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종장 : 한 시대의 별은 떨어지고
2. 제환공의 죽음
안아아의 탄식
다시 눈을 부릅뜨고 부르짖었다.
"하늘이시여 하늘이시여! 소백은 진정 이렇게 죽어야만 합니까!"
제환공은 원통해서 연거푸 부르짖더니 입에서 피를 줄줄 쏟았다.
"내가 사랑했던 계집이 여섯이며 자식이 10여 인이지만, 지금 내 눈 앞에 하나도 없구나. 다만 네가 혼자 나의 죽음을 전송하니, 내 평소에 너를 후대하지 못한 것이 진실로 부끄럽구나."
안아아가 조용히 대답했다."청컨대 주공은 천만 자애하소서. 주공께서 불행하시면, 원컨데 첩도 목숨을 버리고 떠나시는 길을 따라가겠습니다."
"내 죽어 만일 아무것도 모른다면 다행이지만, 죽어서도 아는 것이 있다면 무슨 면목으로 지하에 가서 먼저 간 중부를 대할까."
제환공은 탄식하고 옷소매로 자기 얼굴을 가렸다. 제환공은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쓰러진 그대로 연신 탄식하다가 운명했다. 제환공은 주장왕 12년 5월에 즉위하였다가 주양왕 9년에 세상을 떠났으니 군위에 있은 지 43년이요, 수(壽)는 73세였다. 안아아는 제환공이 운명한 걸 보고 크게 흐느껴 통곡했다. 그러나 바깥 사람들에게 알리려 해도 워낙 담이 높아서 소리가 전해지질 않았다. 담을 넘어는 왔지만 나가려니까 발판 하나 구할 수 없었다. 안아아가 이리저리 생각하다가 탄식했다.
"내 죽어서 상감의 영혼을 저승까지 전송하겠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상감의 시체를 염하는 것은 나 같은 부녀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안아아는 웃옷을 벗어 제환공의 시체를 덮어 주고, 제환공의 시체가 누워 있는 침상 아래에서 머리를 조아리며 속삭였다.
"상감의 영혼은 멀리 가지마소서. 첩이 뒤따라가 모시겠습니다."
그녀는 일어나더니 굵은 기둥에다 자신의 머리를 짓찧었다. 안아아의 머리는 즉시 깨어지면서 피가 줄줄이 흘러내렸다. 안아아는 몇 번 비틀거리다가 그 자리에 넘어지면서 숨을 거두었다.
장하구나 여인이여!
그날 밤에 어린 내시는 담 구멍을 열고 침실 안으로 들어갔다. 침실 기둥 아래로 가득히 퍼진 피 위에 죽은 사람의 머리카락이 벌겋게 늘어붙어 있었다. 어린 내시는 자세히 볼 겨를도 없이 기절 초풍을 하고 벌벌 떨며 밖으로 기어나갔다. 어린 내시는 역아와 수작에게 가서 제환공이 죽었다는 것을 보고했다.
"주공은 기둥에 머리를 짓찧고 자결하셨더이다."
역아와 수작은 그 말이 믿어지지가 않았다. 곧 궁중 군사들을 시켜 그 담 한구석을 크게 뚫었다. 역아와 수작은 새로 뚫린 담 구멍을 지나 침실로 들어갔다. 그들은 의외로 머리를 산발하고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져 죽은 한 여자의 시체를 보고서 크게 놀랐다. 뒤따라 들어온 내시들 중에서 한 사람이 그 시체를 자세히 보고 말했다.
"이는 안아아입니다."
창가에 있었던 대선 두 개가 언제 옮겨졌는지 침상을 가리고 있었다. 안아아의 웃옷에 덮여 있는 제환공은 말도 않고 움직이지도 않았다. 제환공은 아는 것도 없고 감각도 없었다. 한낱 변질해 가는 물체에 불과했다. 슬프고 애달픈 일이다. 그가 언제 운명했는지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수작은 발상할 일을 역아와 함께 상의했다. 역아가 말했다.
"서두르지 마오. 천천히 합시다. 우선 공자 무휴의 군위부터 정한 뒤에 발상합시다. 그래야만 여러 공자들 사이에 분쟁이 일어나지 않을 것이오."
수작은 역아의 말에 찬성했다. 두 사람이 함께 장위희의 궁으로 가서 비밀히 아뢰었다.
"주공은 세상을 떠났습니다. 형제간에도 차례가 있은즉 부인의 아드님이 맏공자이니 군위를 이어야 마땅하십니다. 다만 지난날 선군이 생존시에 공자 소를 세자로 세우고 장래 일을 잘 봐달라고까지 송후에게 수차 부탁한 일이 있어, 모든 신하들도 그걸 다 알고 있습니다. 지금 주공이 세상을 떠났다는 걸 발표하면 세자 소를 군위에 앉히자고 날뛸 놈들이 많습니다. 신들은 궁중 군사들을 거느리고 우선 세자 소부터 죽이고서 장공자를 군위에 모시겠습니다."
