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가 쏟아지는 우리 선인들 이야기 - 이훈종
대통령의 보은
이승만 대통령의 짧지 않은 일생은 참으로 파란만장하였는데, 그에 얽힌 이야기다. 그 어른이 귀국하고 전후의 어수선한 시국을 거쳐 모처럼의 초대 대통령직에 오르자마자 6.25의 전란을 치러야 했으니, 그 사이 자기 자신에 대해 돌볼 겨를이 어디 있었겠는가? 그러는 사이 휴전이 성립되고 서울로 환도하여 다소나마 안정을 되찾게 되자, 이박사는 연래의 숙원인 자신의 주변일에 눈길을 돌리게 되었다. 사람이 남의 은공을 모르면 사람이랄 수 없는 것이라, 이박사는 평생을 두고 고맙게 여겨 온 세 분 요인에 대한 보은의 역사를 시작한 것이다. 그 첫번째가 충정공 민영환인데 이분은 이대통령에게 생명의 은인이라, 한창 젊은 혈기로 개화운동의 앞장을 서서 독립협회의 간부로 활약하다가 반대세력의 고발로 체포되어 종신징역의 판결을 받아 복역하던 중에 민충정공의 손길이 뻗친 것이다. 1904년 그의 주선으로 감형이 되고, 이어 석방의 은전을 받아 그길로 미국으로 건너갈 계기가 된 것이다. 옛날 중국의 정치가 관중이 “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님이요,나를 알아준 것은 포공이라.” 했듯이 충정공이야말로 이승만을 살려 준 분인 동시에 알아주는 분이었던 것이다.
보답하는 방법도 여러 가지인데, 알다시피 민씨 문중은 내력있는 재산가요, 자손들은 현재도 상류생활을 하며 지내고 있어 경제적으로 도와줄 일은 생각 않아도 될 형편이다. 그래서 택한 것이 동상 건립인데, 지금 창덕궁 돈화문 앞에 서 있는 바로 그것이다. 전통적인 사모관대 차림에 신식 대수훈장을 엇매고 섰는 그 모습은, 패쇄에서 개화로 옮겨가던 시대를 가장 잘 대변하고 있다 하여도 될 것이다. 대좌 정면의 제호를 이박사 자신이 썼는데, 그분의 필적은 처처에 있으나, 이 동상의 것만큼 잘 써진 것이 달리 없다. 얘기는 바뀌어 미국에 건너가 거기서 학업을 닦은 이박사는, 한일합방이 되자 귀국하여 종로에 있는 한국기독청년회의 총무로 활약했는데, 일본인들의 표독스런 눈길이 가만둘리 만무하다. 체포되어 또한번 옥살이를 치러야 했고..., 미국선교사들의 주선으로 풀려나 재차 미국 생활이 시작되었는데, 당시 모셨던 회장이 바로 월남 이상재 선생이다. 그는 실권을 잡자 월남선생의 자제를 남전 사장 자리에 앉혀 우대하고, 명당을 구하여 월남의 산소를 옮겨 썼으며 묘비를 세워 그의 공덕을 찬양했는데 그에 대하여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라 더 언급 않는다. 마지막으로 한 분은, 그가 서울에 체류했을 동안 숙식을 하던 하숙집의 주인 할머니다. 본업인 하숙 영업을 제쳐두고, 아침 저녁으로 사식을 차려다 구메밥을 넣어 드렸다니 친부모로도 해내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학생이나 칠 정도의 가정이었으니 존재가 뚜렷할리 없다. 사방으로 수소문해 그의 소재를 찾기는 했으나 할머니는 이미 돌아간 뒤고, 자제되는 청년이 근실해 보여서, 우선 순경으로 취직시켜 앞길을 열어 주었다. 그러나 그것만으론 심성에 차지 않는다. 그래서 대통령 손수 할머니의 덕을 찬양하는 글을 지어, 돌에 새겨 산소 곁에 조촐하게 세워 드리고 싶은데, 비문의 잔글씨까지 손수 쓰기에는 이박사는 너무 고령이다. 노대통령은 측근에게 일렀다.
“장안에서 누가 글씨를 잘 쓰는지 알아내서 좀 들어오도록 하라.”
그런데 여러 날이 되도록 소식이 감감하여, 다시 물었다.
“거! 글씨 쓸만한 사람 찾아 보랬는데 어찌 되었노?” “예! 이병희라고 있다기에 들어오랬더니, 뵈오러 올때 입을 만한 옷이 없어 못오겠다고 합니다. 각하.” “어떻게 일렀기에 그런 대답을 했을꼬?” “종로서에 일러서 사람을 보내 봤더니, 그따위 대답을 하더라고 하옵니다. 각하!” “이놈들아! 아예 수사를 보내 잡아오지 그랬냐? 너희들이 나를 모시고 일하는 놈들이냐? 경우도 모르고 어떡하자는 거야? 걔가 나를 보고 싶다든? 내가 손을 빌고 싶어서 청하는 것인데, 깔끔한 선비가 순사가 가서 오랜다고 선뜻 올 것 같으냐? 비서 중에 누가 찾아가 내 뜻으로 전하고, 그분의 형편이 좋다는 날짜에 내차를 가지고 가서 모셔오도록 해. 에잉! 듣고 보지 못한 것들... 쯧쯧.”
과연 회답은 예의차려서 화하게 돌아왔고, 이옹은 대통령의 초청을 따라 경무대의 접견실을 들어섰다.
“잘 왔네. 자네가 이병흰가? 글씨를 잘 쓴다기에 청했네.” “?” “사실은 내가 자네 힘을 좀 빌어야겠어서, 이렇게 오라고 했어. 어렵더라도 수고 좀 해 주게.”
그 뒤에 어떻게 되었으리라는 것은 지성이 있는 이면 미루어 알 것이다. 개도 사흘을 기르면 주인을 잊지 않는다는데 이 세상엔 보신탕도 안되는 모리배들이 어찌 그리 많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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