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하) - 편저자 : 강효석, 역자:권영대, 이정섭, 조명근
4. 변란과 풍운의 국운
도둑도 감복하여 종이 되겠다고 자청하게 한 홍기섭
홍기섭(?~?)의 본관은 남양이다. 처음에 참봉으로 임명되어 계동의 윗마을에 살았는데 집안이 매우 가난하여 집에는 네 벽뿐이었다. 어느 날 밤에 도둑이 그 집에 들어가 두루 살펴보니 단지 밥솥 한 개가 있을 뿐 다른 물건은 없었다. 도둑이 너무 가련하게 여겨 가지고 있던 일곱 꾸러미의 돈을 솥 안에 넣어 두고 가버렸다. 홍기섭은 본래 출입하기를 좋아하여 아침에 일어나면 찬물로 세수하고 친척과 친구의 집을 두루 찾아다니기 일쑤였다. 비록 가난하게 살면서도 선대로부터 부려 온 여종이 있었다. 그 여종이 홍기섭의 세숫물을 준비하려 부엌에 들어가 솥뚜껑을 열어보니 솥 안에 돈이 가득 들어 있었는데 마치 누런 용이 서려 있는 것 같았다. 그 여종이 기쁨에 찬 소리로 그렇게 된 까닭을 이런 투로 고하였다.
"이는 하늘이 불쌍하게 여겨 내려 준 것이 분명하니 우선 땔나무와 식량이며 고기를 사다가 한때 굶주렸던 배를 채워야 하겠습니다." 홍기섭이 이렇게 타일렀다. "이것이 어찌 하늘이 내려 준 것이겠는가? 틀림없이 이 돈을 잃어버린 자가 있을 터이니 오늘은 내가 집에 있으면서 동의 주인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돌려 주리라." 드디어 대문에다 글을 이렇게 써서 붙였다. "돈을 잃어버린 자가 있으면 찾아가시오!" 해가 질 무렵이 되어 그제 밤의 그 도둑이 동정을 살펴보려고 왔다가 대문에 써붙인 글을 보고 이상한 생각이 들어 그 집의 여종을 불러 물었다. "이 집이 뉘 집이오?" 그 여종이 대답하였다. "홍 참봉댁이오." 그 도둑이 또 물었다. "대문에 써붙인 방은 무슨 뜻이오?" 여종이 그 까닭을 상세히 설명하자 그 도적이 물었다. "나으리는 어디 계시오?"
그 여종과 함께 들어가 홍기섭에게 인사를 마친 뒤에 이렇게 여쭈었다.
"소인은 도둑입니다. 어제 밤에 밥솥을 훔쳐 가려고 들어와 나으리 집안의 형편을 살펴보고는 도리어 훔친 돈이 있기에 솥안에 넣어 두고 떠났습니다. 그러하오니 나으리께서는 이 돈으로 며칠의 생활 밑거리를 삼도록 하소서."
홍기섭이 대단히 노여워하며 그로 하여금 그 돈을 받아가게 하자, 그 도둑이 거절하며 말하였다.
"오늘에야 처음으로 제대로 양반을 보았습니다. 이 뒤로는 맹세코 도둑질하는 습관을 고치고 나으리 댁의 하인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어서 돈을 받아서 가더니만 그 이틑날부터 매일 홍기섭을 찾아왔는데 매우 영리하였다. 이 사람의 집안은 본래 가난하지 않아 자주 급박한 형편에 처한 사람을 구제하므로 그의 진실된 마음에 감동되어 홍기섭 역시 사양하며 물리치지 못하였다. 뒤에 홍기섭의 손녀가 헌종의 계비가 되고 아들 홍재룡이 익풍 부원군이 되자, 홍기섭의 벼슬도 감사에 이르렀으며 드디어 크게 드러나게 되었다. 그 도둑의 성은 유씨로 세상에서 유 군자라고 불렀다. 그는 자손들에게 대대로 옛날의 정의를 기억하게 하였는데, 그 뒤로도 익풍 부원군 집안의 하인들이 유 군자의 손자를 보고 도둑의 손자라고 놀려 대었다고 한다.
홍기섭은 체구가 작고 야위었지만 외모가 깔끔하였다. 그가 가난에 쪼들릴 적에 가끔 영안 부원군 김조순을 찾아가 문안을 드렸다. 영안 부원군이 평소 남의 상을 보는 지혜가 있어 홍기섭이 귀하게 될 상이 있음을 알았다. 그런데 마침 영안 부원군의 집에 나이 서른 살이 안 된 과부인 침모가 있었다. 그는 인물도 반반한 데다 집안 형편 또한 넉넉하였으므로 영안 부원군이 그를 시집 보내려고 하였다. 어느 날 영안이 그 여인으로 하여금 몸 단장을 화려하게 하고 술과 음식을 차려 놓고 그의 집에서 기다리게 하고는 홍기섭이 오기를 기다려 잘 꾸민 안장을 푸른 갈기의 당나귀 등에다 얹고 나이 어린 상노를 시켜 홍기섭에게 당나귀를 타도록 권하게 하였더니, 홍기섭이 물었다.
