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뒤흔든 여인들 - 구석봉
제 6부 독부와 현부
서해로 흘러간 장발 미인 - 관나 부인
여자의 질투란 가시 돋친 장미꽃의 아름다움처럼, 그것이 사랑하는 이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수단이므로 동원될 때에도 항시 그 마음의 깊숙한 곳에다 상대방의 아름다움에 상처를 입힐 수 있는 작은 무기를 키우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여자의 질투는 그래서 아름다운 전쟁을 연상시킨다. 그 냉랭한 질투의 결과 여자들은 사랑을 소유하기도 하고, 이미 쟁취했던 사랑을 빼앗기기도 한다. 여자의 세계에서 질투의 범위는 주로 사랑과 미의 쟁취에 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듯 예로부터 사랑이 있는 곳에 독버섯처럼 돋아나는 것은 사랑의 감정보다 몇 곱이나 더한 질투의 씨앗이었다.
고구려 제 12대 군주 중천왕은 의표가 준수하고 지략이 남달리 뛰어난 사람. 보통 신분의 남자라도 그만한 조건을 갖추었다면 여자들이 따를 만한데 하물며 국왕임에랴. 중천왕의 이름은 연불이라 했다. 연불은 부왕인 동천왕이 승하하던 서기 248년 9월에 왕위를 이어받았다. 그는 즉위 한 달 만인 그해 10월에 연씨를 세워 왕후로 맞아들였는데, 죽은 부왕에 대한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연불은 새 왕후와 사랑은 불태운 셈이다. 부왕의 무덤에 잔디가 뿌리를 내리는 그 시간에 말하자면 젊은 국왕은 새로 맞아들인 아름다운 왕후를 밤마다 침전으로 불러들이고 있었다. 국왕이 새 왕후와 젊음을 불태우고 있다는 소문은 삽시간에 오 고구려 천지로 번져 나갔다. 고구려 백성들은 모두들 설마 그렇게까지야 하랴고 고개를 저었다. 얼마 전에 승하한 동천왕은 나랏사람들이 모두 추앙하던 어진 왕이었다. 동천왕이 숨을 거두었을 때 나랏사람들은 그 은덕을 생각하고 슬퍼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왕을 몸소 모시고 있던근신들은 왕을 따라 순사하려는 사람이 많았다. 동천왕의 태자 연불이,
"순사는 부왕에 대한 충신이 예가 아니오. 그러니 부왕을 따라 생 목숨을 끊는 행위를 국법으로 엄굼하겠소!" 하고 근신들을 제지했으나, 막상 장례일이 되자 동천왕의 무덤에 몰려들어 자살하는 사람이 적지 않았다. 그만큼 동천왕은 나랏사람들이 따르던 군주였다. 그런 군주를 다른 사람도 아니요 맏아들 되는 연불이 벌써 잊어버리고 왕후와의 유희에 밤새는 줄 모르다니......... 어디 그뿐인가. 고구려 12대의 왕위를 이어받기가 바쁘게 연불은 궁 안에 소후를 두어 음탕한 나날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 첫째 소후가 사냥터에서 데려온 관나였다.
