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사를 뒤흔든 여인들 - 구석봉
제1부 아름다운 모성
난세를 살다간 열녀 -심씨 부인
병자호란 당시 신광철의 아내 심씨 부인이 보여 준 죽음은 열녀의 표상이었다. 심씨 부인은 전란 속에 피어난 한 떨기 꽃이요, 각박하고 응달진 시대를 사는 많은 여성들에게 지어미의 할 일이 무엇인가를 가르쳐준 모성의 근간이기도 하였다. 병자호란 때다. 겨울이었다. 인조 14년 12월 9일. 청나라의 13만 대군이 압록강을 건너 남으로 밀어 내려오고 있었다. 청의 황제 스스로 침략의 기치를 들고 앞장서 온 이 뜻하지 않은 전쟁으로 인하여 조선 왕조는 대들보가 흔들렸다. 의주, 개성이 떨어지고, 한성의 운명이 바람 앞의 등불이 되자 국왕 인조는 서둘러 남한산성으로 몽진을 떠났다. 그보다 앞서 왕은 왕자와 빈궁을 강화섬으로 떠나 보내고 적군과의 대전을 숙의 했으나 쉬이 묘책이 서질 않았다. 곧 한성이 떨어졌다. 청군은 한성을 짓밟고 나자 여세를 몰아 남한산성을 에워쌌다. 독안에 든 쥐, 이는 당시의 인조를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다. 성안에서는 의용병을 모집하여 적군과 맞섰으나 역시 역부족. 화살 한 대 쏘아보지 못하고 뒤로 물러서기만 하는 아군의 대장들 때문에 병졸들의 사기만 죽었고 나라의 운명을 위기에 처하였다. 군량은 떨어지고 적의 위세는 날로 더해 갔다. 왕의 목숨이 경각에 달렸다. 적의 위세와 함께 추위가 혹심해졌다. 포위망이 좁혀졌다. 그렇게 물러서기만 하기를 40여 일. 그 동안에 인조는 잠자리도 변변치 않은 영하의 추의 속에서 출구를 찾기에 고심했다. 그러나 출구는 아무 곳에도 나 있지 않았다. 왕은 결심했다. 좌우 중신과 성 안 백성들의 통곡 속에 왕은 청나라 태종 앞에 무릎을 꿇었고, 전쟁은 끝이 났다. 역사상에 일찍이 없었던 이 민족적인 굴욕은 전국에 파급되어 난세를 당한 백성들의 비극을 속출케 했다.
호란 당시의 경기도 평택 땅. 이곳에 사는 선비 신광철의 고향은 황해도 평산이었다. 고향을 찾았다가 졸지에 호란을 당한 신광철은 처자가 있는 평택 집으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어찌한다......" 그러나 역시 묘책은 서지 않고 막막했다. 평택 집에서 남편을 기다리는 아내 심씨 부인의 간장은 오그라들기만 했다. 들리느니 흉흉한 소문뿐이었다. 평택 북쪽에 사는 백성들은 소문대로 믿는다면 모두 오랑캐의 죽창에 맞아 죽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심씨 부인은 기다렸다. 기다리다 보면 설마하니 남편의 소식이야 들을 수 있을 것이었고, 남편이 재숫머리 없게 오랑캐의 죽창에 찔려 죽었다 하더라도 혼백이야 그녀 곁으로 오지 않으랴 싶었던 것이다. "얘야, 싸움이 어찌 되어간다든?" "싸움이오?" 심씨 부인은 그제서야 제 정신이 드는 것이었다. "싸움이랄 것도 없는 모양이에요, 어머니. 여름 장마철에 둑이 터져서 물이 밀려 내리듯이 그렇게 자꾸만 밀리기만 한다는군요." "그럼 남한산성으로 떠난 네 동생이 위험하겠구나." "위험하긴요! 그 애가 얼마나 똘똘한 애라구요." 겉으로는 어머니를 위로하느라 그렇게 말하고 있었으나 이 쑥대 밭 같은 전란 속에서 아무것도 장담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어머니의 한숨 섞인 말을 듣고 나자 심씨 부인의 어깨가 더한층 무거워졌다. 그 와중에 병영 생활을 하는 친정 동생의 안위까지 걱정하지 않으면 안 되었으니 한 여인의 팔자치고는 너무 기구하다는 생각이었다. 어머니의 한숨 섞인 탄식이 귀밑에서 머문다. "에유, 자식 하나 있는 걸 남한산성인지 북한산성으로 떠나 보내고 이늙은 게 무슨 재미루 산담." 