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4. 사림파의 수난
제멋대로 권세를 휘둘렀던 명종의 외삼촌 윤원형
윤원형(?-1565)의 본관은 파평이고, 자는 언평인데 문정왕후의 오라버니이다. 중종 23년(1528) 생원시에 합격하고 5년 뒤에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명종 6년에 정승이 되어 영의정에 이르렀다. 그리고 윤임은 인종의 모후인 장경왕 후의 동생이었으니, 여기서 대윤(윤임), 소윤(윤원형)이란 칭호가 있었다. 윤원형이 병조 판서로 있을 때에 어느 무인을 함경도의 권관으로 임명되도록 해주었는데, 그 무인이 부임하여 화살통을 선물로 보냈다. "나는 활쏘는 것을 배우지 않았는데 화살통을 어디다 쓸 것인가?" 윤원형이 화를 내며 그 화살통을 다락 안에 던져 버렸다. 그리고는 그 무인을 파직시켰는데, 그 무인이 파직되어 돌아와 윤원형을 찾아보고 물었다. "앞서 보내드린 화살통을 보지 않으셨습니까?" 윤원형이 불현듯 의심이 생겨 다락에 던져둔 화살통을 가져다 잠가 놓은 화살촉을 뽑자 담비 가죽이 와르르 쏟아졌다. 그것을 본 윤원형이 좋아하면서 그 무인을 다시 살기 좋은 고을의 수령으로 임명하였다. 또 이조 판서로 있을 적에 어떤 사람이 고치 수백 근을 바치고 참봉에 임명되기를 소원하였는데, 마침 윤원형이 피곤해서 졸고 있느라 장시간 임명 대상자의 이름을 부르지 않으므로 교지를 쓰던 이조 낭관이 붓을 쥐고 재촉하였더니 윤원형이 낭관의 재촉하는 소리에 맞추어 졸면서 "고치"라고 대답하였다. 고치란 견을 세속에서 부르는 이름이었다. 그리하여 임금의 최종 임명 결재를 받음에 이르러 이조의 서리가 고치 바친 사람을 아무리 찾았지만 찾지 못하였다. 그러던 중 먼 시골에서 올라온 가난한 선비의 이름이 고치였으므로 그 사람을 임명하기는 하였지만 윤원형은 감히 분변하지 못하였다.
명종이 당시 권세를 믿고 횡포가 심했던 윤원형을 죽이려고 마음먹고, 어느 날 경연에 나아가 중신들에게 한나라 문제가 그의 외삼촌인 박소를 죽인 일에 대하여 물었다. 여러 신하들이 그제야 임금의 뜻을 알고 마침내 윤원형을 탄핵하여 관직을 삭탈하고 도성의 사대문 밖으로 내쫓기를 주청하니, 명종이 그대로 시행하게 하였다. 윤원형이 쫓겨나자 백성들이 기왓장과 돌을 던지며 심지어 활로 쏘아 죽이려는 자도 있었다. 윤원형이 몰래 강음으로 가서 그의첩 난정과 날마다 마주 앉아 울었다. 이때에 윤원형의 전처 김씨의 계모 강씨가 난정이 김씨를 독살한 사실을 고발하였다. 조정에서 관련자를 잡아다 처결해야 한다는 논의가 제기되자 난정과 윤원형이 독약을 마시고 죽었다. 지은 죄가 하늘에 사무치면 저절로 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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