관나. 얼굴이 아름답기로는 정비인 연씨보다 크게 두드러질 것은 없었으나 관나는 궁 안에 들어온 지 사흘도 안 되어서 중천왕 연불의 마음을 사로잡아 버리고 말았다. "관나....... 너를 사냥길에서 처음 발견했을 때 이 몸은 하늘 나라의 선녀를 만난 듯이 가슴이 뛰었느니........" 중천왕의 고백은 사실이었다. 왕은 사냥의 명수였다. 그날도 기구라는 곳으로 사냥을 떠났던 왕은 산짐승 대신 민가에서 유독 머리가 긴 낭자를 사냥한 것이었다. "봐라! 저 우물터에서 머리를 빗고 있는 낭자가 이 세상 낭자냐, 아니면 천상의 선녀냐?" 왕은 제 키보다도 더 긴 머리채를 빗고 앉아 있는 우물터의 낭자를 바라보면서 종자들에게 물었다. "예. 보아하니 이 고장 낭자는 아닌 듯 싶나이다, 전하." "그럼, 저 낭자가 바로 천상의 선녀란 말인가? "그러하옵니다. 전하......." "천상의 선녀인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느냐?" "예, 땅 위에 사는 낭자는 머리채가 길어도 저렇게 길지는 않사옵지요. 보십시오, 낭자의 키보다도 머리의 길이가 한결 긴 것 같지 않사옵니까?" "휴." 처음에는 신기한 낭자라는 생각에서, 그리고 그 다음에는 호기심에서 낭자를 가까이 하고 싶었던 왕은 이제 그 낭자를 자기의 것으로 소유하고 싶어졌다. 왕은 종자들에게 명하여 우물터에서 머리를 빗고 있는 나자를 데려오게 했다. 볼수록 아리따운 낭자요 뒷머리채가 탐스러운 여자였다. 종자들이 낭자의 머리를 재어 보니까 자그마치 아홉 자나 되었다. 중천왕은 그날 사냥을 그만두고 머리채가 아홉 자나 되는 낭자를 데리고 궁 안으로 돌아왔던 것이다. 그런 관나를 중천왕은 하루도 가까이하지 않고는 못 견디겠다는 모양이다. "관나......." "예?" "나는 그대 없이는 이제 하루도 못 사는 사랑의 절름발이가 되었구나. 내 절름거리는 사랑은 그대의 부축 없이 한 발자국도 떼어놓을 수가 없이 됐으니........" "그것은 소첩도 같사옵니다. 전하의 사랑 없이는 단 하루도 목숨을 부지하고 싶지가 않은걸요." 자, 이런 지경으로 미쳐 있으니 주위의 빈축을 사지 않을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연씨 왕후의 칼날 같은 눈초리가 관나 부인의 고운 자태를 당장이라도 할퀼 듯이 따라다녔고, 왕의 젊은 두 동생 예물과 사구가 군주의 체통을 여지없이 무너뜨리고 다니는 형의 사생활이 못마땅해서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형님, 오늘도 연불 형님은 사냥터에서 납치해 온 그 관나 계집의 방에서 뒹굴고 있으면서 정사는 볼 생각두 않는다면서요?" 사구는 숫제 왕이 된 맏형 연불이 왕이니 전하니 하는 호칭으로 부르기조차 싫은 모양이다. "사구야!" 예물이 사구의 귀를 잡아당기고 은근한 말로 다그친다. "왜 그래 형?" "우리 오늘밤에 연불이 형을 해치울까 보다!" "국왕의 자리에서 몰아내자 그 말이지?" "쉬이, 목소리가 너무 크다." "형......." "여러 소리 필요 없다. 오늘 밤 자시(밤 11시부터 1시 사이)에 관나의 침전에서........ 알았지?" 국왕의 시해 음모는 이렇게 간단히 결정되었다. 북쪽 평양성을 검돌아 나가는 11월의 밤 바람은 흡사 겨울 날씨를 방불케 했다. 밖에서는 눈발이라도 내리고 있는 것일까? 중천왕은 관나를 찾아가서 몸을 녹이리라 했다. '관나의 그 야들야들한 살갗에 몸이 닿으면 금방이라도 이 추운 기운이 녹아내리겠지........' 그런 생각 끝에 왕은 몸을 일으켰다. 해시도 다 기운 이슥한 밤. 중천왕이 마악 잠옷 바람으로 관나의 침전에 몸을 옮겨 놓았을 때였다. 침전의 뒷담 벽쪽에서 '쿵'하는 소리가 났다. 그 소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이내 강한 쇠붙이 부딪는 소리가 밤공기를 갈라 놓았다. "아니!" 중천왕은 관나를 뒤로 밀치고 잽싸게 몸을 숨겼다. "아........" 뒷담 벽쪽에서는 짤막한 비명 소리가 울려 왔다. 누군가 칼을 맞고 쓰러진 모양이었다. 뒤로 밀쳐진 관나가 벗은 몸으로 왕의 허리를 잡고 늘어진다. "전하, 어서 자리를 뜨세요! 