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하) - 편저자 : 강효석, 역자:권영대, 이정섭, 조명근
1. 예론이 당쟁으로
효종의 제삿날 하루 종일 통곡한 송 장군
송 장군의 본관이 광주라는 사실만 전할 뿐 이름은 알 수 없다. 병자호란에 대해 복수의 일념을 불태우고 있던 효종은 인재를 전국에서 구하였다. 각 도의 감사에게 명을 내려 천근을 들어올릴 수 있는 장사가 있으면 역마를 태워 서울로 보내라고 하였다. 송 장군은 광주에 있는 공조라는 사람의 집에서 품팔이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공조가 마당 한구석에 있는 큰 바위를 가리키면서 들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송 장군은 그 바위를 번쩍 쳐들었다가 가볍게 다시 내려놓았다. 깜짝 놀란 공조는 이 사실을 즉시 광주부에 고하였고, 광주 유수는 즉시 그의 힘을 시험하여 공조의 말이 사실로 입증되자 송 장군을 깨끗이 목욕시키고 새옷으로 갈아입힌 뒤에 서울로 올려보냈다. 금원에서 활쏘는 연습을 하고 있던 효종은 급히 송 장군을 입궐시켜 그의 힘을 시험하여 보니 광주 유수가 올린 내용과 일치하였다. 효종은 우선 그의 힘을 칭찬한 귀에 그에게 많은 음식을 하사하였다. 많은 양의 음식을 그 자리에서 거뜬히 먹어 치우는 것을 본 효종은 그에게 의관을 내려 주고, 또 금호문 밖에 그의 집을 마련해 주도록 조처하였다.
송 장군은 효종의 특별한 배려로 궁중의 한 여종과 혼인도 하였다. 효종은 그에게 작은 고을을 맡겨 보라고 여러 번 이조에 명하였다. 그러나 아직은 그에게 백성을 다스릴 수 있는 경륜과 지식이 부족하다는 이유를 들어 우선 변방의 수비를 맡겨서 그의 능력을 시험해 보자는 이조의 청이 받아들여져 송 장군은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의 북로 진장이 되었다. 송 장군이 멀리 임지로 떠난 뒤에도 효종은 그를 잊지 않고 이따금씩 그에게 물품을 하사하며 기회가 닿는 대로 서울로 불러 올려 다른 벼슬을 준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중 1659년 음력 5월에 갑자기 승하하게 된다. 효종의 승하 소식을 들은 송 장군은 정신없이 서울로 와서 대궐문 밖에 엎드려 눈물이 말라 피눈물이 나오도록 울고 울고 또 울었다. 효종의 특별한 은혜를 입어 혼인한 것을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며 살아온 장군의 아내는 국상이 끝나자 그만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북병사는 임지를 마음대로 이탈한 죄를 물어 송 장군을 군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조정의 의논 또한 그의 처벌을 주장하였는데, 효종에 대한 그의 충심을 참작한 현종의 특별한 배려로 석방되었다. 석방으로 인해 죽음은 겨우 면하였으나 의지할 곳을 찾지 않고 남루한 차림으로 용인 등지를 전전하면서 거지 노릇을 하였다. 해마다 효종의 제삿날이 되면 그는 산중으로 들어가 온종일 목이 쉬도록 통곡한 후 돌아오곤 하였다. 그는 기골이 장대하고 음식을 먹을 때면 마치 호랑이가 짐승을 잡아먹는 모양과 비슷하였으므로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었으며, 이런 점 때문에 그의 걸식에 많은 도움이 되었다. 언제 어디서 죽었는지는 전해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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