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랍문화의 이해 - 공일주
2. 문화와 종교의 매개체
현대 민주주의의 주춧돌
아랍문화가 전성기에 있을 당시에 아랍인 무슬림들의 아랍어에 대한 태도와 확신은 다음 세대에서도 계속 유지되었다. 그러한 현상은 대략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 계속된 지식인들의 몰락과 언어적 쇠퇴의 시기에도 계속되었다. 그것은 아랍어에 언어의 전통과 신성함이 가미되어 있다는 생각에서이다. 최고의 가치와 독특한 언어로서 예술적 우수성을 가진 것으로 여겨지던 아랍어가 그리스인이나 로마인, 그리고 중세시대의 인본주의자 사이에서도 이런 생각이 널리 퍼져 있었다. 19세기에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그리고 여러 유럽국가들은 자기들의 언어가 가장 완벽하다고 주장했다. 18세기에 러시아의 시인 로모노소프(Lomonosov)는 모국어에서 가질 수 있는 강한 느낌을 예로 들면서 러시아어의 우수함을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많은 언어 가운데 으뜸인 러시아어는 이해력과 어휘가 풍부할 뿐만 아니라 언어가 사용되는 지역의 범위에서 유럽의 모든 언어를 훨씬 능가한다.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였던 찰스 5세는 ”신에게는 스페인어로, 친구에게는 프랑스어로, 적에게는 독일어로, 여성에게는 이탈리아어로 이야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즉, 러시아어 속에서 프레인어의 권위와 프랑스어의 발랄함, 독일어의 강함과 이탈리아어의 부드러움을 깨달을 수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그리스어와 라틴어에서는 어휘의 풍부함과 더불어 이미지에 있어서 러시아어의 간결한 효과도 깨달았다. 최근, 아랍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로모노소프가 러시아어에 대해 확신하고 있는 모든 특성들을 아랍어가 가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또한, 그들의 언어가 과거 아랍이 누렸던 영광의 생생한 상징이며, 자긍심과 신에 대한 영감의 근원이라고 보아 왔다. 심지어 장기간 침체의 결과로 아랍어의 고전적 형태를 이해하기 어렵고, 현대생활을 표현할 수 있는 어휘의 부족함이 발견되었음에도 지식인들이나 일반대중들이 아랍어의 장점과 잠재력을 극찬하는 것은 막을 수 없다. 아랍어의 이러한 인식은 역사에 대한 강한 자의식과, 예술적, 종교적, 문화적 경외감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19세기에 아랍어를 부활시키기 위한 노력은 지식인들 대다수를 아랍어에 대한 최상의 가치평가와 국민의 지주로서 인식하도록 이끌었으며, 이것이 20세기로 이어졌다.
19세기에 아랍인 작가 파트흐 알라는 신이 아랍어에 모든 특성을 부여했으며, 모든 현대문명은 아랍인들에 의해 이끌어졌다고 주장했다. 또한, 많은 작품을 남긴 레바논 출신 작가 자이단(1914년 사망)은 아랍어가 자부심이 강하게 남아 있는 언어이며, 발전의 법칙에 순응할 수 있는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19세기로 넘어가던 당시만 해도 아랍어 장래에 대해 수많은 불신이 쏟아지던 때였다. 자이단의 이런 견해는 현재에 이르러 많은 지식인들에게도 끊임없는 영향을 주고 있다. 현대 아랍 르네상스의 초기였던 19세기에 지식인들은 지적부흥과 국민적 자각을 위한 필수적인 요소로서 아랍어와 역사적 전통을 들었다. 아랍어가 아랍세계의 활기와 폭넓음을 통해 정치,문화적 부흥을 위한 기초로 활용하기를 원했으며, 이슬람, 아랍문화의 업적에 대한 충실한 기록도 아랍어만이 담당할 수 있다고 주저없이 말한다. 아랍어는 아랍인들의 민족적, 문화적 주도권을 위한 추진력이 되었으며, 아랍 민족주의 운동과 상호 뗄 수 없는 상호 보완적인 위치에 있었다. 이로써 아랍어는 민족주의의 존재근거가 되었고, 민족주의는 언어부흥의 추진력이 되었다. 중세시대에 아랍어는 이슬람을 위해 존재했지만, 지금은 비종교적 강령이 되버린 민족주의와 관련되어, 민족주의 운동의 역할을 맡고 있다. 아랍역사의 연구와 함께 아랍어의 부흥은 오랫동안 아랍인들의 동질성 확보를 위한 중요한 수단으로 여겨졌다. 또한, 과거에 그들이 지적이고 창조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그러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역량 있는 민족이라는 점에서 아랍어가 자긍심을 심어 주는 것이다. 언어와 역사 양 측면에 광범위한 관심을 가지고 진행되는 아랍 계몽운동과, 또 역으로 그 역사와 언어가 아랍 계몽운동에 거대한 진전을 이루도록 반작용하는 예는 그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것이다. 이것은 아랍어와 아랍역사에 대해 민족주의와 관계를 갖고 쓰여진 수많은 연구 논문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고전 아랍어, 쿠란의 아랍어와 많은 유사성을 가진 현대 아랍어는 아랍어를 사용하는 국가들에서 유일한 문학용어가 되었고, 또 그것을 발전시켰다. 