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움직인 미녀들의 신화 - 김남석
제1장 사랑은 전설이 되어
비운의 영국 장미 - 다이애나
몰락해 가는 영국 귀족 스펜서가의 딸로 태어나 전세계인의 사랑과 흠모를 한몸에 받고 살다가 떠나간 행복한 여인. 그녀는 열세 살이나 많은 찰스 왕세자의 눈에 띄어 결혼과 이혼. 그리고 재혼할 도디와 함께 사고로 죽을 때까지 가장 염문을 많이 뿌린 여자인 동시에, 세계 무대를 상대로 자선사업과 개인지뢰 금지 활동으로 짧지만 크고 아름다운 삶을 살았던 비운의 왕세자비였다.
도디와의 만남
"다이애나. 이건 진심이오. 당신과 결혼하면 다른 결혼하면 다른 어느 영국 왕족못지않게 행복하게 해 주겠소. 우리의 약혼 기념 선물로 이 반지를 드리겠소."
도디는 억만장자인 아버지 모하메드 알 파예드의 배경으로 할리우드에서 영화 제작을 하는 사람이었다. 다이애나 불행하지만 행복한 순간을 함께했던 도디는 다이애나가 찰스 왕세자와 이혼한 뒤 초호환판 파티에서 만났다.
"영화 제작자인 도디 파예드 씨입니다. <화차>와 <훅> 등의 영화를 제작하신 분이지요."
도디 파예드를 소개받은 다이애나는 다부진 몸매와 세련되 매너,그리고 잘생긴 얼굴이 마음에 들었다. 이날 이후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도디는 다이애나를 만날 때마다 엄청난 재력가라는 사실을 하나씩 하나씩 교만을 떨지 않으며 있는 그대로를 이야기해 주었다. 도디는 자신과 결혼을 하면 다이애나가 손대고 잇는 자선사업을 적극적으로 도와 주겠다며 다이애나에게 결혼을 승낙받기 위해 노력했다. 도디는 다이애나보다 다섯 살 위로 영국 육군사관학교를 족업하고 장교로 근무를 하였던 엘리트였다. 또한 1987년 미국 캘리포니아 출신 톱모델 수잔 그레가드와 결혼했다가 8개월 만에 이혼한 경험이 있었다. 그때 위자료로 200만 달러를 주어 세간을 놀라게 하였다. 그 후 도디는 할리우드 영화 제작자로서 유명 인사들과 아버지 의 소유인 파리의 리츠 호텔과 뉴욕, 로스앤젤레스의 자기 저택과 별장에서 파티를 여는 일로 세월을 소비하고 있었다. 도디와 염문을 뿌린 영화배우 가운데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줄리오 로버츠.티나 시나트라, 브룩 실즈 등등 셀 수 없이 많았다.
"사실 나는 그 동안 여러 유명 여배우들과 염문을 뿌린 것도 사실이오. 그러나 당신과 결혼만 한다면 반드시 남을 여생을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겠소."
다이애나는 도디와 만나는 횟수가 많아질수록 그의 매력에 끌리고 있었다. '도디라면 내 인생을 맡겨도 충분해. 그는 나를 이해하고 사랑하고 있어!' 결국 다이애나는 결혼을 승낙하고 도디가 약혼 선물로 준비한 약 1억 8000만 원을 호가하는 다이아몬드 반지를 손가락에 끼었다. 이미 여름 휴가 때 프랑스의 휴양 도시 생 트로페즈에게 함께 달콤한 휴가를 보냈던 두 사람은 급속히 가까워졌다. 지중해의 보랏빛 바다 위의 초호화 요트에서 반라의 모습으로 키스를 하거나 포옹하고 있는 장면이 파파라치의 망원렌즈에 걸려 언론에 알려지기 시작했다. 영국 왕실은 비록 다이애나가 이혼을 했지만 바람둥이 도디와의 뜨거운 사랑이 공개되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이에 질세라 세계 각 언론은 이 사진을 전송받아 대서특필하였으며, 그 동안의 다이애나 염문설이 또 한번 도마 위에 올려졌다.
다이애나의 연인들
찰스 왕세자와 별거 생활을 할 당시 외로움과 고독을 이기지 못해 다이애나는 승마 교관 휴이트와 밀회를 즐겼는데, 그 장면이 파파라치들에 의해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었다. 그 밖에도 여러 남자가 있었지만 다이애나는 침묵으로 일관했다. 그러던 어느 날 다이애나의 동서인 퍼거슨이 책 한 권을 들고서 그녀가 살고 있는 캔징턴 궁으로 찾아왔다. 그 책에는 다이애나가 어려울 때 퍼거슨에게 털어놓았던 휴이트와의 불륜 관계 등이 적나라하게 쓰여 있었다.
