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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인간과 자연
자연숭배
이슬람이 아라비아 반도에 들어오기 전에는 아라비아 반도 사람들의 습관 속
에 오랫동안 전해 내려와 그 나름대로 믿고 받드는 토속신앙이 있었다. 토속신
앙에는 자연숭배, 주물숭배, 주술숭배, 정령숭배(애니미즘), 무당신앙(샤머니즘)등
이 있어 오늘날까지 아랍세계에 두루 퍼져 있다. 이러한 자연 숭배 중에는 한국
의 곰과 호랑이 이야기에서 전하는 토테이즘이 이슬람 지역에는 없는 것으로 알
려졌다.
아랍세계에서는 이슬람 이전부터 내려오던 자연숭배, 즉 어떤 자연물을 대상
으로 실제 그대로를 의인적으로 생각해서 신으로 믿는 토속신앙이 있었다. 이슬
람 이전의 자연신은 우상신으로 발전하여 유목민이었던 아랍인들은 별에 대한
신앙을 가졌으며 여기서 점성술이 발달했다. 자연숭배는 무생물과 생물, 자연생
물과 인간 사이에 질적 구분을 못하는 원시신앙으로써 소위 물활론으로 설명된
다. 오늘날까지 정통 이슬람(공식 이슬람)에서 카바의 검은돌에 입맞추거나 비벼
대는 일, 순례의식의 끝에 면도를 하고 손톱, 발톱을 깎는 관습, 머리털과 손톱,
발톱을 성스런 땅에 묻는 관습은 분명히 물활론의 잔재이다. 머리털과 손톱, 발
톱이 톡별히 영혼요소가 충만해 있는 것으로, 그리고 한편으로 영적교재의 통로
로, 다른 한편으로는 적에 대한 치명적인 공격수단으로 사용된다.
아랍세계에는 자연숭배와 비슷한 것으로 주물숭배가 있는 데 주물은 단순한
힘을 가진 실물로서 기술적인 주술과는 구별된다. 쿠란의 구절을 몸에 지니거나
호부를 집에 비치함으로써 재앙을 물리치는 것으로 믿는다. 주물신앙과 상간관
계를 가지는 주술신앙이 있는데 주술은 신비적인 힘을 원하는 대로 작용시키는
데 틀림없는 능력을 가진다고 믿는다. 즉, 자기를 보호할 뿐만 아니라 어떤 대상
을 저주하는 데에도 쓴다.
원시적 종교 중에 가장 보편적인 애니미즘도 아랍세계에 흔하다. 정령숭배의
특징은 자연물 그 자체를 숭배하는 자연숭배와는 달리 어떤 신앙대상인 물체든
지 그 속에 실체로서 정령이 있어 이 정령의 존재와 활동을 믿는 것이다. 크게
보면 애니미즘에 속하는 샤머니즘은 아랍세계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도 무시
못 할 무당사상이 되었다. 그것은 이 샤머니즘이 영적세계의 긍정, 특히 인간영
혼 존재신앙의 타당성에 그 뿌리를 두고 있으며, 또 직접적인 기복방법이 인간
의 욕구충족에 크게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이상과 같은 물활론적인 신앙과 그 밖의 원시적인 신앙이 그 근원을 찾아 올
라가 보면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 반도에서 발견되고 더러는 정복된 나라에서
수입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애니미즘
민간신앙에서의 잡다한 신령에 대한 것을 애니미즘이라 하는데, 사물에는 영
혼 등 영적, 생명적인 것이 두루 퍼져 있어 여러 가지 현상은 그것의 작용이라
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이슬람 이전에 아랍인들은 우상을 숭배했다. 아므루
라는 사람이 우상숭배를 아랍인에게 전했다고 하는 설이 있는데, 그는 일부 우
상을 샴지역(시리아, 레바논지역)에서 메카의 카바로 옮겼다고 한다. 우상으로
인해 아팠던 사람이 낫고, 비가 오도록 빌었으며, 적에게 이길 수 있도록 우상에
게 빌었다. 쿠라이시 부족에게는 카바 신전 내, 그리고 신전 주위에 우상들이 있
었다. 알 라트, 알 옷자, 마나트, 야쿠쓰, 야우크, 나쓰로, 왓드, 수와, 이사프, 나
일라, 후발 등이 있었는데, 이중 후발의 규모가 가장 컸다. 후발은 붉은 홍옥수
로 만든 사람의 형상으로 오른손이 부러져 있었다. 그래서 쿠라이시 부족은 금
으로 그 손을 만들었따. 카바경내의 후발 앞에는 7개의 화살이 있었는데 그들은
새 아이가 태어날 때를 모르면 화살을 쏟았다. 이 화살 중에는 죽음의 화살과
혼인의 화살도 있었다. 싸움터네 나갈 때, 여행이나 일하러 갈 때 그들은 후발에
게 와서 이런 화살을 써서 신탁을 구했다.
아랍인들이 숭배한 것으로는 후발만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아라비아반도 전
지역에 집, 나무나 돌 모양의 우상들이 널리 퍼져 있었다. 심지어 카바 주위만도
360개의 우상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렇게 우상이 많았던 것은 아랍의 부족들이
순례기간에 메카에 옴으로써 여기서 얻은 부를 잘 활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각 마을, 각 부족마다 특별히 숭배하던 우상을 갖고 있었고, 부족 전체의 공통적
인 우상 이외에 메카에서는 각 가정마다 좋아하는 우상을 가지고 있었다. 각 부
족들은 우상을 카바 주위에 놓았다. 그들이 메카에 오면 성지를 방문하고 나서
그들의 우상을 찾아 숭배하고 축성했다.
이런 우상 중에 마나트가 가장 오래 됐으며, 마나트는 심판의 여신으로 특히
죽음을 심판한다고 한다. 아랍인들은 그들 자녀의 이름을 ‘압드 마나트, 자이드
마나트’등으로 지었다. 이 우상은 메카와 메디나 사이의 해안가에 있었고 이
우상을 자랑하던 부족은 아자드, 아우스, 카즈라즈 부족이었다. 이 우상은 무함
마드가 히즈라 8년 메카를 정복하러 갈 때 무함마드가 알리 븐 아비 딸립에게
부셔 버리도록 명했다고 한다. 알 라트 우상은 따이프에 있었는데, 그 의미는 ‘
신’이란 뜻이고, 시리아의 옛 도시 팔미라와 나바뜨의 유적 속에 남아 있었다.
사각형의 바위 위에 이 우성이 세워졌는데 이 우상을 지키는 사람도 있었다. 아
랍인들은 알 라트를 더욱 우상화하기 위해 그들 자녀의 이름도 ‘자이드 알 라
트’로 불렀다. 알 웃자는 마나트와 알 라트보다 나중에 나타난 우상인데 메카
에서 이라크로 가는 우측의 대추야자 관목 속에 있었다. 아랍인과 쿠라이시 부
족은 그들의 자녀 이름을 ‘압드 알 웃자’라 지었다. 위와 같은 우상숭배 이외
에도 아라비아 반도에는 다른 교파가 있었다. 그 중에 사비교도가 있었는데 이
들 추종자들은 천체와 별들을 숭배했고 예멘, 하란, 이라크 고지에 퍼져 있었다.
상징적인 종교로서 그들은 세상에는 선과 악이라는 두 개의 힘이 있다고 했다.
선의 신은 빛으로 상징되고 악의 신은 어둠으로 상징되었다. 이 종교는 페르시
아, 아랍의 동쪽, 특히 바레인 쪽에 퍼져 있었다. 우상을 숭배하던 아랍인에게는
많은 성지가 있었다. 그들의 신앙의 대상은 대부분 새로운 것이 아니었다. 물론
그들의 조상들이 물려 준 관습, 풍습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 그들은 이런 풍습을
가지고 따르는 데는 열심히었으나, 그들 자신이 직접 그 본질을 알려고 하지는
않았다. 아라비아 반도의 북부에 사는 우상 숭배자들은 다른 지역 사람들보다
훨씬 더 광신적이었고 샴 지역과 팔레스타인에 살던 기독교인과 접촉했을 때 더
욱 광신적인 형태를 갖게 되었다. 이 같은 상황은 예멘에서도 있었는데 그들이
기독교를 믿는 에티오피아인과의 접촉으로 광신적인 사람들이 되었다. 아랍인들
은 그들의 신들에게 사람을 제물로 바쳤다. 그들의 사당에 가기 위해 긴 행렬을
지었는데 히라에서는 금성(비너스 행성) 을 숭배하고자 많은 기독교인 포로들을
제물로 바쳤다.
시나이 반도에 사는 아랍인들도 이 행성을 위해 인간제물을 바쳤다. 이같은
일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도 아랍인보다 훨씬 전에 있었다. 아랍인들이 기독교
인이나 다른 종교인들과 접촉하면서 종교적 열심을 불러 일으키는 데 큰 영향을
받았던 것 같다.
유대교인들은 이슬람 이전에 아라비아 반도에 특히 예멘에 퍼져 있었다. 그리
고 또한 와디 알 꾸라, 카이바르, 키야마우, 야스립(후에 메디나가 됨)에는 유대
부족이었던 꾸라이자, 알 나디드, 까이누까아 후손들이 살았다. 동양학자 뇔데케
는 이 유대인들이 아라비아 반도의 주민이있는데 이들이 유대교를 받아들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역사학자들은 아라비아 반도의 유대인들은 유대인들은 팔
레스타인에서 이주했다고 주장한다. 아라비아 반도에 정착했던 유대인들은 토라
(모세오경)의 가르침을 전하고 상과 벌에 대해서도 일러 주었다. 그래서 메카,
메디나 등 히자즈 지방에 사는 우상 숭배자들은 유대교의 영향을 받게 되었고,
이 중에 야스립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빠르게 이슬람을 받아들이게 되었다.
기독교는 아라비아 반도의 북부지방에 살았던 타글립, 갓싼, 꾸다아드의 세 부
족과 남부에서는 예멘에 퍼져 있었다. 아랍인의 땅에 기독교가 들어오게 된 것
은 4세기 동로마의 침입과 그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많은 동조자를
끌지 못했으며, 아랍인과 비잔틴 사람들과의 밀접한 관계로 인해 아랍인들이 어
느 정도 기독교의 영향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남부에서는 에티오피아를 통해,
북부에서는 시나이 반도와 시리아를 통해 수도원을 중심으로 퍼져 갔다. 아라비
아 반도의 기독교는 네스토리우스파(이라크의 히라)와 야곱파(갓싼과 그 밖의 샵
지역부족)으로 나뉘었다. 아라비아에 살던 가장 중요한 기독교인은 나즈란(지금
의 예멘 땅 근처)에 있었다. 나즈란은 땅이 비옥하고 상당히 문명화된 곳이었다.
주민은 농업, 비단직물, 피혁과 무기거래 등을 했다.
아랍의 우상 숭배자들은 자신들이 갖고 있던 우상숭배, 특히 나무나 돌에 정
령(혼령)이 들어 있다고 믿고 초목이나 무생물 속에 깃든 정령을 숭배하는 정령
숭배가 많았다. 더구나 물건을 신성시하는 주물숭배도 있었다. 민간에 내려오던
그들의 풍습과 토속신앙이 쿠란 속에 맹렬히 거부되고 있지만 이슬람을 믿지 않
는 아랍인들에게, 그리고 심지어 무슬림들에게도 그들 조상이 가졌던 풍습과 정
령신앙을 이어받게 되었다. 아직까지 무슬림들 자신에게 내려오는 종교적 관습
으로는 순례 때 하는 싸파와 마르와 달리기, 미나계곡에서 사탄을 쫓는다는 의
식의 돌던지기, 카바 신전 주의를 돌기, 기도전의 세정의식 등이 있다. 또, 이슬
람 이전의 옛 성지나, 일상적 관습(할례, 여아 생매장, 화살촉과 깃털이 없는 화
살로 낙타를 쓰러뜨리는 내기놀이등) 등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오늘날 무슬림들이 흑석에 키스하는 주물숭배는 여전히 큰 위력을 발휘한다.
흑석이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믿는 것은 무슬림들의 대표적인 주물숭배라 할 수
있다. 그들은 이를 금지하지 않고 미개종교의 원시신앙를 그대로 지키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에는 무슬림의 민속신앙이 되어 버린 것이다. 무슬림들은
오늘날까지도 할례(북아프리카에서는 여성에게도 할례시킴)나, 카바 돌기, 흑석
에 입맞추기, 다른 성지방문등이 우상숭배의 점전적인 발전이라는 것을 인식하
지 못할 뿐이다. 그리고 이것은 아브라함의 신앙과 하등의 관계가 없었다.
무함마드가 아브라함의 신앙으로 그의 동족을 이끌려고 한 노력이 시작되었을
때 아랍인들에게는 종교서적이 없었다. 그래서 그들의 정령숭배나 주물숭배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사비교도, 유대교도, 기독교도가 아라비아 반
도에 있었기 때문에 나중에 쿠란에서도 이들 세 종교를 진정한 신의 종교라고
규정지었다. 지금 사비교도는 사라져 버렸고 그들의 역사마저도 알려진 바 거의
없다. 그러나 지금까지 찾은 자료에 의하면 사비교도들이 처음에는 시리아에 살
았고, 셋과 이드리스의 신앙에 근거하고 있으며, ‘셋(아담의 셋째아들)의 문서
’라는 책을 가졌다고 한다. 그 책에는 공의, 진리, 용감성, 가난한 자를 돌보거
나 악을 피하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그들은 7번 기도했고, 그 중 5번을 무함
마드가 선택해서 이슬람의 기도시간으로 정했다고 한다. 그들은 죽은 자를 위해
기도했고 밤부터 해뜰때까지 30일간을 금식했다. 또, 그들은 다섯 개의 별들이
질 때 축제를 지켰고 카바를 받들어 모셨다. 어찌됐든 간에 이런 사비교의 신앙
이 대부분 이슬람에서 그대로 지켜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결국 사비교는 이슬
람에 자리를 넘겨 줌으로써 현재는 전혀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샤머니즘
샤머니즘은 초자연적인 존재와의 직접적인 교류에 의해 점복, 예언, 병치료 등
을 하는 종교현상을 말한다. 샤머니즘에서 신령, 정령, 사령 등과 영적교류를 하
는 능력을 가지고 치료, 예언, 악마제거, 공수 등을 하는 사람을 샤몬이라 한다.
흔히 우리는 무당 또는 박수라고 부른다. 영적교류를 할 때 황홀상태를 수반하
는데 신령이 샤먼에게 옮겨오는 형과 샤먼의 영혼이 영계로 여행하는 형이 있
다.
이슬람 이전부터 아라비아 반도에는 카힌이라 불리는 점쟁이가 있었다. 미래
를 예언하거나 행운을 점쳐 주는 사람이었다. 당시 사람들이 무하마드를 점쟁이
라고 하니까 쿠란 52:29절에서 ‘그대는 점쟁이도 아니고 미친 자도 아니다.’도
계시한다. 또, 일단의 사람들이 이슬람을 전하는 무함마드를 ‘거짓말하는 마법
사, 마술사’라고 말한다. 무함마드가 계시를 받는 동안에 그는 신들린 상태에
서, 즉 자기의식이 아닌 어떤 다른 자의 말을 했다고 무슬림은 말한다. 다시 말
하면 무함마드 개인의 의견이 쿠란에 들어 있지 않다고 설명한다. 어떤 다른 자
가 알라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쿠란은 신들린 상태에 들어간 무함마드가 황홀상
태에서 되새긴 말들의 집대성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쿠란의 초기계시가 상당
히 카힌에 의한 계시, 영적교류 능력을 지닌 샤먼의 인상을 강하게 풍기고 있다.
쿠란에는 또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존재, 진의 장이 있다.
1. (무함마드야, 사람들에게 말하라.) 한 무리의 진이 (무함마드가 쿠란 읽는
것을) 경청하고 쿠란의 정확함과 의미의 풍부함에 놀랐다는 계시를 받았다고 말
하라.
2. 그것은 올바른 믿음으로 인도해 주는 것이니 우리는 쿠란안에 있는 것을
믿고 우리 주 이외에 아무 신도 섬기지 않을 것이다.
3. 그분(알라)은 위대하신 분으로 아내도 아들도 취하지 않았다.
4. 우리 가운데 우매한 자가 있어 알라가 아내와 아들을 두었다고 터무니없는
거짓말을 하는 이가 있으니
5. 우리(알라)가 생각건대, 인간도 진도 알라에게 거짓말하리라고 말하지 마라.
6. 인간들 남자들 중에 진의 남자들에게 도움을 구하는 자가 있으나 인간들에
게 어리석음만 더해 줄 뿐이다.
7. 인간들이 사악한 대로 진들도 알라는 (죽은 후에) 아무도 부활시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8. 진들이 말하기를 우리가 하늘의 비밀을 도청하려고 하나 불타는 별과 (천사
들의) 삼엄한 경비로 꽉차 있음을 알았다.
