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이 북산을 보며 웃네 - 역사 속으로 찾아가는 죽음 기행 : 맹란자
제1장 죽기가 힘들었던 사람들
찬란한 햇빛속으로 사라진 겨울 나그네 - 슈베르트
|
서른 한 살의 나이로 이 지상에서 겨울 나그네가 된 슈베르트는 임종의 병상에서 조차 겨울 나그네 의 악보 손질에 매달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친구 소버는 이 겨울 나그네 때문에 그의 생명이 단축되었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의 무덤의 문은 이미 열려져 있었던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는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베토벤의 장례식에 참석하여 묵묵히 관 옆을 따라 걸었는 데, 장례행렬 속에서 내내 머리가 아팠다고 했다. 나는 이제는 건강한 몸이 될 수 없을 거다. 이렇게 말한 그는 자신의 병에 대해 알고 있었다. 슈베르트의 사인에 대해 사람들은 장티프스에 걸려서 라든가 원인은 독신자의 불양생에 있었다 는 정도로 덮어두어 필자 역시 이면의 깊은 고통은 알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음악가의 만년과 죽음 이란 이덕희님의 글을 읽다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19세기의 유럽음악을 낭만주의의 가곡으로 휩쓸었던 슈베르트. 감미롭고도 정감어린 그 가곡의 작곡자가 매독 이라니 정말 믿기지 않았다. 겨우 그는 스물다섯 살이었다. 매독 발병 제2단계의 고통속에서 슈베르트는 이런 시를 썼다.
나의 생명, 나의 육신, 나의 피. 그 모두를 레테의 강물 속에 던져넣어 보다 순결하고 보다 강력한 경지로 나를 놓아 주소서
-<나의 기도>중 일부
고통 속에서 차 오르는 샘물, 죽기 전 마지막 6년 동안, 그는 균열된 영혼의 지각 속에서 보석보다 더 아름다운 곡들을 쏟아내었다. 교향곡 제9번 연가곡 겨울 나그네 그리고 유명한 현악 5중주 C장조 는 죽음을 앞둔 2년 동안에 만들어진 것이다. 끔찍한 매독의 최종 단계가 오기 전에 죽음이 그를 데려간 것 역시, 신의 자비인양 여겨진다고 그를 아끼는 사람들은 말했다. 1828년 10월의 마지막 날, 식당에서 식사를 하던 도중 그는 갑자기 손에 들고 있던 나이프와 포크를 떨어뜨렸다. 생선요리에 중독이 되었던 모양으로 병세는 급속도로 악화되었다. 악성 티프스였다. 11월 18일, 고열로 정신을 잃은 그는 때때로 침대에서 나오려고 몸부림을 쳤다. 숨이 끊어진 것은 그 이튿날 오후 3시경, 11월 21일, 그의 친구들은 그가 작곡한 노래 평화여 그대와 함께 있으라 를 눈물을 흘리면서 불렀다. 성 요제프 교회에서 장례식이 끝나자 그의 유해는 그가 그렇게도 경배하여 마지 않던 베토벤의 무덤 가까이에 묻혔다. 그 묘비에 그릴파처 는 이렇게 적어 넣었다.
음악은 이곳에 소중한 보물을 묻었다. 그보다 더 아름다운 희망도 꿈과 함께
라스트는 그를 가장 시적인 작곡가 라고 평하였다. 뫼리케는 눈물을 통헤 찬란한 햇빛을 보는 사람 이라고 하였다.
웬 아이가 보았네 들어 핀 장미화.
들장미 와 함께 슈베르트는 우리의 가슴속에 영원한 소년으로 남아 있을 것이다.
|
* 윤영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12-12 0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