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10.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 보이는 법이다(숙손통)
호랑이의 입 속에 있을 때는
숙손통은 원래 진나라 2세 황제 때에 학식을 인정받아 등용되었다. 몇 년 뒤 진승이 산동 지방에서 군사를 일으켰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2세 황제는 즉시 신하들을 불러 모았다.
"지금 초나라 지방에서 진승의 무리가 군사를 일으켜 소란이 일어났다는데, 여러분들은 어떻게 해야 좋다고 생각하는가?"
그러자 30여 명의 신하들이 일제히 말했다.
"신하된 자로써 반역을 하다니, 천부당 만부당한 일입니다. 마음속으로만 그런 생각을 품어도 반역죄인 것입니다. 단호하게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당장 군대를 파견해 진압하십시오."
2세 황제는 반역이라는 말을 듣자 매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 이때 숙손통이 나서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여러분들의 의견은 잘못입니다. 지금 온 천하가 한 가족이나 다름없습니다. 성벽은 허물어졌고, 무기는 모두 녹였으니 이제 전쟁이 있을 수는 없습니다. 더구나 자애로우신 황제 폐하의 은총으로 무든 법령이 충실히 지켜지고, 모든 백성들은 각기 맡은 직분에 충실합니다. 이와 같은 태평성대에 어떻게 반역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 진승이란 작자는 한낱 도적떼에 지나지 않을 뿐이므로, 폐하께서는 신경쓰실 필요조차 없는 일입니다. 금방 관리들이 모조리 일망타진해 처벌할 것입니다."
그러자 2세 황제는 금새 얼굴이 밝아졌다. 그리고는 신하를 한사람 한사람씩 불러 의견을 물었다. 의견은 반역설과 도적설로 나뉘었다. 다 듣고 난 2세 황제는 반역설 이야기한 신하들을 모두 옥리에게 넘겨 취조하게 했다. 반면 도적설을 말한 신하들은 위로했고, 특히 숙손통에게는 비단 20필과 의복을 내림과 아울러 박사로 승진시켰다. 숙손통이 궁궐에서 나오자 동료들이 비꼬았다.
"아니, 어떻게 그 정도로 아부를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숙손통은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우리는 지금 호랑이의 입 안에 있지 않소? 내가 그렇게 아부하지 않았다면 우리 모두 무사하기 어려웠을 것이오."
그리고는 바로 고향인 설 땅으로 도망쳤다.
난세에는 용사가 필요하다
숙손통이 설 땅에 가 보니 그곳은 이미 초나라의 지배 아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항우를 모시게 되었다. 그 뒤 유방이 항우의 본거지인 팽성에 들어오자, 숙손통은 유방에게 가담하였다. 숙손통은 원래부터 유학자로서 선비옷을 입고 있었다. 그러나 유방이 선비옷을 싫어하자 곧 그 옷을 벗어 버리고 짧은 옷으로 갈아 입었다. 유방이 그 사실을 알고 기분이 좋아졌다. 또 숙손통이 유방에 가담했을 때 제자 백여 명을 데리고 있었는데, 그들중 누구도 유방에게 천거하지 않았다. 대신 도적질을 했던 자나 건달들만 자꾸 추천했다. 이에 제자들이 불평불만을 터뜨렸다.
"저희는 선생님께 여러 해 가르침을 받아 왔습니다. 당연히 저희들의 앞길을 열어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도 선생님께서는 건달, 깡패만 계속 추천하고 계시니 정말 그 이유룰 모르겠습니다."
그러자 숙손통이 자세를 고쳐 앉으며 대답했다.
"지금 대왕께서는 싸움터를 전전하며 화살과 칼을 무릅쓰고 다니신다. 학자들이란 전투엔 별 소용이 없다는 사실을 너희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지금 나는 우선 적의 머리를 베어 올 수 있는 용감무쌍한 자들을 추천하는 것이다. 너희는 좀 기다리도록 해라. 반드시 기회가 올 것이다."
시간이 갈수록 숙손통은 용사들을 추천한 공로로 벼슬이 더욱 높아졌다.
그러나 수성에는 학자가 중요하다
그 후 드디어 천하 통일 이 이루어졌다. 숙손통은 황제 즉우식의 책임을 맡아 잘 처리했다. 원래 유방은 진나라의 번거로운 의식을 모두 없애 버리고 대폭 간소화했었다. 의식과 규율이 간소화되자 신하들은 제 멋대로 술을 마시고 서로 공적을 다투었으며, 싸움을 벌이고, 심지어 칼을 빼어 들고 궁궐 기둥을 치는 자도 있었다. 사태가 이쯤되자 유방도 걱정하기 시작했다. 이때 숙손통이 유방에게 아뢰었다.