현대 아랍어의 출현은 정치, 사회적 부흥의 주도권을 열망하는 아랍민족과 함께 고전 아랍어를 사용하던 시대와 똑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아울러, 사회의 동력으로서 현대 아랍어의 발전은 아랍인들의 지적표현뿐만 아니라 정치, 사회적 행위에 영향을 끼치는 등 많은 역할을 해냈다. 오늘날 아랍인들은 중세시대에 그랬던 것처럼 언어에 대한 강한 애착과 자부심을 갖고 있다. 그리고 민족주의 운동의 틀 내에서 아랍인에 대한 새로운 차원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아랍어를 사용하며 아랍어를 사용하는 국가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아랍인으로 규정하기를 서슴지 않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알 후스리(al-Husri)에 따르면, 아랍어는 아랍 민족주의의 중추적 요소이면서도 다른 국가와의 차별을 두는 중요한 기준이 되며, 동시에 민족적, 종교적 문제를 초월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랍정부가 국민생활에 있어 아랍어의 적절한 위치를 부여하고 아랍어를 널리 보급시키기 위한 노력을 했던 데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독립의 과정을 예로 들면, 알제리의 경우 다른 아랍국가들처럼 아랍어가 유일한 공식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알제리에서 민족주의자들의 학교는 다음과 같은 문구를 외며 수업을 시작했다. “이슬람은 나의 종교요, 아랍어는 나의 언어요, 알제리는 나의 조국이다. ” 그리고 아랍인들의 언어에 대한 일반적인 믿음과 태도를 적절히 보여 주는 두 개의 중요한 관점이 있다. 그 중 하나는 아랍어의 다양한 문제를 지적하고 그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개혁주의 그룹이고, 다른 하나는 이러한 문제들보다는 국민의 지적부흥에 있어서 아랍어의 역할에 중요성을 두려는 민족주의자 그룹이다. 가장 탁월했던 개혁주의자의 한 사람으로 이라크의 알 키르밀리(al kirmili, 1947년 사망)가 있다. 그는 젊었을 때부터 아랍어에 대단한 관심을 보이며 그의 삶의 대부분을 아랍어의 문제점을 개혁하고, 동시에 아랍어의 순수함과 본래의 모습을 보존하는 데 헌신했다. 자이단처럼 그는 아랍어가 새로운 상황에 적응할 충분한 잠재력이 있다고 보고 그의 많은 글 속에서 그것을 증명하기 위한 노력을 했다. 또한, 그는 아랍어가 언어로서 독자성을 상실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지적했다. 그는 아랍어가 아름다움을 갖고 있다고 믿었으며, 모든 언어의 어머니라고 생각했다.
1920년대 이래 아랍어의 전통과 관련하여 그 본존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 줄어들지 않았으며, 언어와 공동체 사이의 밀접한 관계도 여러 번 강조되었다. 시리아에서 언어개혁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알준디(al Jundi)는 언어의 중요성을 “언어는 공동체의 오랜 영광을 상징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러나 알 준디의 동료 알 하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어는 선조들이 남겨 준 가장 소중한 유산이다. 언어는 선조들과 함께 한 반면, 그들보다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언어는 온갖 어려움과 싸워야 하며, 인간들보다 더 강하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시간은 언어를 무시하고 조롱했으나, 언어는 굴복되지 않았다. 그것이 아랍어 정신이다. 그리고 아랍인들의 전통은 언어로 기록되고 보존되었다. 거기에는 조국, 민족주의, 인생 등이 들어 있다. 공동체에 있어서 언어란 역사를 통하지 않고 재생될 수 없는 것이다. 언어와 공동체의 관계에서 볼 때 공동체의 부흥은 언어의 부흥을 의미하는 것이다. 즉, 언어의 건강함이 그 언어를 사용하는 공동체의 건강함을 나타내 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언어는 공동체의 생명력이며 영혼이라고 할 수 있고 민족주의의 자양분이라 할 수 있다. 육체는 영혼이 없이 살 수 없고, 또한 영혼은 육체를 벗어나 존재할 수 없다. ”공동체와 언어의 밀접한 관계는 1920년대 이래 수십 년 동안 크게 부각되어 왔다. 그것은 1956년 다마스쿠스에서 개최된 아랍 학술원의 회의에 참석했던 대부분의 대표자들이 가졌던 생각이었다. 아랍의 지식인들 가운데 타하 후세인(Taha Husayn)은 즉각적 언어개혁을 요구했는데,그것은 아랍어에 일관성을 주고 모든 아랍인들이 그들의 사회적 지위나 역할에 상관 없이 아랍어를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라고 주장했다. 