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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아랍의 가정과 사회
인간의 유산은 자라온 물리적 환경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가
정이나 학교, 정부와 같은 사회적 제도 역시 하나의 문화적 기틀을 만들고 그
안에서 영향을 받는다. 민족적 집단은 그 문화로부터 동질성을 얻는다. 그 민족
을 민족답게 해 주는 것이 문화이다. 다음과 같은 측면을 통해 아랍문화를 살펴
보는 것도 필요하다.
. 각 집단의 모국어가 다르다. 아랍어에도 각 나라마다 각 지방마다 방언이 있
다.
. 입는 옷차림도 문화에 따라 다르다.
.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도 다르다. 돼지고기를 금하고 오른손으로 먹는다.
. 시간에 대한 감각이 다르다. 하루는 해가 져야 시작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아랍문화의 진면모를 알 수 없다. 아랍의 가정과 사회
속에는 어떤 독특한 문화적 양상이 있을까 ?
. 사람과의 관계, 조직과의 관계가 나이, 성, 지위, 혈연 정도, 부, 권력, 지식에
따라 어떻게 결정되는가 ?
. 대가족, 이슬람 공동체, 일부 다처제, 그리고 남성위주와 노인이 공경받는 사
회인가?
무엇이 바른 예절인가? 관행은 무엇인가?
어떻게 처신해야 하는가? 마주 대했을 때 상대와의 거리는 어느 정도인가?
일반적으로 아랍이나 무슬림은 계산이 빠른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아랍이나
무슬림과 비즈니스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인관계이다. 아랍인은 상대방이 소
속해 있는 기업을 상대로 계약하는 게 아니라 현재 만나고 있는 사람이 누구냐
가 중요하다고 한다. 그리고 거래시 아랍인에게 시간을 지켜 달라고 강요하는
것도 무리한 요청이다. 때로는 가격, 계약 조건보다 상대의 인상과 또, 신뢰감에
비중을 두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회생활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또, 아랍 무슬림의 가족의 구조와 형태가 바뀌어 가고 있다. 최근 이집트에서
는 여성의 동의 없이 남편이 이혼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을 상정했다. 사우디아
라비아에서는 여성들이 직장에서 일하게 해 달라고, 그리고 여성도 운전면허를
취득하게 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전통적인 가족구조도 변하고 있는 것이다.
1. 가족구조와 일부 다처제
가족의 구조와 형태
가족은 이슬람적 배경을 고려하여 정의를 내릴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가족은
혈연과 부부관계를 통하여 관련된 특별한 구조이다. 이슬람 사회의 성격상 가족
은 종교에 의해 규정되고 법으로 강화된 공동 유산상속이 뒤따르는 관계가 필요
하다. 가족의 구성원이 되려면 자연적인 혈연관계가 이루어져야 하고, 이것은 혼
인을 통해 얻어진다. 가족 간의 권리와 책임은 단디 혈연이나 부부관계에 의해
서만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두 기준이 배타적이어서도 안 되며 반드시 보완적
일 필요도 없다. 가족의 출발점은 두 관계가 배타적이냐 우월하는냐가 아니라
서로의 관계가 권리와 책임을 다한다는 데 있다. 가족은 문화를 이루는 최소의
단위이다.
가족의 구성원은 같은 주거지에서 살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가
족의 정의는 주거 요인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 공동 유산상속이 관련되는 한
그들이 어디서, 어떻게 사느냐가 본질적인 차이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 이슬람에
서의 가족은 핵가족이 아니고 대가족과 일부 다처제를 갖는다. 대가족이나 일부
다처제만이 이슬람에서 가족의 바탕을 이루는 조건 또는 필수사항이 된다. 오늘
날 무슬림 가족은 대가족 또는 일부 다처제 또는 대가족과 일부 다처제를 둘 다
포함하는 경우, 그리고 둘 다 아닌 경우 등 셋으로 나눠볼 수 있다. 이슬람에서
는 위 셋 중 어느 한 형태만을 취해야 한다는 특별한 규정은 없다. 또 여기서
규정하는 무슬림의 가족에는 본인, 배우자, 직계조상과 직계후손을 포함한다.