9. 우리(진)는 실로(보이지 않는)곳에서 앉아 도청했으나(엿듣곤 했으나) 지금
들으려는 자는 숨어서 그를 기다리는 화염을 발견하리라.
10. (도청한 후에)지상에 있는 자에게 어떤 재앙이 있을는지 아니면 그들의 주
가 그들을 올바른 길로 인도하실지 우리(진)는 모른다.
11. (쿠란을 들은 후에)우리(진) 중에는 의로운 자도 있고 그와 반대인자도(의
롭지 못한자) 있어 우리(진)에게는 무슬림과 불신자 등 여러 길이 있느니라.
12. 그러나 우리(진)는 이 땅에서 알라가 힘을 못 쓰게 할 수도 없고 하늘로
도망가서 알라가 힘을 못 쓰게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13. 쿠란을 우리(진)가 들었을 때 우리가 그것을 받아들였으며 그의 주를 믿는
자는 어떤 손실이나 부당한 대우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14. 우리(진)중에 무슬림도 있고 그들의 불신으로 정의에서 벗어난 자가 있으
나, 그의 뜻에 복종하는 자(무슬림)들은 올바른 길을 가도다.
15. 그러나 바른 길에서 벗어난 자는 불타는 지옥의 연료가 되리라.
이상과 같이 무함마드가 쿠란 읽는 것을 진이 들었다고 했고, 진들 중에는 이
슬람에서 보면 무슬림도 불신자가 있다고 했다. 더구나 인간의 무리들 중에 진
에게 도움을 구하는 자는 어리석다고 6절에서 지적한다.
쿠란 제72장이 진의 장인데, 여기에서 진은 이슬람을 믿는 진과 믿지 않는 진
이 있다고 말하다. 진은 인간을 방해하여 해를 주거나 도움을 주는 악령이다. 재
앙을 가져오게 하는 존재라고 믿으며, 심지어 인간의 몸 속에 들어와 사람을 미
치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보았다. 그래서 메카 사람들은 진에게도 재물을 바쳐
재앙을 막고자 했다.
예멘 지역 이외의 아랍인은 진이라는 존재가 가끔 여러 형태로 나타나 인간의
일상생활에 도움이 되는 일을 하나 대체로 해를 끼친다고 믿었다. 그래서 무
함하드 자신도 최초의 계시를 받은 후 그 근원이 무엇인지 알고 싶어 오랫동안
의심했는데 그는 혹시나 진의 장난에 휘말린 것이아닐까 하여 고민한 나머지 자
살까지 고려했다. 그러나 혹자는 쿠란 여러구절에 나오는 진이 암시하는 내용으
로 보아 진을 어떤 하나의 혼 또는 악마이거나 보이지 않는 힘이라고 보기도 한
다. 사람과 천사 사이에 진이라는 눈에 보이지않는 영이 있다. 진은 흙으로 만들
어진 인간과 다르게 불로 만들어 졌으며(쿠란 7:12,55:14~15), 또 진이 원할 때는
사람의 형체를 가질 수도 있고 사람처럼 선할 수도, 악할 수도 있고 죄를 지을
수도 있다.
알라가 아담을 먼저 창조하고 그 형상을 만들어 준 후에 천사들에게 말했다.
‘아담에게 엎드려 절하고 경배하라.’ 그러나 오직 이블리스만 빼고 천사들이
엎드려 인사했다(수라 7:11, 18:50, 2:34). 그래서 이블리스는 신앙을 거부한 불신
자(아랍어로 카피르, Kafir)로서 알라의 명령을 거역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블리
스는 불에서 창조한 내가 흙에서 창조한 아담보다 낫다고(7:12) 대답했다.
이블리스는 진들 중의 하나이고(18:50) 진의 아버지이다. 천사는 빛으로 창조
되었고 자손이 없으나 이블리스에게는 자손이 있다(18:50). 그래서 알라가 이블
리스에게 네가 여기서 거만하게 되지 않도록 하늘에서내려가라고 하니 이블리스
가 인간들이 부활되는 날까지 유예시켜 달라고 한다(7:14, 15:36, 38:79). 그리고
이블리스는 알라에게 올바른 길(이슬람)을 못 가게 하겠다고 한다(7:16).
이에 알라가 너희 중에 이블리스를 따르는 자는 모두 지옥을 가득 채우리라
(7:18)고 말하고, 이블리스는심판의 날까지 저주를 받으리라고 말한다(15:35).
쿠란에는 사단이 아담과 이브를 유혹하여 영생의 나무와 불멸의 권한을 갖게
해주겠다고 말한다(20:120). 그러고 보면 여기서 사단과 이블리스는 같은 존재이
다. 이블리스를 제외한 모든 천사가 아담에게 절했다고 쿠란은 전하고(20:116),
이어서 알라는 아담에게 이블리스가 ‘너와 네 아내의 적’이라고 말한다
(20:117).
쿠란에는 다신교 숭배자(Mushirk)들은 알라가 아닌 알 라트나 알 웃자, 마나
트 등의 여자 우상을 섬겼는데, 이들은 곧 사단 즉 이블리스를 숭배한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알라가 이블리스에게서 그의 자비(rahmah)를 거두어 갔다
(4:117~118)고 한다. 쿠란 제72장에는 무함마드 가 쿠란 읽는 것을 진이 들었다
고 했고, 진들 중에는 이슬람에서 보면 무슬림과 불신자가 있다고 했다. 더구나
인간의 무리들 중에는 진에게 도움을 구하는 자는 어리석다고 6절에서 지적한
다. 무함마드는 쿠란 제114장에서 진과 인간의 유혹에서 오는 두려움을 적고
있다. 그러나 제72장 13절에 진들은 쿠란을 들었을 때 그것을 믿었다고 한다. 성
경에는마귀(devil), 사단(Satan), 귀신(demon) 등이 언급된다. 사단과 마귀의 무
하들이 귀신이다.
이상과 같이 진은 쿠란에서 두 가지 의미로 쓰인다. 하나는 감각으로 지각할
수 없는 어떤 존재인데, 이 존재들의 기원은 불로 알려진다(15:27, 55:17). 둘째,
불로 창조된 진과 이블리스(devil)는 인간보다 낫다고 말했다. 진의 기능은 쿠란
114장 4~6절에 잘 나타나 있는데, 그 내용은 사악한 사단의 악으로부터 인간의
가슴에 속삭이는 진과 인간의 유혹으로부터 알라에게 보호를 구한다는 것이다.
즉 진이 유혹한다는 것이다.
쿠란에서 사단은 인간에게도 적용되며 악의 우두머리가 사단이다(2:14, 3:174,
8:48, 15:17, 21:827). 그러나 진이 인간과 관련지어 사용될 때는 이슬람 이전의
아랍문학에 나오는, 즉 인간의 눈에는 숨겨진 존재로서 천사처럼 볼 수 없는 존
재였다. 또, 이슬람 이전의 아랍시에서 진은 위대한 또는 용감한 남자였다. 또
아랍인들은 외국인이 그들의 눈에서 숨겨져 있으므로 진이라 불렀다(34:12, 13).
더구나 사단을 잠수부라 했는데(38:37), 그것은 바다에 잠수하는 자는 육안에 보
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오늘날 많은 무슬림들이 성인(聖人)을 통해 용서를 구하
는 것도 사실은 고대 아랍인들이 다신숭배에 기원한다.
다신숭배가 진에 대한 두려움, 마술에 대한 공포심에서 이루어졌고, 보이지 않
는 영적 세계와 교류할 수 있는 존재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진은 알라와 인간
사이에 존재하며 아담에게 경의를 표하라고 천사들에게 내린 알라의 명령을 불
순종한 영마(靈魔)이며, 인간보다는 위에 천사보다는 아래에 있는 영적 존재이
다.
더구나 진은 먹고 마시고 종(鍾)을 번식 시키고 있으며 이슬람을 믿는 진은
무슬림의 모든 종교적 의무를 행하지만 이슬람을 믿지 않는 진은 ‘샤이딴(사
단)’으로 불리는데 이런 진들의 아버지가 사단인 것이다.
사단은 예수님이 탄생했을 때 셋째하늘로부터 쫓겨났으며, 무함마드가 탄생했
을 때 마지막 넷째하늘에서 쫓겨난 자들이라고 무슬림은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아직도 가장 낮은 하늘로 엿들으러 가서 거기에서 얻은 내용을 가끔 인간 마술
사들에게 보내 준다. 그러나 천사들이 그들을 발견하면 즉시 쫓아 낸다. 진은 자
주 동물이나 인간의 형태로 나타나므로 향, 춤, 제사의식에 의한 귀신 물리기를
한다.
이 밖에 모든 인간의 발자국을 귀찮게 따라다니며 악을 행하도록 유혹한다고
믿어지는 까리나(Qarina), 쿠란의 구절을 부적으로 몸에 지니는 일, 어떤 쿠란
장은 귀신과 병을 막아내는 데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말하며, 쿠란경전 점(占)도
민속 이슬람에서 번성하고 있다. 더구나 신들린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한 의식은
순전히 물활론적이지만 현재 대부분의 무슬림 세계에서 특히 여성들 사이에 실
행되고 있다. 더구나 무슬림들은 보호와 치료, 풍요 등을 얻기 위해 성인들이 자
주 출몰한다고 하는 메카의 순례도 민간신앙에 근거한 것이다. 더구나 마귀에
의한 오염으로부터 정화가 필요하다는 세정의식은 이미 육체적 청결의 덕목에
서 벗어난 것이다.
3. 아랍인의 이상과 현실
무슬림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내용과 실제 이루어지는 삶 사이에는 큰 차
이가 있다. 이슬람교를 믿는 사람들이므로 마땅히 종교인으로서 해야 할 일과
실제 나약한 인간의 참 모습을 보여 주는 일면이 있다. 이중 너느것이 한국인에
게 아랍문화로 그리고 이슬람 문화로 비추어질 것인가? 그렇다면 어느것이 이슬
람의 참된 얼굴인가? 책이나 이슬람 관련 교재가 말하는 내용이 모두 실제 일어
나고 있는 사실인가?
아랍세계에서 한국이 깊이 관심을 가지게된 계기는 1973년 제1차 유류파동
과, 1978년 제2차 유류파동을 겪으면서이다. 1980년 당시 한국의 대통령이 사우
디아라비아를 방문한 것도 국내 석유문제 때문이었다.
아랍세계는 이미 메소포타미아 문명과 이집트 문명을 안고 있었고, 그 안에
유대교와 기독교가 이미 존재한 상태에서 후발주자로 나섰으나 지금은 전세계
인구의 12억이 무슬림이 되었다. 이슬람이 안 들어간 대륙이 없다고 하는 것을
보면 실로 교세는 급속한 성장세를 가지고 있다. 이슬람은 종교로서만 아니라
이슬람이 가는 곳에 이슬람의 언어인 아랍어와 이슬람 문화를 함께 동반했다.
그래서 이전의 토착문화와 섞이면서
독특한 아랍문화를 가지게 되었다.
이슬람 학자들과 무슬림들은 전세계 이슬람이 하나라고 말한다. 그 이면에는
이슬람이라는 축을 중심으로 전 무슬림이 모두 한 형제요, 전 이슬람 국가가 하
나의 움막이며 하나의 신앙 공동체이어야 한다는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
러나 현실은 다르다. 각 나라마다 고유의 의상이 있듯이 이슬람은 기존의 문화
를 말살하지 않아 토착의 신앙이 내면에 잔잔히 흐르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민
속 이슬람 또는 지역 이슬람이라 한다. 한 나라 국민의 대다수가 민속 이슬람에
젖어있다.
지금까지 이슬람 학자들이 주로 연구해 온 분야는 이상적이고 공식적인 이슬
람이다. 밖으로 나타난 부분은 전하면서 일반대중의 삶은 정확히 전해주지 못했
다. 내부에 다양한 것이 내재되어 있어 이를 숨기고, 나아가서는 이슬람 안에서
비이슬람적 요소를 제거하려면 이상적인 이슬람을 제시함으로써 그 이상을 향
해 신도들이 나아가기를 바라는 기대에서이다.. 무슬림은 현실을 도외시하는 태
도를 갖는다. 가령 아랍어만 해도 쿠란의 아랍어를 표준말로 정함으로서 이슬람
을 알고 아랍어를 배우고자 하는 전세계 무슬림들이 그 표준 아랍어를 구사하기
를 바란다. 심지어 아랍어 자음 28개 중에서 아랍인이 표준발음을 제대로 못 하
는 자음이 셋 이상이나 되고, 문맹률은 적게는 50%, 많게는 70%를 상회하고 있
다. 실제 일상생활에서 표준 아랍어를 쓰는 사람이 극소수이다. 카이로 대학 아
랍어과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도 표준 아랍어를 쓰지않고 있다. 학생이 못 알아
듣는다는 것이다.
석유가 나오기 이전에는 전혀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이슬람 국가가 이제
는 이슬람의 본래의 모습을 찾기를 갈망하고 있다. 세계 어느 민족 못지않게 신
앙심을 가지고 일찍이 정신문화에 관심을 두었던 무슬림들은 외래사상의 유입에
도 반기를 들고 나섰다. 이슬람의 체제는 완벽하기 때문에 다른 도움이 전혀 필
요 없다는 주장이다. 이슬람의 국가이념으로 하지않는 국가는 무슬림 국가는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슬람 국가는 아니라고 못 박았다. 자유시장 경제제도와
사유제산제도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정치적, 사회적 통제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
러나 이것 역시 소속국민이 모두 다 희망하는 사항은 아니다.
오랫동안 이슬람과 아랍어 관련서를 보면 아랍어의 표준은 베드윈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 베드윈들을 만나본 결과 베드윈의 언어도 퇴색되어
있었다. 이란과 아프카니스탄의 일부 무슬림은 음악이 비이슬람적이라고 말한다
고, 어떤 경우에나 음악이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아랍국가와
이슬람 국가를 보라. 음악이 이슬람의 표현은 아니었지만 그 지역문화의 표현으
로서 아직도 아랍인의 삶 깊숙히 자리하고 있다. 이슬람에서는 옷을 입을 때 목
에서 손목과 발목까지 다 덮으라고 말한다. ‘덮고 가린몸’으로서 이슬람과
각기 민족별로 다르게 해석하여 실제 입고 다니는 의상과 차이가 있다. 서구식
행동방식은 퇴폐적이며 기독교적이라고 텔레비젼까지 금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
면 최근 쿠웨이트에는 위성 안테나가 한 가정에 두어 개씩 있는 집도 있었다.
안방에서 전 세계의 뉴스를 보고 듣는 것이다.
1.베드윈의 이상과 미덕
베드윈의 이상
베드윈은 오늘날 아랍세계 인구의 100%를 차지한다. 마을니아 도시에 살면서
베드윈 태생임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한다. 7세기 이슬람 출현 이전에 베드윈의
언어는 아랍어였다. 아랍인은 우마위야조(661~750)에서도 상류사회의 귀족층이었
다. 그것은 첫째, 그들이 베드윈 출신이었고 둘째, 아랍어를 할 수 있었다는 점
이다. 그래서 우마위야조의 궁전에 사는 지도층들은 자녀들을 사막에 보내어 아
랍 베드윈 분위기 속에서 자라도록 했고 그들에게서 아랍어를 익히도록 했다.
베드윈처럼 아랍어를 잘하는 것이 아랍주의의 표상으로 여겼던 것이다.
지금도 아랍지역에 가면 흔히 베드윈들을 볼 수 있는데 언어적인 순수성은 크
게 떨어졌지만 아직도 과거아랍세계의 표상으로서 영웅시대의 고대 영광의 상속
자이며 증거자로서 자부심을 갖는다. 그 결과 베드윈의 윤리와 도덕이 아랍세계
에서 중요시 되었다. 조상들이 영광적인 업적을 회상하면서 그들의 초자연적인
행적으로 인해 용기와 지성과 미덕이 후대문화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게 되었다.
조상들의 이상을 받들어 후손들은 그들의 모범적인 언행을 귀감으로 삼아 가치
체계와 행동규범의 기준으로 삼았다. 그러나 아랍의 정신은 영웅적인 시대에만
집착하지 않고 주위환졍과 도전하여 영웅적이고 독특한 사회를 후세에 남기는
데 있다고 보았다.
베드윈의 환경은 아라비아 사막이다. 그 사막에 사는 사람들은 유목민이다. 사
막은 badw(또는 badiya)라 한다. 여기에서 파생한 바드윈(badwi) 또는 바다위
(badawi) 가 영어식‘베드윈(bedouin)’인 것이다. 즉, 사막에 사는 사람이란 뜻
이다. 동시에 badw의 다른 뜻은‘시작’이란 의미이다. 마치 술이 히브리인과
탈레스(Thales)에게 세계의 시작인 것 처럼 사막은 고대 아랍인들에게는 세상의
시작이었다. 사막에서, 그리고 척박한 땅에서 세계 3대 종교가 출발했다. 기독교
가 팔레스타인에서 불교가 인도에서 그리고 이슬람이 아라비아 반도에서 시작되
었다. 사막을 건너 본 사람은 온 사방이 막혀 있음을 본다. 멀리 신기루처럼 사
막의 헛된 모습이 떠오르고 이따금 오아시스만 군데군데 있을 뿐 길도 이정표도
없다. 그곳에서 오로지 하늘을 우러러 보아야 했다. 하늘에는 하나님이 계셨다.