또한, 문학어가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지식인들에게 한정되어 존속된다면, 현대에서는 그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그는 개혁이 고전언어의 체계에 거스르지 않고 쿠란의 언어를 보존시키며, 언어의 차이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그는 개혁이 즉각 실행되지 않으면 다음과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무슬림들 가운데 아랍인의 자손들은 쿠란을 읽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지금 외국인들을 위해 쿠란이 번역되는 것처럼 아랍인들을 위해 쿠란이 번역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이런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쿠란이 아랍의 각국 방언으로 번역되고 있기 때문이다. 카이로 언어 학술원의 위원장 파흐미(Fahmi)도 이와 비슷한 말을 덧붙였다. “아랍어에 있어서 쿠란은 아랍주의가 느슨해지지 않도록 묶어 두는 확실한 끈이다. ”
시리아의 아즐라니(Ajlani)는 아랍어 학술원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여러분의 일은 문화적 임무이기 때문에 민족주의자의 임무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여러분들은 위대한 아랍국가의 토대를 다지는 일을 하고 있으며, 그것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것 아상입니다. 누구도 언어의 생명과 언어의 미래를 공동체(Ummah)로부터 분리시킬 수 없습니다. 아랍어는 천상의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쿠란입니다. 쿠란은 군대의 행진을 이끄는 깃발과도 같은 것이며, 오늘날 우리가 경외하는 깃발입니다. ” 대부분 아랍 민족주의의 작품을 쓴 이러한 이론가들의 관점은 개혁주의자들의 관점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언어에 대한 문제가 일반화되긴 했지만, 정치 평론가로서 그들은 그 문제들을 회피해 왔다. 다만, 민족주의 운동에서의 언어의 중요한 역할과 가상의 민족주의 국가에서의 생활만을 다루었다. 그래서, 그들의 생각이 아랍 문화전통과 고전 아랍어에, 특히 아랍어를 사용하는 모든 아랍국가들을 통해 권위있고 획일적인 아랍어를 옹호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었다. 이러한 이론가의 대표적 인물은 알 후스리였다. 그에게 있어서 아랍어는 삶의 근원이며, 국가의 영혼이었다. 또한, 튼튼한 결속력이며, 민족주의의 가장 중요한 근간이며, 사고와 감정을 표현하는 기구이며, 과거와 현재를 이어 주는 연결고리이며, 지난날 영광의 기록과 문화유산의 충실한 관리인이며, 그들의 고난과 승리에 대한 충실한 관리인이었다. 게다가 작은 여러 부족들을 하나로 묶어 주는 가장 중요한 매개였다. 그는 아랍 민족주의를 다룬 수많은 작품속에서 국민생활에서의 언어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그것은 당연한 바람이고 원칙인 동시에, 그 바람의 실현이다. 알 후스리는 국민생활에서 언어의 중요한 역할을 다음과 같이 말했다. “언어는 사람들을 묶어 주는 가장 중요한 끈 중의 하나이다. 우선 그것은 대화의 기구이며, 무엇보다 사고의 수단이기 때문이다. 현인에 따르면, 사고는 자기 내부에서 말하는 것일 뿐이며, 말하는 것은 일종의 외부적 사고였다. 결국 언어는 아버지에서 아들로, 조상에게서 자손으로 많은 경험과 사고들을 전달해 주는 수단이다. 언어의 일치는 사고와 감정의 일치를 만들며, 정연한 감정적, 물질적 관계들로 개인들을 묶어준다. ” 의심할 바 없이 알 후스리의 견해는 수많은 젊은 민족주의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사실상 그의 견해 중 일부는 다른 작가들에 의해 정리되고 통합되었다. 예를 들면, 약간 좌익 성향을 가지고 있던 레바논인 의사 한나(Hanna)는 “자신의 언어를 포기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 사회의 이방인이며, 그 언어에 대해 외계인인 셈이다.”라고 말했다. 덧붙여서 그는 “언어가 아랍 문화유산의 충실한 관리인이었기 때문에 식민주의자들은 언어의 발달을 방해하고 그 체계를 파괴하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고 하였다. 또, “언어는 정신적, 역사적, 예술적, 문화적 유산의 표현양태로서, 그것이 좋든 나쁘든 간에, 혹은 그것이 보존되어야 하는 것이든 폐기되어야 하는 것이든 간에 그것들의 충실한 관리인으로서의 역할을 한다. 언어가 민족성과 민족주의의 형성에 주요한 요소였기에, 식민주의자들은 그 언어와 싸우는 데 일차적 목표를 두었다. 그래서 어느 나라에서든 그들의 언어를 못 쓰도록 만드는 것은 국민들 사이에서 민족적 영혼을 죽이는 가장 쉬운 길이며, 그들을 서로 다른 부분으로 나뉘게 하고 분열주의자로 만들어 전체를 와해시킬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이다.”고 했다.