가족의 권리와 책임은 사회의 나머지 사람들의 관심에서 벗어나서 오로지 가
족 안에서만의 문제는 아니다. 가족 구성원의 공동유산은 가족간의 관계에 의할
뿐만 아니라 같은 종교를 가직 형제들이 모인 사회 구성원에 의해 제정된다. 가
족 구성원이 공유할 권리와 책임은 직계가족의 동질성과 보존, 계승, 애착, 젊은
이의 사회화와 기성세대의 안정 그리고 가족의 연속성과 복지를 위한 최대한의
노력 등과 관련된다. 쿠란에 따르면 만약 어떤 사람이 직계가 확인되지 않으면
형제와 동료 무슬림 의뢰인이 그를 확인해 줘야 한다. 그에게 필요한 동질성을
확인해 줘야 그는 사회에서 적법한 위치를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이전
에는 친족집단이 원래 구성원과 의절하고 또다른 사람을 그대신에 받아들이는
경우가 흔했다. 다름 집안사람을 양자로 들여 직계가족의 동질성을 부여하였다.
그러나 이슬람에서는 이런 관례를 없애고, 개인에게 그의 본래의 신분과 호적을
갖게 했다.
이슬람 이전 아라비아에서는 부족구조가 너무 광범위해서 순수혈통에 의한 부
족 이외에도 자유인, 자기 부족의 법을 어긴 도피자, 그들 스스로 설 만큼 강력
하지 않았지만 메디나에 있는 유대인 집단 등이 있었다. 자유인은 종종 후견인
에게 입양되기도 했고, 실제 후견인 부족의 구성원으로 활동했다. 그리고 부족의
입양아와 적자 사이에 중요한 차이는 없었다. 그들은 소독과 빚을 공동분배했다.
도피자는 자주 보호해 준 부족에 입양되었다.
“예언자 무함마드의 첫 아내는 노예 자이드 븐 하리사를 데리고 있다가 전통
적인 방법에 따라 그를 자유인으로 풀어준 뒤 입양하였다. 두 부부의 입양아가
된 후에 그에게 자이드 븐무함마드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그들 가족과의 정
착을 돕기 위해 무함마드는 그의 사촌 자이납 빈트 자흐쉬를 자이드와 결혼시켰
다. 그녀는 거절했고 노예였던 자이드가 야심이 있는 그녀와 수준이나 여러 면
에서 안 맞는다고 그녀의 오빠와 함께 이의를 제기했다. 쿠란 33장 37절을 보면
암시적으로 자이납과 그녀 오빠를 꾸짖으며 알라와 그의 사자의 명령에 순종하
라고 명한다. 결국 자이납은 자이드와 결혼했으나 그 둘의 결혼생활은 행복하지
못했다.
자이드가 아내의 모욕을 문제삼아 그녀와의 이혼을 요구하자, 무함마드는 그
녀와 계속 살도록 권면하고 알라를 늘 마음속에 두라고 권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무함마드는 자이드를 찾아 갔는데 집에는 그가 없고 자이납이 그를 맞
아들였다. 자이납은 매우 매력적이고 남성들이 못 견딜 정도로 매혹적인 교태를
보여 무함마드는 그 즉시 사랑에 빠졌다. 무함마드는 그의 양자 자이드에게 그
녀와 이혼하도록 했고 그녀가 이혼했을 때 무함마드는 곧 자이납과 결혼해 버렸
다. 그의 양자와 이혼한 아내를 무함마드가 아내로 삼은 것이 근친상간이냐 아
니야를 대답하기 위해 무함마드는 쿠란의 구절을 인용하면서 입양을 폐지한다고
선언하고, 양자의 이혼녀가 재혼하는 길을 터놓았다.
위의 이야기는 너무 무슬림들이 이슬람 초기 자료에 없어 출처가 의심스런 위
경에 해당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흥미로운 점이 많다. 쿠란의 구절과 딱 들어맞
는 점이 있다. 자이납이 자이드와 마지못해 결혼한 이야기와 두 사람의 가정생
활이 뒤틀려 있었다는 것은 틀림없는 것 같다. 무함마드가 자이드를 그의 아내
와 계속 살도록 한 점과 알라를 마음에 두라는 말은 그가 주선했던 결혼이 파국
으로 달려갈 때 그가 사람들에게서 받을 반응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쿠란은
무함마드의 동기를 비판한다. 알라가 그의 행동을 기뻐하지 않는다고 무함마드
에게 말한다. 그리고 쿠란은 자이납과 자이드 사이의 이혼, 그리고 무함마드의
동기를 비판한다. 알라가 그의 행동을 기뻐하지 않는다고 무함마드에게 말한다.
