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11. 돌아오지 않은 장군(경포, 팽월, 난포)
1) 고독한 올빼미(경포) - 형벌을 받고 왕이 될 관상
경포의 원래 성은 영씨였다. 젊을 때 어떤 사람이 그를 보더니,
"당신은 형벌을 받고 나서 왕이 될 관상이오." 라고 말했다.
그 뒤 그가 남의 죄에 연루되어 얼굴에 문신형(경형:경포라는 이름도 경형을 받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을 받게 되었다. 그러자 그는 껄껄 웃으며,
"전에 어떤 사람이 내 관상을 보고 형벌을 받은 다음에 왕이 된다고 하더니 정말인가 보구나."
하고 말하는 것이었다. 이 말을 듣고 있던 주위 사람들은 어이가 없어 웃을 뿐이었다.
경포는 판결을 받은 다음 다른 죄수들과 함께 여산으로 보내졌다. 그곳에는 수십만 명의 죄수가 와 있었는데, 경포는 그 중 쓸 만한 사람들과 사귀었다. 얼마 뒤 경포는 친한 사람들을 이끌고 도망쳐 양자강 유역에서 도적이 되었으며, 물론 경포는 그 우두머리가 되었다. 그 후 진승이 반란을 일으키자, 경포도 군대를 일으켜 수천 명을 모았다. 그래서 진승이 패한 후에도, 경포는 진나라 군대를 계속 격파하였다. 경포는 때마침 항량이 군사룰 일으켜 양자강을 건너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항량의 군대에 가담했다. 항량의 군대는 계속 북상하여 진나라를 쳤는데, 경포의 공적이 항상 으뜸이었다.
그 뒤 항량이 죽자 항우의 지휘 아래에 들어간 경포는 선봉장 역할을 하면서 뛰어난 공을 세웠다. 특히 경포의 군대는 용맹스러워 적은 수로 많은 병력을 깨뜨렸기 때문에 항우의 큰 신임을 받았다. 경포는 진나라 주력 부대였던 장한의 군대까지 격파했으며, 항우가 천하를 호령하는 대장군이 되자, 경포는 구강 자방의 제후로 임명되었다.
경포를 얻어야 천하를 얻는다
그 뒤 제나라 왕 전영이 항우를 배반한 사건이 일어났다. 항우는 가장 신임하는 경포에게 출동 명령을 내렸으나, 경포는 부하에게 적은 수의 군사만 주어 보냈을 뿐이었다. 또 유방이 초나라의 팽성을 공격했을 때도 경포는 병을 핑계삼아 출동하지 않았다. 이 때문에 항우는 경포를 몹시 원망하면서 서울로 자주 올라오도록 명령했다. 하지만 경포는 점점 두려워져 가지 않았다. 항우는 마음 같아서는 경포를 토벌해 혼내고 싶었으나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고 있었고, 또 경포의 재주를 아껴 참고 있었다. 그러나 2년 후 계속 수세에 몰린 유방은 경포를 어떻게든 끌어들이기로 하고 수하를 보내 경포를 설득하기로 했다. 수하의 능란한 설득과 공작에 넘어간 경포는 드디어 항우를 배반하고 유방 편으로 넘어오게 되었다. 그 뒤 경포는 항우의 오른팔 격인 주은을 설득해 항우를 배반하게 했으며, 전쟁에 나가 자주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하여 천하 통일이 된 후 경포는 회남왕에 임명되었다. 어느 날 잔치가 벌어졌는데, 유방이 수하를 가리키면서,
"수하는 쓸모없는 선비에 불과하지, 저런 친구를 어떻게 써먹을 수 있는가!"라고 말했다. 그러자 수하가 말했다.
"그렇다면 폐하께서는 아직 경포 장군이 초나라에 있을 때, 그를 보병 5만, 기병 5천으로 공격할 수 있으셨겠습니까?"
"그 정도면 할 수 있었겠지."
"폐하께서는 그 때 저를 보내셔서 전쟁을 안하고도 경포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보병 5만, 기병 5천의 일을 해낸 것입니다. 그런데도 어찌 폐하께서는 신을 쓸모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인지요?"
이에 유방은 할 말이 없었다.
"좋소, 그대의 말이 맞소."
그러면서 수하에게 벼슬을 주었다.
여자와 질투
한 고조 11년에 한신이 처형되자 경포는 불안해졌다. 또 그해 여름에는 팽월이 처형되어 그 시체가 소금에 절여져 그릇에 담긴 채 모든 제후들에게 보내졌다. 그 인육자반을 본 경포는 두려움에 몸을 떨고는 차라리 반란을 일으킬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당시 경포에게는 아끼는 미희가 하나 있었다. 그런데 미희가 몸이 아파 의원에게 치료를 받게 되었다. 한편 비혁이라는 관리도 그 의원의 맞은편 집에 살고 있었는데 예전에 경포의 부하였던 관계로 미희와도 안면이 있었다. 하루는 비혁이 의원 집에 놀러가서 미희에게 선물도 바치고 술도 마시게 되었다. 그 뒤 미희가 경포와 이야기 하던 중에 비혁이 괜찮은 사람이더라고 칭찬했다. 그러자 경포가 놀라면서 물었다.
