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세조의 공을 치하하는 글을 쓰고 통곡한 유성원
유성원(?-1456)의 본관은 문화이고, 자는 태초이다. 당시 세종은 문치에 힘을 써서 집현전을 설치하고 문사들을 모아서 고문에 응하도록 하였다. 집현전 남쪽에 큰 버드나무가 있었다. 경오년(1450)에 흰 까치가 와서 둥지를 짓더니 하얀 새끼를 낳았다. 계해년에 이 버드나무가 말라 죽었다. 어떤 사람이 유성원을 놀리기를 '화근은 버드나무로부터 시작될 것'이라고 하였는데, 그 말대로 유성원은 화를 당하고 집현전도 없어졌다.
문종이 왕위에 오른 지 2년 만에 승하하고 단종 원년(1453)에 김종서가 죽음을 당하였다. 백관들이 이것으로써 세조의 공을 포상하여 주공에 비유하고 집현전 학사로 하여금 그 내용을 초안하라고 하자, 집현전 학사들이 모두 도망가고 유성원이 홀로 남게 되었다. 그가 위협에 못 이겨 하는 수 없이 초안을 작성하고는 집에 돌아와 통곡하였으나 집안 사람들이 그 까닭을 알지 못하였다.
단종이 상왕으로 밀려났을 때, 유성원은 성균관 사예로 있었다. 단종 복위 모의가 발각되자 성균관에서 말을 타고 급하게 집으로 돌아온 유성원은 아내와 함께 술을 마시고 혼자 가묘에 들어가 오랫동안 나오지 않았다. 부인이 문을 열고 보니 칼로 목을 찔러 자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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