전세는 시시각각으로 긴박해 갔다. 그에 따라 들리는 소문도 점점 무지막지한 것들뿐이었다. "아이고, 오랑캐 놈들이 홍수처럼 밀어 내려오면서 아녀자들을 닥치는 대로 욕보인다면서?" "성님, 그 소문이 참말이우?" "참말이구 거짓말이구가 어딨어. 지금 오랑캐 놈들한테 당한 아낙이 마실 앞 공동 우물에 빠져 죽었다구 난린데....." "아이구머니! 현자 어미 지금 한 얘기 사실이우?" "그러엄." "아이구 그럼 난리는 우리 마실 공동 우물두 치른 셈이게?" "누가 아니라우. 온통 이 동네가 그 얘기루 벌집 쑤셔 놓은 것 같다니까." 듣고 있던 심씨 부인의 몸이 무서움으로 떨려 왔다. "오랑캐 놈들은 싸움만 하는게 아니라 그짓들도 하는구먼?" 그러니 피난을 가지 않았다가 그놈들이 마을에 들어오는 날이면 자기는 갈데 없이 겁탈을 당하고 말 것 같았다. "얘야, 동네가 온통 피난을 떠난다구 법석인데 우리는 어쩌면 좋으냐?" 친정 어머니가 또다시 걱정어린 얼굴로 다가와 묻는다. "어머니는 어떻게 하면 좋겠어요?" "글쎄다. 보아하니 신서방은 올 성싶지 않구, 네 동생두 싸움이 끝날 때까지는 돌아오기는 다 틀린 일이니......." 어머니 송씨는 어서 마을 사람을 따라 피난을 떠나자는 말투였다. 그러나 심씨 부인은 선뜻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돌아올 남편을 버려두고 나만 살겠다구 집을 비운다는 것은 부부의 도리가 아니야.' 어머니의 생각을 따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언제까지나 무한정으로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초조하고 불안한 하루가 지나고 새 날이 밝으면 새로운 소식이 마을을 뒤덮었다. 반가운 소식은 한 없고 모두 불길하고 가슴 아픈 소식이었으나 마을 사람들은 어떠한 소식이든 다투어 알아내려고 목을 뽑았다. 그 중에서도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는 심씨 부인이 가장 안달이었다. 기다림이란 게 이토록 뼈를 깎는 아픔인 줄을 심씨 부인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평생을 함께 살 남편의 출타가 곧 죽음과 직결된다는 것도 그녀는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기다림이 주는 아픔을 잊기 위하여 치성을 드리기 시작했다. 뒤껄 석류나무 밑에 정한수를 떠다 놓고, 남편이 떠나간 북녘 평산 땅 쪽을 바라보고 절부터 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신령님께 비나이다. 제발, 평생 한번 비옵건대 우리집 기둥이신 그이가 살아서 무사히 사립문을 밀치고 돌아 오게만 해 주사이다. 제발 신령님......" 어느새 치성을 드리는 심씨 부인의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 "비나이다, 비나이다, 천자 신명께 비나이다......" 볼을 타고 흐르는 눈물이 목 그늘을 적셔도 심씨 부인은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치성을 게을리하면 당장 신령님의 노여움을 사서 남편을 해칠 것 같아서였다. 문득 치성을 드리는 심씨의 등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그래도 심씨 부인은 치성을 멈추지 않았다. 한참 만에 등뒤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예야, 손님이 오셨다........." 하는 어머니의 나직한 목소리가 들렸다. 심씨 부인은 소매 끝으로 눈물을 닦으면서, 그제서야 뒤돌아 보았다. 