아마도 저 칼싸움은 전하를 해치려는 무리와 그 무리를 제지하려는 무리들의 싸움 같사옵니다!" 왕의 짐작도 그랬다. "전하 어서 옥체를......." "괜찮다. 내 만일의 경우에 대비하여 늘상 이렇게 보검을 갖고 다니잖나! 어느 놈이건 내 앞에 나타나기만 하면 한칼에 놈의 목을......." 왕은 흥분 때문에 더 말을 잇지 못했다. 왕은 사냥으로 단련된 몸. 이쪽의 눈에 띄기만 하면 천하에 없는 장사라도 왕을 해치기는 어려운 일이었다. 칼싸움이 다 끝난 것일까. 뒷담 벽쪽에서는 이제 쇠붙이 부딪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한참만에 대여섯 사람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굵직한 장정의 소리로, "전하, 등을 밝히고 이자들의 얼굴을 보소서."하고 왕 앞에 고개를 넙죽 조아리는 녀석이 있었다. "어느 놈들이냐?" 그제서야 중천왕은 위엄을 갖추고 장정들앞에 몸을 드러내었다. 눈치 빠른 관나가 어느 결에 관솔불을 받쳐 들고 마루에 나와 섰다. "어느 놈들이 이 밤중에 소란을 피웠느냐 말이다." "예, 이자들이 전하의 침전에 뛰어들어 무엄하게도 전하를 시해하려던 무리이옵니다." "뭣이!" 왕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얼굴을 들어 전하를 보라!" 장정에 묶여 있는 두세 사람을 발길로 걷어차면서 소리 질렀다. 관솔불 아래 드러난 반역의 무리들. 관나는 하마터면 관솔불을 떨어뜨리고 뒤로 나자빠질 뻔했다. 놀라움은 중천왕도 다를 것이 없었다. "아니, 너희들이. 너희 놈들이........" 차마 왕의 입에서는 친동생 예물과 사구의 이름이 형용되어 나오지를 않았다. 말할 것도 없이 시해 사건을 주동한 왕의 아우 예물과 사구는 이튿날 아침 일찍이 목이 달아나고 말았다. 그런 일이 있고 난 뒤부터 왕은 관나 부인 곁에서 아주 붙어살다시피 하는 것이었다. 왕으로서는 관나의 덕으로 목숨을 건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녀에 대한 사랑이 전보다 더 깊은 정성을 안고 달려갈밖에 없었던 모양이다. 왕이 관나 하나만을 위해 살아가게 되자 누구보다도 애가 타는 쪽은 아무래도 왕후 연씨였다. 애가 탄다기보다는 연 왕후는 마음의 공허를 질투로 다지면서 관나에게 쏠린 왕의 사랑을 쟁취할 궁리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어느 날 연 왕후는 가까스로 왕을 자기 침전에 불러들인 뒤, "전하, 신첩은 전하의 어지신 마음이 이미 관나에게 기울고 있는데에 아무 흔들림도 없사옵니다."하고 거짓 태연한 척 가장하면서, "하오나, 관나로 인하여 행여 전하의 고구려 사직이 위협을 받는 다면 이는 좀 생각해야 할 일이 아니겠사옵니까?" "고구려 사직이 위협을 받는다니, 그대는 무슨 근거로 구런 불길한 말을 하는 거요?" 중천왕의 두 눈에 일순 노기가 서린다. 연 왕후는 마음을 다잡아 먹었다. "전하, 신첩이 들으니 지금 이나라에서 장발을 구한다 하오며 천금으로써 산다 하옵니다." 이는 물론 거짓말이었다. 그러나 연 왕후의 속마음을 짐작지 못하는 중천왕은 천금을 주고 장발을 산다는 얘기가 금시초문이어서 귀가 번쩍 뜨였다. "천금을 주고 장발을 구한다?" "그러하옵니다 전하." "허허. 관나의 머리가 아홉 자라, 그만하면 과연 장발은 장발이렷다!" 연 왕후의 검을 술책이 문득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자 왕은 착잡한 기분이었다. 왕의 눈꼬리가 심상치 않은 것을 본 연 왕후는 서둘러 이야기를 전개시켰다. "전하 옛날 선왕(동천왕)께서는 중국에 예로써 대함이 없었으므로 병화를 입고 나라를 잃을 뻔하였으니 지금 전하께오서는 그들(위나라)이 하고자 하는 바에 기꺼이 순응하고, 또 차제에 장발 미인을 보내시면 그들은 반드시 기뻐할 것이며, 장발 미인을 받고는 다시 우리 고구려를 침범하는 일이 없을 것이옵니다." 연 왕후의 속셈은 이제 완연히 드러난 셈이다. 연 왕후가 장발 미인을 중국 위나라로 보내자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이 관나를 두고 하는 말이었기 때문이다.
