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종장 : 한 시대의 별은 떨어지고
2. 제환공의 죽음
무휴의 즉위
역아와 수작이 문무 백관들을 죽이고 모조리 궁 밖으로 내쫓았을 때는 이미 날이 밝아 있었다. 역아와 수작은 공자 무휴를 모시고 와 조당에서 즉위식을 거행했다. 즉위식에는 다른 참석자 없이 내시들이 모여서 종을 치고 북을 둥둥 울렸다. 군사들은 둥그렇게 양편으로 늘어섰다. 그런데 넓디 넓은 궁전 계하에서 절하고 춤추며 새 임금의 즉위를 칭하하는 사람이라고는 다만 역아와 수작 두 사람뿐이었다. 전상에서 이 초라한 광경을 굽어보고 있던 무휴는 창피해서 화가 났다. 이를 눈치챈 역아가 무휴에게 아뢰었다.
"대상을 발표하지 않았으므로, 모든 관원이 죽은 임금을 내보내지 않았으니 어찌 새 임금을 영접할 줄 알겠습니까. 우선 국의중, 고호 두 노대신부터 불러들이십시오. 그러면 문무 백관들도 자연 따라 들어올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 사람들을 진압하고 복종하게 해야 합니다."
무휴는 역아가 시키는 대로 분부했다.
"두 노대신을 궁으로 들라고 하여라."
내시들이 각기 두 노대신을 부르러 갔다. 우경 국의중과 좌경 고호는 원래 주 천자의 명령을 받고 제나라를 감국하려고 와 있는 대신이었다. 그들은 주왕실에서도 대대로 상경 벼슬을 지내던 대신이었기 때문에 모든 관원이 어버이처럼 받들어 공경하고 존경하는 처지였다. 그래서 역아가 무휴에게 아뢰어 좌, 우경 두 대신을 부르게 한 것이었다. 국의중과 고호는 각기 궁에서 나온 내시의 전갈을 듣고 비로소 제환공이 세상을 떠났다는 것을 확실히 알았다. 두 노대신은 각기 자기 집에서 관복 대신으로 상복을 입고 삼띠를 허리에 두르고 즉시 입궐했다. 역아와 수작은 궁문에 미리 나와 섰다가 들어오는 두 노대신을 황망히 영접했다.
"지금 새 임금께서 전상에 나와 앉아 계십니다. 두 노대부께서는 새 임금부터 뵈옵도록 하십시오."
국의중과 고호 두 노대신이 대답했다.
"돌아가신 선군의 빈소를 뵙지 않고 새 임금을 보는 것은 예가 아니오. 선군의 아들이 하나둘이 아니니, 노부는 누구를 골라야 하겠소? 이제 장례식을 치뤄야 할 테니 상주로서 극진히 슬퍼하는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을 새 임금으로 모시고 따르겠소."
역아는 말문이 막혔다. 국의중과 고호는 궁성 중간 문밖에 이르자 하늘을 우러러 두 번 절하더니 소리내어 크게 통곡한 뒤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무휴가 말했다.
"대상은 생겼고 모든 신하는 복종하지 않으니,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수작이 아뢰었다.
"오늘 일은 마치 범을 잡는 것과 같습니다. 결국 힘센 사람이 이깁니다. 그저 주상은 정전에 앉아 계십시오. 신들은 군사를 동문, 서문에 늘어 세우고 공자들이 들어오기만 하면 낱낱이 잡아서 족치겠습니다."
무휴는 수작의 말을 좇기로 했다. 장위희도 내궁의 호위 군사를 다 내주고 심지어 힘센 내시들에게까지 무기를 주어 단단히 무장시켜 내보냈다. 역아와 수작은 각기 군사를 반씩 나누어 거느리고 동문 서문에 늘어섰다.
한편 위나라 공자 개방은 역아와 수작이 무휴를 군위에 즉위시켰다는 소문을 듣고, 갈영의 소생인 공자 반에게 말했다.
"세자 소는 지금 어디로 달아났는지 흔적도 없습니다. 무휴가 군위에 섰는데 공자만이 군위에 설 수 없다는 법이 어디 있습니까."
