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뒤흔든 여인들 - 구석봉
제1부 아름다운 모성
벽골제 공사에 던져진 여심 - 단야
신라 제 38대 원성왕 때다. 김제 벽골제 방축은 낡고 헐어서 보수가 불가피했다. 그대로 방치해 두었다가는 여름을 넘기지 못하고 둑이 허물어진다는 중론이었다. 나라에서는 벽골제의 개축 공사를 위해 인근 7개 주민들을 역사에 동원하기로 했다. 제천의 의림지, 밀양의 수산제와 함께 신라 3대 저수지로 꼽혀 오고 있는 벽골제는 기실 의림지나 수산제보다도 그 규모가 크기로 소문나 있었다. 옛날 마한 시절에는 벽비리국이 자리했던 김제땅. 백제 시대 벽골군으로 불리던 김제는 벼의 고을이라는 뜻으로 도향의 중심부를 이루는 곳이다. <삼국사기>에 "안장천팔백보"라 했듯이, 우리나라 최고·최대의 수리 저수지가 있는 김제땅은 일찍이 벽골제로 인하여 "도작 문화의 요림지이며 미곡의 본고장"이라는 위치를 굳혀 왔다. 몽리 면적 1만여 정보에 달하는 그 벽골제 둑이 허물어질 위기에 놓여 있다니 진정 큰일 날 일이다. 전주 도독부에서는 이 사실을 급히 조정에 알려 보수해 줄 것을 간청했다. "전하, 벽골제는 멀리 우리 신라가 백제를 통합하기 이전부터 김제 만경 평야를 기름지게 적셔 오던 생명의 젖줄기였습니다. 하오나 지금 도작 문화의 중심을 이루는 김제 벽골제 둑은 위태로운 붕괴 직전에 놓여 있는 것이옵니다. 깊이 통촉하소서, 전하. 벽골제는 그 역사가 오래고 방축이 노후해서 지금 주민들의 기름진 논밭을 위협하고 있는 것이옵니다. 벽골제의 둑이 허물어지는 날, 김제 만경 평야에 목숨을 맡기고 땅을 일궈 오던 수만의 백성들은 갈길을 알지 못하고 수마에 할퀼 것이 자명한 일이오니, 청컨대 저하께옵서는 서라벌의 명망 높은 토목 기사를 보내시어 군량과 진상미의 고장 김제 만경 평야를 길이길이 보존하시옵소서." 전주 도독부의 보고를 받은 원성왕은 급히 예작부에 하명해서 사례 벼슬아치 원덕량을 불러들였다. 젊은 토목 기사 원덕이 대하에 무릎을 꿇자 왕은 근엄한 목소리로, "그대는 이번에 김제 벽골제 중수에 총책을 맡고 떠나라."하고 명했다. "어리석고 재주 없는 소신이 그 어려운 일을 감당해 낼 수 있을지 걱정이옵니다, 전하." "김제 태수 유품이 그대를 도울 것이요, 서라벌의 천신이 또한 그대 일을 도울 것이니 과히 염려말고 내일이라도 현지로 떠나도록 하라." 추상 같은 어명이요 지엄한 분부라 국록을 먹고 사는 원덕으로서는 감히 거역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원덕은 왕명을 거역하고 싶었다. 이번 한 번만은 나라고 무엇이고 모두 팽개치고 사랑하는 월내의 곁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모든 국사를 떨쳐 버리고 자신의 일에 충실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날 밤 원덕은 정혼자인 월내의 집으로 말을 달렸다. "아, 오셨군요, 원덕랑." "우리들의 잔칫날이......." 미처 원덕의 물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월내의 상기된 얼굴은 벌서 잔칫날의 즐거움 속에 젖어 있었다. "우리들의 잔칫날. 그래요, 앞으로 닷새밖에 남지 않았어요, 원덕랑." "닷새......" "그렇다니까요. 원덕랑도 기쁘지 않으세요? 몇 년을 기다리고 기다리던 우리들의 날이에요. 원덕랑이 나라의 큼직큼직한 토목 공사에 참여하느라 우리는 기껏 택일을 해 놓고서도 잔치를 두세 번씩 연기해 오지 않았던가요?" 순간 월내의 곱다란 얼굴에 기다림으로 응결진 우수가 깃든다. 이번만은 어떠한 일이 벌어진다 해도 혼례를 연기할 수 없다는 각오가 그러한 표정 속에 굳어 있었다. "원덕랑........." 원덕은 대답을 않고 멍하니 밤 하늘로 고개를 돌렸다. "원덕랑........." 월내의 목소리가 두 번째 귀에 울렸을 때 그는 이 어리고 나약한 낭자에게 슬픔을 안겨 주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다. "왜 말씀이 없으시죠, 원덕랑. 나라에 또 무슨 급한 토목 공사가 생겼나요?" 월내는 직감으로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원덕의 입에서는 그래서야 한숨 섞인 말이 흘러 나왔다. "혼례를 며칠 앞두고 또 이 무슨 액운이오. 