장위희가 은근히 부탁했다.
"나는 부녀자라 무엇을 알겠소. 다만 매사를 그대들에게 완전히 맡기고 믿을 뿐이오."
역아 . 수작의 반란
역아와 수작은 각기 궁중 군사를 거느리고 세자 소를 잡으러 동궁으로 쳐들어갔다. 한편 세자 소는 궁중에 가서 부친을 문병하지 못해 늘 고민이었다. 그날 밤이었다. 세자 소는 등불을 밝히고 홀로 앉아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느라고 잠을 이루지 못했다. 그는 갑자기 정신이 황홀했다. 비몽사몽간이었다. 저편 바깥에서 한 부인이 들어왔다.
"세자는 속히 일어나 몸을 피하십시오. 지금 곧 불행이 닥쳐옵니다. 첩은 안아아입니다. 선군의 간곡한 분부를 받고 이 일을 알리러 급히 왔습니다."
세자 소는 좀더 자세한 걸 물어보려고 했다. 부인은 팔을 뻗어 세자 소를 번쩍 들어올렸다가 던졌다. 세자 소는 떨어지면서 봤다. 수만 길이나 되는 절벽 아래 깊은 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위로 그는 떨어지고 있었다. 그는 외마디 소리를 지르면서 놀라 깼다. 사방이 조용하고 부인은 없었다. 등불만 환히 방안을 비추고 있었다. 꿈으로선 너무나 심상치 않은 꿈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예사로 생각해 버릴 꿈이 아니었다. 그는 곧 시자를 깨워 그에게 등불을 들려 가지고 뒷문으로 나갔다. 동궁 밖으로 나와 그는 그 길로 상경 벼슬에 있는 고호의 집에 가서 대문을 두드렸다. 고호가 세자를 보고 놀랐다.
"이 밤중에 세자께서 웬일이십니까?"
세자 소는 방으로 들어가 앉자 곧 고호에게 꿈 이야기를 상세하게 했다. 고호가 말했다.
"주공께서 병 드신 지도 반 달이 지났습니다. 간신들이 안팎에 들끓어서 소식이 막혀 알 순 없지만 세자의 꿈은 좋은 징조라 할 수 없습니다. 꿈에 나타난 부인이 선군이라고 말했으니 주공께서 세상을 떠나신 것이 확실합니다. 꿈이란 허황하다지만, 이런 경우는 믿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세자는 잠시 국경 밖으로 몸을 피하사 뜻밖의 재앙을 피하도록 하십시오."
세자 소가 물었다.
"어디로 가야 안심하고 살겠소?"
고호가 대답했다.
"주공이 지난날 송공에게 세자를 부탁한 일이 있습니다. 우선 송나라로 가십시오. 송공이 잘 도와드릴 것입니다. 나는 나라를 지켜야 할 몸이기 때문에 함께 떠나지 못하겠습니다. 나의 문하생에 최요란 사람이 지금 동문을 지키는 책임자로 있습니다. 곧 사람을 보내어 동쪽 성문을 열도록 하겠으니 세자는 이 밤 안으로 떠나십시오."
고호의 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 아랫사람이 들어와서 고했다.
"궁중 군사들이 지금 동궁을 포위했다고 합니다."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란 세자 소는 얼굴이 흙빛으로 변했다. 세자 소는 즉시 백성의 옷으로 변복하고 고호의 심복 부하 한 사람을 따라 동문으로 갔다. 최요는 고호의 심복 부하로부터 쪽지를 받아 읽더니 곧 큰 자물쇠를 열고 빗장을 벗기고 성문을 열어, 한두 명이 빠져 나갈 만큼 벌어지게 했다. 세자 소가 초라한 행색으로 막 성문을 나가려는데, 문을 지키던 최요가 청했다.
"지금 주공이 살아계신지 돌아가셨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성문을 열어 주고 세자를 내보냈다는 죄는 중죄인지라 벌을 면할 수 없습니다. 세자께서 홀로 떠나는 모양이시니 만일 버리지 않으신다면 이 최요도 함께 세자를 모시고 송나라로 가고 싶습니다."
세자 소가 크게 기뻐하면서 대답했다.
"네가 만일 나와 함께 가겠다면 이는 또한 내가 바라던 바다."
최요는 즉시 조그만 수레를 끌고 나왔다. 최요는 세자 소를 수레에 올려 모시고 말고삐를 잡고서 송나라를 향해 급히 떠나갔다. 한편 역아와 수작은 궁중 군사를 거느리고 동궁을 철통같이 에워싸고 들어가서 샅샅이 뒤졌다. 그러나 세자 소의 모습은 커녕 그림자도 나타나질 않았다. 한참 동궁 속을 샅샅이 뒤지며 세자를 찾는데, 벌써 사경을 알리는 종소리가 멀리서 들려 왔다. 역아가 수작에게 말했다.
