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랍문화의 이해 - 공일주
3. 인간과 인간
이슬람 공동체
개인, 가족 및 사회 공동체는 사회생활을 영위하는데 있어서 기본 구성단위이며, 이 삼자간의 물질적, 인간적 상호작용 관계는 일찍부터 사회 과학자들의 연구대상이 되어 왔다. 오늘날 아랍 개개인과 그 가족 및 공동체도 오랜 역사를 통해서 문화적이고 종교적 전통을 지니게 되었다. 인간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한 아랍인 개인의 기질은 곧 다른 아랍인과의 공동체 속에서 영향을 주고 받는다. 인간은 수직적으로 신과 관계를, 그리고 수평적으로 이웃 동료와의 관계를 가지며 산다. 사회, 문화적 영역이 다소 수정된다면 그 영역은 이슬람 공동체를 형성하는 신자와 동료 신자간의 결속이 아니라 오히려 개인과 공동체 간의 고리라고 할 수 있다. 개인으로서 인간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은 존재론적 현상에서 두가지 양상을 나타낸다. 즉, 신과 인간간의 수직적 관계와 인간과 사회간의 수평적 관계가 한 쌍을 이룬다. 사회, 문화적 실재를 나타내는 수평적인 경우에도 두가지 차이가 있다 .하나는 종교 공동체에 해당하는 신자들간의 상호 주관적인 개념으로서 순전히 이슬람적인 해석이다. 두번째는 구성원으로서의 여러 개별 신자와 종교 공동체간의 인과적인 관계가 있는데 이것은 서구사회에서 볼 수 있다. 이 중에서 첫번째 것을 택하는 것은 개인과 집단간에 존재하는 우선 순위에서 나온 것이다. 우선 순위 문제는 수평적인 축에만 제한된 것이 아니고 수직적인 축도 고려되어야 된다. 다시 말해서 인간보다 신을 우선하는 것이 종교의 원리이다. 결국, 공동체를 이루는 상호주관성이 이슬람의 특징이다. 움마는 실제 이슬람 신자들의 공동체이고 이들이 합쳐져서 상호작용하며, 다소 제도화된 산물이다. 움마는 무언가를 공유하는 생활양식이다. 무함마드식 움마는 무함마드를 통한 계시에 근거를 두고 무함마드의 생활을 모범으로 따르는 신앙 공동체이다. 무함마드 사후 칼리파들은 신자들의 공동체를 제도화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움마는 이슬람의 정치조직과 완전히 겹치는 것이 아니었다. 정치조직 안에서 움마가 구성되고 존속되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그 결과 움마의 제도화는 다음 두가지 특징을 가졌다. 하나는 자립, 그리고 자활의 움마인데 중앙 집권적이고 계층적인 조직이었다. 또 다른 하나는 움마을 조직화하려는 노력이었다. 이슬람 공동체의 초기 건설자는 아라비아 반도의 부족과 중동지역의 부족집단이다. 이 두 집단은 하나의 연속체를 이루었으며, 이런 친족 또는 부족집단은 움마를 조직하는데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 부족간 연합된 형태는 이슬람 역사에서 움마의 모양을 이루는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이다. 그리고 널리 퍼진 신비주의 종단은 각 지역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광범위한 조직을 만들어 갔다. 그래서 이슬람이 전파되는데 그들이 두각을 나타냈다.
가장 중요한 이슬람 공동체는 정기적인 집회를 갖는 모스크였다. 종교기금(와끄프, Waqf)에 의해 운영되었고, 금요설교와 비공식적 모임, 그리고 교육을 통해 무슬림의 생각들을 확산시키는데 모스크가 중요한 위치를 가졌다. 이슬람 역사상 많은 통치자들이 이런 사실에 유의하여 모스크를 활용했다. 오늘날에도 많은 정부들이 와끄프의 재산을 조정하거나 실제 관리하고 있으며, 이를 이용하여 짓거나 모스크 유지비로 쓰고 있다. 움마에서 제도화된 것은 아니지만 신자들에게 신앙고백과 결속이라는 두가지 상호활동이 있다. 움마는 공유된 무슬림 생활양식의 청사진이므로 같은 환경에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떠올리게 하고, 그들 간에 모델이 된 행동은 집단의 동질성을 확인시켜 주는데 유익했다. 결속은 공동의 단체에 속하고 있다는 동질성과 안전을 지켜준다는 의미가 있다. 결속은 서로를 확인해 주고 무슬림이 다른 무슬림의 신원을 보충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동료 무슬림의 신원을 확인해 주는 것은 자기 확인은 물론 신앙고백도 포함된다. 여기서 동료는 자신의 거울이 된다. 결속은 동전의 한면과 같고 다른면에는 평등성이 있다. 이슬람에서 결속은 모두가 평등하다는 사실을 무시할 수 없다. 그러나 결속의 방법으로 신앙고백이 존재한다. 움마의 실질적인 표현은 명절이나 평상시 행사에 서로 나타난다. 전자는 순례와 희생제 축일에 나타나는데 순례는 공동체 의식과 형제애를 고양시키는 행사가 되었다.
