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15. 좋은 정치란 도덕에 있을 뿐 혹독한 법에 있지 않다(장석지, 장탕)
공자는 '정치로써 이끌고 형벌로써 바로 잡는다면, 백성들이 비록 죄를 면할 수는 있지만 부끄러운 줄 모르게 된다.'고 하였고, 노자는 '큰 덕이 있는 사람은 덕을 내세우지 않으므로 덕을 지닌다. 그러나 덕이 적은 사람은 덕을 잃지 않으려 하기 때문에 덕이 없어진다. 그래서 법이 많을수록 도둑이 많아진다.'고 하였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한다.
"법이 정치의 도구이기는 하지만, 백성들의 선악을 다스릴 수 있는 근본적인 방법은 아니다. 옛날 진나라는 법망이 그렇게 치밀했건만 온갖 간사함과 거짓이 싹텄다. 그래서 관리들은 책임을 피하고 백성들은 교묘하게 법망을 뚫고 나가 마침내 돌이킬 수 없는 망국의 길로 치달았던 것이다. 당시의 관리들은 불은 그대로 둔 채 끓는 물만 식히려는 식의 정치를 했다. 도덕을 말하는 사람들 역시 자기 직무에만 빠져 있을 따름이었다. 그러기에 공자는, '송사를 처리하는 것은 나도 남과 다를 게 없다. 다만 나는 송사가 일어나지 않게 할 수 있다.'고 말했던 것이다. 한나라는 모난 진나라의 형법을 고쳐서 둥글게 만들었으며, 수식을 버리고 소박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배를 통째로 삼키는 고기라도 빠져나갈 수 있을 만큼 법망이 너그러워졌다. 그런데도 관리들은 순수하여 간악한 데로 흐르지 않고, 백성들은 편안하기만 했다. 그러므로 정치하는 방법은 도덕에 있는 것이지 혹독한 법령에 있는 것이 아니다."
1)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장석지)
유창한 말솜씨에 혹한다면
장석지는 원래 호위 장교로 일했다. 그러나 10년이 되도록 승진도 되지 않고 공을 세우지도 못했다. 그러자 장석지는 한탄해 마지 않았다.
"오랫동안 벼슬하면서도 집안 재산만 축냈을 뿐 이뤄 놓은 것이 하나도 없구나!"
그러면서 벼슬을 그만 두고 고향으로 내려가려 했다. 그때 평소 그의 현명함을 알고 있었던 원앙이 그가 벼슬을 떠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기고 황제에게 부탁하여 비서관으로 자리를 옮기도록 하였다. 장석지는 황제를 면담한 자리에서 정치에 대한 의견을 말하려 했다. 그러자 황제는,
"추상적인 문제보다는 구체적인 일을 말해 보라."고 지시했다.
이에 장석지는 진나라가 왜 천하를 잃었으며, 한나라는 어떻게 천하를 얻을 수 있었는가를 구체적으로 차근차근 장시간에 걸쳐 설명해 나갔다. 황제는 그 이야기에 흠뻑 빠져 들었고, 이튿날 그를 의전 장관에 임명하였다.
하루는 장석지가 황제를 수행하여 동물원에 갔다. 황제가 관리들에게 동물에 관해 여러 가지를 물었다. 하지만 10여 명이나 되는 관리들 중에서 대답을 확실히 하는 자가 없었다. 그때 그곳을 마침 지나가던 동물원 잡역부가 황제의 질문을 듣더니 막힘없이 대답을 하였다. 마치 메아리가 울려퍼지듯 그의 답변은 청산유수였다. 황제가 칭찬하며 이렇게 말했다.
"관리란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러면서 장석지를 시켜 그 잡역부를 동물원 책임자로 임명하려 했다. 잠시 생각해 보던 장석지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폐하께서는 주발 대감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야 물론 덕이 있는 사람이지."
그러자 장석지는 다시 물었다.
"그럼 동양후 장상여는 어떤 사람이라고 보십니까?"
"그도 역시 덕이 있지."