프랑스에서 한나로부터 교육을 받은 시리아인 우스만은 ‘언어는 내부와 외부를 구분할 수 있는 최고의 수단인 동시에 지역적 민족주의를 고무시킬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에 아랍어는 역사적으로 아랍인들에게 부과되었던 모든 고난에 함께 직면해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랍어는 그들의 영광과 문명을 보존한 유적에 훌륭하게 남아 있다. 지금은 식민주의가 아랍통일을 방해하기 위해 퍼뜨리는 온갖 분열책동에 직면해 있다. 심지어는 아프리카의 수단 지역주의와 베르베르 지역주의의 추종자들까지도 이탈시켰다. 한 가지 실례로, 위의 그룹들 중 어떤 그룹도 그들의 언어가 ‘거대한 아랍대양’ 속에서 녹아버림으로써 오래 전 죽어버린 민족주의를 부활시킬 수 없게 되었다.” 이러한 견해는 아랍주의를 다룬 대부분의 아랍 문학작품 속에 반영된 여러 견해들 중의 일부분이다. 국민들 생활속에서 언어의 중요성에 덧붙여 아랍어의 위대함이 중세시대와 같은 열정을 가진 현대작가들에 의해 극찬되고 있다. 베이루트 아메리칸 대학의 부총장을 역임한 시리아 출신 기독교인인 주라이크(Zurayk)는 그의 많은 교우들처럼 아랍주의의 열렬한 옹호자이다. 그는 아랍어와 위대한 문화유산이 아랍주의의 주요근간을 이루고 있다고 믿고 있다. 아랍어는 주목할 만한 특성과 특별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다른 어떤 언어보다 뛰어난 우수성, 생명력, 세밀한 체계를 가지고 있으며, 다양한 예술과 과학을 표현하는 데 적절한 융통성과 유용성을 갖고 있다. 또, 레바논 작가 샤라라(Shararah)는 고전 아랍어에 대해서 위와 유사한 우수성을 인정하였는데, 그 우수성은 현재 사용되는 아랍어에는 없다는 것이다. 그 결과, 샤라라는 아랍 문화전통의 틀내에서 고전 아랍어에 맞추어 현대 아랍어를 개혁해야 한다고 하면서 긴급히 필요한 수단을 제안했다. “아랍 민족의 의식에 더하여 아랍인의 가슴 속에서 아랍어를 부활시키기 위해 대단히 조심스런 노력이 있어야 한다. 그것은 다른 언어들에 비해 우수성과 위엄을 확보하는 그런 종류의 부활 노력이 아니며, 일부 민족주의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다른 언어들을 부정하는 것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또한, 몇몇 작가들이 제안하는 특수한 책의 어휘와 작품에 사람들이 관심을 기울이기를 바라지도 않으며, 자칭 전문가들이 제안하는 알파벳이나 표현의 개혁을 주장하는 것도 아니다. 내가 아랍어의 부활이라고 말했던 것은, 어떻게 하면 낡고 종교적인 의미와 함축적 의미가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그들의 관계에서 살아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또한 카이로 대학의 철학교수 아민(Amin)은 독일 철학자 피히테(Fichte)의 ‘독일인들에게 고하는 성명’을 인용하였다. “언어는 필연적으로 개인의 일생전체와 동반한다. 언어는 사람들의 욕구와 사고에 영향을 주고 그들의 삶의 근원에서까지 뿌리를 두고 있다. 그것은 질서에 따르도록 하는 완전한 결정체로서,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국가를 형성해 준다. 즉, 언어는 정신과 물질세계를 이어 주는 유일한 연결고리다.”라고 했다. 아민의 이러한 설득력 있는 언급은 아랍어와의 관계에 비추어 생각해 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그것은 시대를 통해 아랍인들의 철학에 깊고 훨씬 광범위한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다.
언어의 특성들이 분명한 차별성을 나타내느냐에 대해서는 의견이 전혀 다르다. 마치 중세와 아랍, 무슬림들 지식인들의 견해에서 보여지듯이, 여기에 제시된 견해들은 상호충돌하고 있다. 언어에 대한 강한 집착, 존경, 경외감이 수세기에 걸쳐서 강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특이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아랍어의 경우에는 독자적이고 역사적인 연속성을 띠며, 독특한 양상을 보여 온 것이다. 확실히 아랍어에 대한 경외심은 사회적 관습, 예술적 표현, 종교, 문화, 그리고 무수한 역사적 현상의 결과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바로 언어적 계승과 보존에 기여해 왔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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