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랍문화의 이해 - 공일주
1. 신의 인간에 대한 관계
쿠란의 수집 및 보존
그러나 자음으로만 기록된 쿠란사본은 아랍어 글자의 결함 때문에 기본적인 일치 이외에 쿠란독경에는 큰 도움이 되지 못하였다. 문어체가 된 쿠라이시 방언과 각 부족의 구어체는 약간의 차이가 있었다. 쿠란은 쿠라이시 방언으로 계시되었으나 무함마드 생존 말엽에는 어려서부터 자신의 방언에 익숙해진 아랍의 다른 부족들이 이슬람에 귀의하면서 쿠라이시 방언으로된 쿠란의 일부 낱말을 발음하지 못하자 무함마드는 그들에게 그들 자신의 고유어법에 따라 이들 낱말을 발음하도록 허락하였다. 이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1. 무함마드 시대 (610~632) 가. 쿠란이 기록되기 시작했다. 나. 아랍어로 쓰였다. 다. 자음의 점과 모음부호가 없었다. 라. 쿠란을 기록했던 아랍어 자음은 15개였다. (하나의 글자가 하나 또는 하나 이상의 음소를 나타냈다. ) 마. 23년간 간헐적으로 계시되어 쿠란이 한곳에 모아지지 않았다.
2. 아부 바크르 시대 (632~644) 가. 제1차 수집기록~쿠란이 한곳에 모아졌다. 나. 예언자 시대의 글자가 그대로 쓰였다. 다. 많은 교우들이 각기 쿠란원본을 지녔다.
3. 오스만 시대 (644~656) 가. 제2차 수집기록^36^쿠란기록의 정확성을 기했다. 나. 무슬림들이 계시 장소에서 멀어져 각 지역으로 퍼졌다. 다. 일반 사람들은 교우들이 전한 쿠란독경을 받아들였다. 라. 쿠란독경에 대한 그들의 차이를 인식하고 쿠란을 집대성하였다. 마. 자음의 점과 모음표시가 없어졌다.
그 후 모든 무슬림들은 단시 아랍어 글자가 갖는 결함-이슬람력 50년까지 28개 음소를 15개 글자로 나타냄-에도 불구하고 쿠란은 오스만 정서법에 따라 낭송되었다. 그러나 이슬람이 전파되고 비아랍인이 이슬람에 개종하자 쿠란독경에도 오류가 생겨나기 시작하였다. 가령 쿠란 9:3에서 rasuluh가 rasurih로 발음되었던 것이다. 글자의 결함은 자연히 구두전달에 의존하게 되었지만 무엇보다도 글자들을 구별짓기 위한 점이나 부호들이 필요했다. 단모음을 나타내는 부호는 아직까지 없었고, 다만 장모음을 나타내기 위해 약자음 (w.y.)이 쓰였을 뿐이다. 그럼에도 자음만으로 된 쿠란 사본은 구두전달에 의해 있을 수 있는 대안과 개연성의 범위를 상당히 제한시켜 주었다. 이런 상황에서 쿠란 독경사들은 쿠란사본의 권위만큼 높아졌다. 그래서, 메디나, 메카, 다마스쿠스, 바쓰라와 쿠파에서 쿠란 독경사들은 쿠란사본에 모음붙이는 방법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이런 변화에 대한 움직임이 바쓰라에서 시작되었고 특히 아불 아쓰와두 알두알리, 나쓰르 이븐 아씸, 야흐야 이븐 야으마르 등이 이와 관련되었다. 쿠란을 독경하는 법을 표시하기 위해 시리얀(아랍어)에 쓰였던 점이 도입되었고, 사선도 점차 쓰이게 되었다. 처음에는 논란이 되었던 부분에만 구별표시를 하였는데, 그것은 일부 무슬림들이 알라가 내려준 쿠란원문에 이같은 구별표시는 위험스런 발상이라고 지적했기 때문이다. 쿠란사본의 전문에 걸쳐 체계적이고 일관성 있는 구별표시가 이루어진 것은 칼리파 압둘 말리크(685-705) 시대에 이라크 통치자였던 알 핫자즈 이븐 유수프의 강력한 지원에 의한 것이었다. 이 때 비로소 같은 기본꼴을 가진 글자들에 점을 넣어 서로 구별짓고 단모음도 붙이게 되었다. 게다가 장모음을 표시하기 위해 쓰였던 약자음의 활용도 더욱 체계화되었고 함자의 표시도 도입되었다. 오늘날과 같은 쿠란이 된 것은 934년 이었다. 아부 바크르 무자히드가 바그다드에서 7명의 쿠란독경의 대가(나피으, 이븐 카씨르, 아부 아므르, 아씸, 핫자, 알 카사이)의 이름을 발표하고 이들의 독경법을 공인하였다.
무슬림은 지금 갖고 있는 쿠란의 신빙성, 확실성에 대해서 의문을 품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날 쿠란의 본문으로 삽입되지 못한 부분도 있고, 쿠란본문에 아랍어가 아닌 다른 나라 말의 낱말도 있는 것을 보면, 쿠란이 꼭 아랍어로만 계시되고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것에는 수긍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다. 이슬람 학자 몽고메리 와트는 그의 저서 '무함마드와 메카'에서 쿠란이 하느님의 말씀인지 아닌지 결정을 피하기 위하여 쿠란을 참조할 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길 혹은 무함마드가 말하길 이란 말 대신에 쿠란에 기록되어있기를 이라고 썼다. 그러나 옛 기독교 저자들은 거의 예외없이 쿠란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고 단호하게 주장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어떤 저자는 쿠란을 사탄의 가장 간교한 위작이라고 혹평을 했다. 정통적인 무슬림은 추호도 의심없이 쿠란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안에 어떤 인간적인 요소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말을 되풀이한다. 그러나 쿠란과 신약은 서로 모순된다. 쿠란에서 하나님은 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 신약에서는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 알려진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죽고 사흘 후에 부활했다는 사실이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는 사건이고 신약에서 역사적인 사건으로 확증되고 있지만, 쿠란은 이를 절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쿠란은 인간(종)과 하나민(주인)과의 관계에 대한 그의 표현이다. 쿠란은 하나님의 율법과 의지의 계시인 반면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가르침속에 나타난 신성한 영감으로 정확히 기록된 역사적 사실이라는 것이다. 성경의 저자들이 하나님의 실제적인 말씀을 직접 받아 그대로 전했다기 보다는 하나님의 진리를 영감을 받아 그들 자신의 말로 썼다는 것을 그리스도인들은 믿는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딤후 3:16) 그래서 저자들은 하나님의 대변인들이다. 이러고 보면 결국 기독교와 이슬람의 접촉점이 책들간의 논쟁으로 발전할 수 있지만, 이것 또한 옳지 않다. 콜린 채프만 (Colin Chapman)은 기독교 안에서 예수의 역할과 이슬람에서 무함마드의 역할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고, 더구나 기독교 안에서 성경의 위치와 이슬람에서 쿠란의 위치를 상호 비교하는 것도 옳지 않다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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