이것이 곧 이슬람의 출발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늘에만 계시지 않았다. 인간
이 이해할 수 있도록 인간의 몸을 입고 내려온 사람은 예수였다.
사막에서 사는 베드윈이 도시와 마을에서 사는 대부분의 아랍인들과는 매우
멀리 떨어져 있었고, 도시 사람들에게는 여러 세대를 통해 베드윈의 가치관과
이데올로기가 크게 확산되어 보였다. 이것은 아직도 아랍인들의 마음에 베드윈
이 변함 없이 우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막과 사막에 사는 사람들의 관
습이 아랍인들의 가치관과 관습이 아랍인들의 마음에 우위를 차지하고 예는 많
다.
물론, 다른 아랍도시에 사는 사랍도 마찬가지이지만, 그 중에도 시리아 다마
스쿠스의 명문가정의 예를 들 수 있다. 그들은 자녀를 1년 내지 2년 동안 시리
아 사막에서 사는 낙타를 기르는 부족에게 보내 베드윈의 가치관과 태도, 심성
과 경험을 배우게 한다. 젊은이들들에게 그 나라 전통에서 가장 좋고 고귀한 것
이 무엇인가를 알도록 하는 것이다. 아랍 도시에 사는 젊은이들은 베드윈에게
순화된 아랍어와 품위 있는 태도와 습관을 배운다.
이상적인 아랍인으로 간주되는 베드윈을 찾아간 사람들로는 중세 때 특히 문
법학자와 무슬림 법학자들이었다. 법학자는 베드윈의 선례를 중시하여 법적판결
을 했고, 문법학자들도 베드윈의 어법에 맞춰 문법규칙을 정했다. 아랍의 많은
가정들이 전통을 이어가고 조상의 가계를 지키는 것은 베드윈들의 미덕에 대한
향수를 가진 까닭이다. 이런 전통을 지켜 나가는 것은 대도시나 소규모 읍에서
사는 사람도 마찬가지이다. 장인(匠人)이나 근로자로 그럭저럭 살아가는 사람들
은 베드윈의 전통을 열심히 정성껏 지켜감으로서 사회적인 지위 같은 것을 갖는
것으로 여겼다. 가난하면서도 베드윈의 전통을 지킨다고 하는 자부심과 긍지를
다진 셈이다.
3000년 동안 사막은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베드윈들은‘사막의 배’라는 낙타
와 공생하며 그들이 살아온 생활방식에는 변화가 없었다. 사막에는 베드윈의 자
신의 성스런 전통을 지킬수 있었고 언어의 순수성, 혈통의 순수성, 그리고 지구
상에는 인간에게 가장 혹독한 것으로 알려진 사막에서 사회적이고 문화적인 적
응력을 키워 갔다. 그런 과정에서 매를 사냥하고 강렬하고 급한 성격, 그리고 튼
튼한 근육과 뼈대를 가지게 되었다. 그의 생활은 혼수상태에 있는 사람처럼 거
의 활동이 없다가 격분된 성향의 분출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길게 띠처럼 두른
셔츠 위에 길이가 같은 외투를 걸쳐 품위 있는 귀족풍의 풍채를 과시했다. 그의
머리에는 늘어진 천을 대고 그 위에 두꺼운 끈으로 된 왕관을 둘렀다. 이런 의
상은 오늘날 아랍시장에서 매우 비싸게 매매되는데, 보기에도 매우 품위 있어
보인다.
베드윈의 가치관에 대한 논의는 베드윈의 기층을 이루는 사회를 실펴보는 것
이 좋다. 베드윈 사회는 아직도 존재하고 있고, 이슬람 이전부터 지금까지 여러
기본적인 사항이 거의 변함이 없기 때문이다. 아직도 그 때와 동일한 구조를 이
루며 동일한 내적 역동성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종교적인 상황에서 이슬람
이전의 특징을 그대로 보존해 오고 있다.
베드윈은 부계사회이고 족장사회이며, 혈통에 바탕을 두고 세워진 강력한 혈
통중심의 사회 속에서 산다. 베드윈 사회의 기능적인 사회단위는 ‘이도하는 무
리’이다. 공통된 조상을 모시고 사는 많은 대가족이 함께 캠프를 치고 가축이
먹을 초지를 찾아 떠난다. 그러므로 자연히 동족 혼인과 강한 응집력으로 뭉쳐
있다.
사실 베드윈들은 이렇게 무리를 지어 다니다가 소부족을 이루고, 소부족들이
모여 부족을 이루며, 부족들이 가끔은 부족연합을 이룬다. 좀더 커지면 사회가
형성되는데 대가족과 무리를 이루는 단위가 되었던 혈통집단을 벗어나면 권력구
조가 없어지고 권위나 보호막도없어진다. 사막에서는 개인과 그가 속한 혈통집
단이 그 밖의 다른 집단과 대항해 주었으나 그 영역을 벗어나면 도움이 없어지
기 때문이다.
어려서부터 집단의 결속을 강화시켜 주는 품성은 성인이 되어서도 긍정적인
가치로 간주되어 격려하고 북돋워 준다. 그리고 이 성품은 성인이 되어서도 하
나의 이상으로 지지받고 인정된다. 반대로 어떠한 경우라도 집단의 결속을 해치
는 성격은 결점으로 간주되어 어린시절부터 벌을 주거나 그런 일을 더 이상 못
하게 하며, 개인의 삶을 통해서는 강력한 비난과 질책이 뒤따른다. 어릴 때 각
개인에게 이런 통제를 가하는 사람은 아버지와 어머니, 이모, 이모부, 형제, 자매,
사촌 그리고 대가족의 구성원들이다. 바로 이들의 집단이 사회적 단위를 이루어
캠프를 치고 무리를 지어 다니게 된다.
여기에 익명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사람은 개별적으로 서로 알게 되고 이
것이 곧 효과적인 사회적 통제를 하게 만든다. 어리면 어릴수록 옳고 그름에 대
한 판단은 매섭고 간섭하는 이는 많아진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그가 따라야
할 사항들이 점점 작아지면서 그를 따르는 사람의 수는 점점 많아진다. 다시 말
해서, 나이가 들수록 여러 종류의 압력을 더 많이 받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
들 앞에서 모범되게 행하든지 그 집단의 도덕적 규범과 집단이 지향하고 있는
가치를 면밀히 지켜야만 한다.
베드윈 사회에서 가장 많이 인정받거나 비난받는 성품은 무엇일까? 그것은 집
단의 결속을 돕고 이를 부추기는 성품은 집단의 생존에 걸려 있으므로 인정받는
긍정적인 성격이고 그 반대는 부정적인 성품에 해당된다. 이 둘은 짝이 되어 따
라다니는데 이를테면 용감성(하마사, Hamasa)은 비겁과 짝이 되는데, 개인적인
위험이 어떠하든 간에 집단을 방어하기 위한 용기는 장려된다. 그래서 하나의
사회에서 어떤 집단은 다른 집단의 희생물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용감^36^비겁
의 짝과 더불어 공격^36^화평 그리고 남자다움(무루와, muruwwa)^36^온순함이
짝이 된다. 각기 두 짝들 사이에 중요한 차이가 있는데 용감성은 절대적인 가치
로서 용감한 행동은 어느 상황에서나 남자들에게 요구된다. 그 반대로 비겁함은
단호하게 많은 사람에게서 멸시의 대상이 된다. 그러므로 남자는 어떠한 상황에
서도 비겁함을 보여서는 안 된다.
반면에, 공격성은 그가 속한 집단의 밖에서만 요구된다. 집단 안에서의 공격성
은 질책을 받게 되고 집단 내에서 공격을 범한 자는 문제아로 찍힌다. 다른 집
단에 대해 자기가 속한 집단의 권리를 방어하지 못하면 이럴 때의 화평은 부정
적인 성품으로 간주된다. 평화를 중재하는 사람은 높이 평가되어 집단 내에서
중재를 맡아 달라는 요청을 받기도 한다. 이것으로 인해 무함마드가 이슬람을
일으키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무함마드가 메디나 부족 간의 다툼에 중재자로
초청되어 가서 그가 세웠던 것이 새로운 사회, 즉 이슬람 공동체(움마, Ummah)
였다.
집단 내에서 공격성은 비난받지만 화평은 항상 바람직한 것으로 칭찬받는다.
베드윈 사회에서 자주 발생하는 ‘피의 복수’가 있다. 만약 집단 내 어떤 사람
이 다른 집단원에게 살해당했다면 희생자의 친척은 그들 집단의 힘이 약화되었
음을 고통스럽게 여긴다. 명예가 훼손되었다고 생각하며 피해 입은 집단에서 노
골적인 감정적 반응을 한다. 이 때 희생당한 집단의 모든 남자는 복수에 가담해
야 할 의무가 있고, 이들 남자들은 각기 5인조 집단(다섯 명의 남자 친척으로 구
성된 남성 친척집단)에 속하게 된다. 만약 복수자가 살인자를 찾지 못하면 상대
방 살인자의 5인조 집단에 속한 사람이면 아무나 피의 복수의 합법적인 표적이
된다. 물론, 희생자의 5인조 공격요원이 적극적으로 움직인다. 그들은 살인자를
찾아 나서고 부족법에 규정된 대로 살인자를 복수할 계획을 세운다. 반면에, 희
생자 가족 중에 화친요원(대개 나이든 사람들)은 두 집단 간의 혈통상 가장 먼
집단에서 한 분 이상의 존경받는 자도자를 찾아 나서 그로 하여금 중재를 맡긴
다. 이처럼 피의 복수의 중재와 베드윈 윤리의 특징이 된다. 만약 살인자가 사형
에 언도되어 처벌받으면 복수는 이루어지지 않는다. “피가 피를 부른다(Dam
yutlub dam)."는 아랍 속담이 있다. 보복이 이루어 지거나 화해가 되어 적절한
보상이 이뤄지면 희생자 가족의 명예가 회복된 것으로 본다. 그러나 피의 복수
가 냉혹하기 때문에 타집단을 급습하여 경제적인 이득과 아울러 재미도 얻는 경
우가 있다. 피를 뿌리는 것보다 급습(가주, ghazw)함으로써 양측이 피의 복수를
피할 수 있다. 급습의 목적은 상대집단의 가축을 가능한한 많이 강탈하는 것이
다. 그래서 자기 집단의 가축을 늘리고 상대집단의 가축을 감소시켜 적을 약화
시키는 것이다. 사막에서 가축은 생계의 기본이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지만,
너무 많이 강탈하면 아예 상대집단이 전멸할 우려가 있다. 그러므로 급습도 엄
격한 규칙에 따라 이루어 져야 했다. 베드윈의 윤리 가운데 또 하나의 적극성과
소극성이 있다. 전형적인 베드윈의 생활은 비교적 오랜 기간의 소극성(피동성)
뒤에 급습에서 나타나는 광란적인 적극성(능동성)이 있다. 베드윈의 성격은 갑작
스럽게 불끈 성을 내다가 쉽게 폭력으로 심지어 살인으로 치닫는 경우가 있는데
그 후에 후회와 오랜 기간의 무기력과 무감각한 상태가 지속된다. 이 점은 오늘
날 아랍인의 싸움에서도 역력히 나타난다. 그래서 아랍인의 성격을 가늠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베드윈의 미덕
베드윈의 미덕에는 환대, 관용, 용기, 명예, 자존심 등을 든다.
환대
유목민의 환대의 역사는 성경시대 그 이전으로 거슬러올라간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가장 큰 보상은 그의 지극한 환대 때문이었다. 창세기 제
18장에서 나타나듯,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보낸 방문객을 맞아 전형적인 근동의
친절과 환대를 보여 주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하나님, 그의 늙은 아내 사라에
게 아들이 있겠다는 약속을 받는다.
오늘날 아브라함의 후손인 베드윈의 환대는 자주 사람들에게 오르내리고 있
다. 아주 가난한 베드윈 조차도 환대는 자랑스럽게 보여 줘야할 고귀한 미덕이
다. 그래서 아랍인의 풍속 가운데서 오늘날 가감이 되었을지라도 매우 인상적으
로 남아 있는 것은 환대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동안 학자들의 연구에서 집단
을 강화시키는 데 필요한 요소 중에서 환대의 역할이 과소평가되어 왔다.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서 얻은 명성 이외에도 그의 관대한 태도로 맞이하는 그들
의 태도에서 말없이 지지를 보내는 고객을 얻을 수 있었고, 때로는 부족 간의
분쟁에서도 환대로 인해 정치적인 동맹으로 이끌 수 있었다. 다시 말하면 환대
는 베드윈의 여타 미덕처럼 궁극적으로는 베드윈의 생활 즉 집단을 강화시키는
데 더 큰 목적이 있었다.
베드윈의 환대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에 대해서는 그저 추측만 무성하다. 다
만 사막에서 급박하게 필요로 하는 것에 반응하다 보니 그것이 발전되었을 거라
는 추측이 있을 뿐이다. 이를테면 어느 한 개인이 그의 친척과 부족의 보호망을
등지고 떠나면 그의 생명은 아예 내놓는거나 진배없었다. 친척도 없고 보호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 가인의 울부짖음이 잘 묘사되고 있다.
“내 벌이 너무 심해 견딜 수 없나이다. 주께서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
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오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가 나를 죽이겠나이다(창세기 4:13^36^14).”
베드윈에게 환대라는 보호처가 없었더라면 사막에서 모든 아랍인들은 유리하
거나 방황하게 되었을 것이다. 환대의 규칙에 따라 방황하는자는 대접받는 손님
이 되고 대접하는 사람은 그의 목숨이 위태롭더라도 끝까지 보호해야 한다. 그
러므로 이방인이 그를 방문하였을 때 그를 환대하는 것을 거절하거나 손님으로
맞아들인 후에 해를 끼치는것은 집단의 맹세와 기존의 도덕에 위배될 뿐만 아니
라 실질적인 보호자이신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 된다.
환대의 규범이 너무 분명하고 광범위해서 그들은 가끔 손님을 위해 더 많은
희생을 요구받는다. 친족의 살인자를 복수해 주는 것을 신성한 의무라 생각하는
데 환대가 신성한 의무 이상의 것이 되고 마는 수가 있다. 그 규범이란 것이 손
님을 텐트로 맞아들여 그를 보호해 주고 일시적인 피난처가 되어 주어야 하나,
가끔은 집주인의 합법적인 피의 복수의 희생물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아랍세계의 외딴 지역에서는 여성의 성적 불가침을 이보다 더 중요한
환대의 책임을 위해 양보하기도 한다. 남부 아라비아에서는 최근까지도 성적인
환대가 관습으로 내려오고 있다. 사막에서 사는 사람이 가난 때문에 손님에게 3
일동안 휴식처를 주고 음식을 제공하는 숭고한 환대의 의무를 저버렸다는 핑계
는 있을 수 없었다.
사막의 풍속 가운데 전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우리가 어리석다고 생각할 정
도로 탕자에게 환대를 베푼 어느 베드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그는 바니
힐랄 부족의 영웅 아부 자이드이었는데 그가 환대의 의무를 실천하려고 손님에
게 차례차례 그의 낙타를 잡아 고기로 먹게 했고, 그는 나중에 굶주리게 되었다
는 유명한 일화이다. 그래서 그의 종족이 그의 행동을 높이 평가하여 그 후 다
시는 환대라는 이름으로 그의 낙타를 희생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낙타 몇
마리를 더 주었다. 그러나 그의 과도한 환대로 인해 낙타의 수는 점점 줄어들었
고, 이제 마지막 한 마리만 남게 되었다. 며칠 후 그가 텐트 앞에 앉아 있는데
멀리서 이방인의 모습이 나타났다. 그는 이방인을 손님으로 모시지 않으려고 텐
트 속으로 몸을 숨겼으나 그의 성품을 숨기지 못했다. “손님이 다른 텐트로 들
어가지 않았소?”라고 그의 아내에게 묻고 나서 아내가 서 너 번 거절하니까 끝
내는 참지 못해 손님을 맞아들여 마지막 낙타마저도 희생시켰다는 것이다.