마침내 개방은 공자 반을 내세우고, 집안 장정과 친한 대부들을 총궐기시켜 우전 뜰에 나가서 늘어섰다. 한편 밀희의 소생인 공자 상인은 소위희의 소생인 공자 원과 함께 상의했다.
"우리는 다같이 선군의 피를 받은 자식들이다. 그러니 이 나라 강산을 누구는 차지하고 누구는 차지 못한다면 이건 말이 아니다. 이제 공자 반이 우전을 차지했다 하니, 우리는 좌전을 근거로 하고 그들과 대항하자. 세자 소가 오면 자리를 양보하고 만일 오지 않으면 제나라를 네 조각으로 똑같이 나눠 갖자."
공자 원은 즉석에서 찬성했다. 그들도 또한 각기 집안 무사와 평소 문하에 양성해 뒀던 식객들을 불러 모아 무장시키고 군대를 편성했다. 공자 원은 좌전에 웅거하고 공자 상인은 조문에다 부하를 늘어 세워놓고 서로 긴밀한 연락을 취했다. 역아와 수작은 세 공자들의 부하가 많은 것이 두려워서 굳게 정전을 지키고, 세 공자들도 또한 역아와 수작의 군대가 만만치 않아서 각기 자기네 군영을 지키며 서로 날카롭게 대치했다. 이야말로 한 궁성 속에서 적국들이 서로 겨루는 판국이었다. 궁중엔 가고 오는 사람은 커녕 깊은 적막에 쌓였다. 이 때 공자 옹은 형제들이 무섭게 날뛰는 꼴과 되어가는 나라 형세를 보고 겁이 나서 진나라로 달아났다. 진목공은 제나라에서 도망온 공자 옹을 맞이하고 그에게 대부 벼슬을 줬다.
제환공의 장례식
문무 백관들은 세자 소가 어디론지 달아났기 때문에 주인을 잃은 셈이었다. 그들은 다 부중의 문을 닫고 궁에 가지 않았다. 다만 노대신 국의중과 고호는 매우 근심하고 여러 가지로 해결책을 생각해 봤지만 어떻게 사태를 수습해야 좋을지 알 수 없었다. 이렇듯 신하들이 아무런 방책없이 있고, 공자 네 사람이 서로 겨루고 있는 동안에 두 달이 지났다. 고호가 국의중에게 말했다.
"모든 공자는 그저 군위만 차지할 생각이지, 선군의 대상을 치르려 않는구려. 나는 죽기를 각오하고 이 일을 서둘러야 하겠소."
국의중이 대답했다.
"그대가 서둘러 먼저 들어가서 그들에게 말하시오. 나도 뒤따라 들어가겠소. 우리는 죽을지라도 함께 죽어 제환공과 이 나라 은혜에 보답합시다."
"우리 두사람이 말하면 일은 좀 쉬워질 것 같소. 그러나 제나라 녹을 먹는 자는 다 이 나라 신하인지라. 그들을 불러 모아 함께 조당에 가서 일단은 장자인 공자 무휴를 받들어 주상(主喪)을 삼는 것이 어떻겠소?"
"세자가 지금 나라 안에 없으니 당분간 장자로 주상을 삼아도 괜찮을 것이오."
두 노대신은 사람을 사방으로 문무 백관의 집에 보내어 관원들을 불러모았다. 문무 백관들은 두 노대신을 따라 통곡하면서 궁으로 들어 갔다. 일반 관원들도 그제서야 두 노대신이 나서는 걸 보고는 안심하고 각기 상복으로 차려 입고 궁으로 들어갔다. 조문을 지키던 수작이 들어오는 두 노대신의 앞을 가로막고서 물었다.
"두 노대부께서 오신 뜻은 무엇이옵니까?"
고호가 대답했다.
"공자들이 서로 겨루며 양보하지 않으니 이러다가 한이 없겠다. 우리는 공자 무휴에게 청하여 주상(主喪)이 되어 달라고 왔을 뿐 다른 뜻은 없노라."
수작은 그제야 고호를 안내했다. 고호는 문무 백관에게 모두 열을 지어 자기 뒤를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마침내 고호, 국의중과 함께 모든 신하들이 조문으로 들어가 바로 조당에 있는 무휴 앞으로 갔다. 노대신 고호가 말했다.