"폐하께서는 주발 대감과 동양후를 덕이 있는 사람이라고 하셨는데, 그 두 분은 말을 할 때면 구변이 없어서 조리있게 이야기 하지 못하십니다. 그 잡역부처럼 수다스럽고 척척 대답하는 것은 그 분들은 결코 하실 수 없습니다. 또 진나라는 하급 서기관에게 정치를 맡긴 적이 있습니다. 그들은 세밀한 점을 파헤쳐 내는 것을 자랑으로 삼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겉으로만 형식을 보기 좋게 갖췄을 뿐 백성을 위한 바가 전혀 없었습니다. 따라서 황제는 스스로의 잘못을 들을 기회를 가지지 못한 채 나라가 날로 기울어 2세 황제에 드디어 무너진 것입니다. 지금 폐하께서는 잡역부의 영리한 대답을 높이 평가하시고 그를 중용하려 하십니다. 그렇게 된다면 천하는 바람에 휩쓸리듯 앞을 다투어 말재주만 일삼으며 실질이 없어지지 않을까 염려되옵니다. 아랫사람이 윗사람의 영향을 받는 것은 그림자가 주인 모양을 따르고 메아리가 소리에 대답하는 것보다 빠른 법입니다. 인사 문제는 신중히 다루지 않으면 안됩니다."
황제는 이 말을 듣고,
"과연 맞는 말이오."하면서 자기 생각을 바꾸었다.
법이 잘못되면 백성들이 믿고 살 데가 없다
어느 날 태자가 동생과 함께 수레를 타고 어전 회의에 나가면서 궁궐 문에서 내리지 않고 그냥 지나갔다. 이에 장석지는 뒤쫓아가서 수레를 멈추게 한 다음, "대궐문에서 내리지 않는 것은 불경죄에 해당됩니다."라고 말하고 그것을 황제에게 고발했다. 이 소식이 태후에게 알려지자 황제는 태후에게 찾아가 관을 벗고 정중히 사과했다.
"자식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태후는 사람을 시켜 황제의 명령에 의해 태자를 용서받도록 시켰다. 태자와 동생은 그런 다음에야 대궐을 들어갈 수 있었다.
언젠가는 만조백관들이 황제를 수행하여 나들이를 간 적이 있었다. 황제는 북쪽 절벽 위에 올라가 먼 곳을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옆에 있던 신 부인에게 가야금을 타게 하고 황제가 노래를 불렀는데, 그 곡조가 매우 처량하였다. 이윽고 황제가 신하들에게 말했다.
"슬프다. 나 역시 죽게 될텐데...."
"저 암산의 아름답고 단단한 돌로 바깥 널을 만들고 모시와 솜을 썰어 틈을 막아 그 위를 옻으로 칠해 두면, 누구도 관을 열어 보지 못 할 것이다."
그러자 좌우에 있던 신하들이 일제히,
"지당하신 말씀이옵니다."하고 말했다.
하지만 장석지만은 앞으로 나가더니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 관 안에 값나가는 보물을 넣어 둔다면 저 앞산 그대로를 바깥 널로 하고 쇠를 녹여 이를 굳혀 두더라도 꺼낼 틈이 보일 것입니다. 하지만 그 안에 욕심낼 물건이 없다면 비록 돌로 만든 광이 없더라도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황제는 이 말을 듣더니,
"과연 그대의 말이 옳소."라고 칭찬하는 것이었다.
그 얼마 후 황제가 나들이 행차를 나가며 다리에 이르렀을 때였다. 갑자기 한 사나이가 다리 밑에서 급히 나와 황제가 탄 수레를 끄는 말이 놀라 껑충 뛰었다. 호위병들이 즉시 그 사나이를 잡아 장석지에게 넘겼다. 장석지가 그를 취조하자 그는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저는 장안에 살고 있사온데, 오늘 이 거리를 지나다가 행차소리가 들리기에 얼른 다리 밑에 숨었습니다. 얼마나 지나 이제는 지나가셨겠거니 하고 나왔는데, 아직 수레와 말이 보여 급히 달아났던 것입니다."