선왕 때다 엄청난 군졸들이었다. 서기 246년 8월. 위나라의 유주자사 관구검이 만여 명의 군졸을 이끌고 쳐들어왔었다. 관구검은 비류수에서 선왕의 방어군을 순식간에 무찌르고 환도성을 함락,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격이 되었다. 다행히 선왕이 피신하여 항복은 받지 못하고 물러갔으나, 이듬해 위나라는 현도 태수 왕기를 보내어 재차 사직을 위협, 선왕은 옥저로 몽진을 떠나는 사태까지 벌어지지 않았던가. 다행히 맹장 밀우와 유유의 분전으로 그들은 퇴각해 버렸으나, 서울을 평양성으로 옮기는 소동을 벌여야 했다. "전하, 그런 수치를 다시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위나라의 비위를 건드리지 말아야 하고, 그들의 요구에 응함이 상책이옵니다." 중천왕이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연 왕후는 어떻게 든지 왕의 마음을 사로잡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전하, 무얼 주저하십니까! 어서 결단을 내리소서." 결단이라....... 어서 관나를 위나라로 보내란 말이렷다. 천금을 받고 관나의 장발을 팔라는 재촉은 곧 관나의 몸을 위나라 국왕에게 바치라는 얘기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왕은 차마 그럴 수는 없다 했다. 설사 연 왕후의 말이 거짓 꾸며댄 말이 아니더라도 사랑하는 관나를 위나라로 떠나 보낼 수는 없다. "어떻든 관나를 사지로 보낸단 말인가......." 왕은 고개를 젓는다. "그것은 어찌 사지로 사는 처사입니까? 관나 하나를 보내면 사직의 안전을 꾀하고 전하의 만수무강을 누리게 된 뿐 아니라 고구려 만백성의 생업이 자유로워지는 데 전하께서는 어찌하여 이 좋은 기회를 스스로 뿌리치려 하옵니까?" 연 왕후는 왕의 마음을 돌이키기에 거의 필사적이었다. 연 왕후의 끈덕진 설득 작전에 골치가 아픈 왕은 관나의 침전에 들리지도 않은 채 자기 침소에서 그 밤을 새기로 했다. 그러나 오늘 밤따라 코 끄트머리로 뵈지 않은 왕을 관나가 그냥 놔둘 턱이 없었다. '오늘밤은 연 왕후가 전하에게 꼬리를 친 모양인가?' 관나는 밤이 깊자 사람을 시켜 연 왕후의 침전을 엿보고 오게 하였다. 왕이 연 왕후의 침전에도 들지 않았다는 시녀의 보고를 듣고 관나는 겁이 더럭 났다. '전하께서 이 몸을 멀리하려는 것이나 아닌지....... 이 몸의 사랑이 미진하여 또 다른 후궁을 물색해 놓고 그쪽에 정신이 팔려 있는지도 모르지.' 관나의 추측이 이에 미치자 그녀는 더 참을 수가 없었다. "전하....... 전하!" 관나는 밤 깊은 줄고 모르고 왕의 침전에 뛰어들어 방바닥에 엎드려 고개를 들먹였다. "전하, 소첩을 멀리하옵소서......." "전하. 소첩은 늘 왕후마마의 꾸짖음을 당하면서도 전하를 뫼시는 그 한 가지 낙으로 살아오고 있는 터이옵니다." "뭐, 왕후가 그대를 꾸짖는다구?" "이예....... '시골의 천한 계집이 어찌 평생을 궁궐 안에 머물러 있기를 바라느냐'구요. '만약 시골로 다시 돌아가지 않으면 후회하리라!' 