우리들의 혼사가 내 직업으로 인하여 이렇듯 두세 번씩 연기될 줄 알았더라면 내 일찍 이 토목 기술을 배우지 않았을 것을......." "어디로 떠나시게 되었는데요, 원덕랑." "벽골제로, 둑을 쌓으러 떠나라는 어명을 받았소." 월내는 놀라지 않았다. "언제 완공이 될까요, 벽골제 둑은?" "글쎄, 해동이 되는 대로 시작을 하면 늦어도 여름 장마 전에는 끝낼 수 있을 거요." "여름 장마........" 여름이라면 몇 달을 더 기다려야 하는가, 지금이 정월이니까 꼬박 반 년은 기다려야 한다. "반년 뒤면 틀림없이 완공이 될까요?" "일을 시작해 보지도 않고 어찌 완공 날짜를 미리 알 수 있겠소. 허나 그대 월내 낭자가 이 몸의 귀환을 목마르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마음 속 깊이깊이 새기고 떠나리다." 그런 말을 남기고 원덕은 떠났다. 오늘날의 김제읍에서 부안 가도를 따라 약 6킬로미터쯤가다 보면 부안면 포교리에 이르고 이곳에서 남쪽 명금산 북단까지 엇비슷하게 둑이 뻗어 있는데, 이 둑이 곧 벽골제 제방이다. 원덕이 김제 고을에 닿은 것은 월내와 작별한 지 나흘째 되던 날의 일이었다. 그는 김제에 닿자마자 태수 유품의 집에 머물면서 공사를 서둘렀다. 벽골제 제방 수축 공사에 동원된 7개 주 고을 사람들은 왕명을 받들고 특파된 원덕의 말을 따라 힘겨운 작업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매사는 원덕의 생각대로 되어 주지를 않았다. 노령 산맥의 무악산과 상도산을 비롯, 크고 작은 연봉이 흘러내리는 물을 저류시켰다가 김제 만경 평야로 흘러내려 보내는 일이 곧 벽골제의 역사였으나 이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지금의 숫용에게 낭자 하나를 제물로 바쳐야 한다는 게 주민들의 주장이었다. 용이 살고 있는 곳은 연포천의 용소말고도 또 한 군데가 있었다. 원평천의 백룡이 바로 그 용이었다. 이른바 쌍룡추라 하여 오늘날에도 신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용소에 낭자 하나를 바치는 일은 그렇게 수월한 노릇이 아니었다. 원덕은 일단 공사가 시작되자 용소에 바칠 낭자 문제를 상의하기 위하여 태수 유품을 조용히 만났다. "태수 어른, 기어이 낭자를 용소에 바쳐야 하나요?" "바쳐야 하구말구, 역사를 하는 도중에 낭자를 용소에 바치지 않으면 청룡의 노여움을 사게 된다네." 늙은 태수는 그것이 당연한 처사라는 듯이 주름진 얼굴에 웃음을 띠우고 대답했다. "만일........ 만일 말입니다. 용소에다 낭자를 바치지 않는다면 어찌 되는 거지요?" "무슨 소린가, 원덕랑........ 청룡의 노여움이 자네는 무엇을 말하는지 모르고 있었단 말인가?" "전 아직....." "큰일날 소리! 청룡의 노여움을 사는 날엔 방죽이 터져! 벽골제 둑이 완공되기도 전에 물난리를 치러야 한다, 이런 말일세." 도무지 모를 소리였다. 어찌하여 용소에다 낭자를 바치지 않으면 청룡의 노여움을 사게 되고, 벽골제 둑이 허물어진다는 것인지 원덕은 쉽사리 납득이 가지 않았다. 벽골제 수축 공사의 총책이라면 한 사람의 산 여자, 그것도 출가하지 않은 아리따운 낭자 하나를 물속에 집어 넣는 일에도 모든 책임을 저야 했다. 총책 원덕은 그러나 낭자를 용소에 바치는 일에 완강히 반대하고 나섰다. "아니됩니다, 태수어른. 이 원덕이 벽골제 수축 공사의 총책을 맡고 있는 한 죄없는 낭자를 물속에 처넣어 죽일 수는 없소!" 원덕의 하루하루는 오로지 벽골제 수축 공사에 온갖 심혈을 기울이는 것으로 보내어졌다. 이따금 서라벌에 두고 온 월내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녀와의 해후는 다만 벽골제 둑이 완공되는 날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에 원덕의 벽골제에 쏟는 열성은 그만큼 절박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용소 문제가 순조롭게 해결되었다 싶자 이번에는 또 다른 장애가 그의 작업을 방해하기 시작하였다. 그것은 태수 유품의 딸 단야의 접근이었다. 원덕이 처음 태수의 집에 행장을 풀었을 때 솔직히 말해서 청혼자가 있는 그도 단야의 미모에 혹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단야 쪽에서도 그것은 마찬가지였다. 태수의 무남독녀로서 단야 낭자의 성장은 지극히 평탄하고 총애받는 사랑 속에서 자라 온 터이다. 