그리고 쿠란은 자이납과 자이드 사이의 이혼, 그리고 무함마드와 자이납간의 합
법적인 결혼으로 결론을 내리고 있다. 이러한 이야기는 신빙성 여부보다는 그것
으로 인해 양자제도가 없어졌다는 사실이다.
이슬람에서 개인이 갖는 본래의 동질서을 보존하는 문제는 혼인한 여성의 지
위에서 찾을 수 있다. 여성이 혼인하면 새로운 부부간의 동질성이 확립되고 여
성은 아무개의 부인으로 불리워지지만 여전히 그녀의 옛 직계관계도 유지된다.
여기서 동질성이 깨어지지 않는다는 것은 그의 권리와 책임을 동반하고 둘 다
서로에게 독립체로 우지된다. 이것은 아직도 이슬람 세계 어디서나 통용된다. 혼
인한 여성에 대한 위와 같은 이중의 동일성은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에 아직까
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아랍인들은 진짜든 가짜든 가문과 혈통을 열광적으로 자랑하고 허풍을 떤다,
가문이 명문가문이든 아니든 모든 무슬림은 원래의 혈통적 동질성을 회복하기를
강력히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슬람은 현대 아랍인들에게 그들의 자랑을 줄이고
겸양을 요구하였다. 쿠란은 진짜 귀족다운 것은 혈통의 문제가 아니고 충효와
선행에서 온다고 하였다. 그 예로, 이슬람 초기에 혈통에 관계 없이 중용된 사람
이 많았다. 아비시니아의 흑인 노예 빌랄은 기도시간을 외치는 최초의 무앗딘이
되었고, 페르시아인 개종자 살말은 무함마드의 가장 저명한 교우가 되었다.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자이드는 메이나에서 무함마드의 삼촌과 형제애를 맺었고, 정
벌대의 첫 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바로 이 자이드의 아들 우사마가 처음에는
무함마드에 의해 나중에는 아부 바크르에 의해 군대를 지위하도록 임명되었다.
안달루시아를 정복했던 사령관 따리끄 븐 지야드도 노예신분에서 해방된 자유인
이었다. 이처럼 이슬람은 각 개인의 신앙적 행위나 영적인 지도력이 더 중요하
다고 보았다.
일부 다처제
이슬람의 가족제도 안에서는 일부 다처제의 특성을 가질 수 없는 상황이 있
다. 이슬람이 일부 다처제 형태가 절대적으로 필요하지 않다거나 명확하게 금지
하지도 않았다. 더구나 이슬람에서 일부 다처제는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규칙이
아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사회적인 조건은 물론 개인의 판단과 양심에 크게 의
존한다. 현대 이슬람 가족제도 연구에서도 일부 다처제의 복잡성과 다원성이 지
적된 바 있으나 일부 다처제는 반드시 비이성적인 것은 아니라고 조심스런 결론
을 내리는 학자도 있다. 남자에게 특권이라든가 여자에게 저주가 되는 것도 아
니란 것이다. 일부 다처제는 개인, 사회, 정욕, 경제 등과 같은 여러 가지 이유와
관련되었다. 그러나 사회적인 활동 면에서 이런 이유들은 서로 상호작용하고 동
시에, 전통, 공중도덕, 관습과 법 등 사회적인 힘들과도 상호작용한다. 이런 상호
작용은 앞서 말한 이유들에 대해 대중적인 인식을 강화시켜 주며 그런 경우 일
부 다처제는 다소 수용적인 입장을 갖는다.