"지금 이 책을 출간하겠다는 겁니까?" "이왕이면 더 솔직하게 쓰는 게 좋지 않을까?" "아무리 돈이 필요해도 그렇지, 남의 사생활을 이렇게 마음대로 써도 되는 거예요?"
다이애나는 경악했고 다시는 자신을 찾아오지 말라며 쫓아 보냈다. 그러나 퍼거슨은 빚 때문에 결국 책을 출간하고 말았다. 국민들은 모든 것이 뜬소문으로 남길 바랐었다. 그런데 정작 동서라는 사람이 다이애나의 사생활에 대한 책을 내자 믿을 수밖에 없었다. 그녀의 이미지는 엄청난 손상을 입었다. 그러자 다이애나는 모 방송국 대담 프로에 나와 휴이트를 정말 사랑했으며 깊은 관계까지 갔었다며 울먹였다. 텔레비전을 통해 영국 국민과 전세계 사람들은 다이애나의 솔직하고 대담한 발표에 놀라고 말았다. 처음 여론은 나빴다. 아무리 찰스가 바람을 피우고 별거 상태에 있다 하더라도 영국의 정신적인 지주인 왕실의 왕세자비가 보통 시민과, 그것도 교관과 놀아났다는 사실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영국 왕실은 이제 끝났다는 표현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얼마 후 영국 국민과 세계 사람들은 인간 다이애나의 고독과 슬픔에 동정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녀는 온갖 스캔들을 잊으려는 듯 전셰계의 후미진 곳을 돌아다니며 자선사업을 벌이기 시작했다.
훤칠한 키에 빼어난 미모, 영국의 왕세자와 이혼한 35세의 전왕세자비를 언론은 그냥 두지 않았다. 그녀가 가는 곳에는 늘 스캔들이 터져나왔고 가십거리가 제공되었다. 전세계 패션을 주도하며 염문을 뿌리는 귀부인을 그냥 둘 언론이 아니었다. 음유 시인 스팅이 노래를 부르면서 다이애나와 의문의 눈빛을 서로 주고받았고, 톰 행크스에게 끈질기게 구애를 퍼부었으나 톰 행크스는 바쁘다는 핑계를 댔다. 심지어는 미 프로농구의 악동 로드먼에게 추파를 던져 여름에 그녀가 묵고 있는 캔징턴 궁을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이러한 소문에 다이애나는 노코멘트로 일관하며 자신의 일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휴이트가 떠나간 뒤에 해스냇 칸이라는 파키스탄 의사와 사랑에 빠진 사실만큼은 그녀도 인정하였다. 심장병 전문의인 칸은 다이애나의 친구가 입원해 있는 병원 의사였다. 분병을 가서 강한 인상을 받은 다이애나는 그와 사랑에 빠졌고 곧 그와 결혼해서 딸을 낳고 싶다는 이야기를 하기도 하였다. 다이애나가 정식 이혼을 하고 난 후, 두 사람은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캔징턴 궁과 병원을 오가며 두 사람은 사랑을 불태웠다. 그러나 칸은 독실한 이슬람교 신자이고 물론 그의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칸은 종교를 떠나서 그녀를 사랑했지만 칸의 가족은 이슬람교도가 아닌 그녀를 원치 않았다. 결국 두 사람은 헤어지고 말았다. 다이애나는 또 한번의 시련의 아픔을 잊기 위해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랑과 평화의 사절로 그 역할을 다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를 세계의 남자들이 그냥 둘 리가 없었다. 이때 혜성처럼 나타난 도디와 만나게 되었고, 결국은 재혼까지 할 계획이었다.
마지막 만찬
도디와 장래의 일을 계획하며 다이애나는 호텔에서 주로 문나 밀월을 즐겼다. 여름 휴가 때 파파로치들에게 걸려들어 언론에 자신들의 사진들이 나간 이후, 다이야나는 바깥에서 도디를 만난는 것을 굉장히 싫어했다. 도디를 파리의 자신의 소유인 호텔이서 주로 그녀와 만나 데이트를 하였다. 그리고 운명의 8월 30일 오후, 드 사람은 리츠 호텔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저녁 식사를 했다. 식사가 나오기 전에 와인을 따로 놓고는 사랑을 속삭이며 도디는 다이애나에거 다이아몬드 반지를 끼워 주었다. 다이애나가 잔잔한 미소로 대답을 할 뿐 두 사람은 말이 없었다. 이윽고 도디가 저녁 식사를 끝내고는 한마디 하였다.
