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4. 사림파의 수난
임진왜란을 미리 안 이이
이이(1536-1584)의 본관은 덕수이고, 자는 숙헌, 호는 율곡이다. 이이는 강릉부에서 태어났는데, 어머니인 사임당 신씨의 꿈에 검은 용이 방에 들어와 아이를 품안에 껴안는 꿈을 꾸었으므로 어릴 때의 자는 견룡이라 하였다. 이이는 말을 배우면서 곧 글자를 알았으며, 그가 죽을 때에는 집안사람의 꿈에 황룡이 그의 침실에서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고 하였다.
13세에 진사 초시에 합격하였고, 명종 19년(1564)에는 생원시와 문과 초시, 복시, 전시에 모두 장원하여, 호조 판서, 대제학, 병조 판서를 지냈다. 영특하고 총명하며 온화하고 낙천적이었다. 다섯 살 때에 그의 외할머니가 석류를 보여주며 물었다.
"이것이 무엇과 같으냐?" "석류 껍질 속에 붉은 구슬이 부서졌네"
즉시 이렇게 대답할 정도로 사물을 꿰뚫어 보는 총명이 있었다. 이이는 타고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는데 16세에 어머니 사임당신씨의 상을 당하였다. 19세에 금강산으로 들어갔으며 그곳에서 불교에 깊이 빠져 스스로 이름을 의암이라고 하였는데, 산속에서는 덕행이 높은 중이 세상에 출현하였다고 떠들썩하였다. 이듬해가 되자 다시 불교의 그릇됨을 깨닫고 즉시 절에서 내려와 성리학 연구에 전심하였다. 사계 김장생이 한번은 이이에게 넌지시 물었다.
"선생님께서 금강산에 계실 적에 머리를 깎고 모습을 바꾸지 않으셨습니까?" 이이가 빙긋이 웃으면서 대답하였다. "이미 속세를 떠나 중이 되었으니 아무리 모습을 바꾸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마음이 불교에 빠져 버렸는데야 무슨 보탬이 있겠느냐?"
그가 일찍이 경연에서 아뢰었다. "미리 군사 10만을 양성하여 돌발 사태에 대비하여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10년 안에 흙이 무너지듯 걷잡을 수 없는 화가 있게 될 것입니다" "아무런 일이 없는데 군사를 양성하는 것은 바로 화를 양성하는 것이 됩니다" 서애 유성룡이 군사 양성을 반대하였다. 당시 오래도록 태평을 누려온 터여서 경연에 참여했던 중신들 모두가 이이의 말을 지나치다고 하였다. 그러자 이이가 나와서 유성룡에게 말했다. "국가의 형세가 달걀을 포개 놓은 듯 위태로운데 속된 선비들은 시대적 급선무를 모르니 그들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지만 그대마저 이런 말을 하는가? 지금 미리 양성하지 않으면 뒷날 반드시 후회하여도 미치지 못할 것일세" 그 뒤 임진왜란 때에 서애 유성룡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당시에는 나도 소요를 우려하여 군사를 양성하자는 주장을 그르게 여겼는데, 이제 와서 보니 율곡은 참으로 성인이다"
선조 17년 정월에 서울에 살고 있는 선비 아무개가 마침 무슨 일 때문에 강릉 지방으로 가게 되었는데 야윈 말 한 필과 종 한 명을 데리고 깊은 산골짜기에 이르러 사방을 분간하지 못하고 길을 잃어 버렸는데 날은 저물고 주막은 멀어 어디로 향해 가야 할지를 몰랐다. 그러던 차에 갑자기 한 나무꾼을 만나 길을 물었더니 그 나무꾼이 건너편 산등성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를 넘으면 집이 한 채 있을 것이오" 선비가 그 산등성이를 넘어서 보니 정말 몇 칸 되는 초가 한 채가 있을 뿐이고 다른 촌락은 없으므로 곧장 그 집을 향해 가서 사립문을 두드렸더니 조금 있다가 동자가 나와서 물었다. "이렇게 깊은 산골에 손님께서는 무엇하러 오셨습니까?" 선비가 그 연유를 죄다 말하였다. 그 말을 들은 동자가 안으로 들어간 지 반 시간쯤 지난 뒤에야 다시 나와서 손님을 맞이하였다. 