잠시 후 장석지는 판결을 내렸다. 그것은 혼자 행차를 범한 것이므로 벌금형에 해당된다는 판결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황제는 매우 화가 났다.
"그 놈은 내 말을 크게 놀라게 했던 놈이다. 다행히 내 말이 순했기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나까지 부상당할 뻔했다. 그런 놈을 겨우 벌금형에 그치다니 말이 되는가!"
이에 장석지는 황제를 찾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법이란 황제께서 천하의 백성들과 함께 평등하게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법을 적용하는 데 지나치게 되면, 그 법은 백성들의 신뢰를 잃게 됩니다. 이번 사건만 해도 폐하께서 그 자리에서 즉시 죽이셨다면, 모르되, 법을 적용시키려 신에게 넘기셨으면 법에만 충실해야 할 것입니다. 법 적용이 한번 잘못되면 법을 다스리는 관리들 모두가 제 멋대로 가볍고 무거운 것을 결정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백성들은 편안하게 믿고 살 곳이 없어집니다. 깊이 살피옵소서."
황제는 한참 동안 생각에 잠기더니,
"그대 말이 옳소."하는 것이었다.
그 뒤 종묘 제각에 있는 옥가락지를 훔친 자가 잡혔다. 황제는 크게 노하여 그 자를 장석지에게 넘겨 엄히 다스리도록 명령했다. 장석지는 '종묘에 차려 놓은 물건을 훔친 자'에 관한 법 조항을 적용시켜 '처형시킨 다음 시체를 시장 바닥에 버리는 형'에 처하도록 했다. 그러자 황제는 펄쩍 뛰었다.
"그 놈은 무도하게도 선제(유방)의 사당에 있는 물건을 훔친 놈이다. 나는 그대가 그 놈의 삼족까지 멸해 주길 바랬다. 그런데 법률대로만 적용시키겠다니."
이에 장석지는 관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였다.
"황공하오나 법률로서는 이 이상 더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죄상이 같더라도 그 죄질에 따라 차등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가령 고조의 묘에 있는 흙을 한 줌 파가는 어리석은 백성이 있다면 폐하께서는 그 자도 삼족을 멸하시겠습니까?"
황제는 한참 생각하더니 태후와 상의한 뒤 장석지의 견해를 승인하기로 했다. 이 일로 장석지의 명성은 천하에 드날리게 되었다.
어려운 때는 몸을 굽혀라
그 뒤 황제가 죽고 태자가 뒤를 이었다. 그런데 장석지는 태자를 예전에 '대궐문 통행 사건'으로 탄핵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장석지는 처벌받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래서 병을 핑계삼아 사직할까, 아니면 황제를 찾아 뵙고 사죄를 할까 하며 이생각 저생각 다 했으나 결론을 내릴 수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왕생이라는 현명한 선비의 의견을 듣고 황제를 찾아가 사죄하였다. 이때 황제는 조금도 그를 문책하지 않았다.
왕생은 노자의 학문에 정통한 처사였다. 하루는 나라의 부름을 받고 궁궐로 들어갔는데 그는 '내 버선이 풀어졌군'하고 중얼거리더니 장석지를 돌아다보고 말했다.
"내 버선 좀 매어주게."
이에 장석지는 바로 다가와 무릎을 꿇고 버선끈을 매어주었다. 궁궐을 나와서 누군가 왕생에게 물었다.
"왜 조정에서 장석지에게 욕을 보이셨습니까."
그러자 왕생은 이렇게 대답했다.
"나는 나이도 늙고 재주도 없는 사람이오. 그래서 그런 방법으로 장석지를 도울 수밖에 없었소. 그 사람은 지금 천하의 쟁쟁한 대신이요. 그래서 내가 그를 욕보여 무릎을 꿇고 버선끈을 매게 함으로써 그가 겸허하고 덕이 높은 선비라는 사실을 보여 주려 했던 것이오."
나라 안의 지사들은 이 사실을 알고 왕생을 칭찬하였고 또 장석지를 존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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