그러나 정착민에게 환대는 어느 정도 유동성이 있어 마을과 도시의 가정에서
는 사막의 유목민 텐트에서처럼 그렇게 개방적이지도 않았으며, 성의 구분도 너
무 엄격하여 심지어 방문객을 역겹게 하기까지 했다. 그들에게도 환대가 일생
동안 실천해야 될 덕목이었으나 개인생활의 특별한 행사에 맞춰 환대가 요구되
었다. 이런 행사에는 혼인, 장례, 할례와 집들이, 그리고 라마단달 동안 마을 단
위로 방문객을 대접하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것이었다. 유목민이든 정착민이
든 간에 환대는 명예, 더 낫게는 체면과 유기적으로 관련되었다. 환대를 아낌없
이 한다는 것은 그의 얼굴을 희게 한다는 것이다. 아랍인들에게 흰색의 얼굴은
가장 잘생긴 얼굴이고 얼굴이 희어졌다는 것은 그의 명성이 드높아졌다는 뜻이
다. 만약 방문객이 환대를 받지 못하면 전부족과 마을에 알려지게 되고, 그 부족
에게 먹칠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대하는 고귀한 관습은 자신의 얼굴
을 희게 하기 위한 개인의 소망일 뿐만 아니라 그와 그의 가족이 속한 사회집단
의 평판을 드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요르단 계곡의 동쪽 끝에 위치한 ‘쿠프르 알마(Kufr al^36^Ma)'라는 마을에
가면 “이 마을에서 하룻밤을 묵고 싶은 방문객은 마을에서 가장 부유한 집을
찾아가라.”는 말이 있다. 가장 부유한 자는 마을의 이름을 빚내기 위해 그가 실
천해야 할 의무가 환대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관용
베드윈의 생활을 살펴보면 가장 특징적이고 독특한 덕목이 환대이고 더 일반
적이고 보편적인 덕목은 관용이다. 즉, 환대는 더 일반적인 관용의 가장 독특한
표현인 것이다. 아랍 전통사회에서 넉넉하게 주는 관용은 부의 축적과 평형이
되게 하고 과도한 빈부의 차를 좁히는 데 기여한다. 관용은 부의 재분배를 가져
다 주기 때문에 나중에는 이슬람에 들어와서 무슬림의 의무인 자카(가령, 연간
재산의 2.5%를 가난한 이들에게 분배)에 그 자리를 넘겨 주었다. 자카(종교세)는
이슬람의 다섯 기둥의 하나로서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에게 종교적이고 법적인
책임을 다하게 하는 유일한 재정적인 책임이 되었다. 이런 이슬람의 규범은 옛
베드윈이 가진 관용의 미덕을 희미하게 보여 주는 데 그치고 있지만, 원래 관용
은 유목민이나 정착민에게 공동으로 요구되는 미덕이었다. 그것은 하나님이 각
개인의 운명을 지배한다고 하는 믿음과 확신에서 직접 비롯된 것이다. 쿠란 제
16장 71절에“알라는 어떤 사람에게 다른 사람보다 식량을 더 많이 주셨다.”즉,
재산의 불공평한 분배는 하나님 뜻의 표현이다. 이슬람의 이런 교리는 부자에게
가난한 자를 위하여 하나님이 우선 재산을 사용하라는 강한 압력이 되었다. 무
슬림에게 인색하다는 말은 가장 많이 비난받게 되고, 금요일 모스크 설교에서는
이 점이 가장 많이 강조된다.
환대는 관용과 너무 밀접하게 연관되어 가끔 두 용어가 같은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그래서 수단 아랍어에서 카람(Karam)이란 말은 관용과 환대라는 뜻을 지
니고 있고, 실제로 이들 사이에 명백한 차이가 없다. 환대는 공동체의 찬성을 얻
을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수단이며 사회적 존경을 얻기 때문에 자신의 자존심
을 높여 주는 역할을 한다. 아랍인은 손님을 대접하는 태도에 따라 사람을 판단
한다. 환대가 아랍인의 가장 귀중한 덕목이기 때문에 손님 앞에서 극진히 대접
하는 것을 과시하고, 아랍인은 그가 행한 관용이 널리 퍼지게 된다는 사실을 알
고 있다. 사정이 이러기 때문에 손님접대에서 아주 사소한 적이라도 세심하게
공을 들이게 된다.
사람이 손님을 맞아 온 신경을 쏟고 공손한 대접과 음식, 음료수, 담배, 꽃 등
을 손님에게 드리며 관용을 보여 주기에는 집보다 더 나은 장소가 없다. 그래서
베드윈은 대개 집으로 손님을 초대하는데 유대인은 집안의 모습을 외부인이 보
면 영적인 것이 달아난다 하여 집 안을 공개하려 하지 않는다. 아랍인 중에 자
존심이 강한 사람은 그가 가는 곳마다 관용이 따라다닌다. 그가 우연히 거리에
서 친구를 만나면 한사코 집으로 가자고 하거나 그들이 있는 곳이 집에서 너무
나 먼 곳이면 레스토랑이나 카페에 가자고 할 것이다. 만약 친구가 어떤 곳에
가야만 한다고 하면 자존심이 강하고 너그러운 사람은 그 곳까지 택시로 데려다
줄 것이다. 그래서 일부 아랍국가에서는 오토스톱이 가능하다. 길가에서 지나가
는 자가용 앞에 손을 내밀고 세우면 대개는 집에까지 태워다 준다. 만약 버스
속에서 친구를 만나면 그들은 각기 상대방의 요금을 내 주겠다고 서로 주장할
것이다. 선물을 주고 돈을 아낌없이 쓰는 것도 똑같은 양상으로 나타난다. 쿠웨
이트에서 무슨 일을 하려면 그들이 좋아하는 선물을 꼭 하라는 말이 있다.
환대와 관용이 이처럼 중요한 덕목이기 때문에 민간의 관습은 이런 이상을 지
키며 살 수 있도록 좌절하지 않게 도와 준다. 만약에 초대를 거절하거나 선물을
사양한다면 초청자나 선물을 준 사람의 의도를 묵살하는 예가 된다. 그러므로
전통적인 관습은 일단 초대를 받은 사람은 응해야 하고 선물도 주면 받아야 한
다. 이 두가지를 거절하면 무례 또는 모욕이나 무시당했다고 생각한다. 물론, 앞
에서 언급한 모든 것이 쿠란의 내용과 다 일치하는 관습은 아니지만 가난한 사
람과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돕는다는 데에는 자카도 한몫을 한다.
용기
아랍인의 개념에는 용기와 용감성을 구별하기 어렵다. 용감성은 자신이 속한
집단의 이익을 위해 자기 생명을 무릅쓰고 행하는 남자의 자발적인 행동을 말하
며, 용기는 어떠한 시련이 닥쳐올 때 드러날 수 있는 어떤 표정이나 외마디 없
이 자기 통제를 통해 육체적 고통이나 감정적인 굴곡을 견뎌 내는 능력을 이른
다. 수단의 아랍인 중에 사춘기 소년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것 중에서 용기를
시험하는 예가 있다. 그것은 채찍을 맞거나 팔을 수숫대나 담뱃불로 지지거나
칼로 몸에 흉터자국을 낸다. 물론 수단 같은 경우 용기뿐만 아니라 부족의 표시
로서 얼굴에 상처를 내기도 한다. 비슷한 목적으로 사춘기의 소년에게 육체적인
고통을 맛보게 한다.
이집트에서도 때리고 치고, 뺨을 때려 육체적 고통을 가하는 예가 있다. 소년에
대한 잔인한 육체적 체벌은 아랍국가 어디서나 드문 일이 아니다. 이와 맞물려
아랍국가에서 소년들에게 할례를 행하는 형태가 가지각색이다. 그러나 할례는
어디서나 소년의 용기를 시험하는 것으로 인식된다. 가끔은 이것이 결혼에 대한
예비시험으로 신부가 보는 앞에서 이루어진다. 가장 고통스러운 예는 사우디아
라비아의 히자즈 지방과 아시르(Asir)지방에 사는 아랍부족들이 행하는 할례방
법이다. 할례시 성기의 피부가 벗겨지고 복부와 넓적다리 안쪽의 피부가 절개된
다. 이 때 젊은이들이 단호한 용기를 보여 줘야 하는데, 똑바로 서서 즐거운 비
명을 지르며 장검이 위아래로 휘둘러질 때 꼼짝 않고 서 있는 것이다. 할례가
이루어지는 순간에 신부는 신랑 앞에 서서 이를 지켜보면서 북을 치며 환희의
소리를 낸다. 만약 젊은 신랑이 훌쩍훌쩍 울면 신부는 결혼을 거절할 권리가 있
다. 다른 나라에서는 할례가 덜 격렬하게 실시되지만 어디서나 용기를 시험하기
는 마찬가지이다. 일방적으로 소녀들은 용감하지 않다고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할례가 이루어지는 동안 기쁨을 마음껏 드러내는 일을 맡는다. 유대인에게는 난
지 8일 만에 할례가 이루어지는데, 오늘날에는 이를 전담하는 유대인이 있어 외
국인에게 돈을 받고 해준다. 성기 표피를 사과 깎듯이 둥그렇게 문지르며 하는
데 8일째 되는 때가 고통이 가장 덜하다.
아랍의 젊은이와 성인 남자에게 용기는 주로 외적으로 나타나는 문제이다. 즉,
아랍의 소년들은 용기 있게 행동할 수 있도록 사회화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것은 자신의 솔직한 감정을 표현하지 못한 채 불굴의 용기를 전시적으로 드러내
는 것이다. 그가 받고 있는 고통을 아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외적
으로 나타내 주면 그는 용기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과장된 행
동으로 몰아 넣는 것이지만 모두가 그의 내적 약함을 안다. 그러나 내적인 약함
을 드러낼 때 그가 받을 욕설과 반작용을 두려워한다. 아랍인들이 이런 외형의
용기를 환상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것은 그의 능력에 어울리는 것이 아니라 그에
게 엄청난 성취를 가져다 줄 결과를 생각해서 그의 순간적 긴장에 의해 용기를
보여 주는 것이다.
명예
아랍인들의 명예(샤라프,sharaf)에 대한 것은 앞에서 많이 언급되었다. 명예는
강조하지 않아도 집단생존과의 강한 상관관계가 있다. 명예로운 행동은 집단의
결속과 생존에 유익을 주며, 집단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 준다. 반면에 수치스런
행동은 사회적 집단을 약화시키거나 위태롭게 또는 파괴와 손상을 안겨 주게 된
다고 생각한다.
아랍세계에서 명예는 여러 다른 형태를 포용하는 총체적 개념이다. 몇 가지만
언급해 본다면 첫째, 많은 자녀를 가진 남성의 정력에서 명예가 온다고 생각한
다. 둘째, 어떤 일을 하면서 동시에 다른 일을 그만둘 줄 아는 것에서 명예롭다
고 생각한다. 셋째, 베드윈이 낙타를 기르는 것은 명예스럽지만 장인이나 농업은
불명예스럽다고 말한다. 넷째, 무력과 관련된 것으로 적이 다가오면 용감하게 방
어할 수 있는 능력도 명예라 한다. 그러나 부족에게 보호해 달라는 명분으로 뇌
물을 주는 것은 명예를 심히 손상시키는 것으로 본다. 다섯째, 규정된 규칙에 따
라 급습을 하는 것도 명예로운 일이다. 그래서 급습에 동참하지 않는것은 불명
예로 간주한다. 급습자에 대항해서 가축을 지키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다. 가축을
소유하는 자체가 명예롭기 때문이다.
환대와 관용은 명예의 문제이다. 융숭히 대접하지 않거나 너그럽지 못하면 수
치스런 일이 된다. 부모가 순수한 아랍인 혈통을 갖는 것은 명예롭다. 친척 간에
강한 유대감을 보여 주는 일도 명예스럽다. 체면을 지키고 위엄 있게 행동하는
일도 명예스럽다. 그것은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그의 ‘얼굴’이 검게 되는 일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가 속한 집단의 체면은 물론 그의 얼굴을 하얗게 항
상 유지해야 한다. 어떠한 희생을 치르더라도 대중적인 이미지는 지켜야 한다.
개인의 명예에 치명적인 해를 끼친 자에게는 복수해야 하고,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영원히 불명예스러운 자가 되고 만다. 물론 여성이 갖는 성적명예도 있
다. 그녀의 아버지 가정이 자신의 성적인 문제로 불명예스러운 처지가 될 위험
성을 항상 가지고 있지 때문이다.
명예는 개인으로부터 확대되어 가정, 부족, 그리고 국가에까지 이른다. 그래서
1952년 이집트는 종교법령(파트와, fatwa)을 내려 이집트 정부가 여성에 대한 태
도를 현대화시키고, 20세기에 다른 국가에서 하듯이 이집트도 그렇게 해야 한다
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응징하엿다. 이런 모든 종류의 명예는 분명히 아랍인의
삶 속에 두드러지고 여러 시대와 장소에서 갑옷과 같은 아랍인의 자아를 둘러싸
고 서로 맞물려 있다. 갑옷에 있는 아주 작은 틈이 모든 끈과 고리를 느슨하게
할 때는 위협이 되므로 즉시 갑옷은 수선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집단의 생존에 가장 많이 관련되는 명예 신드롬의 두 가지 요인은 정력과 친
족애착 정신이다. 베드윈 세계에서 남자가 자녀를 많이 가질 때 특히 아들들을
많이 두었을 때 명예스럽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쉽게 설명하면 많은 자녀는 곧
남자의 정력이 세다는 증거이다. 정력은 다른 미덕이 짓밟혀지더라도 남자에게
받들여지는 주요 특징이 된다. 남자의 정력에 대해 비난이 쏟아지면 그는 그런
의혹을 없애려고 갖은 노력을 다한다. 남성의 발기불능은 아내가 주장할 수 있
는 몇 가지 안 되는 이혼사유 중의 하나이다. 남편은 대중에게 그의 수치가 드
러나지 않게 조용히 이혼에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사실이 아니면 그것을
입증하려 들 것이며, 이것은 전통적으로 내려온 사생활의 비밀을 포기하고, 공개
적인 성적행위를 해야 할 것이다.