"우리들이 비밀히 동궁을 에워싼 것은 세상도 모르게 쉽사리 세자를 잡기 위함이라. 점점 날이 밝아지면 다른 공자들이 사세를 눈치채고 우리가 이러고 있는 동안에 조당을 점령할지 모르오. 그러면 큰일을 망치고 마오. 여기서 머뭇거릴 때가 아니오. 속히 궁으로 돌아가서 장공자 무휴를 모시고 다른 사람의 태도를 살펴본 후 선군의 장례를 지내는 일이나 새 군위를 모시는 뒷일을 처리합시다."
수작이 대답했다.
"그 말이 바로 내 뜻과 같소."
두 사람은 곧 군사를 거두고 급히 궁으로 돌아갔다. 역아와 수작이 궁에 이르기 전에 이미 조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문무 백관들이 분분히 궁중 뜰에 모여들었다. 궁으로 들어간 사람은 대부 벼슬을 사는 고씨, 국씨, 관씨, 포씨, 진씨, 습씨, 남곽씨, 북과씨, 여씨 등의 일반 자손과 모든 신하와 백성들로서, 그 사람들을 다 헤아릴 수 없을 정도였다. 모든 관원들은 역아와 수작이 궁중 군사를 거느리고 어디론지 나갔다는 소식을 듣고 반드시 궁중에 무슨 변이 일어난 걸로 알고, 각기 사람을 조방으로 보냈었다. 조방에선 벌써 제환공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문이 퍼져 있었다. 그래서 관원들은 일제히 궁중으로 몰려들어갔던 것이다. 다시 동궁이 포위됐다는 보고가 들어오자, 모든 관원은 모여 앉아 상의하기 시작했다.
"이는 간신들이 기회를 이용하여 권세를 잡고자 난을 일으키려는 것이오."
"그나저나 세자는 우리 주공께서 봉하신 바니 이제 세자를 잃으면 우리는 무슨 면목으로 제나라 신하라고 할 수 있으리오.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오."
모든 관원은 동궁의 포위를 풀고 세자 소를 구출할 방도에 대해서 의논했다. 이 때 역아와 수작이 군사를 거느리고 궁으로 돌아왔다. 문무 백관들이 사면 팔방에서 역아와 수작에게 중구 난방으로 물었다.
"세자는 지금 어디에 계시오?"
역아가 팔짱을 끼고 대답했다.
"세자 무휴는 지금 궁중에 계시오."
문무 백관들이 벌집을 쑤신 듯이 외쳤다.
"무휴는 세자로 책봉된 일이 없소. 그는 우리의 주공이 될 수 없소. 속히 세자 소를 모셔오오!"
수작이 칼을 쑥 뽑아 들고 대답했다.
"우리는 공자 소를 추방했소. 이제 선군의 유언대로 장자 무휴를 임금으로 세우겠소. 복종하지 않는 자는 이 칼로 참할 터이니 알아서 하시오."
모든 관원이 어지러이 떠들며 욕을 해댔다.
"이건 너희 간신들의 수작이구나. 죽은 임금을 속이고 산 사람을 업신여기는 수작일랑 집어치워라. 너희가 맘대로 권세를 써서 무휴를 군위에 세운다면 우리는 맹세코 신하란 말을 쓰지 않겠다."
대부 관평이 모든 관원을 대표해서 앞으로 나섰다.
"저, 두 간신놈부터 처치하여 죽여야만 모든 재앙의 뿌리를 뽑을 수 있소. 그런 연후에 우리 세자 소를 모시고 다시 앞일을 상의합시다."
그리고는 손에 든 아홀로 수작의 얼굴을 후려갈겼다. 수작은 두 번째 날아오는 관평의 아홀을 칼로 막았다. 노기 등등한 모든 관원은 관평을 도우려고 앞으로 달려나갔다. 이를 보고서 역아가 대성 일갈했다.
"너희 궁중 군사들은 왜 그러고 가만히 섰느냐. 냉큼 저 놈들을 무찔러라!"
수백 명의 군사는 그제야 각기 칼을 뽑아들고 몰려드는 관원에게로 쳐들어갔다. 맨주먹인 관원들은 군사들의 칼을 맞고 외마디 소릴 지르며 이리 쓰러지고 저리 쓰러졌다. 관원들은 무기 외에 수효로도 군사들에게 당적할 수가 없었다. 궁중 뜰이 전장이 되고 피비린내가 진동하니 그 형상이 몹시 처참했다. 마침내 백관들 중에서 난군의 손에 죽어 쓰러진 자만 해도 10분의 3이나 됐다. 그 외에 부상당한 관원도 상당히 많았다. 관원의 수효는 급격히 줄었다. 끝내 더 대항할 수 없게 되자, 남은 관원들은 조문 밖으로 달아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