하면서 꾸짖는 답니다." "저런." "왕후마마의 눈치로 보아 전하께오서 궁 밖에 거동한 틈을 이용, 소첩을 해치려 함이 분명하오니 장차 이를 어찌했으면 좋겠나이까?" 물론, 모두 거짓말이었다. 여자의 거짓은 아름다운 용모에 관계없이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무기로 쓰일 때가 많았다. 왕은 두 여자의 틈바구니에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갈팡거렸다. 왕은 복잡한 머리를 식히기 위해 사냥을 떠나기로 작정했다. 얼마 전 관나를 발견했던 그 기구라는 곳으로 멧돼지 사냥을 떠난 왕이 아무런 수확도 없이 궁궐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사흘이 지난 뒤의 일이었다. 멧돼지는커녕 꿩 한 마리 꿰 차지도 못하고 맥없이 돌아온 왕 앞에 먼저 달려온 것은 역시 관나였다. 관나는 왕은 만나자마자 커다란 가죽 주머니를 들고 와서 땅바닥에 주저앉아 통곡부터 한다. "전하, 으흐흐흐......." "어허, 반가운 사람이 돌아왔는데 어인 눈물인가?" "중전마마께서 소첩을 이 가죽 주머니 속에 넣어서 죽이려 하였나이다. 으흐흐흐......" "뭣, 가죽 주머니에 그대를 넣어서 죽이려 하였다구? 설마 그럴 리가?" 왕은 관나가 들어 보이는 가죽 주머니를 집어 들고 의아해하였다. 그러자, "전하께오서는 소첩의 말을 믿으시지 않는 겁니까? 억울하여이다! 억울하여이다!" 진정 억울해 죽겠는지 관나는 아홉 자나 되는 그 긴 머리가 땅에 흘러내리는 줄도 모르고 울음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억울하여이다. 억울하여이다, 전하. 분명 왕후마마께서는 이 몸을 가죽 주머니에 넣어 바다에 던지려 했는데도 전하께오서는 믿기지 않는다 고개를 저으시니 진정 분하고 억울하여이다. 소첩은 이제 궁궐에 살 마음이 없어졌나이다. 전하께오서는 소첩을 기구 땅 소첩의 집으로 돌려보내 주시어요. 제발 소원입니다." 그 때였다. 관나의 거짓말을 모조리 엿듣고 있던 연 왕후가 왕 앞에 불쑥 나타났다. "네 이년! 가죽 주머니는 네 스스로 만들어 놓고 누굴 모함하려 드느냐? 머리채를 잡고 돼지우리에 쳐넣기 전에 바로 대지 못할까!" 가히 살벌한 분위기다. 왕은 모든 거짓말을 짐작할 수 있었다. "네 이년!" 왕의 입에서 역시 노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관나로서는 처만 뜻밖의 날벼락이었다. "네 이년. 네가 죄없는 왕후를 모함하려 함은 네 스스로 바다에 빠져 죽기를 자청하는 행위이니 소원대로 바다에 보내 주마!" 왕은 관나를 가죽 주머니에 넣어서 서해 바다에 내다 띄우라 명했다. 관나는 그 아름다운 아홉 자의 긴 머리를 어떻게 보살필 사이도 없이 제가 만든 질투의 가죽 주머니에 묶여서 바다의 고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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