잠卞함순찰기를 보유하고 있으며 전국 28개 항공감시소에 자동경보시스템을 설치하고 있다, '포츠담 선언'의 규정에 의하면 일본의 방위영역은 일본 본토 4개 섬으로 국한되어 있었으나. 80년대 이후 소리 소문 없이 그들의 방위영역을 태평양 가운데의 괌과 바시해협 주변까지 확장하였다. 이는 실질적으로 일본이 준수해야 할 방위원칙이 변화하였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1992년9월부터 일본은 '국제사회에 공헌하기 위해 "유엔평화유지군에 협조하기 위해'라는 구실하에 11차례에 걸쳐 자위대를 해외로 파견하였다.해외파병을 금지한 일본헌법의 조항은 이미 폐기된 것과 마찬가지이다. 경제 및 군사면에서 일본은 대국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은 근래 '군사력을 이용한 국제사회에서의 책임'을 계속 강조하고 있으며 유엔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은 군사력 증강을 위해 갖가지 구실을 붙이고 있다. 즉 한반도 및 남사군도와 일본 북방의 영토문제 등과 같이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는 아직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에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일본의 군사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논리이다. 일본은 미국이 내세우고 있는 '중국위협론'까지도 군비확충의 구실로 삼으려 하고 있다. 1989년 일본 수상부(首相府)는 1차 여론조사를 실시하여 '중교은 군사대국'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1991년부터 일본의 방위 백서에서는 중국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1995년 일본방 위 백서는 '중국의 해상 활동범위 확장에 대해'주의할 필요가 있음을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일본 방위청 방위국장 아키야마(秋山昌廣)는 '자위대의 질을높여 강력한 군사력을 가지도록' 하여야 한다고 했다. 일본은 미국과 공동으로 작전지역의 미사일방어계획을 연구하는 등의 구체적 행동을 보이고 있다. 그들이 선택한 4개의 방안 중 3개 방안의 목표가 중국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었다. 일본 방위청은 이를 위해 미사일 방위연구실을 신설하였으며. 이 연구실은 '먼저 중국 미사일의 위협 요인을 분석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일본의 전 방위청장 미야다케(宮竹理勝美)는 냉전시대 자위대의 훈련은 소련을 가상의 적으로 하여 이루어졌던 것을 인정한 바가 있다. 그러나 지금 일본의 태도는 완전히 달라져, 현재 방위심의관을 맡고 있는 오모리(大森敬治)는 '일본은 냉전 후의 주변 환경에 대한 상세한 분석을 통해 자위대의 군사력을 재배치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즉각 서부에 우선 배치하자는 것은 아니다'라고 말하였다. 일본이 세계에서 제일 진보된 구축함을 중국과 가장 가까운 사세보에 배치한 것과 그들의 미사일방어 계획등으로 보면,중국은 분명히 일본의 '가상 적국'이 되어 있다. 중국은 이러한 일본에게 한 치의 양보도 하지 않는 태도를 견지하면서 러시아 및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과 긴밀한 협조를 통해 대웅함으로써 일본 군사력의 위협을 막아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