어머니의 말대로 거기에는 이미 단출한 몸단장을 하고 피난을 떠나는 길에 잠시 얼굴을 들여 놓았다는 성씨 부인이 서 있었다. 성씨 부인이란 심씨 부인에게는 형님뻘이 되는 셈이었다. "성님, 어떻게 예까지?" "나좀 보세!" 성씨 부인은 우선 심씨 부인을 저만치 데리고 가서 귀엣말로, "여보게, 내가 이런 말을 하면 자네는 무척 고깝게 들을는지 모르겠으되....." "예, 무슨 말씀이신지 개의치 마시고 해보세요, 성님." "아무래도 난리가 쉬이 가라앉을 것 같지 않으니 무슨 딴 궁리를 해야 하지 앉겠어?" "하긴 해야죠." "자네는 이 난리가 쉬이 끝날 것 같은가?" "글쎄요, 지가 무얼 알겠어요. 나라하구 나라가 싸우는 일을....." 심씨 부인은 꺼질 듯한 한숨을 내쉬었다. 성씨 부인은 당달아 한숨을 내뿜고 나서, "그래서 하는 예긴데, 동생......" "예, 말씀하시래두요." "아재가 평산에 가신 지도 여러 날이 되었구, 남들이 다들 떠나는 피난을 안 갈 수도 없는 게 동생이 속태우는 일 아냐?" "예........" "내가 말을 안해도 더 잘 알고 있을 테지만, 남자의 몸도 아니고 젊은 아낙의 몸으로 피난을 떠나는 일도 어려운 일이요, 떠나지 않고 여기서 눌러 앉아 있기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잖아......" ".........." "방정맞은 소린지는 모르겠지만 피난을 떠나지 않고 여기 남아 있다간 십중 팔구 북쪽 오랑캐놈들한테 당할 것이요......" "성님! 그만해 두세요." "아니야, 한마디만 더 하겠어. 기왕지사 돌아오지 못하는 남편을 기다리다 엉뚱한 놈들한테 욕을 당하느니보다 나와 같이 홍주로 피난가세. 어린 새끼들 목숨이나 잘 건사해 봐야지." 성씨 부인의 얘기는 간곡한 부탁이라기보다 오히려 명령조로 들렸다. "성님." "말해 보게, 동생." "평산 땅은 오랑캐 떼가 내려오는 길목이라 들었어요. 그런 사지에 남편을 남겨 두고 그이 소식 한 자락 듣지 못한 채 저 한몸만 살겠다구 피난을 떠날 수가 있겠습니까? 형님이 제 경우라도 아마 떠날 수가 없을 거예요. 안 그래요?" "글쎄 난 당해 보지 않아서........" "전 피난 안 가겠어요. 오랑캐놈들한테 죽음을 당할지라도 피난은 안 가요." 심씨 부인이 이렇게 나오자 성씨 부인도 더 이상 권하지 않았다. "자네의 마음 내가 모르는 게 아니야. 자네 뜻이 정 그렇다면 떠날 수야 없지. 허지만 이 부탁은 꼭 들어줘야겠네." "무슨 부탁인데요?" "신씨 집안에 대를 이을 아들 하나는 있어야 하지 않겠어?" "대를 이을 아들....." "그럼! 허니까 자네 아들 하나를 나한테 맡겨서 만일 불행한 일을 당하더라도 대가 끊기지 않도록 하세." 성씨 부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심씨 부인은 털썩 그 자리에 주저앉아 땅을 치며 통곡하기 시작했다. 그 울음 소리로 보아 당장 남편과 아들이 참살을 당하기라도 한듯한 형국이었다. 겨울 바람이 거센 눈발을 몰고 불어온다. 심씨 부인은 얼마를 울었는제 모른다. 울어도 울어도 눈물은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자꾸만 솟아오르는 것이었다. 결국 심씨 부인은 친정 어머니와 아들을 성씨 부인한테 딸려 보내고 이렇게 마룻바닥에 주저앉아 흘러 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고 있다. 텅빈 집. 텅빈 마을. 천지가 온통 빈 하늘만 걸린 듯했고, 강아지 새끼 한 마리 얼씬도 않는 마을을 심씨 부인은 또다시 정한수 한 그릇을 받쳐 들고 뒤껼 석류나뮤 밑으로 갔다. 이번에는 피난 떠난 아들과 친정 어머니의 무사를 겸해서 칠성님께 축원할 참이었다. "비나이다, 비나이다, 칠성님께 비나이다. 