"내 아파트로 갔다가 런던으로 가는 게 좋겠소." "밖에 파파라치들이 눈독을 들이고 있을 텐데요."
다이애나는 파파라치들이 따라붙는 것이 싫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호텔이 머물고 싶었다.
"걱정 마시오. 내 모든 준비를 끝내 놓았으니까!"
도디가 듬직한 말로 다이애나를 안심시켰다. 생 트로페즈에서 파리까지 용케 파파라치들을 따돌리고 온 터라 다소 걱정이 덜 되었다. 도디는 호텔 전속 운전기사들을 불러모았다.
"장. 자네는 내 리무진을 몰고 루브르 박물관 쪽으로 달리게. 그리고 샘 자네는 호텔 VIP 전용차를 몰고 그 뒤를 따라가다가 개선문 쪽으로 달려. 파파라치들을 어떡하든 따돌려야만 해."
도디의 운전사는 파파라치들이 얼굴을 잘 아는 장이었다. 그래서 눈속임을 하기 위해도디와 다이애나는 장이 모는 차를 타지않고 대신 도디의 경호원인 앙이 폴을 호텔로 나오도록 하였다.
"폴. 자네가 벤츠를 몰아 내 아파트까지 가줘야겠어." "예. 잘 알겠습니다."
계획이 끝나자 다이애나와 도디로 변장한 남녀 한 쌍이 계획된 자동차에 올라타고는 10분 간격으로 출발하였다. 그러나 어찌 된 일인지 파파라치들은 진짜 다이야나와 도디가 탄 자동차를 끈질기게 추적해 왔다.
"일곱 명이나 되는데요." "알마교를 빠져나가."
도디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이에 폴은 속도를 높이며 오토바이를 탄 파파라치들을 따돌리기 위해 전속력을 냈다. 차는 센 강 북쪽 강변로를 바람을 가르며 달렸고, 알마교 바로 앞 교차로의 터널로 접어들었다. 자동차가 지하차도 안에서 급회전을 하자 귀를 찢을 것 같은 금속성이 났다. 다이애나는 그 순간 도디의 가슴으로 쓰러졌고, 곧 이어 자동차는 벽을 들이박고 폭발하고 말았다. 지하차도 안은 굉음과 연기, 그리고 먼지로 온통 가득했다. 파파라치들은 다가와서 사람들을 구해 줄 생각은 하지 않고 사진 찍기에 바빴다. 뒤이어 따라온 자동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파파라치들을 폭행하고 카메라를 빼앗았다. 곧 이어 경찰차가 달려왔다. 도디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였고 다이애나는 응급실로 급히 후송되었다. 라 피티에 살페트리에르 병원에 급히 수송된 그녀는 두 시간 뒤 조용히 의사에게 한 마디 남기고는 숨을 거두었다.
"날 홀로 내버려 둬요."
다이애나는 흉부 과다 출혈로 새벽 4시쯤 영원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영국 왕실과 영국 국민들은 큰 슬픔에 잠겼다. 찰스는 두 아들을 데리고 가까운 교회에 가서 그녀의 영혼을 위해 기도를 하였다. 전세계는 그녀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도전문을 보냈다.
"헌신적인 사랑으로 인류를 위해 봉사를 실천하였던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사고 소식에 슬픔을 전한다." "다이애나는 전쟁 고아와 에이즈 환자, 노약자들을 위한 평화의 사도였다."
영국 국민들은 다이애나를 추모하기 위해 지방에서 런던으로 올라왔다. 정부가 임시 열차편까지 마련할 정도로 추모객은 수백만을 넘었다. 그녀의 시신이 모셔져 있는 궁에는 꽃다발로 쌓여있었다. 영국 국민과 전세계의 국민들이 다이애나의 죽음을 함께 슬퍼하는데, 정작 영국 왕실은 이렇다 할 행동을 보이지 않아 국민들로부터 비난을 받았다.
"우리의 영왕은 왜 침묵하는가?" "영국 왕실은 이제 끝인가!"
