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2. 사화의 소용돌이
자라 여덟 마리를 살려주고 아들 여덟을 얻은 이원의 아버지
이원의 본관은 경주이고, 자는 낭옹, 호는 재사당이다. 성종 20년(1689)에 진사가 되고 문과에 급제하여 호조 좌랑이 되었다. 사람됨이 당당하여 절의를 위해 죽을 만큼 지조가 있고,나이 어린 임금도 맡겨 부탁할 만한 사람이었다. 연산군 4년(1498) 무오사화 때 점필재 김종직의 시호를 문충으로 하자고 의논했다 하여 곤장을 맞고 원지로 유배되었다가 갑자사화 때에 처형 당했다. 추강 남효온이 늘 그를 칭찬하였다.
"익재(이제현의 호)의 후손이고 취금헌(박팽년의 호)의 외손자로 두 집의 어짊이 이 한 사람에게 모였다"
아버지 현감 공린이 박팽년의 딸에게 장가들어 혼례를 거행하던 날 밤 꿈에, 늙은 첨지가 나타나 말하였다.
"내 자식 여덟이 바야흐로 삶겨 죽으려 하니, 원컨대 풀어 주어 삶기지 않게 해주소서"
공린이 꿈에서 깨어나서 이상하게 여겨 그 아내에게 묻자, 아내가 대답하였다.
"어떤 사람이 자라 여덟 마리를 주기에 내일 아침에 국을 끓이려 합니다"
그는 아내와 함께 자라를 강물에 놓아주었다. 그 뒤에 과연 아들 여덟을 낳았는데, 별, 귀, 오, 타, 원, 경, 곤, 용으로 모두 재명이 있었다. 오는 진사가 되었고 귀는 원과 함께 문과에 급제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