‘혐오의 집(바이트 알 샨아, bayt-al-shan'a)'을 사용하여 이웃 사람이 부부관
계를 보고 들음으로써 이웃의 관찰과 그 결과가 결혼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다. 이것은 남편이 자신이 있을때만 하는 것이고 대부분 아직도 성생활의 비밀
은 매우 중요하게 여긴다. 이처럼 남자에게 정력은 최고의 미덕이다. 이런 점에
서 자녀를 많이 가졌다는 것은 남자의 명예와 이어진다. 그러나 자녀가 많다는
데에는 명예와 존경 그 이면에 더 깊은 뜻이 있다. 자손이 많고 그가 성적 능력
이 강하다는 것은 그가 속한 집단에 직접 기여한다는 점을 빼놓을 수 있다. 베
드윈 사회에서 모든 것이 동등할때 각 집단의 남자의 비율이 어떠냐에 따라 생
존의 기회와 집단의 운명은 달라진다. 남성만이 급습에 참여하고 급습에 대항하
여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집단의 생존이나 집단의 안전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여성은 세대를 이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들이 낳은 남자아이들은 집단의 인력
을 증대시키는 역할을 한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베드윈들이 동족 내혼을 우선하
는 까닭도 이런 생각에서 비롯된다. 여성이 자녀를 가지면 동족 내에서 길러지
는데 그것은 모든 자연적인 증가와 세대교체가 동족 내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
지기 위함이다. 사실 베드윈 사회에서 예외적으로 족외혼이 이루어지기도 하나
매우 드물다. 왜냐 하면 어느 집단의 여인에게서 태어난 아이는 부계전통을 따
르므로, 결국 아버지의 집단에 속하게 된다. 그리고 어머니가 속한 부족의 집단
과는 사실상 이방인이 되는 것이다. 이와 같은 원리를 한 걸음 더 진척시켜 보
면 가장 우선하는 혼인이 두 형제들 사이의 자녀 간에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그
런 혼인의 진정한 의미는 모든 자녀가 동일한 대가족의 일원이 되게 하려는 것
이고, 이로써 집단의 수효와 인력, 위세와 명예를 높이게 죄는 것이다. 그래서
젊은 청년은 그의 아버지 형제의 딸(이른바 아랍어로 빈트 암므, bint 'amm)과
결혼해야 할 권리와 책임이 있다. 이런 책임을 이행할 때만 그의 명예가 드러나
게 된다. 즉, 부족 내 결속을 강화시키는 행동은 모두 명예스러운 행동인 것이
다. 위와 같은 생각은 대가족 내에서 권위의 관계를 강조한다. 가장의 명예를 가
족 구성원들에게 그의 뜻이 얼마나 잘 먹혀 들어가느냐 하는 능력에 따라 달라
진다. 가족 구성원들에게 존경받는 남자는 가족내에서는 물론, 가족 밖에서도 명
예를 얻는다. 충성스럽게 순종하는 가족은 하나로 뭉쳐 강해지므로 다른 경쟁가
족과 대항하여 가족의 이익을 보호할 수 있다. 그래서 명예는 집단을 강화시키
는데 보조가 된다. 역사적으로 명예심은 집단정신과 매우 끈끈하게 연결되어 둘
다 ’가족정신‘또는 ’친족애착 정신‘이라는 아사비야(Asabiyyah)로 귀결된
다. 무함마드가 이슬람의 정신과 위배된다고 하여 ’아사비야‘를 비난했지만,
끝내 이것을 아랍인의 의식에서 제거하지 못했다. 14세기 아랍역사가 이븐 칼둔
은 ’아사비야‘는 인간사회의 기본적인 유대이며 역사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라
고 했다. 이 용어의 본래 의미는 부족 간의 결속을 가리키는데, 그것은 부족 또
는 부족의 하위단위를 함께 묶는 정신을 말한다. 두번째 의미가 명예심인데 친
족집단에 공헌하는 명예심은 아랍부족사회에서 가장 필수적인 표현이다. 아사비
야는 동료 부족 구성원에 대한 한없는 그리고 조건 없는 충성을 의미한다. 부족
에게 충성하는 것이 남편이 아내와 이혼하는 것보다 낫다고 생각했다. 베드윈
부족사회의 특징이 되었던 아사비야는 유목민에게서 정착민으로 넘어오면서 가
족과 가문, 혈통결속이라는 형태로 바뀌었다. 친족간의 유대와 주로 가족의 결속
은 전통 아랍사회에서 매우 강했다. 가족간의 유대가 얼마나 강한지 몇가지 예
를 들겠다. 수단에서 아프마드라는 친구가 있었는데, 1985년 그는 한 달에 200파
운드로 7식구를 부양했다. “짜증나지 않느냐? 공부는 언제 하는냐?”라고 물어
도 그는 즐겁게 웃고만 있었다. 그 후 수단의 정치적 상황이 어려워지면서 많은
수단인들이 이민이나 해외 근로자로 이민을 떠났다. 그들이 한 달 내내 번 돈을
모두 수단으로 송금했다. 또다른 예로, 1961년 레바논이 수출로 번 외화소득이 2
억 3천만 파운드였는데, 이민자의 송금이 전체 외화소득의 40%에 해당하는 9천
2백만 파운드였다. 레바논인들의 호주 이주는 곧 국내 송금으로 동일시 되었던
것이다. 서구화된 아랍인 상류충일지라도 서구 보다는 아랍인 친족 간의 유대가
더 강하다. 아랍문화는 아직도 ’친족문화(kinship culture)'이며, 가족중심주의
(familism)가 그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자존심
명예는 자존심과 매우 가까워 거의 혼동하기 쉽다. 어쨌든 아랍사회에서 인정
받는 규범에 따라 행해지지 않는 모든 언행은 남성의 명예를 손상시키거나 심지
어는 명예를 잃기까지도 한다. 다시 말하면 다른 사람의 눈에 비치는 그에 대한
존경심이 손상을 입었거나 무너져 내린것으로 생각한다. 결국 그 같은 결과로
그의 자존심을 건드리게 된다. 일단 명예가 손상되면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많
은 노력이 요구된다. 아예 명예가 땅에 실추되었다면 그것을 회복하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명예는 가족의 전체를 대변한다. 만약 가족 구성원의 한 사람이 불
명예를 초래했다면, 전가족이 불명예를 당한 것으로 본다. 이때 명예회복은 험한
바다에서 구비치는 파도를 헤치고 가족을 살려야 할 구명뗏목과 같다. 모든 가
족 구성원이 행동규범을 잘 지키는 한 뗏목은 그들을 살릴수 있지만, 가족 구성
원의 한 사람 때문에 생긴 제어할 수 없는 파도는 구멍을 뚫고 틈새를 만들어
모든 가족이 빠져 죽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가족의 어떠한 구성원도 모두를
파국으로 몰고 갈 위험을 감수하지 않으려면 남자 구성원들의 행동에 달려 있
다. 그들은 무엇보다도 자신의 행동에 과실이 없어야 한다. 남자들은 가족 구성
원 중에서 여성들이 명예를 보호해야 하는 어려운 임무를 갖게 된다. 명예가 실
추되면 품위(카라마, karamah)를 잃어버리게 된다. 이들 개념간의 관계는 도미노
이론에 의해 설명된다. 만약 어느 여성이 명예를 잃었다면 이것은 그녀가 속한
집단의 남자들의 명예를 실추시킨 것이고, 또 남자들의 기품을 잃게 한 것이며,
나아가서는 남자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한 것이다. 만약 남자들이 품위를 잃었다
면 어떻게 할까?한 예로, 여성의 명예를 실추시키거나 명예를 위협하면 동족의
규범은 전통적인 치료방안을 내놓는다. 우선, 동족의 남성(아버지나 남자형제)이
그녀를 죽여야 한다. 그들은 가족의 몸에서 과오를 범한 수족을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잘라 없앤다. 그래서 그몸이 회복되고 존속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나
서 그녀의 애인을 죽인다. 왜냐하면 그들 가족의 일원을 죽임으로서 피의 복수
를 불러일으켜야 하기 때문이다. 카람(karam:관용, 환대)은 다른 사람의 존경심
에서 비롯되므로 남자가 모욕을 받으면 카람이 손상된 것이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 그 반응을 보여야 한다. 자존심이 강한 남자는 아무렇지 않게 그를 모욕하
도록 가만두지 않는다. 그의 품위를 세우려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를 존경할 것
을 강요하고 그럼으로써 그의 자존심을 회복한다. 자존심은 쉽게 다른 사람으로
부터 손상될 수 있기 때문에 아랍인들은 상대방을 얕보거나 무시하는 행위, 심
지어 고의적이지는 않지만 개인에게 모욕을 줄 수 있는 언행을 매우 조심하다.
이처럼 아랍인의 윤리는 하나의 초점, 즉 자존심, 자부심을 가운데 두고 그 주위
를 회전한다. 이런 자존심을 지켜주는 가장 중요한 요인은 아랍인이 책임져야
하는 여성(달과 자매들)들의 성적행동이다. 여성들의 명예(이르드, 'Ird)가 중심
적인 위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여성들은 성적순결을 강요받으며 자란다. 아랍
의 자존심이 관련된 또다른 요인은 용기-용감성과 환대-관용이라는 두 개의 신
드롬이다. 자존심을 지켜야 한다는 직접적인 목적에서 벗어나더라도 이 모든 미
덕은 자기가 속한 집단에 이익을 주고 궁극적으로는 공동체의 생존에 기여하게
되는 것이다.
성적명예
아랍세계에 있어서 성의 문제는 연금술사가 수련생과 한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연금술의 스승은 금을 만드는 복잡한 단계를 그의 수련생에게 설명한 후
에 “이 전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여자를 생각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이
러한 경고를 주의 깊게 들은 수련생은 그것을 마음에 두지 않으려고 했지만 그
의 생각 속에서 스승이 금지했던 내용을 지워버릴 수가 없었다. 마침내 그는 금
만드는 것을 포기하고 스승을 찾아가서 불평을 털어놓으며 말했다. “선생님, 왜
여자를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만약 그건 말을 하지 않았더라면 제가 그런
생각을 결코하지 않았을 거예요.” 라고 말했다 한다. 아랍의 부모들은 자녀들에
게 성을 죄악시하는 생각을 자주 불어넣는다. 그리고 아랍문화는 이런 주제를
끊임없이 회상하게 하는 분위기 속에서 살게 한다. 성을 분리시키고 여성들에게
베일을 쓰게 하며 남성과 여성 간의 접촉을 통제하거나 제한하는 모든 세심한
규칙은, 결국 아랍세계에서 성을 정신적으로 선점하게 하는 결과를 낳았다. 아랍
인들이 생각하는 명예의 개념은 보통 한국 사람이 이해하는데 큰 어려움은 없
다. 그러나 한국 사람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아랍여성의 성적행위와 관련된
명예에 대한 개념을 이해하려고 할때이다. 한국사람 역시 아내나 딸이 강간을
당하여 다른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체면이 손상된 것으로 생각하지만
이런 경우에 이혼은 반드시 남편의 체면을 살리기 위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
랍세계에서 친족문화에서 상황은 다르다. 그런 경우에 아랍인에게는 가족의 유
대가 너무 강해서 가족의 모든 구성원의 체면이 손상되고 불명예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이런 경우 여성이 관련된 사건과 여성이 관련되지 않은 사건과는
큰 차이가 있다. 아랍세계에서 남자에게 가장 불명예스러운 것은 그의 딸이나
자매 또는 아버지의 형제가 낳은 딸들이 성적으로 몸가짐이 좋지 않았을때 생기
는 문제이다. 아내의 간통은 아랍인 남편에게 감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뿐 불명
예스럽다고 생각지 않는다. 아랍남성들이 명예에 대한 독특한 사고를 가지게 된
배경을 찾아보려면 아랍인들의 친족집단의 구조와 역동성을 깊이 분석해 보아야
한다. 부계에 의한 혈통적 관계는 결코 나뉠 수 없으며 개인의 생활 속에서도
결코 약화될 수 없다. 이것은 곧 다른 친족집단과 혼인을 하더라도 그녀 자신의
아버지 쪽 가정의 일원에서 결코 벗어날수 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녀의
아버지 쪽 가정이 그녀에 대한 책임을 계속 요구하기 때문이다. 다른 쪽에서 보
면 이것은 결혼한 여성에게 이로운 결과를 주는데 그녀가 어려서 결혼생활을 했
을때 그리고 이들이 성년이 되어 그녀의 부양자가 되기 전까지는 매우 유익할
것이다. 그리고 남편가족의 바깥에서 맴돌게 되는 신혼 초에는 항상 그녀 자신
의 아버지와 남자형제로부터 도움과 동정심을 받는다. 그녀의 뒤에서 버티고 있
는 이들 남자들은 그녀가 필요할 때 그녀를 위해 싸워줄 것이며, 남편가족에게
제재를 가하기도 한다. 여성이 신임을 얻든지 불신을 받든지 간에 그녀의 아버
지 가정에 영향을 주게 된다. 이로써 여성은 성적으로 경솔한 짓이나 전통적인
규례에서 어긋난 행동을 한 것으로 의심받지 않도록 끊임없는 책임의식이 요구
된다. 남녀가 서로 결혼하기 전에 성관계를 못하도록 막는 가장 큰 억제책은 그
녀의 딸들의 성적행동을 가족의 명예와 저울질해 보게 하는 것이다. 만일 딸이
성적으로 경솔한 짓을 하면 그녀의 아버지와 남자 형제들은 불명예스러운 일이
라고 생각한다. 가족의 명예는 죄지은 여자를 처벌함으로써만이 회복될 수 있다.
보수적인 가정에서는 그녀를 죽이기도 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여성의 성적행
위는 아랍어로 말할 때, 명예와 수치에 대한 용어와 구별된다. 성적인 경우가 아
닐 때 명예는 아랍어로 샤라프(sharaf)라고 하고, 여성과 관련되어 특별히 명예
를 말할 때는 이르드('Ird)라고 부른다. 샤라프는 남자의 행실 또는 말하고 행하
는 태도에 따라 어느 정도 융통성이 있으며, 그의 샤라프는 회복되기도 하고 높
아지기도 하며, 손상되거나 아예 잃어버릴 수도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이르드는
경직된 개념이어서 여성은 각각에게 속한 이르드를 갖는다. 그녀는 이르드와 함
께 태어나서 함께 자라지만 이르드가 절대적인 것이므로 더 높이지는 못한다.
다만 여성은 그것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그래서 가벼운 성적범죄라도 여성
에게 그녀의 이르드를 잃게 하는 것이며, 한번 잃으면 다시 얻을수 없다. 이르드
에서 아랍여성의 육체적 순결을 정신적 개념으로 바꾼 것이나 다름없다. 처녀성
과 이르드는 본질적으로 여성의 일부가 되어 왔으며, 이둘은 더 보태질 수 없다.
이들을 잃어버리면 다시 회복할 수 없는 것이다. 이두 가지는 또다른
점에서 유사성이 있다. 여성이 강간을 당하면 그녀가 처녀성을 잃어버림과 동시
에 이르드도 잃어버린다. 물론 두 가지가 상황에 따라 달라지기도 하는데 신혼
첫날밤의 순결은 합법적으로 잃어버리지만 이르드는 잃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
로 현숙한 여인은 이르드를 보존하며 그가 죽는 날까지 지키게 된다. 남성에게
샤라프는 거의 전적으로 가족 중 여성들의 이르드에 좌우된다. 사실 남자들은
용감성과 용기, 또는 환대와 관용을 베풀지 못했을때 그의 샤라프를 잃거나 감
소가 된다. 그러나 남자들이 용감하고 너그럽게 베풀고 손님을 융숭히 대접하는
것을 어려서부터 배우기 때문에 샤라프를 잃어버리는 경우는 드물다. 물론 위와
같은 것들을 남성들이 공개적으로 어기면 그의 명예는 잃어버리지만 전통적으로
제도화된 육체적인 처벌은 뒤따르지 않는다. 윤리적인 초점에서 벗어난 범죄, 이
를테면 살인, 절도, 뇌물수수, 그리고 약속을 어기거나 비행을 저질렀을때 아랍
인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이 나뉘어진다. 첫째는 이런 행동도 남성들의 샤라프에
영향을 준다는 것이고, 둘째는 전혀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여성
이 이르드를 범한 결과는 완벽하게 일치를 보인다. 그것은 곧 그녀가 속해 있는
집단의 남성들의 샤라프를 파괴한 것이다. 그러므로 아랍윤리를 배우는 학생들
은 샤라프의 핵심은 여성의 이르드를 보호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결론을 맺는다.
간음한 여자를 처벌해야 한다는 요구가 남편에 의하지 않고 아버지쪽 가족에 의
해 이루어지는 것은 궁극적으로 가족집단의 결속을 유지하는데 도움을 준다. 만
약 여성이 속한 아버지 쪽 가족의 일원이 아닌 남편에게 그녀를 처벌하도록 허
락한다면 가족 구성원의 통제력이 약화된다. 그러나 여성이 처벌받아야 한다면
그녀의 아버지 쪽 가족은 가족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그녀를 죽이다. 여성의 할
례에 관한 한 이론적 근거는 소녀들의 음핵절제를 함으로써 혼전 성관계를 막거
나 성관계를 못하도록 봉쇄함으로써 순결을 지킨다. 이것은 이슬람 이전의 관습
이고 사실은 헬레니즘 시대의 이집트에서 이루어졌다..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
에서는 이런 수술을 무밧지(Mubazzira)라는 전문여자가 행했다. 이슬람 초기조
차도 아랍부족에게는 혼인을 위해 이런 할례가 필수불가결한 요소로 간주되었
다. 여성의 할례는 아직도 다음과 같은 아랍국가에서 최근까지 실시되었다.요르
단의 베드윈과 일부 소도시 사람들, 그리고 메카, 남부 아라비아의 주파르
(zufar),지역과 오만, 이라크 남부의 부족들과 바스라시, 이집트의 부슬림과 콥트
기독교인, 사하라의 일부지역 등이고, 수단에는 이슬람 법학자들이 음부봉쇄를
반대하는 데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실시되고 있다. 남성의 할례는 남성다움과
용감성, 용기를 시험하는 것으로 실시되지만 소녀들에 대한 여성의 할례는 심리
적인 영향을 준다. 여성의 할례가 용기를 시험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용기가 여성들과 관련된 덕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더구나 여성의 할례는 남성과
대조적으로 은밀하게 그리고 비밀로 행해진다. 수술은 소년들과 비교해서 소녀
들에게 열등감을 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남성의 할례는 남자의 정력을 증대시키
는 목적으로 이루어지지만 여성의 수술은 여성의 성에 대한 위협과 성적욕구와
여성다움을 없애는데 있다. 수단에서 행해지는 여성의 할례는 매우 잔인하여 그
충격이 너무 크기 때문에 수단의 소녀들이 영원히 무감각한 상태로 살지 않도록
여성 교육이 필요하다고 보는 이도 있다. 여성이 간음을 범했을때 극형에 처하
는 것은 이슬람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러나 사실은 성경시대로 거슬러올
라가면 간음은 불임을 유발시킨다는 생각으로 그 죄를 지은 사람이 속한 민족과
집단은 모두 하나님이 주신 아름다운 땅에서 멸망할 거라고 하여(신 11:17) 중죄
에 해당되었다. 고대 근동사회처럼 아랍사회도 부계사회, 족장사회, 일부다처사
회이었기 때문에 남자는 성적으로 대단히 자유로웠다. 남자의 성적활동에 대한
제한은 자신의 부부생활에 영향을 주지 않았다. 이럼 상황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이슬람법에 의하면 법적제한이 네명의 아내를 거느릴수 있고, 그가 소유한
노예첩들과 성관계를 갖거나 다른 남자의 법적 관할하에 있지 않는 여인, 매춘
부와도 성과계를 가졌다. 남자는 결혼해도 혼외 성관계를 삼가도록 기대되지 않
았고 그가 성관계를 가지고 있는 여자가 성적 불명예 행위를 범했을 때만 그는
성범죄의 혐의를 받았다. 여성에게는 그 상황이 매우 달랐다. 여자는 법적으로
혼인한 남편과 성관계를 가져야 했다. 그녀의 성은 결혼하고 있는 동안에는 남
편의 독점물이 되었다. 게다가 여성은 그녀의 순결을 첫 결혼할 때까지 지켜야
해서. 그녀의 아버지 쪽 가족의 최고의무는 그녀가 처녀성을 지키
는 것이다. 여성은 그녀의 성을 남편을 제외한 다른 사람이 즐기도록 허용하는
것은 가장 중대한 범죄에 해당하는 것이엇다. 베드윈 사회에서 성의 엄격한 격
리는 있을 수 없었다. 유목민의 야영지나 목초지를 찾아 장소를 옮기는 동안에
는 격리가 항상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다른 가족들의 남성과 여성들이 서로 만
나보고 아는 체도 했다. 널리 퍼져 있는 관습에 따라 젊은 남자는 자기 부족, 소
부족, 가계안에 있는 소녀들과 혼인했다. 그런 경우 언제나 있을 수 있는 혼전
성관계를 엄중한 규율로서 강력하게 막아야 했다. 베드윈 집단에서 각 개인의
생활은 집단의 안녕에 이바지한다는 점에 주로 가치를 부여했다. 이것은 집단의
명예가 위태로워지면 집단의 일원의 생명을 희생시켜도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이 남성보다 열등하다고 간주되는한(쿠란 4:34에서는 이것을 이슬람 이전의
생각이라함), 그리고 집단의 입장에서 볼때 여성의 주된 가차가 남자성 집단원의
실질적인 어머니 역할을 하고 있더라도 그녀가 여성다운 행실에서 벗어나면 그
녀를 죽여야 했다. 아랍인의 동성연애에 대한 태도는 서구보다 훨씬 더 자유스
럽다. 물론 대부분의 아랍세계에 동성연애와 그런 조짐은 성의 다른 표현들과
함께 결코 공개된 적은 없었다. 이것들은 개인의 사생활 문제인데다가 특히 쿠
란 26:165~166에서 동성연애를 금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슬람 법학자들의 경고에
도 불구하고 오늘날까지 동성연애가 이루어지고 있는게 사실이다. 이 밖에 천일
야화로 알려진 아라비안 나이트에서 혼전성관계가 자주 언급되고 있으면서 성문
제에 대한 도덕적인 무관심을 여전히 드러내고 있다. 10세기 초와 12세기에 아
라비안나이트에서 혼전성관계가 자주 언급되고 있으면서 성문제에 대한 도덕적
인 무관심을 여전히 드러내고 있다. 10세기 초와 12세기에 아라비안 나이트가
퍼지고 있었을때 성문제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그 때 어른들은 아이들 앞에서
성문제에 대한 논의와 농담을 서슴지 않았고, 그로 인해 성에 대한 실제적인 태
도를 가지게 되었다. 어쨌든 합법적인 혼인에 의한 성관계를 장려되고 혼전 성
관계는 어떤 형태로든 금지되었다. 결혼 후에도 다른 남성과 몰래 정을 통하는
것은 매우 심각한 것으로 여겼다. 성교육은 아랍세계에서 매우 빈약하다. 수단의
어느 초등학교 교실뒷면에 성기가 그려져 있었고, 각기 명칭이 곁들여 있었다.
