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랍문화의 이해 - 공일주
1. 신의 인간에 대한 관계
이슬람 이전의 아라비아 반도
기원전 800년경에 남부 아라비아 비문이 쓰여지면서 아랍어와 아랍인의 역사에 기록되었다. 서기 226년에는 페르시아에서 사산조가 시작되었고, 265년에는 팔미라의 아랍족장이 페르시아 군대를 격퇴시켰으며, 274년에는 아랍여와 제노비아가 로마황제의 포로가 되었다. 이런 굵직한 역사적인 사건 뒤에 이슬람교가 발생하기 직전 아라비아 반도에는 다양한 신 숭배가 성행되었는데, 그 신들의 대부분은 지역마다 흩어진 각 부족이 섬기는 신이었다. 주된 종교는 애니미즘으로서, 신이나 정령은 수목, 돌, 연못, 동물 등에 깃들여 있다고 믿었으며, 사람들은 신과 정령의 보호를 받기 위해 의식을 거행하곤 했다. 그 중에서도 신앙의 대상으로 가장 유명한 것이 메카의 중앙에 위치한 ‘카바’신전에 놓인 흑석이다. 당시의 메카인들은 이 돌이 아담과 이부가 생존했을 때부터 하늘에서 내려왔다고 믿고 있었으나, 이것은 오늘날 이슬람에서 대표적인 애니미즘의 잔존물이 되고 말았다. 이 돌은 현재 검은 보호막으로 덮여 있는데, 당시에는 여러 부족들이 공동으로 최대의 종교적 의례를 행하는 성지이자 순례의 중심지였고, 따라서 이 신전에 모신 우상만도 360여 개나 되었다. 이러한 다신들 중에는 후발이라는 남신과, 알 웃자, 알 라트, 마나트라고 하는 세 여신들이 있었는데, 이 여신들은 가장 지고하고 능력 있는 절대자로 숭배되 알라의 딸들로 믿고 있었다.
최고의 신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증거는 있지만, 종교적 관습으로는 군소 신들의 숭배가 중심이 되어 있었다. 즉, 우상숭배가 많았고 영들이 깃들여 있다고 하는 동굴, 나무, 샘, 돌 등에 산제물이 드려졌다. 메카에는 세 여신, 즉 마나트, 알 라트, 알 웃자가 숭배되었는데, 현재 요르단 남쪽 페트라의 박물관에 알 웃자 여신상이 보관되어 있다. 그리고 당시에는 미신적인 의식이 여러 사당에서 행해졌고, 메카에 있는 카바아 같은 주요 사당에는 연례적인 순려가 있었다. 운명에 대한 강력한 믿음이 있었으나 내세에 대한 믿음은 거의 또는 전혀 없었다고 말할 수 있다. 아랍시에 대한 구비전승도 계속되었고, 이 밖에 다른 종교들도 있었다고 전한다. 메카에는 기독교인들이 있었는데 주로 외국인이었다. 이를테면 에태오피아에서 온 흑인 노예들과 시리아에서 와라카 븐 나우팔이라는 사촌이 있었는데, 그도 기독교인이었다고 한다. 무함마드는 사막에서 시리아 수도사와의 접촉이 있었고, 하니프라 불리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일신론자였으며, 당시 메카인들에게 거의 영향럭을 끼치지 못했다. 본래 기독교를 신봉했던 메카 주위의 히자즈 지역에는 여러 유목부족들이 있었다. 남쪽의 예멘지역은 4세기 이후 기독교인 지역이 되었다. 부족 중의 일부는 사막의 유목민(베드윈)이고, 또 일부는 반유목민, 그리고 일부는 읍 규모의 타이프나 도시 규모의 메카, 메디나에 살던 정착민이었다. 개별부족들은 동맹에 의해 결속되고, 전체지역이 하나로 통일되지는 못했으며, 종족끼리 피의 복수가 부족윤리로 확립되어 있어 복수와 앙갚음이 이어지고 있었다. 또, 무함마드 시절에 두 강대국이 있었는데, 그것은 곧 비잔틴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이었다. 당시 아라비아는 이 두 강대국의 세력 다툼에 영향을 받고 있었는데, 수도를 콘스탄티노플에 두고 소아시아, 시리아, 이집트, 남동유럽을 차지하고 있던 비잔틴 제국에서는 기독교 정통교리가 이단교리, 즉 단성론자와 네스토리우스파에 맞서 격심한 반목이 계속되고 있었다. 그리고 아랍인에 대항하기 위해 시리아에 완충국가로서 갓싼조를 지원했다. 남부 아라비아 나즈란의 기독교인들이 516년에 예멘왕이 되었던 두 누와스에 의해 523년에 학살당했으며, 525년에는 비잔틴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의 요청에 따라 기독교 아비시니아 사람들이 군대를 파견하여 두 누와스를 처단하고 예멘을 점령해 버렸다.
한편, 수도를 이라크에 두고 이라크에서 아프가니스탄까지 퍼져 있던 사산조하의 페르시아 제국은 아랍인에 대항하기 위해 완충국가로서 이라크에 있는 히라의 라큼왕국을 지원했다. 그 후 614년 페르시아인들은 비잔팀에게서 예루살렘을 쟁탈했고, 628년에는 비잔팀이 페르시아인들을 대파함으로써 두 제국은 많은 싸움으로 지쳤다. 마침내 이슬람이 퍼지기 시작할 즈음에는 힘의 공백기가 이뤄지고 있었다. 이로써 이슬람은 아라비아 반도에서 그 위세를 떨치며 정복길을 떠났다. 당시의 경제적, 사회적 상황으로는 북-난, 동-서로 이어지는 무역로가 있어 이 길을 따라 대상무역이 성행했다. 그리고 메카는 순례 중심지로서뿐만 아니라 중요한 상업의 중심지가 되었다. 또한, 여아 생매장이나 여성이 거의 보호받지 못하는 등 사회악이 만연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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