아랍인, 이슬람 그리고 중동
전 이집트의 대통령 가말 압둘 나세르(Gamal Abdul Nasser)는 그의 책 ‘이집트의 해방’에서 세개의 동심원을 그려 세계속에서의 그의 조국 이집트를 그려 보았다. 세개중 가장 가운데 있는 원은 이집트를 둘러싼 ‘아랍인’이라 정하고, 아랍인은 우리(이집트)의 부분이오, 우리(이집트)는 아랍인의 부분이라고 하면서 이집트의 역사가 곧 아랍역사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 정의하였다. 둘째번 원은 아프리카 대륙이라 하였는데 지리적으로는 나일강에 의해 이어지고 지도자적인 책임과 아프리카인의 의식계몽을 위하여 이집트가 묶여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셋째번 원은 대륙과 대양을 잇는 믿음의 형제들간의 영역이라 했다. 그것은 곧 이슬람이라는 둥근원이었다. 그러나 문화적인 관점에서 볼때 나세르의 세 동심원 중에서 두가지만 언급할 가치가 있다. 셋째번 이슬람이라는 원은 의미없는 내용인 것이다. 문화적으로 이집트는 다른 모든 아랍국가처럼 수세기에 걸쳐 이슬람 세계뿐만 아니라 아랍세계에 속해 있다. 그러나 문화적 요인을 관련지어 볼 때 이집트나 지중해 연안을 끼고 자리잡은 어느 아랍국가도 아프리카의 일부가 아니다. 그러나 수단은 국가명 자체가 아랍국가이지만 그 위치가 또 명확하다. 그것은 수단의 삼분의 일인 남부가 아프리카에 속해 있고, 나머지 북부 삼분의 이는 문화적으로 인종적으로, 언어적으로 아랍세계의 일부인 것이다. 문화적인 관점에서 볼때 아랍국가들은 블랙 아프리카(Black Africa)와 공통점이 없으나, 만약 모든 아랍국가가 포함될 수 있는 동심원이 있다면 작게는 아랍세계와 크게는 이슬람 세계가 그 원에 놓일 수 있을 것이다. 이 원은 지리적으로 유럽, 블랙 아프리카, 중앙 아시아 그리고 나이지리아와 이어지는 중간지역으로서 문화적인 정의에 따른 구분이 되므로 이 중개지역이 중동이 되는 것이다. 이슬람이라는 동심원은 아랍인 무함마드가 세운 일신교에 바탕을 둔 세계종교이다. 몇십년 안에 이슬람이 승리를 가지게 된 것은 인류역사에 독특한 현상이 되었으며, 스페인에서 기독교에 무릎을 꿇게 되는 15세기까지 교세확장을 계속했다. 터키에서 이슬람 정권은 18세기까지 강화되었으며, 그 밖의 지역 특히 중앙 아프리카에서도 이슬람은 계속 확장되었다. 오늘날 인류의 오분의 일 내지는 육분의 일이 무슬림이다. 아프리카 대서양 연안에서 파키스탄까지, 그리고 중앙 아시아에서 사하라까지 인구의 90% 이상이 이슬람을 신봉하고 가까이에는 인도네시아가 단일국가로서 1억 5천만명의 무슬림이 있다. 무슬림 세계 안에 둘째번 원 즉 중동이 있다. 중동은 영국이 제1차 세계대전 중에 걸프지역을 일컬었던 말로서 미국도 종전 후 함께 써 왔는데, 지금은 학자마다 지역구분이 다소 다르다. 가령 북으로는 터키, 남으로는 오만, 서쪽으로는 이집트, 그리고 동쪽으로는 이란에 걸쳐있는 모든 지역을 통틀어 중동이라 하기도 하고, 혹자는 대서양의 모로코에서 북아프리카의 수단을 포함하여 터키, 이스라엘,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 아라비아 반도의 모든 국가들과 이란,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을 포함하기도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지역이 근동(Near East)에 해당하기도 하여 가끔은 ‘중근동’이라 부르기도 한다. 하여튼 우리가 익히 쓰고 있는 중동이란 말은 아라비아 반도를 중심으로 한 서남 아시아로 국한하여 쓰는 것이다.