그러나 여성의 성교육은 할머니나 고모, 이모에게서 듣는다. 이슬람 세계에서 성
역할의 구분은 엄격하다. 나라에 따라서는 사무실 근무에 여성이 단 한 명도 없
는 나라도 있고, 여성이 안쪽 한 구석에 자리잡은 나라도 있으며, 남자나 여자
모두 자유롭게 한 자리에서 일하는 곳도 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남자의 역할
은 바깥일 하는 사람으로 가족의 부양을 도와야 한다. 이것으로 남자는 사람들
과 자유롭게 어울릴 수 있고 여러곳을 혼자 다닌 수도 있으며 가족 구성원의 주
요 문제에 결정권을 갖는다. 하지만, 여성들에게는 나들이와 초대에도 자유롭지
못한 나라가 있다. 여성은 항상 남성의 권위 아래 놓여 있다. 남자들은 여성을
보호해야 할 착임이 있으며 여성은 그래서 집에 있어야 할 사람으로 생각한다.
나라에 따라 여성이 돈을 관리하고 혼자 여행할 수도 있지만 같은 입장에서 남
자들보다는 제한되어 있다. 여성은 일반적으로 가사를 책임지고, 하인이 아니면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 남자는 요리를 하지 않았다.
2.민속 이슬람
민속 이슬람의 영역
이슬람 하면 모두 하나같이 똑같은 것으로 생각한다. 물론 이슬람의 다섯 기
둥(신앙고백, 종교세, 순례, 금식, 기도)을 의무적으로 실천하는 것과 여섯 가지
믿음(신앙고백, 무함마드에게 순종, 알라의 천사, 알라의 책들, 알라의 예언자와
사자들, 사후의 생과 심판의 날)을 믿는다. 그러나 이슬람 세계의 표면 밑에는
이들과 절연되는 요소가 있어 둘로 나뉘는데, 곧 이상적인(Ideal) 이슬람(공식,
Official 이슬람)과 대중(Popular) 이슬람(민속, Folk 이슬람)이다. 무슬림들은 전
세계 오로지 하나의 이슬람이 있다고 하지만, 한국의 이슬람, 인도네시아의 이슬
람, 이란의 이슬람 등 각국의 지역 이슬람이 각기 그 차이를 드러내고 있다. 민
속 이슬람은 전승이 아버지가 아들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스승이 제자에게 이어
진다. 사당과 성지, 부적과 주의등이 행해지고, 민속 이슬람에게 지도자는 종종
샤먼이다. 샤먼은 영적세계를 다루는 사람으로 무아경, 망아의 상태에서 병을 고
쳐 주고 미래를 예언해 준다. 공식 이슬람이 우주, 내세의 실상, 즉 알라, 천사,
사단 등을 다루지만 민속 이슬람은 약초, 조의, 속담, 민간전승, 그리고 상식을
포함한 민간의학으로 해결될 수 없는 일상생활의 인간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갖
는다. 그러므로 민속 이슬람의 영역은 진(Jimm), 성인, 성스럼 동물, 사당, 흉안,
예감(징조), 점, 부적, 그리고 마술 등을 포함한다. 민속 이슬람이 대답을 찾는
질문 중에는, 첫째 일상생활과 죽음의 의미이다. 어떤 궁극적인 의미를 찾는게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무엇이 진행될 것인가? 내 삶과 가족의 이야기가 어떤
계획과 목표를 가지고 있는가? 그래서 무슬림은 천국,성인,그리고 영들을 믿는
것이 죽음의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질문은 개인이나
집단이 불운의 위협을 받을 지 안전할 지에 대한 것이다. 인생이란 매일 불안하
다. 질병,전염병,불임,사고,가뭄,화재,익사,지진,재난 등으로 에워싸여 있다. 이것들
을 설명하기 위해 사람들은 흉안,저주,망령 그리고 초자연적인 힘을 찾는다. 그
리고 이것들을 막기 위해 사람들은 부적,호부,점,마술,점성술,강신술,살풀이(내쫓
기)와 그 밖의 의식들을 쓴다. 그래서 사람들은 성인(왈리,wali),샤먼,주의,마술사,
심령 치료사,마법사 등을 찾아간다. 세번째 민속 이슬람의 질문은 성공과 실패에
관한 것이다. 아들에게 맞는 배필을 어떻게 찾아줄까? 사업의 성공,도박의 승리,
대학입시의 합격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부족의 번영과 전장에서의 승
리는 어떻게 보장받을 수 있을까? 점,예감,점성술,마술,조상,부족신,그리고 주위의
영은 성공을 가져다 주고 저주,주의,해로운 마술(black magic),마술사,마법사는
경쟁자와 적에게 실패를 가져다 준다고 믿는다. 네번째,민속 이슬람은 인생을 계
획해야 할 때와 미지(과거,현재,미래)의 세계를 알고 싶을때 필요하다. 누가 돈을
훔쳐갔나? 누가 진실을 말하는가? 이번의 사업투자가 성공할 것인가? 이런 문제
의 답은 민속 이슬람에서 점,꿈,신탁,예감,예언을 통해 안내를 받는다. 다섯번째,
민속 이슬람은 인간관계, 조상, 영, 신, 마귀, 도물과 식물과의 관계를 다룬다. 이
때 풍년을 비는 의식, 배우자의 성실성을 검증하기 위한 주술, 마법, 마술, 저주
등이 쓰인다. 민간신앙은 일상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그 초점을 둔다.
이처럼 다양한 민속 이슬람의 실상을 볼 때 그 동안 이슬람 세계의 민간신앙
에 대해 너무 과소평가해 왔던 게 사실이다. 인도아 대륙의 70퍼센트 무슬림이
민속 이슬람을 따르고 있고, 파키스탄에서 27점의 무함마드와 그의 추종자들의
유물이 전시됐을 때 무함마드의 신발, 속옷, 띠, 지팡이, 그리고 파띠마가 기도할
때 쓰던 돗자리가 숭배되었다고 하는 것은 민간신앙에 더욱 관심을 둬야 한다는
것을 지적해 준다.
이슬람에서 디크르의 실시는 공식 이슬람인 것과 마술적인 것 사이의 다리를
강화시켜 준다. 의심할 바 없이 많은 것이 영매술과 관련괴어 있는데, 영매술은
세례식에서 완전하게 그 관계를 끊어 버려야 한다. 니미즘이나 이슬람이 들어오
기 전에 퍼져 있던 민간신앙에 기인한다. 이슬람 세계에서 평민의 대다수는 살
아 있는 성인들의 기적적인 능력을 믿고 있어 그들의 기도와 만짐 등으로부터
복이 나온다고 생각한다. 또, 죽은 성인들의 능력도 믿어 그들의 묘지를 방문하
고 그들의 중재를 간구한다. 이것은 곧 이슬람 이전의 물환론이 이슬람 속에 그
대로 유지되고 있는 대표적인 현상이다. 이슬람 이전에 숭배되었던 돌과 나무가
예언자나 성인들과 연관지어 숭배되고 이와 유사하게 성인들의 유물과 다른 종
류의 부적이 흉안(악의 있는 눈초리, 이런 눈을 가진 사람이 노려보면 재난이 온
다고 함)과 영마들로부터의 보호물로서, 그리고 모든 인간의 발자국을 따라다니
며 괴롭힌다는 까리나로부터의 보호물을 항상 요구하고 있다. 민속 이슬람에서
는 이슬람의 순사한 일신론 정통 무슬림들이 수피들을 싫어하는 것도 여기에 연
유한다. 이런 유물 중에는 무함마드에 의해 인준된 것도 있고 그의 가르침에 명
백히 모순되는 것도 있다. 그러나 민속 이슬람과 심지어는 공식 이슬람에서도
물활론적 믿음과 관습이 전존하고 있음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무함마드 자신도 영마와 흉안의 힘을 강력하게 맏었을 뿐만 아니라 알라와 선
한 천사들의 이름만 들먹여도 이 같은 악한 것들을 막을 수 있다고 했다. 오늘
날 대중 무슬림은 인간이 마술에 의해 마귀와 영마의 힘을 이용할 수 있다고 믿
는다. 그래서 모든 종류의 악으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대용미술이 흔하다. 어린이
들이 부적을 지니고 다니며, 사우디 메디나에서 많이 만들어지는 마술컵은 치유
를 위해 때로는 좀더 사악한 목적을 위해 사용된다. 민속 이슬람에서 묵주는 기
도에 대한 보조물로서, 또 어떤 게시된 행동이 상서로운 것인지 아닌지를 가리
켜 주는 부적으로서, 그리고 병을 치유하는 마술적인 힘으로 사용된다.
민속 이슬람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수피즘(이슬람 신비주이)이다. 수피들은
금욕주의와 신비주의에 의하여 인간이 능히 신과 합일될 수 있다고 하는 범신론
이 그 특징이 된다. 수피들은 이 신비적 경험을 무함마드 자신이 이미 제험했다
고 주장한다. 처음 시아파에서 사작되었으나 역시 순니파에서도 알 가잘리의 막
대한 영향력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무슬림은 신비주의자가 신의 계시를 받는
것은 주로 황홀경 속에서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떻게 하면 이런 황홀경에 도
달할 수 있을까에 대한 학문이 발달하게 되었다.
수피들은 인간의 영혼이 아무리 감각의 세계에 수용되어 있다해도 그 안에 신
의 불꽃을 소유하고 있다고 믿었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은 비록 흐릿하고 희미
하기는 하지만 신의 거울이라 믿었다. 그렇다면 신비주의자의 의무는 감각세계
로부터 그 자신을 조절시켜 이 거울을 깨끗하게 하고 그것을 신쪽으로 향하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경건성은 그의 삶은 성스러움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가 겪은 황홀적인 상태의 정도와 빈도에 의해 판단되었다. 왜냐하면 그 황홀
경 속에서만 그는 알라와 완전한 하나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수피들은 전통
이슬람의 초자연적인 신을 폐위시키고 그 자리에 범신론자의 유일실체를 대치시
켰다. 아마 이런 극단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 중에 가장 유명한 무슬림은 알 할
라즈로서 그는 “내가 진리이다.”라고 주장해서 잔인하게 사형에 처해졌다.
이렇게 해서 율법의 글자보다 영혼을 강조한 수피들은 스승에 대한 맹목적 순
종을 통해 그 스승이 죽어도 해산하지 않고 종단을 형성해 갔다. 이 종단의 근
원을 더듬어 올라가면 유명한 성인이 나오는데 그의 기적적인 능력들이 어느 정
도 그의 제자들에게 물려졌다고 주장한다. 수피들은 황홀한 상태를 끌어들이기
위해 신의 이름을 반복하는 디크르를 행했다. 쿠란에 나오는 99개의 알라의 이
름들이 신비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믿고 신과의 신비적 합일을 꾀하는 수피들은
예배의식에 춤과 여러 다른 샤먼적인 관습을 도입했다.
정통(공식) 이슬람이 타종교와 타협하지 않았다 해도 대중 속에서 이슬람은
이슬람 이전의 신앙들과 융합되었다. 거의 어느 곳에서나 이슬람 국가에서는 그
지역 성인숭배가 확산되었다. 무슬림 성인은 실제로 종종 무슬림 이름을 부여받
은 그 지역 수호신이었다. 여러 지역의 성인 숭배는 성인들의 무덤숭배(마자르)
와 관련되는데, 이 무덤은 고대지역성소에 해당되는 곳이었다. 우리는 이슬람 국
가에 가 보면 많은 도시 중심에 무덤들이 있음을 보게 된다.
민속 이슬람의 상황
공식 이슬람은 종교세, 시리아법, 절대적인 일신교, 종교적인 가르침에 대한
문자적인 해석, 의식주의, 신자와 알라 간의 중재자 부재, 지배계급과의 밀착된
국교 등에 강조를 두므로 본질적으로 도시들에 근거를 두고 있고, 울라마(이슬람
법학자)가 이끌어 나간다. 반면에, 민속 이슬람에서 종교생활은 성스런 힘을 인
격화하고 영적인 내적경험을 강조한다. 그래서 알라와 신자간의 중재자를 찾고
실제 일어나는 일을 상징적으로 해석한다. 그러므로 자연히 시골지역에서 활발
하고 농부나 여자, 빈곤한 사람들, 무언가 빼앗긴 자들에게 흔하다. 모스크는 공
식 종교활동의 중심에 위치한다. 그러나 민속 이슬람은 종교활동의 중심 기관이
성인들의 유물이나 유골을 모신 성스런 사당이 된다. 또다른 대조는 울라마와
아울리아이다. 공식 이슬람 간의 차이는 쿠란에 기록된 말과 인간, 추상적인 가
르침과 구체적인 경험, 원리주의와 상징주의, 의식주의와 권능, 외향성과 내향성,
계시와 직접 경험으로 대별된다. 겔너는 모로코 사회에 대한 그의 연구에서 두
가지 양극 간의 사회학적 특성을 연구했다. 한쪽의 특성은 주로 엄격한 일신교,
엄격주의, 성서의 계시강조, 신자 간의 인류 평등주의 강조, 특별한 중개자 부재,
신비주의보다는 오히려 절제, 금용정신, 감정적인 상태보다는 원칙준수 등이었
다. 그러나 다른 한쪽은 성직숭배 경향, 다양한 영들, 추상적으로 기록된 말씀보
다는 오히려 인식되는 상징이나 이미지를 구체화시킴, 신비주의적인 활동을 중
시, 원칙을 존중하기보다는 어느 개인에 충성하는 것으로 전자와 구별되었다. 더
구나 전자는 도시에서 주로, 후자는 시골에서 주로 활발하였다.