혹자는 낮은 성비율이 일부 다처제를 돕는다고 하나 이것은 여러 요인 중의
하나는 될지언정 일부 다처제와 낮은 성비 사이가 꼭 필요한 관계는 아니다. 일
반적으로 남성의 성욕구가 여성보다 더 크고 많다는 통념이 있다. 린톤은 남성
들이 고능력의 육체적 우월성과 공격적인 성본능에 근거하여 일부 다처제에 대
한 타고난 성향을 가진다고 말한다. 이런 능력이 실제로 있다면 대부분의 사회
에서 남성들이 혼기에 찬 여성들 앞에서는 이런 능력이 강화된다. 린톤은 생물
학적, 그리고 인구학적으로 볼 때 여성이 아이를 낳아 집단의 노동력을 증가시
켜 주는 것은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어떤 경우에 일부 다처제는 남자는 물론 여
자에게도 지위를 상징하기도 한다. 남자에게는 위신과 부의 상징으로, 여자에게
는 그런 남자와 결혼했다는 명예의 문제이나. 게다가 둘 이사의 여성이 가사를
분담하면 가사의 짐은 덜어지는 효과도 있다.
이것은 전통사회에서 흔한 사실이었다. 집단으로 볼 때 일부 다처제는 가족
간 동맹의 기능을 하는데 고대에는 부족 간 그리고 국가 간 우호 친선관계를 위
해 이루어졌다. 이처럼 일부 다처제는 어느 정도 개인적 또는 사회적인 문제 해
결에 도움을 주었다. 그러나 또다른 새로운 문제를 야기시켰는데 그것은 부인
간의 질투, 남편의 애정을 얻기 위한 경쟁, 자녀 간의 재산다툼이 있었다. 일부
다처제는 여러 종교에서도 허용되었는데 이슬람이 긴밀히 유착되어 지금은 무슬
림들이 사는 것에는 어디서나 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 페르시아, 슬라브족, 인
도나 유럽민족, 그리고 이슬람 이전의 아랍인들에게도 일부 다처제는 허용되어
그런 예가 많았다. 함무라비 법전에서도 일부 일처제가 규정된법이지만 예외적
으로 남자에게 두번째 부인을 얻거나 첩을 얻도록 허용했다. 그러나 첩은 어떠
한 권리도 없었고, 자녀는 사생아였다. 그리스로마인들의 혼인은 엄격한 일부일
처인데도 결혼한 남자와 정부 간의 만남은 흔했다.
중동의 가족제도와 더불어, 히브리인의 가족도 일부다처가 그 특징이었다. 구
약성경에는 남자가 취할 수 잇는 아내나 첩의수효에 있어서 제한이 없었다. 무
든 사사(판관)는 여러 병이 아내를 두었다. 솔로몬 왕은 700명이 아내, 그리고
300명의 첩이 있었다. 그의 아들은 18명의 아내와 60명의 첩을 두었고, 르호보암
의 28명의 아들은 각기 많은 아내를 거느렸다. 그러나 탈무드에서 현명한 남자
는 4명의 아내보다 더 많이 혼인하지 않는거라고 했다. 4명의 아내는 곧 야곱의
숫자였다. 일부일처가 아주 이상형이지만 일부 다처제와 첩의 제도가 전혀 알려
지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어떤 학자는 일부 다처제가 히브리 유목민 사이의 규
범이었지만, 사사나 제왕시절에 흔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일부일처를 선호해 갔
다고 말한다. 일부 랍비들은 복수혼인을 금했고 아내나 아들이 없을 때에만 허
용했다. 혹자는 히브리 유목민, 제왕, 그리고 사사들 사이에 일부 다처제가 빈번
히 일어난 것은 보편적인 관례에 대한 합법성과 그것이 자주 발생했다는 것과는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여러 시대를 걸쳐 얼마 간 일부
다처제를 시행하고 있음은 확실하다. 이런 예로 중세 때 유럽의 유대인들은 그
때까지도 일부 다처제를 시행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일부 다처제가
무슬림 국가에서 시행되고 있다. 이슬람은 일부 다처제를 허용한다.
일부 다처제에 대한 기독교인의 입장은 상당히 발전했다. 신약성경은 일부일
처를 결혼의 규범으로 생각한다. 그럼에도 주교나 부사제를 제외하고는 일부 다
처제를 명백히 금하지 않았다. 초대 교회에서는 교외 공의회에서 일부 다처제를
반대하지 않았다. 일부 다처제 앞에 장애물이 없었다. 성 어거스틴도 그것을 비
난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오늘날까지도 아프리카 일부 주교는 일부 다처제를 지
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기독교인들은 유대인이나 무슬림보다 일부 다처제를 훨
씬 덜 행한다고 믿어진다. 일부 일처제는 기독교인들 사이에 보편적인 규칙이었
기 때문에 일부 다처제를 비난했다.