"학자란 건국 사업에는 별 소용이 없지만, 나라를 유지시켜 가는 수성에는 매우 쓸모가 있는 법입니다. 바라옵건대 학식이 높은 노나라 학자들을 초청하여 제 제자들과 함께 조정의 의식을 제정했으면 합니다."
"괜찮은 생각인데, 너무 어려운 일 아니오?"
그러자 숙손통이 말을 이었다.
"의식이란 시대에 따라서, 그리고 풍속에 따라서 간단할 수도 있고 복잡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하, 은 , 주의 의식은 각각 이전의 의식을 따르면서 취사선택했다.'는 공자의 말씀도 어느 나라에나 똑같은 의식이 없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저는 예로부터 전해온 의식에 진나라의 의식을 가미해 우리 나라의 새로운 의식을 만들 생각입니다."
"좋소, 한번 만들어 보오. 하지만 알기 쉽게 만드시오."
그 뒤 숙손통은 노나라에 가서 30명의 학자를 초청하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거절하면서 이렇게 숙손통을 비난했다.
"당신은 벌써 열 명도 넘는 주군을 섬기면서, 그때마다 면전에서 아부하며 중용되었소. 이제야 비로소 천하가 평정되었지만, 아직 전사자의 장례도 끝나지 않았고 부상자들은 완치되지 못했소.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예악을 찾을 수 있다는 말이오? 본래 예악이라는 것은 황제가 백 년 이상 덕을 쌓아야 비로소 일어나는 법이오. 그러니 당신이 하는 일에 찬성할 수 없소. 당신이 하고자 하는 일은 옛날의 법에 맞지 않는 일이오. 그냥 돌아가시오. 더이상 우리를 욕되게 하지 마시오."
그러자 숙손통은 웃으며 말했다.
"당신들은 정말 세상물정 모르는 고루한 선비들이오. 시대가 얼마나 변했는데."
황제의 자리가 이렇게 귀할 줄이야
숙손통은 노나라 학자 30여 명을 대동하고 궁궐로 돌아왔다. 그래서 궁주의 학자들과 제자 백여 명과 함께 야외에서 한 달에 걸쳐 의식을 만들고 실제 모의 훈련도 했다. 그런 뒤 숙손통은 황제에게,
"폐하, 한번 구경하십시오."라고 청했다. 유방이 실제로 그 의식 절차를 보더니,
"잘 만들었소. 그 정도면 나도 황제 노릇 잘할 수 있겠소."하는 것이었다.
그 뒤 장락궁이 준공되자, 만조 백관들이 그 의식에 따라 입조했다. 뜰 가운데에는 경비병들이 무기를 갖추고 줄을 지어 서 있고, 궁전 밑에는 계단마다 수백 명의 호의 군사가 늘어서 있었다. 공신, 제후, 장군 들이 서열에 따라 서쪽에 줄을 지었으며, 문관은 승상 이하 서열대로 동쪽에 줄을 지어 섰다. 이때 드디어 황제가 탄 수레가 나오자, 백관들이 깃발을 흔들어 환영했다. 황제가 자리에 앉자 6백 명 이상되는 고관들이 차례로 어전에 나가 축하했는데 모두 엄숙한 표정이었다. 하례가 끝나자 모든 사람들이 다시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고, 서열에 따라 일어나며 축배의 술잔을 올렸다. 의식이 끝나고 다시 주연이 베풀어졌으나 시끄럽게 하는 자는 한 명도 없었다. 그러자 유방은,
"오늘에야 비로소 황제의 자리가 고귀함을 알았노라."하며 숙손통을 의전 장관으로 임명하고 황금 5백 근을 하사하였다. 이 기회를 놓칠세라 숙손통이 말했다. "저의 제자들은 오랫동안 저를 따르며 함께 의식을 만들었습니다. 바라옵건대 그들에게도 관직을 내려 주십시오."
유방은 즉시 그들을 모두 시종에 임명했다. 숙손통은 궁궐에서 나오자 하사받은 황금 5백 근을 모두 제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제자들은 모두 감동하며 이렇게 말했다.
"선생님은 참으로 성인이시다. 세상사를 한눈에 꿰뚫어보신다."
