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3. 왕도정치의 시작
이항복에게 귀신으로 나타나 억울함을 호소한 복성군
복성군 미(?-1533)는 중종의 아들인데, 경빈 박씨의 소생이다. 중종 27년(1532)에 세자가 거처하는 동궁 근처에 쥐를 불태우고 흉악한 물건을 묻어 저주하는 변고가 있고 또 세자(인종)의 가상을 만들어서 나무패를 걸고 거기에 부도덕한 말을 써 놓은 사건이 있었다. 의심할 만한 사람을 잡아 국문할 적에, 경빈이 한 일이라 지목되어, 경빈을 폐하고 서인으로 삼고 모자를 함께 국문 하였는데, 얼마 뒤에 모두 사사되었다. 백사 이항복이 소싯적에 친구의 집에 가서 학업을 닦고 있었는데, 이웃에 사는 젊은 여자가 날마다 자기가 묵고 있는 집에 출입하며, 자기를 쳐다보곤 했다. 하루는 공부하던 친구들이 모두 외출 하였는데, 때마침 큰비가 내렸다. 이항복이 혼자 앉아 있는데, 그 여자가 또 찾아와서 쳐다보는 것이었다. 이항복이 그를 불러 앞에 나오게 하여 물었다.
"네가 날마다 와서 나만 유심히 쳐다보는데, 무슨 까닭인가?" 그 여인이 꿇어앉아서 말하였다. "저는 본래 무당입니다. 저에게 의지한 신이 있는데 낭군(이항복의 지칭)을 뵙고자 하므로, 먼저 허락 얻기를 바랐으나 감히 아뢰지 못했습니다" "그러면 그와 함께 오너라" "감히 낮에는 뵐 수가 없습니다" 밤이 되어 비는 그치고 달이 희미하게 비추고 있었다. 이항복이 등불을 켜 놓고 기다렸더니 여인이 와서 말하였다. "귀신이 왔습니다" 문을 열고 보니, 소년의 외모는 옥설처럼 깨끗하고, 미목이 그림 같았으며, 남색 도포에 붉은 띠를 두르고 성큼성큼 다가왔다. 이항복이 관복을 입고 나가 맞이하여 읍을 하고 인도해 들어와서 좌정한 뒤에 물었다. "저승과 이승은 길이 다른데, 어찌하여 서로 만나려 하오?" 이 말을 듣자 귀신이 크게 탄식하였다. "나는 왕자 복성군입니다. 참혹한 화를 만나 집이 멸망하고 구천에서 원통함을 삭이지 못해 인간 세상의 공의가 어떠한지 들으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평범한 사람들은 기백이 나약하여귀신인 나에게 접근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공은 비록 나이가 젊으나 뒷날 반드시 크게 귀히 될 것이요, 기백이 능히 서로 접근할 수 있으며, 그 말이 또한 믿을 수 있으므로 한마디 가르침의 말씀을 받고자 합니다" "원통함을 푼 지 오래되었는데, 어찌 듣지 못하였습니까?" "제사의 고함으로 인하여 그것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특별히 친족을 친애하는 은의에서 나왔을 뿐입니다. 듣고 싶은 것은 공의입니다" 이항복이, 세상 사람들이 그의 지극히 원통함을 불쌍히 여기는 것을 갖추어 말하니, 귀신이 눈물을 줄줄 흘리며 말하였다. "참으로 그렇다면 비록 아홉 번 죽음을 겪더라도 여한이 없습니다" 복성군이 무당을 시켜 과일 몇 가지로 예를 올리게 한 다음, 하직하고 떠났다. 이항복이 나가서 그를 전송하였는데 몇 걸음을 가다가 곧 사라졌다. 이항복이 허망한 일에 가깝다 하여 종신토록 말하지 않았는데, 만년에 북청으로 유배 갔을 적에 비로소 동악 이안눌에게 이 말을 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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