이슬람에 의하면 세계가 두개의 영역, 즉 이슬람의 영역(House of Islam)과 전쟁의 영역(House of War)으로 나뉜다. 이슬람의 영역은 무슬림의 지배하에 있는 지역이고, 나머지 세개는 비무슬림의 지배하에 있으므로 강제로 정복해서 지하드에 의해 이슬람 영역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는 반면, 중동은 이슬람의 영역에 속한다. 무슬림 세계가 이슬람교에서만 그 정체성(Identity)을 찾고 있지만 중동은 종교가 아닌 문화적 개념이다. 중동은 문화적인 독특성을 특징으로 갖는 문화대륙인 것이다. 물론, 이러한 특징을 갖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슬람인데, 이슬람만이 이들 민족을 중동이라는 카테고리안에 묶어 두는데 충분한 것은 아니다. 그 예로, 문화적인 관점에서 볼때 중동은 서쪽으로는 대서양까지, 북쪽으로는 지중해, 흑해, 코카서스, 카스피해, 그리고 투르크멘, 카자흐, 타지키스탄 공화국까지, 동쪽으로는 인더스강까지, 남동쪽으로는 아라비아해까지, 그리고 남쪽으로는 수단 영역까지 광대한 지역을 포함한다. 이들 중동지역에는 이슬람뿐만 아니라 크고 작은 기독교 공동체와 유대교 공동체가 있다. 터키와 모로코의 유대인, 시리아, 이라크, 레바논, 이스라엘, 요르단의 기독교인 들이 교회를 가지고 있고, 쿠웨이트, 바레인, 아랍에미레이트에도 석유가 나기 전부터 기독교 교회를 가지고 있었다. 중동에서 비무슬림 소수 공동체의 존재와 중요성을 간과해 버리는 예가 종종 있는데, 상당한 관심을 가지면 중동에서의 이슬람 이외의 타종교가 여럿 있음을 알 수 있게 된다. 앞서 우리는 중동이 이슬람 세계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고 했으므로 아랍세계가 중동에 의해 둘러싸여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다시 말해서, 아랍세계는 중동안에 위치한 핵이 된다. 지중해, 흑해, 아라비아해가 아랍세계는 물론 중동과 이슬람 세계와 인접해 있다. 그러나 북쪽과 동쪽으로 아랍세계는 터키, 이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과 같은 비아랍인이며 무슬림 중동국가들과 경계를 이루고 있고, 남쪽으로는 아프리카에 이르러 사하라와 수단 등에도 길을 열어놓고 있다. 아랍세계 자체는 지리적으로 두개의 부분으로 나뉘는데, 하나는 서남 아시아이고 다른 하나는 북아프리카이다. 이집트는 물론 서남 아시아는 주민의 모어가 아랍어라는 특징이 있고, 이집트의 서쪽으로 지중해 남쪽 해안을 따라 쭉 뻗은 북아프리카의 아랍국가들은 규모는 작지만 오늘날까지 베르베르어를 모어로 쓴다. 이집트나 아시아에 있는 아랍국가보다는 훨씬 활발하게 유럽어 특히 프랑스어를 식자층의 언어로 쓰고 있다. 아랍국가를 다섯으로 구분하면 첫째번은 지중해 남쪽해안에 모로코, 알제리, 튀니지, 리비아, 이집트가 있고, 둘째번은 이집트의 남동쪽에 아랍국가 수단, 셋째번은 북동쪽에 있는 비옥한 초생달 지역으로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가 있으며, 넷째번은 동쪽에 아라비아 반도의 국가로서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그리고 마지막으로 걸프지역이 있다.
그렇다면 아랍인은 누구인가? 앞서 말한 세 중심원에 해당하는 아랍인, 중동, 이슬람 중에서 첫째번과 셋째번만이 ‘아랍인의 의식’을 두드러지게 표현해 준다. 물론, 아랍인은 현대 아랍정치에서 자주 ‘중동’이라는 말과 익숙해져 있다. 주로 영어권과 불어권에서 쓰이던 중동이란 용어는 토착화된 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아랍인들의 사고속에 문화적 개념으로 자리잡지 못한 것 같다. ‘아랍인(Arab)'이란 말은 이슬람 이전에 아라비아 반도와 시리아 사막에 살던 사람들을 가리켰다. 기원전 854년의 앗수르 기록에 의하면 아랍인들은 낙타들과 관련지어 등장하는게 확실한 것은 그들이 낙타를 기르는 사막의 베드윈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후 28세기를 거치면서 이제는 아랍인이 사막과 관련지어 생각되었다. 기원전 600년쯤 예레미야 3:2에 나오는 직유법’사막의 아랍인처럼‘은 이것을 잘 설명해 준다. 이보다 1세기 전에 이사야(13:20)는 텐트를 치는 아랍인을 가리키면서 그들이 사막에 사는 유목민이라고 생각했다. 이래서 아랍이라는 말과 베드윈(Bedouin)이라는 두 용어간의 개념상의 연관은 너무 긴밀하여 자주 아랍인을 베드윈이라 칭했다. 무함마드가 아라비아 반도와 시리아 사막 외곽지역으로 점령의 세력을 키워가면서 이때부터 ‘아랍’이라는 말은 둘째번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아랍인’이란 이슬람에 개종한 후에 그들의 조상의 언어를 버리고 대신 아랍어를 수용한 사람들을 가리켰다. 