여론의 화실이 거세지자 영국 왕실은 대변인 성명을 통해 버킹검 궁에 조기를 내걸어 조의를 표한다는 조치를 취했다. 크라이스 교구 교회에서 열린 다이애나 세자비 추모 예배에 엘리자베스 여왕을 비롯한 왕실들이 참석하였다. 사실 다이애나와 영국 왕실은 사이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찰스 왕세자와 이혼 전에 연인과 깊은 관계를 맺었고, 또 이혼 후에도 도디라는 사내와 함께 있다가 자동차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에 불만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다이애나 또한 권위적이고 점점 소원해지는 왕실에 대해 감정이 많았다. 다이애나는 자신의 고문 변호사를 통해 '사랑의 매듭'이라고 불리는 시가 약 21억원이나 나가는 왕관을 경매에 내놓으려고 은밀하게 알아보고 잇었다. 이에 영국 왕실은 왕관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는 것ㅇ르 막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기도 하였다. 이밖에 다이애나가 경매에 내놓은 것으로는 약혼식 때 받은 약혼 반지를 비롯하여 사우디아라비아 왕자가 선물한 사파이어 귀걸이 등을 꼽을 수 있는데, 하나같이 비싼 값이 나가는 물건들이었다. 더구나 다이애나는 자신이 결혼해서 지금까지 입었던 각종 드레스 80벌을 자선기금으로 경매에 내놓아 약 5,000만 달러의 판매금을 자선단체에 모두 기부했다. 그녀가 이러한 자선기금에 관심이 많았던 것은 테레서 수녀를 만나고 나서부터이다. 작고 보잘것없이 행색이 초라한 테레사 수녀를 처음 본 순간, 그녀는 큰 감동을 받았아고 말했다. 마치 큰 산앞에 마주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그러나 다이애나는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영국 왕실에 대한 반발심, 특히 엘리자베스 여왕에 대한 반발심도 은근히 작용했다고 할 수가 있다. 그녀의 갑작스런 죽음에 클린턴 미 대통령의 페스트레이디 힐러리 여사는 "그녀는 힘든 일을 당할 때마다 강해지면서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사랑을 실천하는 평화의 사도였다."고 애도했다. 그녀만큼 세게의 언론과 축복을 받으며 결혼식을 올린 여자도 없었다. 그리고 또한 마지막 가는 길도 세계인이 함꼐 슬퍼하였고 애도해 주었다. 개인적으로는 많은 염문을 뿌린 평범한 여자였지만, 공적으로는 활발하게 수많은 활동을 하며 왕실의 권위를 벗어던지고 아프고 어려운 세계 속의 사람들에게로 다엊ㅇ하게 다가간 사람이었다. 그래서 세계를 그녀에게 아낌없는 찬사와 애도를 보내는 것이다. 어쩌면 그녀는 영원한 세계인의 연인으로 남아 있기를 바랐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신은 도디라는 한 남자에게 다이애나를 빼앗가지 않으려고 일찍 데려갔는지도 모른다. 20세기 마지막 신데렐라였던 다이애나의 36년 생은 엘튼 존의 노래 가사처럼 그렇게 살다가 끝났다.
영국의 장미여, 안녕. 당신은 우리 마음에 영원히 피어날 겁니다. 당신은 생명이 갈갈이 찢긴 곳에 놓인 우아함 그 자체였습니다. 당신은 우리 조국을 소리쳐 구해 냈고 고통에 빠진 사람들에게 속삭여 주었습니다. 이제 당신은 천국에 계시고 별들은 당신의 이름을 수놓고 있습니다.
당신은 다랍 속의 촛불처럼 사라졌습니다. 비가 몰려와도 해가 저물어도 꺼지지 않는 당신의 발은 항상 여기에 머물 것입니다. 영국의 촛불은 오래 전에 꺼졌으나 당신의 전설은 영원할 것입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사랑스러움. 당신의 미소가 없는 날들은 공허하기만 합니다. 우리는 이 횃불을 계속 운반해 갈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황금빛 아이를 위해. 우리가 아무리 참으려 해도 진실은 우리를 눈물 속으로 데려갑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당신이 가져다 준 기쁨을 어떤 말로도 표현 할 수 없습니다.
영국의 장미여, 안녕. 당신의 영혼을 잃은 이 땅에서 우리는 당신의 연민의 날개들을 당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그리워할 것입니다.
다이애나는 웨스트민스터 성당을 떠나 런던 북쪽 스펜서 집안 소유의 옛 교회당 터에 묻혔다. 두 아들이 수시로 엄마의 무덤에 찾아올 수 있게 배려를 하였다는 왕실의 발표도 있었다. 이제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다이애나는 그렇게 엘튼 존의 노래처럼 우리 곁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그녀가 남긴 흔적은 영원히 '다이애나 왕세자비의 사랑의 전설'로 인류의 가슴 속에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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