이춥고 매서운 서릿발 같은 겨울 날씨에 살 길을 찾아 집을 떠난 자식이랑 우리 친정 어머니를 칠성님이 보살피사, 멀리 평산 고을로 가신 우리 그 양반 생전에 견우 직녀 다정하게 상봉하듯 기꺼운 상봉 있게 하여 주시옵고......" 그녀의 축원은 끝이 없었다. 축원이 효험을 발한 것일까. 모두들 마을을 비우고 떠나간 넓은 마을에 홀연히 심씨 부인의 남편이 살아서 돌아왔다. "여보! 살아 계셨구려." 심씨 부인은 그 한 마디 말을 겨우 입 밖으로 내 보내고 남편 무릎 아래 폭삭 엎어져서 어깨를 들먹였다. 아내도 울고, 남편도 울고. 울음소리는 공허하게 텅빈 집에서 울타리 밖으로 번졌다. 그러나 남편 신광철은 금세 울음을 그쳤다. "아니....." 신광철은 눈물을 닦고 둘레를 휘둘러본다. 마땅히 자기의 생환을 기뻐해 주어야 할 사람이 집안에는 있질 않았다. "아니, 어떻게 된 건가, 응?" 남편의 눈이 아내의 두 눈을 뚫어질 듯 바라본다. 아내는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남편 신씨는 부리나케 사립문을 나섰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당신?" 심씨 부인이 뒤쫓자 남편은 거의 달리는 걸음으로 곧장 남으로 향하면서, "아이를 찾아야 해. 그리구 당신 어머니두 찾아야 하구." "큰집 성님이 홍주로 데리고 갔다구 했잖아요." "그래도 난 마음이 놓이질 않아, 홍주로 가서 우리 식구들 얼굴을 대하기 전엔." 오랜만에 만난 부부는 그간의 이야기를 나눠 볼 사이도 없이 길을 나섰다. 그들이 피난길을 재촉하여 충청도 아산 따을 지날 때였다. 갑자기 산속에서 죽창을 들고 뛰어 나온 무리가 있었다. 몇 안되는 일행은(함께 내려간 피난민까지) 뿔뿔이 흩어졌다. 심씨 부인도 그 바람에 남편과 헤어졌다. 여기까지 밀고 내려온 오랑캐를 피해 혼자 숲속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심씨 부인은 적병의 동정을 살피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에이그머니! 저, 저건 우리 친정 어머니가!" 외손자를 데리고 형님 뒤를 따라 홍주로 향하던 친정 어머니가 지금 가까운 숲속에서 청나라 오랑캐들한테 겁탈을 당하려는 순간이었다. 심씨 부인은 앞 뒤 돌아볼 것도 없이 화살처럼 앞으로 튀어나갔다. "나를! 나를 죽여라 이놈들! 우리 어머니를 죽이지 말고 나를 죽여!" 적병들이 제발로 들어온 호박을 포기할 리가 없었다. 그러나 심씨 부인이 호락호락 그들의 농락에 넘어갈 리가 없었다. 그녀는 완강히 버티었다. 어머니를 살려 놓았는데 당하랴 싶었다. 말을 듣지 않으니까 오랑캐들은 심씨 부인을 말에 태우고 달렸다. 달리면서 그들은 심씨 부인의 옷을 교묘히 벗겨서 들판에 내던지는 것이었다. 먼저 심씨 부인의 윗저고리를 벗겼다. 상체가 드러나자 그녀는 앞가슴을 묶인 두 손으로 가렸다. 오랑캐들은 계속 말을 달리면서 그녀의 아랫도리를 벗겼다. 전라의 몸이 되자 그들은 말을 세우고 야욕을 채우려고 하나씩 덤벼들었다. 묶인 손이 자유를 잃자 그녀는 입으로 덤벼드는 사나이를 물어 버렸다. 그러는 그녀의 이빨의 힘은 성난 표범의 그것이었다. 아무리 무지막지한 오랑캐들이라 할지라도 목숨을 걸고 항거하는 이 여인의 매서운 힘을 당할 재주는 없었다. 오랑캐 중의 하나가 보다 못해 화가 나 창을 높이 치켜들었다. 그녀는 비명 한마디 지르지 못한 채 깨끗한 몸으로 죽어 갔다. 오랑캐들이 물러나고 주위에 흩어졌던 피난민들이 길가로 나오다가 거기 무참하게 죽어 있는 심씨 부인은 어머니를 살리고 대신 억울한 죽음을 당한 것이다. 심씨 부인의 효행이 나라를 감동시킨 셈이었다. 나라에서는 심씨 부인의 넋을 기리기 위하여 정문을 세웠는데 그문에는, '열녀가선대부 신광철지처 심씨지려'라고 새겨져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