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2. 사화의 소용돌이
부인이 호랑이에게 물려가 큰 화를 면한 유순
유순(1441-1517)의 본관은 문화이고, 자는 희명,호는 노포이다. 어릴 적부터 문장을 잘 하였다. 세조 5년(1459)에 생원시에 장원했고, 8년에 문과에 급제했으며 12년에는 중시에도 급제하였다. 연산군 4년(1498)에 정승에 임명되어 그 벼슬이 영의정에까지 이르렀다.
성종 때 연산군의 생모 윤씨에게 사약을 내릴 때에 유순은 입직승지로서 약사발을 받들고 가는 사명을 맡았다. 그런데 이날 새벽에 포천의 본가로부터 하인이 급히 달려왔다. 부인 장씨가 범에게 물려 갔다는 소식을 갖고 온 것이다. 유순이 어전에 나아가 아뢰고 포천으로 급히 가니, 그의 동료 승지 이세좌가 약사발을 대신 가지고 갔다. 유순이 포천 본가에 이르니, 부인은 과연 범의 등에 업혀 가다가 중도에 나뭇가지를 잡고 살아나서 집에 돌아와 있었다. 유순은 매우 기뻐하였다. 뒷날 연산군 10년(1504) 갑자사화 때에 이세좌 부자는 모두 죽음을 당하였으나 유순은 화를 면하였다. 유순은 중종반정 때에 정국 공신 2등에 책록되어 원성부원군에 봉해졌다. 중종이 한번은 절의로 신하들을 꾸짖으면서 중종반정 때에 녹훈된 세 승지의 공훈을 삭제하기 위해 의정부에 명하여 의논하게 하였다. 유순이 아뢰었다.
"당시 신이 영상으로서 변고(반정)의 소식을 듣고 창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뻔뻔스럽게 훈적에 참여했으니, 신이 세 사람과 죄가 같으므로 감히 헌의하지 못하겠습니다"
이 말을 들은 모든 사람들이 유순을 옳게 여겼다. 궤장을 하사 받았고 기로소에 들어갔다. 시호는 문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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