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3. 왕도정치의 시작
남곤을 구부러진 매화 등걸에 빗대어 시를 지은 남추
남추의 본관은 고성이고, 자는 계응, 호는 서계, 또는 선은이다. 중종 9년(1514)에 진사시에 합격하고 이어 문과에 급제하여, 호당에 들어가 사가독서하고 전한을 지냈다. 문장에 능하고 풍채가 선풍도골처럼 뛰어났다. '촉영부'를 지어 온 세상에 명성이 자자하였는데 남곤에게 미움을 받아 영광의 삼계로 물러가 살았다. 그때 나이 28세 였다. 남곤이 남추를 가까이 할 생각으로 그를 초청하였다.
"내가 듣건대, 그대의 문장이 남보다 뛰어나다 하니 시 한 수를 보여 주게" 남곤이 화분에 심은 매화를 가리키며 시를 읊으라고 하자 남추가 즉시 응하여 시를 지었다.
한 그루 분에 심은 줄기 약하지만 천추에 눈처럼 깨끗한 자태 씩씩하구나 구부러진 네 몸을 뉘 능히 펴 주어 높이 낀 저녁 구름 곧바로 헤치랴
남곤이 그 시의 뜻이 자기를 풍자함을 알고 크게 노하여 드디어 그를 끊어 버렸다. 남추의 누이가 또한 시에 능하였는데 한번은 남추가 그에게 눈을 소재로 시를 짓게 하되 녹자와 홍자를 운으로 부르니, 그 누이가 즉시 응하였다.
땅에 떨어지니 소리는 누에가 푸른 뽕잎 먹는 것처럼 바스락거리고 공중에 흩날리니 모양은 나비가 붉은 꽃을 엿보는 것 같다
남추가 소싯적에 학업을 닦지 않고도 세상일에 능하였다. 그의 아버지가 글읽기를 권하면, 남추는 번번이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글을 읽지 않은 적이 없습니다"
하루는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가 조금 뒤에 안개가 갠 뒤에 보니 남추가 점잖은 어른들과 함께 바위 위에 앉아 강독하고 있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이상하게 여겼다. 한번은 그가 손수 편지를 써서 집 하인에게 주며 말하였다.
"지리산 청학동에 가면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있을 터이니, 너는 모름지기 회답을 받아 오너라" 하인이 남추의 말대로 그곳에 가서 보니 과연 화각 두세 칸이 바위 골짜기에 가로 걸쳐 있는데 깨끗하고 고운 것이 비할 데가 없고, 한 도인이 노승과 마주 앉아 바둑을 두고 있었다. 하인이 그 편지를 올리니 도인이 웃으면서 말하였다. "내가 이미 네가 올 것을 알았다" 바둑을 다 두고 나자, 편지 한 통과 청옥으로 만든 바둑알을 주어 보냈다. 하인이 청학동에 올 때는 9월 무렵이어서 낙엽이 길에 흩날리고 가는 눈발이 공중에 뿌렸는데, 하직하고 돌아올 때에 배가 고픈 것도 깨닫지 못하고 오직 신발 밑에는 묵은 풀이 싹트려 하는 것이 보여 의아하게 여겼다. 청학동 밖으로 나오니 날씨가 따뜻하고 초목이 싱그럽게 자라나서곧 인간 세상의 3월이었다. 남추가 죽은 뒤에는 바둑알조차 잃어버렸다 한다. 말하기 좋아하는 호사자는 이렇게 말하였다.
"도인은 바로 최고운이고 노승은 바로 금단선사이며 남추 또한 신선 중의 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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