방으로 들어가 주인을 보니 나이는 60세 남짓 되어 보이는데 해진 털모자를 쓰고 청려장을 짚고서 억지로 일어나 손님을 맞으며 인사하였다. "오늘밤에 마침 경영하는 일이 있어 정말 손님을 맞아들이기가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이 깊은 산골에 날이 저물었는데 하룻밤 묵기를 허락하지 않는다면 결코 인정이 아니겠기에 하룻밤 묵도록 하였습니다만 불편한 것이 너무 많을 것입니다" 그대로 조용히 앉아 더이상 말을 하지 않는데 깊이 생각하는 바가 있는 듯하므로, 선비 또한 한쪽 구석에 묵묵히 앉아 있었다. 조금 있으니까 밥상을 올리는데 그때는 이미 해가 지고 어둑어둑하였다. 그러자 주인이 심부름하는 동자에게 명했다. "벌써 해가 지고 어스레한데도 아직 오지 않으니 너무나 이상스러운 일이다. 네가 문 밖에 나가 내다보고 오는 것이 좋겠다" 심부름하는 동자가 주인의 명대로 문 밖에 나갔다가 돌아와 고하였다. "방금 앞 내를 건너고 있었습니다" 주인이 그 선비에게 말했다. "반드시 잠자코 앉아 있기만 하고 절대로 말을 해서는 안 됩니다" 얼마 안 되어 두 사람이 왔는데, 한 사람은 시골 서생이었고 한 사람은 늙은 중이었다. 서로 안부를 물은 뒤에 다시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고 심부름하는 동자에게 명하여 정화수 한 그릇을 길어다 소반 위에 올려놓고 향로에다 향을 피우고는 세 사람이 함께 북쪽을 향해 꿇어앉아 한참 동안 주문을 외다가 주인 늙은이가 심부름하는 동자를 불렀다. "네가 문 밖에 나가서 우러러 하늘의 기상을 살펴보아라" 조금 지나자 동자가 들어와 고하였다. "별 하나가 금방 동쪽에서부터 떨어졌는데 그 광선이 땅에 비추어 환하였습니다" 세 사람이 갑자기 서로 쳐다보며 길게 탄식하였다. "모두가 하늘에서 타고난 운명이니 어찌하겠소" 두 사람 모두 처참한 얼굴로 나가 떠나가 버렸다. 그러자 선비가 의심스럽고 이상함을 견디지 못하여 물었다. "여러분이 탄식한 것은 무슨 일 때문입니까?" "숙헌이 장차 죽게 되었으므로 내가 그 두 사람과 약속하고, 경문을 외우며 재앙을 물리치도록 기도하여 그의 목숨을 조금이 라도 연장시키려고 하였는데, 큰 운명에 관계되는 것이어서 끝내 효과가 없었습니다. 조금 전에 별이 떨어졌으니 벌써 구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숙헌이 누구입니까?" "이율곡입니다" "내가 서울을 떠나올 때에 이 아무개가 바야흐로 병조 판서의 직임을 맡아 조금도 질병이 없었는데 이게 무슨 말이오?" "앞으로 7, 8년 있으면 왜병이 크게 침입할 터인데, 숙헌이 세상에 살아 있으면 거의 난리를 미리 막을 수 있겠지만 이제는 끝장이 났습니다. 온 나라가 허둥대며 모두 참살 당할 것이니 장차 어찌해야 하겠소?" "국가의 운명이 이와 같다면 나와 같이 가난한 선비는 어떻게 하여야 보존할 수 있겠소?" "충청도의 당진과 면천 사이로 향할 것 같으면 거의 모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선비가 또 물었다. "두 분의 손님은 누구입니까?" "선비의 의관을 갖춘 분은 성명을 드러낼 수 없고, 중의 옷을 입은 이는 바로 금단대사이니, 그대가 산을 떠난 뒤에 행여라도 소문을 퍼뜨리지 말도록 하시오" 그 뒤에 선비가 서울로 돌아와서 물어 보니 율곡이 정말 아무 일에 세상을 떠났는데 바로 그 세 사람이 별에게 기도하던 밤이었다.
선생이 젊을 때에 꿈에 어느 관부에 들어갔는데 그곳의 관리가 장부를 점검 열람하고 있으므로 무슨 장부냐고 물었더니 대답하기를,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수명의 길고 짧음이 모두 여기에 적혀 있다" 하면서, 한 글귀를 베껴서 주었다.
용이 새벽 골짜기로 돌아가니 구름 아직도 젖어 있고 사향노루가 봄 산을 지나가니 풀이 저절로 향기롭네
그것은 대체로 그가 세상에 머물러 있는 것은 마치 용이 깊은 골짜기로 돌아가는 듯하며, 사향노루가 산을 지나가는 듯하여 머무는 곳마다 명성을 드날린다는 것이었는데 춘추가 겨우 49세였다. 선생이 세상을 떠난 뒤에 해주의 사람들이 매번 기일이 되면 자기 어버이의 기일을 받드는 것처럼 하여 부녀자에게 이르기까지 고기 반찬을 먹지 않았으며, 그날은 결혼도 하지 않았다. 세월이 오래 지났는데도 그렇게 하고 있으니 이는 옛날 성현에게도 없었던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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