시리아의 사학자 핫싼 핫다드는 시골에서의 대중종교를 농경사회 숭배라고 보
았다. 그들은 사당에 와서 그들의 헌신을 표시하기 위해 제물이나 헌금을 바친
다. 많은 성지들에는 무슬림(시아, 순니, 알라위파, 드루즈파), 그리고 기독교인
(정교회, 카톨릭)들이 온다. 이들 간에 하나의 공통된 대중숭배는 다산신으로 무
슬림들이 키드르와 동일시하는 조지성인을, 성인 엘리아스, 그리고 성경의 엘리
아를 모두 인정한다는 점이다. 이스라엘에 가면 혼인잔치 기념교회 중 입구벽에
걸려 있는 조지성인의 사진을 볼 수 있다. 말을 탄 채 창을 겨누고 있는 모습이
다.
이 세 성인은 공통적인 일체감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고대 시리아의 바알숭
배와 다산(풍년)의 대중신을 대표한다는 것이다. 세 일신교에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농경사회의 기본적인 사회구조와 공통적인 농경사회의 종교적인 태도를 나
타내 주는 것이다.
성지와 성인의 역할은 신자와 알라 사이에 중개자가 되는 것이다. 공식적인
종교에서는 신과의 거리가 너무 멀고 추상적이라는 것이다. 공식종교의 엘리트
적인 성향 때문에 성지는 평범한 사람들의 고도로 인격화되고 구체화된 대안이
되어 왔다. 레바논에서의 성지의역할에 대한 연구에서 일반인의 성인에 대한 관
계는 일상생활과 세속적인 생활 그리고 직접적이고 구체적은 필요에서 양립될
수 있었다. 그래서 모스크는 기도를 통한 알라와의 영적 접촉이 되었고, 반면에
사당은 고통과 세상의 여러 가지 문제, 그리고 즉각적인 해답과 반응이 요구되
는 위기에서 도피처를 찾기 위한 것이 되었다.
튀니지 학자 무함마드 알 마르주끼는 남부 튀니지 부족에서의 아울리아에 대
한 믿음이라는 글에서 ‘남부의 땅은 그들의 모스크의 둥근 돔, 성지, 수피종단
의 기도처로 가득 차 있다.’ 고 했다. ‘모든 마을에 부족에게는 성인이 된 할
아버지를 가지고 있었으며, 그들이 찾아가 제물을 드리고 축복을 구한다. 그 성
인의 손자 세이크가 그 곳에 서서 각처에서 오는 제물을 받고 있다.’ 알 마르
주끼는 아울리아에게서 받은 도움에 얽힌 이야기를 전한다. 가령 잃어버린 낙타
를 찾았다는 이야기, 그를 압제하던 자를 복수했다는 이야기, 어떤 사람이 감옥
에서 풀려났다는 이야기 등이 있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성인들의 축복을
의심하는 자는 저주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들은 성인들은 알라에 의해서 인
정받는다고 말한다. 즉, 성인이 노하면 알라도 노하므로 그의 대한 요구도 거절
할 것이라고 말한다. 그래서 성인과 알라 사이에는 어떤 장벽도 없다. 이런 맹목
적인 신앙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훨씬 빨리 흡입되었다.
성인숭배는 종교적인 힘이 개인의 권능에 근거를 둔 바라카(신의 은총)가 가
계, 족보상으로 전달된다고 주장될 때 그 사회에서 아예 굳어져 버린 관례가 된
다. 시디 라흐첸 후손들은 그의 바라카가 유전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
들과의 경쟁에서 그가 높은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부를 갖게 되는 우선권을 가
진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떤 사당들은 아예 고도로 관례화되어 버렸다. 그래서
순례지를 개발하고 성인들의 후손이 관리하는 시장도 만들었다. 그래서 이들 후
손들은 그들의 종교적 지위를 이용하여 사회적, 경제적 권한을 얻게 되었고, 사
회적, 정치적 힘과 연계될 때는 신봉자들의 헌금과 제물을 정치 지도자들이 이
용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민속 이슬람은 물론 공식 이슬람에서도 다른 종교들처
럼 끊임없이 절충하고 타협하는 방안을 찾아봐야 했다.
위와 같은 원칙들이 적용되는 것 중에 수피(이슬람 신비주의자)종단과 그들이
현대 아랍사회에서의 역할을 찾아볼 수 있다. 일찍이 이슬람이 북아프리카, 동남
아시아, 그리고 중앙 아시아에 급속도로 퍼지게 한 장본인이 수피들이었다. 공식
이슬람에서 보면, 특히 알 아즈하르(이집트에서 가장 오래 된 사원과 대학)세이
크들은 수피종단은 이슬람과 전연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반면에, 수피
들은 역으로 많은 세이크들이 일반적인 이슬람의 관례와 알라에 접근하려는 진
리의 내적경험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수피 종단은 널리 퍼졌으며 사
회적 위기가 닥칠 때 더욱더 융성하게 되었다. 이슬람 초기부터 수피즘은 지식
통해 구원을 찾으려 했다. 수피종단은 역사적으로 경건한 창단자 즉 성인을 중
심으로 조직되었다. 그래서 그들의 이름을 따 샤딜리야, 까디리야, 티자니야 등
으로 불린다. 창단자인의 바라카는 인간과 알라간의 수직적인 관계를 반영하고
같은 종단 내에서 믿는 형제들 간의 수평적인 관계를 반영한다.
내적조직과 알라를 아는 것을 통해 구원을 얻는 과정은 디크르(무아지경에 이
르도록 알라의 이름을 되뇌이는 신비주의적인 활동)의 의식에 의해 높여진다. 여
기서의 핵심은 수피종단은 현실에 적용하려는 기제로서, 특히 사회적으로 불안
한 시기에 그리고 압제하는 정권에 저항하는 기제로서 기여하기도 했다. 그래서
수피즘은 힘없는 자, 빼앗긴 자의 도피처가 되었고, 내적, 외적 권력에 의해 조
작될 가능성을 미리 배제하지 못하게 했다. 빈자들이 되기 원하고, 그들의 일상
생활의 문제에서 해결책을 찾기 위해 사당들과 수피종단을 찾아갔다.
민속 이슬람에서의 치료
민속 이슬람의 천사에 대한 교리에서 사단과 진 숭배에 대해 다룬다. 이 교리
에 관련된 영은 까리나인데 사단의 후손으로 어떤 개인이 태어날 때 동시에 태
어나며, 개인이 복제된 것으로 이성으로 나타난다. 일반적으로 흔히 알려진 것은
아이가 임신될 때 동시에 까리나가 세상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성행위
를 할 때 무슬림들은 비쓰밀라(알라의 이름으로)로 시작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렇게 함으로써 그 아이가 악마에 압도되거나 불신자가 되는 것도 막을 수 있다
고 무슬림은 보았다.
민속 이슬람에서 알라의 책들에 대한 교리는 경전숭배로 바뀌어 쿠란이 주술
적인 힘을 갖는 것으로 인식된다. 이를테면 쿠란의 몇몇 장들은 악령을 쫓아 내
는데 특별한 위력을 갖는 것으로 여긴다. 두통에 대한 치료는 알, 다시말해서 안
암(가축)장 13절이 효험이 잇다고 한다. “밤과 낮에 사는 것이 모두 그에게(알
라) 속한 것이니 그분은(알라)모든 것을 들으시고 모든 것을 아신다.”민속 이슬
람에서 알라의 사자들의 교리는 주로 영적세계를중심으로 다룬다. 솔로몬과 무
함마드가 대중 무슬림들의 마음에서 존경의 대상이 되는데,그것은 이들이 악마
와 진과의 영적교통한 일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특히,무함마드의 머리칼은 주
술적인 힘이 있어 치유의 능력을 가졌다고 한다.
최후 심판의 날과 관련해서 대중 무슬림의 마음속에 죽음과 영적생활이 언급
된다.그리고 알라와 진실한 인간 사이에 중개자로서 일부 성인을 믿는다. 무함마
드의 딸 파띠아와 예수가 이런 역할을 담당했다. 성인들의 무덤 근처에 그들의
영이 남아있기 때문에 목요일 저녁 묘지를 방문하여 묘지에 음식을 남기는 풍습
이 있다. 정명론의 교리도 대중 무슬림의 마음에 큰 영향을 끼친다. 샤으반달(이
슬람력 제8월,예언자의 달이라 부름) 15일은 다음 해 죽을 사람의 운명을 결정해
주는 성스런 밤이라고 생각한다. 이슬람에서 예정하는 자는 절대적인 권한을 갖
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알라의 속성 중에서 무슬림의 이러한 힘에 대한 개념을
통해 무함마드는 그의 추종자들에게 알라의 목적 속에 승리하게 되어 있으므로
위험에서도 용기를 가지고 두려움을 버리라고 말했다. 정명론에서 알라가 그 목
적을 유효하게 성취하도록 결정했다는 뜻이다.
많은 무슬림들은 아플때 과학적인 사고방식과 어긋난 의식을 한다. 쿠란 한
구절을 용기의 안쪽이나 접시위에 잉크나 백단향 풀로 쓴것을 물로 채워 물속에
녹게 한다음, 그 물을 환자에게 마시게 한다. 다른 방법으로는 쿠란의 구절을 종
이위에 적은 다음 물컵에 넣어 그 글자가 씻어 나오게 한다. 더 간단한 방법으
로는 예배 인도자 이맘이 쿠란 구절을 암송한 후 용기에 담긴 물 위로 숨을 내
쉰 후 환자가 그 물을 마시게 한다.
북아프리카에서는 모스크에서 소년들은 흰색으로 채색된 나무판에 쿠란을 쓰
면서 쿠란을 배운다. 학생들은 배울 쿠란구절을 갈대펜으로 쓰고 다 외운 후 지
우기도 한다. 그런데 양털과 수지로 만든 용액 속에 이 나무판을 담그고 나서
씻겨 나온 물을 성수라 하여 그 물은 모스크 바깥 동쪽 항아리에 보관해 둔다.
이것은 많은 환자들의 특효약으로 유명했다. 이로써 환자는 알라의 말을 마시는
것과 똑같기 때문이다.
민속 이슬람에서의 흉안
성지순례를 한 이들은 그들이 어떻게 성지순례를 했는지,누가 했는지 벽에 그
려놓곤 한다. 이것은 그들이 믿는 흉안으로부터 보호를 받기 위함이다. 메카 방
문에서 카바 신전 방문 이외에 잠잠 우물주변에 99개 예언자들의 무덤과 칼리파
들의 거처와 무덤을 방문한다. 카바 신전을 일곱바퀴 돌면서 네 번은 빠른 속도
로 세 번은 천천히 돈다. 물론 검은돌에 입맞추는 것도 빠뜨리지 않는다. 행여나
한가지라도 어기거나 시간이 늦을 경우에 알라의 축복과 은총은 커녕 성지순례
가 무효로 돌아갈까 봐 근심에 가득차 있다. 매년 순례기간에 메카 메디나 이곳
저곳에서 수백 명이 죽어간다. 200만 명의 사람들이 한곳에 모여 종교행사를 하
니 그런 문제가 없을 수 없다. 무엇보다도 이 순례기간에 시행되는 중요한 행사
가 있는데, 그것은 미나에 위치한 이블리스 즉 사단을 상징한 세 기둥에 돌을
던지는 일이다. 이들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쿠란구절을 외우면서 세 군데 좌우
양쪽과 가운데 서 있는 기둥에 돌을 던지면서 사단을 죽인다고 생각한다. 문제
는 많은 사람이 좁은 장소에 모이기 때문에 간혹 예측불허의 사태가 발생한다.
대문 문설주에 동물의 다리나 깃털을 매달아 놓곤 한다. 이것 또한 흉안의 공
격으로부터의 보호를 의미한다고 생각한다. 아마도 흉안은 무슬림들의 두려움에
기인한다. 길가에 거지에게 구제하지 않았을 때도 흉안의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
한다. 이 흉안을 막기위해 주로 하늘색이 덧칠한 금속제의 과장된 형태의 눈 부
적을 장식한다. 이집트에서는 흉안이 고대 이집트 호루스의 눈에 있다고 생각한
다. 이집트 미라관 밖에 눈이 그려져 있는데, 이는 악한 영의 침입으로부터 죽은
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고대인들은 육신이 없으면 부화할 수 없다고 믿었으며,
영혼의 집인 육신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믿었다고 그래서 왕들이 죽으면 시종들
은 산 채로 함께 묻혔다.
이슬람 세계 어디서나 초자연 숭배에 대한 눈에 보이는 증거를 발견할 수 있
다. 심지어 거리에서도 이름에서도 주로 흉안으로부터 보호를 찾으려고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어린아이들은 자주 작은 파란 진주의 형태로 된 흉안에 대항
하여 스스로를 보호하려고 한다. 여자들은 흉안의 시선을 흩어뜨리기 위해 보석
을 착용한다. 그래서 그것을 흘깃 보아도 아무런 해가 없다. 즉,그것들을 흩어뜨
리면서 욕망의 눈을 좌절시킨다. 중동은 그러한 요소,용어,그리고 숭배대상들로
가득 차 있다. 만약 우리가 그들에게 이 관습을 제거할 것을 제안한다면 그것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많은 동양인들도 흉안의 힘과 인간에 끼
치는 영향력을 믿는다. 만약 여려분 뒤에서 혹은 옆에서 어떤 사람이 본다면
그는 불안한 혹은 수줍은 당신의 눈을 응시하면서 그것을 재빨리 의식할 것이고
그는 갑자기 당신에게서 방향을 돌릴 것이다. 동양인은 서양인보다 더 민감하
다.
동양인의 영혼은 섬세하고 예민하며 감수성이 강하다. 서구인들은 합리주의에
묶여 있고 동양인들은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느끼고 그들 스스로 그를 둘러싸고
있는 어던 영향력으로부터라도 보호받기를 원한다. 이것이 곧 흉안에 대항하기
위한 방어의 표시가 어디에서나 발견되는 까닭을 설명해 준다.
민속 이슬람에서 초자연적인 힘의 숭배
무함마드는 초자연적인 힘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다. 제113장에서 피조물들, 어
둠의 악, 매듭으로 마술하는 여인의 악, 시기하는 자와 질투의 악으로부터 알라
에게 보호를 구하고 있다. 그는 두려움과 근심, 걱정에 쌓여 있고 전쟁터에서 많
은 사람들을 죽였으며, 그의 추종자들에게는 그의 적들을 무찌르라고 했다. 그가
사람들을 죽일 때마다 죽은 사랍의 영이 그의 꿈 속에 나타나 그를 쫓아다녔다.
무함마드도 악의 영향을 깨닫고 있었다. 그는 알라가 창조한 많은 것들이 그에
게 악하게 보였기 때문에 이를 두려움으로 보았다. 무함마드는 밤에도 두려움으
로 떨었다. 매듭을 써서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주려는 여인들과 마술사를 두려
워했다. 무함마드는 시기했던 사람들에게서 악령의 힘을 느꼈다. 그의 두려움
은 자주 쿠란에 발견되는데(제113장, 제114장 등), 알라에 대한 극도의 두려움에
서는 절정에 달했다.
1. 말하라, 아침의 주님께 도움을 구합니다.
2. 알라가 창조한 모든 것들의 해악으로부터
3. (그리고) 어둠이 내려 깔릴 때 그 황혼의 해악으로부터
4. (그리고) 매듭을 지어 마술을 하는 여자의 해악으로부터
5. (그리고) 시기할 때 시기하는 자의 해악으로부터(제113장)
인간은 하나님 없이는 살 수 없다. 만일 그가 위협을 느낀다면 그는 자신을
도와 줄 누군가를 찾을 것이다. 또한 그가 살아 계신 하나님과 관계를 맺고 있
지 않다면 그는 다른 힘에 의존할 것이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슬람의 초자연
숭배(occult)가 시작된 것이다.
알라는 어떤 사람은 올바르게 인도하고, 또 어떤 사람은 지옥으로 보내다. 무
슬림은 알라와 인격적인 교제를 가질 수 없다. 무슬림은 알라에게 ‘아버지’라
고 말할 수 없다. 이슬람에서 알라는 구속자나 구세주가 아니다. 그런 까닭에
그가 발견할 수 있는 어떤 것이든 다른 힘이나 도움을 힘들여 찾지 않을 수 없
다. 이리하여 초자연적인 힘의 숭배는 이슬람의 모든 면에 들어오게 된다.
이슬람에서 공허함은 비인격적이고 알 수 없는 존재인 알라에 대한 무슬림의
신앙에 기인한다. 이것은 무슬림에게 신과의 거리를 두게 했고, 계속적인 공허감
을 남겨 두게 되었다. 사람이 완전히 채워지지 않고, 의지할 데 없고 버림받았
을 때 그는 지푸라기 ^35^ 그가 매달릴 수 있는 그 무엇 ^35^ 라도 잡으려고 매
달리게 된다. 그런 까닭에 이슬람의 초자연 숭배는 어떠한 개인적인 확신이나
안심을 주지 못하는 알라의 개념에 의해 만들어진 공허를 채워 주고 있다. 민속
이슬람에서 알라의 책들의 교리는 경전숭배로 바뀌어 쿠란이 주술적인 힘을 갖
는 것으로 인식되지만 그 속에는 평안이 없다.
