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이 북산을 보며 웃네 - 역사 속으로 찾아가는 죽음 기행 : 맹란자
제1장 죽기가 힘들었던 사람들
무서운 전염병처럼 사라진 네로
인류역사상 최악의 폭군으로 기록되는 네로는 황제이기보다는 시인이고 싶어했다. 그는 팔리티네궁에서 자신이 지운 노래를 직접 시연해 보이며 곧잘 도취에 빠지곤 했는데, 죽음이 임박해 왔을때도 무엇인가 괜찮은 시구를 생각해 내어 오래오래 후세에까지 남기고 싶어했다. 그가 지은 <키프로스의 사람> <헤쿠바의 슬픔>은 그런대로 괸찮다는 평판이었다. 그는 어린아이처럼 소견머리 없고 때론 즉흥적이며 충동적이었다. 기분 나는대로 정책을 바꾸고, 그 자리에서 신하를 처결하였으며 로마를 불태우고 생모 아그릿빠나를 피살시켰다. 신망 높은 이복형 부리탠니커스를 독살시키고, 심지어는 자기의 처 옥타비아까지 동맥을 끊게 한 다음 더운 물김으로 질식시켜 죽였다. 폭정에 견디다 못한 로마군대가 반기를 들고 반란을 일으켰다. 반란군이 파죽지세로 몰려왔다. 갈바를 황제로 추대했다는 급보가 왕궁으로 전해졌다. 네로는 자기가 죽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을 알고 자기를 묻을 무덤을 파라고 명령한다. 그는 자기의 몸에 꼭 알맞게 파라고 흙 위에 드러눕기까지 하였다. 곡괭이질로 흙이 튈 때마다 그는 무서운 공포에 사로잡혔다. 구슬같은 땀을 흘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비극 배우처럼 음조를 띄우면서 아! 위대한 예술가의 죽음이란 이런것인가! 하고 부르짓기도 했다. 불태워 달라고 소리를 질렀다. 그 때 로마에서 사자가 달려왔다. 원로원이 네로를 살친자로 판정하고 고식에 따라 처벌하기로 했음을 알린다. 고식이라니 나를 어떻게 한다는 것이냐? 네로는 새파래진 입술을 벌벌떨면서 물었다. 당신의 몸을 세가닥으로 된 창에 올려놓고 죽을 때까지 매질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죽고나면 그 시체를 티베르 강에다 집어넣는 것입니다. 이젠 나도 죽어야 하나 보다. 아. 아! 위대한 예술가의 죽음이란 이런 것인가? 그는 하늘을 쳐다보며 또 한번 되풀이했다. 그때 밖에서 말굽 소리가 났다. 백인 대장이 네로의 목을 가지러 온 것이었다. 자 빨리빨리 하시죠. 옆에 있던 시종이 서둘렀다. 네로는 단도를 꺼내 떨리는 손으로 자기의 목을 찔렀다. 그러나 그는 자기의 손으로 자기의 목을 찌를만한 용기가 없었다. 폐하. 사시는 동안은 그렇지 못했으나 돌아가실 때만이라고 제왕답게 죽으십시오.
영화 쿼바디스 에서는 네로를 도와 단도를 눌러준 사람이 액태였지만 사실은 에파프로디테라는 종이었다. 단도는 깊숙이 그 자루까지 목으로 들어갔다. 앞으로 튀어나온 네로의 두 눈은 커다랗고 원망과 공포로 가득찬 눈알맹이였다고 <쿼바디스>에 적혀 있다. 엄지손가락을 위에서 아래로 엎어, 쉽게 살인을 결정하던 그도 자신의 죽음 앞에서는 유약한 비겁자였다. 다음날 끝까지 남편에게 충실한 액태는 네로의 시체를 값진 보자기에 싸가지고 향유에 적신 장작으로 화장을 했다. 이리하여 네로는 폭풍처럼, 선풍처럼, 화재처럼, 전쟁처럼, 그리고 무서운 전염병처럼 사라져 없어졌다. 센키비쯔가 쓴 소설 <쿼바디스>의 결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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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영환님에 의해서 게시물 이동되었습니다 (2006-12-12 07: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