기독교의 일부 일처제는 종교철학의 산물이다. 초대 교회에서 교회는 여성에
게 존경을 거의 보여 주지 않았으나, 관능적인 것에 대한 교회의 두려움은 상당
히 컸다. 교회의 주요 관심은 간통을 방지하고 영혼을 구원하는 일이어서 결혼
의 형태는 가능한 한 가장 단순한 형태로 축소되었다. 기독교가 처음 들어간 서
구사회에서 일부일처는 결혼의 유일한 합법적인 형태가 되었다. 일부 일처제는
사회적 철학이 아니고 성에 대한 혐오와 부각된 영혼의 중요성이 결합된 것이
다.
이슬람교는 근동의 동일 문화권에서 발전된 일선교 가족에 속한다. 그렇다고
무슬림 가족제도가 그 밖의 다른 제도와 동일하거나 복제품이라는 것을 의미하
지 않는다. 이슬람에서 일부 다처제는 억압된 상황에 대한 반응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말하기도 한다. 성경과 쿠란에 나오는 이브(하와)의 가정은 일부 일처의
대표적인 예이다. 쿠란 제 4장 3절에 “만일 너희가 고아들을 공평하게 대해 줄
수 없을 것이라고 염려가 되면 너에게 좋다고 여겨지는 여자 둘, 셋, 네명의 여
자와 결혼하라. 그러나 아내들을 공정하게 대해 줄 수 없을 것 같은 염려가 생
기면 한 명의 여성과 결혼하라. ” 위 구절은 대개 쿠란 제 4장 129절과 연관지
어 해석된다. “너희가 애써 노력해도 여성들 간에 공정하게 대해 줄 수 없을
것이다. 너희는 한쪽으로 치우쳐 차별대우하지 마라. ”
쿠란 제 4장 3절을 두고 현대 일부학자들은 일부 다처제는 고아들에게 불공평
하게 하지 않는다면 그 때는 합법적이고, 그의 부인들을 공정하게 대할 확신이
없으면 그 때는 일부 다처제를 금한다고 해석한다. 쿠란 제 4장 129절에서 남자
들은 평등하게 여성을 대해 줄 수 없으므로 일부 다처제는 실제로 불법이라는
것이다. 두 가지 요인이 관련되는데 첫째는 내부적으로 일부 다처제가 너무 남
용되고 둘째, 외부적으로는 무슬림들이 일부 다처제에 대한 서구인의 비난에 민
감해 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고전적인 입장은 확고하여 현대 이슬람 국가의 종
교, 법조계에서는 일부 다처제가 지배적이다. 오늘날 일부 다처제를 법적으로 금
지시키는 나라는 튀니지와 터키이고, 일부 다처제를 되도록 지키는 나라는 모로
코, 레바논, 요르단, 이집트 등이며, 시리아, 이란, 소말리아, 파키스탄, 인도 등에
서는 법정의 허락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일부 다처제에 대한 초기 법학자들의
설명은 다음과 같다.
1. 일부 다처제는 무함마드의 순나(선례, 관례)와 무슬림 법학자들의 합의에
의해, 그리고 쿠란 제 4장 3절에 의해 허용된다.
2. 처음에는 일부 다처제가 여성, 고아들을 부당하게 대하지 않는다는 선에서
이루어졌다.
3. 일부 다처제는 아내들을 공평하게 대하고 충분히 먹고 살릴 수 있는 조건
들을 갖춘 사람에게는 합법적이다.
4. 쿠란에서 말하듯, 공정이 절대적인 평형인데 남편은 똑같이 차별 없는 감정
으로 아내들을 대하고 그의 동정은 어느 한쪽에게만 더 많이 주는 감정적인 치
우침을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쿠란이 요구하는 것은 인간이 해낼 수 있는 것이라야 한다는 조건이
있고 동반, 부양, 여자를 생각해 주는 것들이 아내들에게 똑같아야 한다. 이것도
오늘날 아랍인들에게 물어 보면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심장이 하나인데 어
찌 두 마음을 똑같이 형평에 맞춰 대할 수 있겠느냐고 되묻는다. 그러면서도 무
슬림 중에 몇 사람은 아직도 2명 이상, 심지어는 네 명의 여자와 결혼하여 사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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