무함마드에게 평안이 없었다. 그는 두려움에 쌓여 있으며, 마음이 찢겨진 자이
며, 절망적인 불행한 사람이었다. 그의 영혼의 깊은 곳에도 제113장 3절과 4절에
서처럼 밤과 마술사 등에 대한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그가 제96장 첫 계시를 받
았을 때에도 무서워 벌벌 떨었다고 전한다. 그러자 부인이 그의 무서움과 떨림
을 진정시키려고 망토를 덮어 주었다. 그는 제113장 5절에서 시샘에 대한 두려
움도 컸다. 그는 사방에서 공격을 받고 있었다. 메카의 유지들이 그를 잡아 죽이
려고 했을 때 그는 메카를 서둘러 도망쳐 나왔다. 그는 참으로 죽음의 두려움을
피해야 했다. 이제 그의 두려움에는 무엇이 있었는지 제114장에서 이를 확인해
보자.
1. 말하라, 저는 인류의 주에게 보호를 구합니다.
2. 인류의 왕에게
3. 인류의 신에게
4. 사악한 사단의 악으로부터
5. 인간의 가슴에 속삭이는
6. 진과 인간의 유혹으로부터
인간의 마음 속에 도사리고 있는 악, 인간의 가슴속에 속삭이는 악 및 진
(Jinn)과 인간의 유혹에 대한 악으로부터 오는 두려움이 많았다. 제113장은 자연
과 외부에서 오는 악이라면, 제114장은 인간 내부에서 오는 두려움을 적고 있다.
여기서 그가 두려워하고 있는 인간, 사단, 악마임을 알 수 있다. 무함마드가 이
세 가지를 구별하여 이들을 창조한 알라에게 피난처를 구하고 있다. 그의 내면
깊숙이 속삭이는 사단으로부터 피할 도피처를 구한다. 무함마드가 제96장에서
‘읽어라’라는 목소리를 들었으나 그것이 알라에게서 온 것인지 아닌지 확신하
지 못했다. 그는 알라의 목소리와 사단의 목소리를 분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
다. 오히려 우리는 쿠란에서 사단의 장 53장 19^36^22을 찾을 수 있다.
‘알라트, 알 웃자, 그리고 마나트에 대하여 나에게 말하라. 또, 세 번째 여신
마나트를 보았느냐? 너희에게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단 말이냐, 이것은 가장 공
평치 못한 구분디다.’
무함마드는 악마들과 영들이 있음을 인정한다. 그는 그들을 만났고 그들의 힘
도 알고 있었다. 쿠란은 평안과 위로의 말 한 마디 없이 단지 도움을 줄지 확신
이 없는 알라에게 피난처를 구하고 있는 것이다. 무함마드가 두려움과 극도의
절망감에 빠져 있을 때 사단의 존재를 알고 있었고, 산단이 그를 끊임없이 쫓고
있었기에 더욱 괴로워했다. 그가 알라에게서 피난처를 구하는 그 순간에도 악한
힘에도 사로잡혀 있었다.
쿠란에는 메카 사람들이 무함마드를 믿기 전에 그에 대한 기록을 남겨 주었는
데 첫째, 메카 사람들은 무함마드를 마즈눈(Majnun, 미친, 홀린 37:36, 44:14,
52:29, 68:2, 81:22)이라 했는데 계시를 받을 때 매우 부자연스럽게 행동했던 데
기인한다. 그의 이웃들은 그를 두려워하여 그를 사히르(Sahir:마술사, 10:2, 15:16,
38:3)라 했다. 그가 흘리게 하는 거짓말로 그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
으며 마법을 행했다. 다른 사람들은 그를 카힌(Kahin, 점쟁이, 히브리어에서 코
헨이라 함. 52:29, 69:42)이라 했는데 그는 진에게서 영감을 받아 그 비밀을 인간
에게 전했다. 그의 이웃들은 그를 두려워하여 그를 사히르(Sahir: 마술사, 10:2,
15:16, 38:3)라 했다. 그가 흘리게 하는 거짓말로 그를 따르던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었으며 마법을 행했다. 다른 사람들은 마슈르(Mashur, 마법에 걸린, 17:50,
25:9, 44:13, 81:25)라 했는데 그가 악령과 악에 지배를 받아 그들의 중개자로 행
동했다. 여러사람들은 그를 카힌(Kahin, 점쟁이, 히브리어에서 코헨이라 함.
52:29, 69:42)이라 했는데 그는 진에게서 영감을 받아 그 비밀을 인간에게 전했
다. 또, 메카 사람들은 그를 샤이르 Shair, 시인, 37:35, 52:30, 69:43)이라 했는데
그에게 영감을 주는 어떤 진(Jinn)의 인도를 받아 리듬이 있는 시구를 영창했다
고 한다. 또, 무함마드에게 추종자들이 천사 가브리엘과 만났던 이야기를 해 달
라고 하자 그는 종 울리는 소리와 금속이 쿵쿵 부딪치는 소리를 들었다고 했다.
그가 계시를 받는 동안 추종자들은 그의 얼굴이 창백해지거나 붉어졌으며, 그의
입술이 조용히 움직였고, 가끔은 무의식 상태에 있었음을 보았다. 이처럼 무함마
드는 계시받는 동안에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었고 무엇에 홀린 듯한 사람과 같았
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했다.
중동지역에서 점을 보는 것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딸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
점쟁이는 유괴자와 딸이 옮겨진 곳의 이름을 포함하여 유괴의 모든 상세한 사실
을 분명히 가르쳐 준다. 가장 유명한 점쟁이는 군인 장성, 정부관료, 돈 많은 사
업가뿐만 아니라 평범한 시민들이 찾기도 한다. 모두가 그들 문 앞에 줄지어 서
서 순서를 기다릴 정도이다. 또다른 형태의 점이 있다. 어떤 사람과 결혼해야 할
지 그 결합이 행복할 것인지 예측을 해 주는 일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일에
관련되어 있으며 그것들로 인해 그들의 삶이 구속당하고 있다.
이슬람 지역에서 쿠란본문, 기도, 혹은 저주가 때때로 작은 종이에 적혀지곤
하는데, 그 이유는 어느 한 사람을 보호하기도 할 뿐만 아니라 특정한 상황에
있는 어느 사람에게 영향을 주기 위함이다. 어느 한 세이크는 그가 성공적인 사
업여행을 할 수 있도록 도와 주는 쿠란구절을 적어 몸에 소지했고, 또 어느 젊
은이는 한 소녀가 그를 사랑하도록 영향을 끼치기를 원했기 때문에 사람을 시켜
그녀의 매트리스 밑에 글을 쓴 종이조각을 숨기도록 했다. 유사한 관습이 사업
의 번창과 그들의 경쟁자의 계획이 실패하기를 원하는 상인들을 위해서도 쓰이
고 있다.
마술이나 악마의 힘을 빌리지 않는 무해한 마술(white magic)의 여러 형태의
목적은 다른 사람들을 죽이거나 해롭게 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어떤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다. 돈에 대한 사랑과 갈망이 이런 종류의 마술이 생기는 주요 동기
가 된다. 또한, 표적, 그림 혹은 종이조각이 집이나 방 안에서 일종의 보호를 위
해 사용된다. 집 주인들은 이로 인한 해가 없다고 믿고 있어, 만일 누군가 그것
들을 버리라고 한다면 큰소리가 나오거나 확실한 거부의사가 표현될 것이다. 왜
냐 하면 이들 물건이 그들 생활에 깊이 관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새들이 나는 것도 역시 관심의 대상이 된다. 만일 검은 새 한 마리가 어느 집
위에 내리덮치면 이것은 그 가족 구성원 중의 하나가 즉각적으로 죽는다는 전조
로 받아들인다. 만일 새 한 마리가 그 집에서 멀리 날아가면 이것은 어떤 사람
이 곧 길을 떠날 것이라는 것으로 간주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별들의 나타남도
많은 이들의 사고에 큰 영향을 주고 있다. 인도에 있는 많은 호텔에서는 별점에
관해 말하는 점성가들을 자주 보게 된다. 많은 이슬람 국가에서 하얗게 칠한 성
인들의 무덤을 발견한다. 많은 남자와 여자들이 도움을 얻기 위해 이런 무덤을
찾아간다. 예를 들면 한 여성이 임신이 되어지기를 희망하면서 그녀의 복부를
무덤에 대고 문지르면 임신이 된다는 것이다. 이 같은 행동은 그들의 어려움과
그들의 삶 속에 생기는 문제들 속에서 실제적인 위로와 만족할만한 답을 주지
못하는 알라에 대한 무슬림들의 절망과 슬픔을 대변한다. 인도네시아에서 특별
한 축제기간 중에 철못과 전구들을 먹는 것을 본다. 이처럼 초감각적인 영역이
있다는 것과 이들이 사회의 일부분이 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악마의 힘을 빌려 남에게 해를 끼치는 마술이 또 이슬람 세계에 있다. 사람들
은 이것을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파멸시키려고 한다. 하루는 베이루트에 있는
블랙매직의 지도자가 학생들을 시켜 이스라엘을 파괴하도록 함께 집중하자고 했
다. 그런데 다음 날 학생 한 명이 그에게 와서 내 꿈 속에 당신이 철로된 족쇄
를 차고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다. 또 다른 학생들이 유사한 꿈을 꾸었다고 말
했다. 그 사람이 그 날 밤 환상중에 이스라엘과 아무런 관계도 가져서는 안 된
다는 말을 듣는다. 그는 그 이후 그가 손을 쓸수 없는 더 높은 권위의 세력에
굴복해야만 했다.
공식 이슬람과 민속 이슬람의 차이
능력은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생명체가 행사하는 능력이고, 다른 하
나는 존재하는 능력이다. 공식 이슬람에서는 전자가 알라, 천사들과 사단인데 이
들이 인간의 운명을 통제한다. 후자는 끼스마(qismah: 알라가 미리 정한 운명)이
며, 이것은 인간운명에 또 하나의 역할을 하는 운명과 같은 우주의 힘이다.
민족 이슬람에서 까리나(qarina: 개인의 악한 환영)와 진(jinn: 영마) 등 여러
가지 영적존재는 인간생활에 영향을 끼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믿는다. 그리고
성인, 통치자와 가장도 영적존재와 같이 능력을 갖는다고 생각한다. 인간 외적인
힘에는 바라카(baraka: 알라가 주는 축복의 능력), 흉안, 점성술, 마술이 있다.
많은 종교의 본질은 선과 악이 충돌하는 특징을 갖는다는 사실을 믿는 것이
다. 공식 이슬람에서는 알라는 사단과 전쟁을 벌이고, 이 둘의 추종자들이 지하
드에 참여한다. 지하드는 도덕적이고 내적인 영적전쟁을 의미하기도 한다. 무슬
림은 악마와 악한 힘에 대항하여 전쟁을 치러야 하는데, 이는 알라의 뜻에 더
잘 순종하도록 노력하게 하고 완전한 복종을 위해 싸우는 것이다. 그러나 일관
되게 지하드는 외적 악마에 대항하는 전쟁이다. 신앙을 퍼뜨리게 하기 위해 거
짓 종교를 쳐부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전쟁은 항상 종교전쟁, 성전(holy war)이라 부른다. 이런 전쟁에서
보상은 최종적인 것이다. 즉, 천국행과 이슬람의 승리가 그것이다. 이런 측면에
서 이슬람의 급속한 팽창과 십자군 전쟁, 그리고 오늘의 이슬람 원리주의 부흥
등을 재검토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민속 이슬람에서 능력대립은 또다른 의미를 갖는다. 일상생활에서 사
람들은 망령, 유령, 마귀, 흉안, 저주, 마법 등의 악령에 좌우된다고 믿는다. 그들
의 유일한 보호는 알라, 천사, 성인, 부적, 선한 마술 그리고 다른 능력들의 도움
을 구하는 것이다. 이 투쟁의 결과는 즉시 나타난다. 질병, 가뭄과 재난을 주거
나 건강, 부와 번영을 주는 것이다.
다음은 공식, 민속 이슬람에서의 능력 대결의 범위를 나타낸 표이다.
표:공식 이슬람과 민속 이슬람에서의 능력대결
1. 내세
가. 알라:선, 사단:악
나. 천사들:선, 악마:악
다. 끼스마(알라가 정한 운명):선, 불행한 운명:악
2. 현세(별난일)
가. 망령들:선, 진:악
나. 조상들, 성인들:선, 자르(사람들에게 질병이나 비정상적인 행동을 하도록
홀리는 망령) 조상, 유령
다. 기복, 디크르, 축복:선, 흉안, 저주, 마법:악
라. 이로운 미술:선, 해로운 미술:악
마. 부적, 성물:선, 상서롭지 못한 물건:악
3. 현세(예삿일)
가. 이슬람:선, 우상숭배:악
나. 인물:선, 까리나(흡사한 인물, 환영):악
다. 자연적인 힘:선, 자연적인 힘:악
그동안 공식(전통) 이슬람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이 저술되었으나, 민속 이슬람
의 신앙과 실처에 대한 기독교적 답변은 거의 없다. 이것은 르네상스 이후 서구
사상에 들어온 신플라톤 학파의 이원론에 의한 부분적인 영향에 기인한다. 이
영향이라고 말한 것은 세상을 영적, 그리고 자연적인 영역으로 나누었기 때문이
다.
전자는 영원과 궁극적인 문제에, 즉 종교의 영역을 다루고 후자는 자연법이
적용되는 자율체계로서 현세를 포함한다. 이 같은 이원론이 원인이되어 전도(인
간의 영적인 면)와 사회적인 관심(인간의 자연적인 면) 사이를 구분하게 했다.
이것은 또한 인간의 일상생활에서 초자연적인 힘을 부인하게 한 것이다. 그래서
서구 학자들은 인간의 위기, 영적 억압, 그리고 마법과 관련된 질문에서 신학적
인 답변을 준비하지 못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자주 과학을 동원했다. 대부분
의 일반 무슬림에게 민속 이슬람은 그들 삶의 일부분이다. 우리가 그들과 함께
살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그들이 직면하는 문제에 대해 알아야 한다. 민족 이슬
람은 권능, 능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생활 속에서 현존하여 역동성을 갖는
다. 다시 말해서, 민속 이슬람은 오늘도 계속 변하고 있다. 오늘날의 민속 이슬
람의 모습이 여기 기록한 내용과 똑같지는 않다. 오히려 지리적 위치, 문화적 배
경과 인종에 따라 상당히 다양한 모습을 갖는다.
정령숭배 의식은 이슬람교로 개종되기 전에 존재했다. 그렇지만 초기 이슬람
교의 포교는 수피들이거나 적어도 신비주의적인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이슬람
샤리아법의 엄격한 준수를 요구하기보다는 융통성과 타협을 택했다. 그래서 많
은 사람들이 이슬람에 들어오게된다. 디크르의 목표는 이러한 의식을 행하는 사
람이 알라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려는 것이다.
무함마드 사후 성인들이 등장했다. 오늘날에도 카리스마적인 지도력을 모색하
는 수피들이 있다. 그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마술적인 힘을 보여준다. 오늘날 수
피들은 그들 청중의 사회와 문화에 적합한 이야기를 통하여 가르친다. 이들의
가르침에는 논쟁이나 토론이 없다. 신비주의자들은 알라를 찾으려고 추구했던
방법이 유용한지 먼저 경험한 친구의 이야기를 듣기를 좋아한다. 이슬람 성인들
의 무덤을 무슬림들이 존경하듯이 성인의 추도일도 함께 기념한다. 민속 이슬람
은 머리가 아닌 가슴에서 나온다.
극도의 정통 무슬림은 민속 이슬람을 비이슬람적인 것으로 간주하며 그것들을
제거하려고 압력을 행사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까지 민속 이슬람이 실제 이슬
람 세계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더구나 대다수의 무슬림
이 민족 이슬람적 환경에 살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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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제19장 역사가 니콜로 마키아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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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제18장 (나막신 공화국) 사절 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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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제17장 (카스트루초 전)과 (전술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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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제16장 (무료함) 속의 글쓰기 - 당나귀, 만드라골라, 벨파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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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제15장 사랑과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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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제15장 사랑과 고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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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제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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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제14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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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제14장 산탄드레아의 (여가)-리비우스 논고와 군주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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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제13장 (비탄에 잠긴 마키아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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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제12장 12시 정오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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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제12장 12시 정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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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제11장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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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제11장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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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제10장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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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제10장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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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제9장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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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제9장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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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아벨리 평전 - 제8장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