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랍문화의 이해 - 공일주
1. 신의 인간에 대한 관계
무함마드의 출생
무함마드는 메카에서 쿠라이시 부족에 속하는 하심 가문에서 이슬람력 제3월(라비아 알 아우왈)12일에 출생하였는데, 부친 압둘라는 태어나기 전에 사망하고, 모친 아미나 역시 무함마드가 여섯 살 되는 해에 사망하였다. 고아가 된 무함마드는 처음에 조부 압두 알 부딸립에게 맡겨져 양육되다가 두 삼촌 압바스와 아부 딸립 중 아부 딸립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무함마드는 태어나자 베드윈 출신 유모 씨아드족의 여인 할리마에게 맡겨져 다섯살 때까지 사막에서 자랐고, 8세 때는 할아버지마저 돌아가셨다. 그는 삼촌 밑에서 양치기하다가 12세 때 삼촌 아부 딸립을 따라 시리아 대상 무역길에 오르게 된다. 한편, 무함마드는 어린 시절부터 삼촌을 도와 대상무역에 종사하면서 사업에 있어서는 성실하고 유능한 인물로 인정을 받아 ‘아민(정직한 사람)’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를 지켜 보던 과부 카디지가 청혼을 하였는데, 25살 되던 595년에 그녀와 혼인하였다. 그는 결혼하고도 부인과 함께 상업거래는 계속하였다. 결혼은 무함마드에게 경제적인 안정과 사색할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메카 교외의 사막을 거닐거나 동굴에 들어가서 명상을 즐기곤 하였다. 메카 근교 히라산의 어느 동굴에서 묵상하던 그가 40세 되던 해 610년 라만달달(이슬람력 제9월)에 예언자로서 첫 부름을 받는다. 그는 이것을 첫 계시라 불렀다. 무함마드의 가문은 메카의 카바 신전을 보살피는 제살장 역할을 맡고 있었는데, 이러한 환경에서 성장한 무함마드는 당시 메카에 만연되어 있던 많은 우상숭배와 미신들을 몹시 불만스럽게 생각하였고, 특히 자신이 속한 부족이 우상을 섬긴다는 사실에 회의를 갖게 되면서 유일신 사상에 몰두하게 되었다. 당시의 메카사회는 소수의 귀족들이 다수의 노예들을 착취하면서 온갖 불의와 불공정이 만연되어 있었는데, 무함마드는 당시의 우상숭배, 부도덕, 노예착취, 부녀자와 고아들의 차별대우 등과 같은 사회적 병폐들에 대해 회의를 품기 시작하였다. 그가 기존의 사회가 부폐되었고 이 사회의 윤리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외치자 기성세대들은 그를 잡아 죽일 기회만을 엿보고 있었다. 615년과 616년 그는 자신이 속한 쿠라이시 부족으로부터 박해를 받자 그의 추종자 일부(남녀 100여 명)를 아비시니아(지금의 에티오피아) 기독교 왕국으로 이주시켰다. 그 때까지 무함마드와 그의 동료들은 메카에 머물렀다.
그러나 619년 부인 카디자와 삼촌이며 보호자이었던 아부 딸립이 사망하자 부족 내에서 그의 입지와 안전은 더욱 불안해져만 갔다.언제 죽을 지 몰랐다.그러던 차에 메디나에서 부족 간의 중재로 와 줄 것을 요청받았다. 그는 622년 메카 북쪽 메디나로 이주하기 직전에 카바 신전 근처 성소에서 부라크(Buraq: 나귀보다 크고 노새보다 작은 동물)를 타고 가브리엘과 나란히 예루살렘성전으로 옮겨져 그 곳에서 일곱 하늘로 올라가는 꿈을 꾸었다. 현재는 이것을 기념하여 예루살렘의 옛 솔로몬 성전이 있던 자리에 황금동을 만들었다. 그러나 메디나에 있는 여러 공동체 사이에 빚고 있던 충돌을 해결해 달라는 무슬림 개종자(안싸르)들의 초청에 응하여 메디나로 이주한 것이 역사상 자주 언급되는 이른바 히즈라(Hegira)이며, 이것이 이슬람력의 시작이 되었다. 메디나 무슬림들이 메카의 대상을 급습하기 시작하자 624년부터 일련의 전투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 해 1월 바드르(badr)전투가 있었는데, 무슬림 324명의 장정이 메카인 950명의 장정을 무찔렀다. 이 전투에서 무슬림 14명과 메카인 49명이 전사했다. 그 다음 해에 우후드(uhud)에서 양 군대 간에 전투가 벌어졌는데, 이 때에는 무슬림이 메카군에게 패했다. 그리고 아부 수프얀이 이끄는 무슬림 군대가 이 전투에서 패퇴하였다. 627년에는 아흐잡전투가 있었는데 이 때에는 무슬림들이 메디나에서 메카인의 공격을 격퇴할 수 있었다. 628년, 마침내 무함마드와 메카인 사이에 후다이비야 맹약을 맺음으로써 그 다음 해에는 무함마드와 그의 일행이 메카를 자유롭게 순례하도록 허락되었다. 629년 1월11일 무함마드는 무슬림 1만여명의 장정을 이끌고 메카에 무혈입성 하였다. 메카인들이 싸움 없이 항복했던 것이다. 무함마드가 대사면을 선언했고, 카바의 모든 우상은 이 때 파괴되었다. 마리아의 성화는 부수지 않았다. 무함마드는 다사 메디나로 돌아갔다. 그리고 이슬람을 신봉하는 부족들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차츰차츰 무함마드에게 몰려오고 있었다. 631년 무함마드는 메카순례를 끝으로 얼마 동안 병석에 있다가 632년 6월8일 세상을 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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