외간 남자와 별로 접촉할 사이도 없이 다만 양주의 사랑과 관심, 바람을 타지 않은 온실 속의 꽃과도 같이 무풍 지대에서 꿈을 먹고 자라 온 순박한 소녀였다. 하지만 온실 속의 꽃은 젊고 귀골스런 원덕의 등장으로 내면에 스스로 바람을 일으키게 되었다. 토목 기술자가 온다기에 처음에 단야는 별로 신경을 쓰지도 않았었다. 저수지 둑이나 감독하고 성곽이나 쌓는, 이를테면 돌처럼 무뚝뚝하고 메마른 남자가 자기 집에서 머물게 되겠거니, 그런 정도의 상상밖에 해보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나 막상 서라벌에서 온 토목 기술자가 자기 집에다 행장을 풀던 첫날 단야는 설레이는 가슴을 달랠 길이 없었다. '토목 기술자가 아니라 저분은 서라벌의 왕족일지도 모른다. 왕족이 아니고서야 어떻게 저런 귀태를 가질 수 있을까?' 단야와 월내를 두고 문득 그 여성스런 아름다움을 비교해 보던 원덕도 마음이 설레었다. '미모로 볼진대 오히려 월내보다 단야 쪽이 앞서는 것 같구나. 만일 내 일찍이 서라벌에 월내라는 정혼자를 두고 오지 않았다면 태수 어른을 졸라 저 아름다운 단야 낭자를 아내로 맞아들일 수 있었을 것을!' 그러나 그 마음의 설레임도 잠시, 원덕은 서라벌에 두고 온 월내를 버릴 수 없다고 단정했다. 자기로 인해서 두세 번씩 혼례를 미뤄온 월내가 아닌가. 벽골제 수축 공사가 끝나는 대로 서라벌에 두고 온 월내와 혼례를 치르기로 굳게 약속한 사이가 아닌가. 말하자면 혼례만 치르지 않았다뿐이지 월내는 이미 자기의 아내나 다름없었다.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에게 눈을 주다니 천벌을 받을 일이라 생각했다. 원덕은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었다. 가뜩이나 신세를 지고 있는 태수 유품의 집에서 불미스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마음 속으로 다짐하는 것이었다.
1월도 가고 어느 새 2월. 그 짧은 초봄의 하루하루가 미리 계획된 작업량을 채우느라 하루도 쉬지 않고 강행을 거듭해 갔다. 요 며칠 사이 원덕은 태수의 집을 아주 나오다시피해서 현장 생활을 하며 인부들을 독려했다. 그런데 작업을 시작할 때는 그렇게 의욕에 차 있던 인부들이 날이 갈수록 늑장을 부리는 것 같아 원덕은 적이 걱정되었다. 작업 능률도 오르지 않았고, 인근 7개 주 백성들의 사기도 그만큼 떨어져 갔다. 봄철을 맞이한 농민들은 저마다 못자리판을 서둘러야 했는데 벽골제 저수지 물이 제대로 공급될는지 그게 걱정이어서 선뜻 씨앗을 담그는 농가가 드물었다. 일이 이쯤 되자 둑 쌓기에 동원된 인부들은 저마다 불평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그거야 바루 용소에 가시나를 하나 갖다 바쳐야 일이 척척 맞아 떨어져 것인디, 가시나를 안 바쳐서 공사가 늦어지능기여......"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응께로 낭자를 구해다 용님헌티 바치라고히여." "내 고장 농사는 내가 더 아는디 지까짓게 뭘 안다고 가시나를 안 바칠라고 허는지 소갈머리를 모르겄다닝께..." "책임을 지라고 히여, 책임을...... 농사 못 짓고 일년 농사 피롱하면 지가 쌀 됨이나 대줄랑가? 체......" 원덕은 그 같은 불평을 듣고 더 주저할 수가 없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낭자 하나를 용소에다 바치지 않으면 인부들은 연장을 챙겨 가지고 모두 집으로 돌아가 버릴 태세였다. '어쩐다......?' 밤이 되자 원덕은 막사에 누워서 또 그 '낭자 제물' 생각으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밖에서는 그의 착찹한 생각을 씻어 버리기라도 할 것처럼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다. 이 시간에 그는 응당 서라벌에 두고 온 월내 낭자의 얼굴이라도 떠올리면서 향수를 달래어 옳았으나 어찌 된 셈인지 월내의 모습은 윤곽도 잡히지 않는 것이었다. "단야......" 월내 대신 원덕의 입에서 한숨처럼 이름이 튀어나왔다. "단야!" 그 비를 온통 심장 속까지 맞고 단야는 원덕의 곁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녀는 중얼거렸다. "원덕랑, 원덕랑!" "단야, 어인 일이오...... 