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4. 사림파의 수난
윤원형의 패망을 미리 안 박사종
박사종(1513-1579)의 본관은 밀양이고, 자는 공계, 호는 읍청인데 과거 공부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오로지 실천하는 데 힘을 썼다. 을사사화가 일어나자 항상 천장을 쳐다보고 탄식할 뿐 세상에 나아갈 뜻은 없었으며, 비록 강호에 머물기는 하였지만 세상일을 잊지는 않았다. 조정의 정치가 온편하지 못하다는 소문이 있으면 하루 종일 눈살을 찌푸리기도 하였으며, 만년에 봉사(밀봉하여 임금에게 올리는 글) 열 조목을 올렸는데, 내용이 모두 절실한 것이었다. 어느 날 고래 한 마리가 한강을 지나다 어부에게 잡힌 일이 있음을 듣고 말하였다.
"바다에서 강으로 왔으니 이는 고기가 떠난 것이다. 고기가 떠나서 죽는 곳으로 나아간 격이니 윤원형이 모면 하지 못할 것이다"
과연 이듬해에 윤원형이 패망하였다.
"수십 년 뒤에 국가가 반드시 어려움이 많게 될 것이다"
그는 또 이렇게 예언하고 군사에 관한 책을 널리 읽으며 마치 장차 난리를 평정할 듯이 하였다. 비록 난리 전에 죽기는 하였지만 그의 말은 징험이 되었다. 선조 15년(1582)에 학문과 덕행이 순수하고 올바르다는 것으로 참봉에 임명되었으나 부임하였다가 사직하고 즉시 고향으로 돌아와서 죽었는데, 67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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