동시에, 새로운 영토에서 아랍인 정복자들은 그들 고유의 부족적 특징을 잃고 살았다. 그들이 도시 거주자가 되고 정착함으로써 새로운 국가에서 아랍인 정복자와 그 지역주민간에 있었던 초기의 차이는 점차 사라져 버렸고,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에 북아프리카와 서남 아시아에서 유일한 지배적인 인구가 되었다. 아랍과 서구의 많은 학자들이 아랍인은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을 찾으려고 애썼다. 그만큼 아랍인의 용어규정이 어렵지만 이것이 곧 아랍인의 의식구조와 면면히 결부되어 있으므로 그 답을 몇 가지로 나눠 설명하려고 한다. 첫째는, 아랍인이란 아랍어로 말하고 아랍문화 속에서 자라났으며, 현대 아랍국가에 사는 사람으로서 무함마드의 가르침을 믿고 과거 아랍제국의 영광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랍국가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꼭 그렇지 않은 사람도 아랍인이라 생각한다. 가령, 모어가 아랍어이지만 북아프리카의 프랑스 문화에서 자라는 사람들은 자신이 아랍인이라고 생각하고 있고, 다른 사람들도 그들을 아랍인이라 부른다. 또 비아랍국가에 살고 있는 아랍인도 있을 수 있는데, 이를테면 프랑스, 미국, 영국, 독일, 라틴 아메리카 등지에 살고 있는 아랍인들은 사는 곳은 다르지만 아직도 아랍인이다. 그들은 무함마드를 믿지 않을 수도 있다. 또, 수십만 명의 아랍인 기독교인이 있는 것을 보면 위 정의는 간단하지 않다. 아랍인, 기독교인이다 해서 무슬림만큼 민족애와 조국애를 가지고 있지 않다고 볼수 없기 때문이다. 또, 공산주의자들이나 또다른 이유로 아랍제국의 영광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않는 부류도 있다. 더구나 이민을 가서 다른 나라 시민권을 가진 아랍인들도 있지만, 그들 역시 아랍인이라는 동질성을 버리지 않고 있다. 이 밖에도 이집트의 콥트 기독교인과 아랍국가에 사는 유대인들이 있다. 이런 이유로 더 나은 정의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두번째로 바그다드의 소설가이자 시인인 자르라의 정의를 제안하고자 한다. 자브라는 “아랍어를 자신의 언어로 말함으로써 아랍인으로 느끼는 자”는 누구나 아랍인이라는 것이다. 이것은 아랍인들이 각기 다른 정치체계속에 살고 있지만 별개의 국가나 국민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데에서 출발한다. 아랍인들의 사고에는 적어도 1세대 동안에 아랍 지도자들이 품었던 생각은 아랍인은 하나의 국가, 즉 아랍국가를 이룰 거라는 것이다. 지금은 여러 국가로 나뉘어 있지만 조만간 하나로 만들어질 것이며,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사고속에서 모든 아랍인은 형제요, 단일민족의 후손들인 것이다. 이런 사고는 곧 이슬람과 연관된다. 이슬람은 아랍인은 물론 비아랍민족을 보듬고 있다. 이런 점에서 아랍보다는 이슬람이라는 용어가 더 대의명문이 서게 되는 것이다. 거기에는 ‘전쟁의 영역’을 ‘이슬람의 영역’으로 바꿔 나가는 작업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아랍인에게 이 두 영역의 의미는 내부의 평화를 이교도나 무신론자들의 국가에 심자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 국가나 비기독교 국가에 자신들의 모스크(사원)를 짓거나 선교활동을 하면서도 자신들의 영역 안에는 타종교의 선교가 절대로 못 들어오게 하는 것이다. 20세기 들어와서 서구지배와 서구문물의 침투로 전쟁의 영역에 대한 개념이 전통을 고수하는 아랍인들에게까지 다소 시대에 뒤떨어진 개념으로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위와 같은 전쟁의 영역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무슬림과 비무슬림 간의 차이는 매우 첨예화하였다. 아랍학자 클리포드(Clifford)는 아랍에 대한 서구의 개입의 결과로 아랍인은 점차 수심에 가득찬 시기심과 방어적인 자존심을 가지고 중세이교도에 대한 증오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고 하였다. 아랍세계와 무슬림 세계 사이에 역사적인 차이가 있음에도 아랍인들은 자주 아랍주의를 이슬람과 동일시한다. 원래 아랍민족의 종교이었던 이슬람이 아랍인을 동일시함으로써 둘 사이의 구별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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