그 후 숙손통은 태자의 교육담당으로 옮겨졌다. 그런데 유방은 그때 사랑하는 척희의 아들인 여의를 태자로 다시 세우려 하였다. 그러자 숙손통이 유방을 찾아가 비판하였다.
"옛날 진시황은 큰아들 부소를 태자로 세우지 않아 결국 조고 등이 호해를 내세워 음모를 꾸몄고, 그 때문에 나라까지 망했습니다. 지금 태자의 인덕은 모두가 칭송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황후께서는 페하와 온갖 고난을 함께 겪어 온 조강지처이옵니다. 이것을 절대 배신할 수 없습니다. 폐하께서 그래도 태자를 바꾸셔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저를 죽이시고 그 피로 궁전의 땅을 더럽힌 후에 하십시오."
그러자 유방이 적당히 무마하려고 했다.
"알았소. 그만 두시오. 내가 농담으로 그래 본 것인데...."
그러자 숙손통은 더욱 정색을 하며 말했다.
"태자를 세우는 문제는 천하의 근본인데 어찌 천하 대사를 농담으로 하실 수 있습니까? 근본이 흔들이면 모든 것이 흔들이는 법입니다."
"이제 됐소. 그대의 말이 맞소."
그 후 궁중의 주연이 열렸을 때 장량이 초대한 도사 네 명이 태자와 함께 나타나자, 유방이 태자를 바꾸겠다는 생각을 깨끗이 단념하게 되었다. 실로 숙손통은 항상 아첨만 한 것이 아니었다. 이 일처럼 목숨을 걸고 비판할 때도 있었던 것이다. 그는 나갈 때와 들어올 때를 잘 알았으며, 시대의 흐름을 잘 파악해 적응을 나갔던 것이다.
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그 후 유방이 죽자, 태자가 즉위하니 혜제의 시대가 되었다. 어느 날 혜제가 숙손통을 불렀다.
"이 나라에 의식을 제대로 아는 사람이 없구료. 아무래도 선생께서 다시 의전 장관을 맡으셔야 하겠소."
그리하여 숙손통은 의전 장관으로 복귀했다. 결국 그에 의해 종묘 사직의 의식들이 모두 완성되었으며, 한나라의 모든 예법이 이때 정해졌다. 그런데 혜제는 장락궁에 있던 어머니 여후에게 아침마다 문안드리고 있었다. 그때마다 교통이 통제되어 백성들의 피해도 컸다. 그래서 생각 끝에 이층으로 길을 내어 궁궐 담 위로 쉽게 다닐 수 있도록 했다. 하루는 숙손통이 혜제에게 말했다.
"폐하, 무슨 연유로 이층 길을 내셨습니까?
그리하여 선제의 묘 위로 지나다니도록 되었지 않습니까? 나라의 시조를 모시는 종묘를 그렇게 대접해서는 안됩니다."
그러자 혜제는 크게 두려워해,
"그럼 빨리 허물어 버리도록 하시오."라고 말했다.
그러나 숙손통은 또다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안됩니다. 황제께서는 잘못이 없는 법입니다. 이제 와서 허물어 버리면 폐하께서 잘못이 있다는 것을 천하에 알리는 결과가 됩니다. 이번 기회에 종묘를 위수 북쪽에 새로 모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종묘를 넓히고 많이 짓는 일은 큰 효도라 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혜제는 숙손통의 지혜에 감탄하며 즉시 새 종묘를 만들도록 했다. 결과적으로 이층 길은 새 종묘를 짓기 위한 꼬투리가 되었던 것이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한다.
"속담에 이런 말이 있다. '천금의 값이 나가는 가죽 옷은 여우 한 마리의 털로 만들 수 없고, 높은 누대의 서까래는 나무 한 그루로 만들 수 없다.'
하, 은 , 주의 성대함도 한두 사람의 지혜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유방이 미천한 신분으로 몸을 일으켜 천하를 평정했는데, 그것은 여러 사람의 지혜가 합해진 결과이다. 숙손통은 세상에서 보기 드문 사람으로서 사물을 잘 판단하였다. 그는 학문을 연구하고 의식을 제정하여 한나라 유학의 거장이 되었다. 그의 처세 또한 진퇴의 절도를 잘 지켰으며, 시대의 흐름에 적절해 대처하였다. '참으로 돋은 길은 굽어보이며, 길은 원래 꾸불꾸불한 것이다'라는 말은 바로 숙손통의 경우를 가리킨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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