"신들이 듣건대 부모의 은혜는 천지와 같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자식된 자는 그 부모가 살아계실 때엔 정성껏 공경하고 그 부모가 세상을 떠나시면 빈(殯)하여 장사 지내는 법입니다. 신들은, 이 세상에서 아버지가 죽었건만 염도 하지 않고 부귀만 다투는 아들들을 전엔 듣지도 보지도 못했습니다. 더구나 임금은 신하의 근본입니다. 임금이 불효하거늘 신하가 어찌 충성을 다하겠습니까. 선군이 세상을 떠나신 지도 2개월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아직 입관도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이러고도 공자는 정전에만 앉아 있으면 마음이 편안합니까?"
이 말을 하고 고호는 눈물을 흘렸다. 그러자 모든 신하는 땅바닥에 엎드려 통곡했다. 무휴가 눈물을 주르르 흘리면서 대답했다.
"나의 불효는 하늘에까지 사무쳤으리라. 나는 전부터 상례를 다스리려고 했으나, 저 공자 원 등이 아직도 나를 노리고 있으니 어찌하리오."
국의중이 대답했다.
"세자는 이미 다른 나라로 가고 없습니다. 공자가 가장 나이 많은 장자이니 공자가 주상이 되어 선군의 상사를 다스리면 군위는 자연 공자에게 돌아갈 것이오. 공자 원 등이 비록 전각마다 웅거하고 있으나 만일 그들이 방해한다면 우리 노신이 이치로써 그들을 꾸짖겠소. 그럼 누가 감히 공자와 다투겠소."
무휴가 눈물을 닦고 군위에서 내려와 두 노대신에게 절하고 말했다.
"바로 내가 원하던 바입니다."
고호가 역아와 수작에게 분부했다.
"당신들은 정전의 양문을 지키고 있다가 상복을 입고 들어오는 공자들만 궁중으로 들여보내시오. 만일 군사를 거느리고서 들어오는 공자가 있거든 즉시 사로잡아 죄로써 다스리시오."
이에 수작이 먼저 담을 헐어내고 제환공의 침궁에 가서 주선했다. 한편 제환공의 시체는 침상 위에 처음 그대로 누워 있었다. 두 달이 지났건만 그동안 아무도 들어와 보는 사람이 없었던 것이다. 비록 추운 겨울이지만 침상 위의 시체는 피와 살이 다 일그러져 있었다. 실내는 시즙 냄새에 코를 들 수 없었다. 시체에서 생겨난 개미만큼씩한 벌레들이 높은 담장 바깥까지 나와서 기어다니고 있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어디서 이런 벌레가 생겨났을까 하고 의심했다. 문을 열고 침실로 들어가서야 시체의 썩어 문드러진 오장 육부 사이로 벌레들이 바글바글 들끓는 걸 보고서는 그 처참한 광경에 모두가 크게 놀랐다. 무휴가 방성 대곡하자 모든 신하도 일제히 통곡했다. 그날로 널을 짜고 성대히 시체를 염했다. 비록 성대하게 염은 했으나 워낙 시체가 몹시 상해서 겨우 수의로 쌌을 정도였다. 그러나 안아아의 얼굴은 산 사람과 같았고 몸도 매운 절개를 짐작할 수가 있어서, 차탄하여 마지 않았다. 동시에 안아아의 널도 짜고 염도 했다. 고호는 모든 신하와 함께 무휴를 주상으로 받들고 각기 지위에 따라 차례로 늘어서서 곡하고 조문했다. 그날 밤에 그들은 다 함께 영구 곁에서 밤을 밝혔다. 한편 공자 원, 공자 반, 공자 상인은 각기 다른 전각에서 웅거하고 있다가 고호, 국의중 두 노대신이 문무 백관과 함께 상복으로 차려 입고 입궁(入宮)하는 걸 보고서 무슨 일인지를 몰라 궁금했다. 나중에야 세 공자는 그들이 선군을 이미 수렴하고 무휴로 주상을 삼고 상례가 끝나면 그를 임금으로 추대한다는 소문을 듣고서 각기 군사를 거두었다.
"고호, 국의중 두 노대신이 주동이 되어 일을 추진하니 우리는 능히 다투지 못하겠구나!"
모든 공자는 그제야 상복에 마대를 두르고 치상하는 데에 들어가서 형제가 서로 방성 통곡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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