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 오백년의 선비정신 - 강효석
1. 창업의 문
살아서는 왕의 형, 죽어서는 부처님의 형 양녕대군
양녕대군(1394-1462)은 태종의 장남으로 제일 먼저 세자로 책봉되었다. 그는 천품이 활달하고 문장에 능숙하였다. 그는 동생 세종이 임금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고 일부러 미친 척하며 함부로 행동하였다. 드디어 태종 18년(1418), 영의정 유정현 등이 문무 백관을 거느리고 합동으로 아뢰어 세자가 덕이 없으니 폐위시켜야 한다고 건의하였다. 이에 태종이 세자의 아들 세손을 세우려 하자 여러 신하들이 또 반대하였다. "상께서 세자를 그토록 잘 가르쳐 길렀는데도 이러한 일이 일어났는데 이제 또 어리신 세손을 세운다면 어떻게 뒷날을 보장하겠나이까? 더구나 아버지를 폐위시키고 그 아들을 세우는 것은 의리에 마땅치 않습니다. 다시 어진 왕자를 택하여 세자로 세워야 합니다"
"그렇다면 경들이 어진 왕자를 택하여 건의하라" 이조 판서 황희가 아뢰었다. "나라의 세자는 함부로 가볍게 세울 수 없는 일입니다" 또 이직도 불가함을 굳이 고집하였다. 태종은 화가 나서 황희 등을 문밖으로 내쫓고 재신들에게 말하였다. "충녕대군(뒤에 세종임금이 됨)은 천성이 총명하고 학문을 좋아하며 아무리 춥고 더운 날에도 밤새워 글을 읽을 정도로 손에서 책을 놓지 않으며 사리에 통달하니 나는 충녕을 세자로 삼고 싶다" 신하들이 축하를 올리며 말하였다. "신들이 합동으로 아뢰어 어진 왕자를 택하라고 한 것도 바로 충녕을 두고 드린 말씀입니다" 태종은 드디어 충녕대군을 세자로 삼고 세자 양녕대군을 폐위하여 광주로 내쫓았다. 양녕대군은 이때부터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남루한 옷에 노새를 타고 산수를 찾아 전국을 유람하니 세상 사람들이 그를 일러 태백(주나라 태왕의 장자, 태왕이 유난히 총명한 손자 창에게 왕통을 이으려고 계력을 태자로 세우려 하자 나라의 앞날을 위해 동생 중옹과 다른 나라로 떠났다)의 지극한 덕이 있다고 하였다. 세종은 형 양녕과 우애가 극진한 사이였다. 양녕이 관서(평안도) 지방 유람을 떠날 때였다. 양녕이 세종에게 작별 인사를 하자 세종은 여색을 조심할 것을 특별히 당부했다. 양녕이 떠난 뒤에 세종은 즉시 평안도 관찰사에게 명을 내려 "만약대군을 가까이 한 기생이 있거든 즉시 보고하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평안도 지방의 수령 방백들은 예쁜 기생을 골라 놓고 대기하고 있었다. 양녕대군이 정주에 도착하자, 소복을 입고 엷게 화장을 한 예쁜 기생 하나가 곡을 하는데 그 소리가 노랫소리처럼 아름다웠다. 소리에 마음이 끌린 대군은 곧 사람을 보내어 그 기생을 불러와 함께 잠자리를 한 뒤에 다음과 같은 시 한 수를 읊었다.
달빛이 베갯머리를 엿볼 일이 없는데 바람은 무슨 일로 비단 장막을 젖히나
이튿날 감사는 그 기생을 역마를 이용하여 서울로 보내고, 그 시도 임금께 아뢰었다. 세종은 그 기생으로 하여금 그 시를 노래로 부를 수 있도록 연습하라고 하였다. 양녕대군이 평안도에서 돌아와 세종께 배알하니, 임금이 대군에게 물었다.
"지난번 작별할 때 한 말씀을 잊지는 않았겠지요?" "신이 어찌 감히 성교를 잊었겠나이까. 삼가 받들고 있나이다" "형님이 비단 이부자리 속에서도 그 말씀을 지키셨다니 기쁘고도 다행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쁜 여인을 한 사람 준비시켰나이다" 이어서 세종은 궁중에 주연을 차리고 그 기생으로 하여금 그 시로써 노래부르고 대군에게 술을 권하도록 하였다. 그 기생과는 비록 밤을 함께 지낸 사이지만 밤에 만났던 까닭에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다가 노래의 가사 내용을 듣고서야 알아차린 양녕대군은 그 즉시 뜰을 내려와 벌받기를 청하였다. 그러자 세종 역시 뜰 밑으로 내려가 대군의 손을 잡고 웃으면서 정담을 나누었으며, 그 기생을 양녕에게 돌려주었다. 이 기생과의 사이에 아들이 있었으나 어미의 성과 관향을 알 수 없으므로 그냥 고정정이라고 불렀다. 고정정 역시 자유분방하게 어물과 육류를 물물교환 하면서 살았는데 교환이 이루어진 뒤에도 혹시 고기가 좋지 않으면 그 고기가 이미 삶긴 뒤에라도 반드시 되물리고야 말았기 때문에 당시 사람들은 되물리는 교역을 일러서 '고정정교역'이라고 일컬었다.
양녕대군의 후손 이명하란 사람이 어느 날 자기 부인과 더불어 장기를 두다가 떼를 써서 강제로 물리려고 하였다.
"당신은 고정정이 아닌데 어찌하여 번번이 물립니까?" 부인이 묻자 남편이 발끈 성을 냈다. "당신은 어찌하여 장기 때문에 남의 조상을 욕하는 거요" 그 부인이 부끄러워하면서 사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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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영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7-06-07 0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