"어디로 가는 것인가?" 그 상노가 대답하였다. "아무 곳의 경치가 뛰어나서 구경하실 만하기에 아무아무 영감 나으리께서도 오셔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좌우에서도 떠나기를 권하였으니, 이것이 이른바 군자를 그럴 듯 하게 속인다는 것이다. 드디어 당나귀를 타고 떠나서 어느 곳에 이르니 몇 칸의 초가집이 깨끗이 정돈되어 먼지 한 점 없었다. 상노가 말에서 내리기를 고하기에 홍기섭이 말에서 내려 집 안으로 들어가니 묘령의 여인이 구름같은 머리칼을 살그머니 반쯤 들고 마루에서 내려와 영접하여 들이거늘 홍기섭이 드디어 놀라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내가 평생 처음으로 당하는 일이로군."
소매를 털고 돌아오려고 하였더니, 그 여인이 두세 번 들어가기를 권하는데 흰 벽과 깁으로 바른 창문 등이 매우 범절이 있어 보였으며 한쪽에서는 차와 과일을 올리면서 여인이 이렇게 말하였다.
"소녀가 나이 젊은 과부로 재가하려고 하여 나으리의 높은 명성을 익히 들었습니다. 첩이 되어 섬기게 해 주십시오." 홍기섭이 대답하였다. "나는 본래 가난한 데다 처자가 딸려 있어 식구가 모두 십여 명이 되므로 거친 음식도 잇대기 어려운데 네가 나의 첩이 된다면 무엇을 먹고 살아가겠느냐?" 그 여인이 이렇게 말했다. "나으리에게 딸린 가족이 비록 많기는 하지만 첩에게 조금의 자산이 있사오니 구제할 수 있습니다. 염려하지 마소서."
홍기섭이 강직하기는 하나 평소 가난에 쪼들려 마음이 상하였던 터라 못이기는 체 허락하고 몇 해 동안 함께 살면서 의지하는 바가 많았다. 그 뒤 홍기섭이 영안의 예측대로 현달하게 되자 그 연인도 함께 복을 누리면서 오래도록 살았다.
용호영의 장교를 곤장으로 다스린 임익상
임익상(?~?)의 본관은 풍천이고 자는 경문, 호는 현계다. 헌종 때 용호영을 새로 설치하여 정벌에 관한 일을 논의하게 하자, 거기에 소속된 장교들이 교만하고 방자하게 불법을 자행하는 자가 많았다. 임익상이 금천 수령으로 재직할 때 용호영의 장교가 무슨 일로 금천 고을에 와서 평민들을 침탈하고 사납게 굴므로 임익상이 몹시 화가 나서 곤장으로 그 장교가 분을 품고 돌아가 그의 대장에게 보고하자, 그 대장이 곧장 임금에게 아뢰었다. 임금이 듣고 매우 좋아하면서 말하였다.
"용호영은 내가 직접 설치하게 한 것이다. 소속 장교들이 폐단을 일으키리라는 것은 짐작은 하였지만 어디를 통해서 확인할 수 없었는데, 이제 임익상을 통하여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그 장교를 해임시키고 대장에게는 부하들의 그런 행위를 금지시키도록 엄중히 문책하였다. 그리고 임익상을 불러다 근밀한 자리에 배치하려고 하였더니 어느 재상이 이렇게 아뢰었다.
"임익상에게는 심장병이 있으므로 전하를 가까이서 뫼실 수 없습니다."
이 이야기를 들은 임금은 그를 바로 안주 목사에 임명하여 그의 현명함을 칭송하였다. 임익상은 평소 간질이 있어 그 병이 발작할 때면 의관을 바로하고 꿇어앉아 두 손을 꽉 쥐고 이를 깨물며 진정시키는데, 상하의 치아 사이에 베 조각을 넣어두어 이를 깨무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하였으므로 발작이 멈추면 그 베 조각은 갈기갈기 찢어져 있었다. 이 때문에 그 병이 발작하지 않아 벼슬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1년 동안에 몇 차례 발작할 때가 있는데 그 때는 항상 똑바로 앉아 그 고통을 혼자의 힘으로 정말로 이를 악물고 견뎌내었으므로 세상 세상 사람들은 그에게 그런 병이 있는 줄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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