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2. 사화의 소용돌이
이극돈의 죄를 사실대로 쓴 김일손
김일손(1464-1498)의 본관은 김해이고, 자는 계운, 호는 탁영이다. 그의 형 준손, 기손과 함께 점필재, 김종직의 문하에서 같이 배웠다. 성종 17년(1486)에 생원시에 장원하고, 문과에 2등을 하였으며 예문관 검열에 보직을 받아 사관으로 있으면서 이극돈의 죄를 사실대로 바로 썼다. 연산군 4년(1498) 7월에 왕이 전지하였다.
"김종직은 시골의 천한 선비로서 세조 때에 과거에 오르고 성종 때에 경연에 발탁되어 오랫동안 시종의 지위에 있으면서 형조 판서에 이르렀으니 은총이 더할 수 없이 지극하였다. 그가 병으로 물러간 뒤에도 소재지의 수령을 시켜 특별히 쌀을 주어 그 여생을 마치게 하였다.그런데, 지금 그의 제자 김일손이 편수한 사초 안에 부도한 말로 선왕 세조 때의 일을 거짓으로 꾸며 말하고, 그 스승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수록하기까지 하였다. 그 글에 '정축(세조 3년) 10월에 내가 밀양으로부터 서울로 오다가 답계역에서 하루를 묵었는데, 꿈에 어떤 선인이 훤칠한 키에 일곱 무늬가 있는 칠장복을 입고 점잖게 말하기를 -나는 초희왕의 손자 심인데 서초패왕 항우에게 시해되어 빈강에 빠졌다-하고는 언뜻 보이지 않았다. 내가 꿈을 깨고 나서 깜짝 놀라 말하기를, -초희왕은 남쪽 초나라 사람이고 나는 동방 조선 사람이다. 지역이 서로 만여리 이상 떨어져 있고 세대 또한 천여 년이나 선후가 있는데, 꿈자리에 와서 느꼈으니 이 무슨 상서로운 기미인가. 또 역사서를 고찰해 보면 서초패왕이 초희왕을 강물에 던져 넣었다는 말이 없으니, 어쩌면 항우가 사람을 시켜 몰래 그를 쳐서 그 시체를 강물에 던져 넣음인가. 이는 알 수 없는 일이다-하고 마침내 글을 지어 조문하다'(이 유명한 '조의제문'은 '점필재집'과 '탁영집'에 실려 있다) 세조의 사초에 김일손이 그 '조의제문'을 찬양하여 '충분이다' 하였으니, 지금 생각해 보면 나도 모르게 참담하고 두렵다. 그 형명을 의논하여 아뢰어라" 이윽고 7월에 그를 난역으로 처형하고 종묘에 고하였다. 김일손의 벼슬은 이조 정랑에 이르렀다. 중종반정 후 그에게 도승지를 추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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