"아니, 언제 그 자를 만난 적이 있었는가?"
미희는 아무 생각없이 자세하게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경포는 두 사람이 수상한 관계가 아닌가 의심하기 시작했다. 이 사실을 눈치챈 비혁이 두려워해 몸이 아프다며 바깥 출입을 삼가자 경포는 더욱 그를 의심하게 되었다. 그래서 드디어 비혁을 잡아 죽이려고 하니 비혁은 도망쳤다. 도망친 비혁은 자기가 살기 위해서는 경포를 반역죄로 죽게 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말을 달려 장안에 들어가 유방에게 투서했다.
"경포가 반란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빨리 그를 잡아들이십시오."
유방이 이 글을 읽고 소하에게 의견을 물었다. 이에 소하는 놀라는 표정으로 말을 하였다.
"경포가 그럴 리가 없습니다. 아마 무슨 원한 때문에 무고했을 게 틀림없으니, 우선 비혁을 잡아들여 조사하고 은밀히 사람을 경포에게 보내 살펴보도록 하시지요."
한편 경포는 비혁이 투서한 사실을 알고 불안해하고 있는데, 또 사람이 은밀히 내려와 조사하는 것을 알고는 마침내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유방이 신하들을 모아 놓고 물었다.
"경포가 반란을 일으켰으니 어떻게 해야 하겠소?"
그러자 등공이 대답하였다.
"저의 식객들 중에 설공이라는 자가 있는데, 매우 지혜있는 사람입니다. 한번 만나보시는 것이 어떻습니까?"
유방이 설공을 불러 물었다. 그러자 설공이 한참 생각에 잠겼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경포는 한신, 팽월과 함께 용맹스런 장군이었습니다. 이제 한신과 팽월이 처형되자 자기도 머지 않아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 반란을 일으킨 것입니다. 그런데 경포가 상책을 들고 나오면 회남 땅은 한나라 땅으로 돌아올 수 없습니다. 중책으로 나오면 승패는 알 수 없으며, 다만 하책을 들고 나오면 폐하께서는 베개를 높이 베고 주무실 수 있습니다."
"그럼 경포가 어떤 계책을 쓸 것 같소?"
"그는 하책을 쓸 것입니다."
"그 이유는 무엇이오?"
그러자 설공이 대답했다.
"경포는 원래 여산의 도적떼였습니다. 지금 그는 왕이 되었지만, 모든 일이 자기 일신을 위함이었지 후세의 백성 만대를 위해 한 것이 아닙니다. 그런 까닭에 이번에도 하책을 쓸 것입니다."
한편 경포는 반란을 일으키며 부하들에게 이렇게 말했었다.
"지금 유방은 나이가 많아 싸움을 싫어하기 때문에 반드시 친정하지 않고 부하들을 내보낼 것이다. 나는 이제껏 한신과 팽월만을 두려워했는데, 그 두 사람 모두 죽었으니 두려울 게 없다."
그 당시 유방은 건강이 안 좋은 상태였다. 그래서 자기는 경포의 토벌에 나서고 싶지 않았다. 그 대신 태자를 내보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태자를 염려한 여후는 눈물을 흘리며 호소했다.
"경포는 천하의 맹장입니다. 그 자를 제압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폐하밖에 없습니다. 비록 몸이 불편하시더라도 나라의 운명을 건 이 싸움에 친히 출정하시옵소서."
이에 유방은 하는 수 없이 출정에 나섰다. 경포는 과연 설공의 예측대로 하책을 썼다. 즉 크게 제나라, 한나라, 연나라까지 생각을 못하고 겨우 자기의 땅만 지키려 했던 것이다. 유방이 가서 경포의 군대를 보니, 그 배치가 항우의 전법과 똑같았다. 유방이 경포에게,
"왜 반란을 일으켰는가?"하고 물으니 경포는,
"황제가 되고 싶소."하고 대답했다.
그때까지도 경포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던 유방이었지만 그 말에는 크게 노하여 공격에 나섰고 격전이 벌어졌다. 이 싸움에서 경포는 크게 패해 겨우 백여 명의 부하만을 이끌고 강남으로 달아났다. 유방도 누가 쏘았는지 모르는 유시를 맞아 부상을 당했다. 경포는 그 후 번양 지방으로 달아났으나, 한 농가에서 농민에게 붙잡혀 죽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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