태수 어른께서 이 몸을 오라 하십니까?" "아닙니다. 아버님이 부르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서, "이 몸이 원덕랑 일이 궁금해서 빗속을 달려왔을 뿐입니다. 허물이 된다면 꾸짖어 주십시오." 원덕은 그 말에 속으로 부르짖었다. '허물은 아니오, 허물은 아니오! 내 진정 단야 낭자를 보고 싶었소. 월내가 아닌 그대 몸을 가까이 모시고 싶었소.' "원덕랑, 여기까지 달려온 이 몸을 나무라지 않으신다면 한 말씀 드리고 싶은 개 있는데 들어주시겠는지요?" 단야의 비에 젖은 두 눈이 크게 빛을 발했다. 어쩌면 단야는 벌써 크고 빛나는 두 눈에 빗물이 아닌 눈물을 담고 있는지도 몰랐다. "말하지 마시오. 단야 낭자! 말하지 않아도 이 몸은 이미 낭자의 마음을 알고 있습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말하지 아니하면 나라가 죽습니다." "나라가 죽다니오?" 원덕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는 지금 단야의 은근한 사랑의 고백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단야는 두 사람 사이의 더욱 절박한 용소 문제를 들려주고 싶었던 것이다. "용소...... 용소......" "그렇습니다. 용소에는 낭자가 뛰어들어야 합니다. 그성은 아버님 태수의 오랜 숙원입니다. 용소의 용이 노하지 않고 벽골제 아래 그 너른 김제 만경 들에 잘 익은 벼이삭이 출렁거리게 될 때 이 고을은 태평 성대를 노래합니다. 그대 원덕랑은 벽골제 중수의 총책을 맡으신 어른이라 이 고장의 태평 성대를 바라시겠지요?" 이제 알 것 같았다. 그녀는 벽골제 공사가 질척거리게 된 것이 용소의 숫용을 노하게 만든 데에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노한 용을 달래기 위하여 낭자를 바치자는 소리가 이 고을 전체의 외침이었다는 것을 단야 낭자는 설득시키고 싶었던 것이다. 태수가 찬성하고 고을 백성들이 한결같이 원하고 있는 제물을 어찌하여 원덕랑 혼자서 반대하고 있는 것인지 따지러 왔는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원덕은 단야의 사랑 뒤에 병풍 뒤에 병풍처럼 두르고 있는 애향심을 읽고 있었다. 고을을 사랑하는 힘은 곧 개인의 사랑을 초월하여 애국의 바탕이 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야가 가장 필요로 하는 원덕의 사랑은 제것으로 차지하지 못한 채, 그녀는 7개 주 고을 백성의 대변자가 되고 있었다. 적어도 벽골제 수축 공사 총책임자 원덕랑 앞에서 단야는 그런 신분 밖에 되지 않았다. 단야는 그것이 슬펐으나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7개 주 고을 백성들의 바람을 원덕랑에게 전달하는 기회에 그녀의 사랑도 함께 전하면 그만이라는 생각이었다. "아시겠습니까? 원덕랑, 내일이라두 곧 낭자를 구하여 숫용의 노여움을 풀게 하세요. 그리하여 벽골제 공사를 완공하신 뒤 서라벌로 돌아가 그대를 기다리고 있는 월내 낭자와 화촉을 밝히세요......" "뭐 월내 낭자라구요?" 원덕은 놀랐다. '알고 있었구나, 단야는 내가 서라벌의 월내를 두고 떠나온 몸이라는 것을 알고도 모른 체했구나, 갸륵한 사람.' "단야...... 단야......" 새삼스럽게 단야의 단심이 가슴에 젖어 오자 원덕은 지극한 사랑을 소유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원덕이 단야의 허리를 감싸 안으려고 팔을 내뻗었을 때, 그녀는 이미 그의 막사에서 빠져 나가고 없었다. "단야! 단야!" 폭우가 쏟아지는 칠흑 같은 밤. 단야를 부르는 원덕의 목소리가 빗소리에 묻혀 주저않고 마는데 단야는 아무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틑날 비가 개인 뒤 단야는 사람들의 예상을 뒤엎고 엉뚱한 곳에서 발견되었다. 그녀는 용소 가에다 신발을 벗어 놓고 물속으로 뛰어들어 용의 제물이 되고 만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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