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8. 왕후장상의 씨가 따로 있는가!(진승, 오광)
좌절된 진격
당시 진나라의 폭정에 시달리고 있던 백성들은 제각기 군수와 현령 등 관리들을 죽이고 진승에게 속속 합류했다. 그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진승의 군대는 무려 수십 만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 초나라의 곳곳에는 수천 명씩 떼지어 다니는 무장 집단이 있었고, 이들이 일제히 진승에게 호응했기 때문이다. 진승은 그 당시 명망높은 인사였던 무신, 장이, 진여를 시켜 옛날 조나라의 영토를 공격케 하였으며, 옛 위나라 땅에는 그곳 출신인 주시를 파견하여 평정하게 하였다. 그러면서 주력부대는 오광을 부왕으로 삼아 진나라로 진격하도록 명령하였다. 하지만 오광은 형양 지방을 포위한 채 쉽게 승리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승상 이사의 아들인 이유가 삼천 군수로 있으면서 방어를 굳게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편 진승은 선비 출신의 참모도 얻게 되었는데 바로 주문이라는 사람이었다. 그는 일찍이 유명한 항연 장군의 부하였으며, 또 춘신군을 섬긴 일도 있었던 사람이었다. 원래 진승의 군대에는 선비 출신이 거의 없었던 상태였으므로, 진승은 주문을 얻자 매우 기뻐했으며 그를 크게 신뢰하여 장군으로 삼았다. 그러면서 주문으로 하여금 진나라 공격을 담당하도록 명령하였다. 주문의 군대는 진나라로 진격하는 도중에 병력을 크게 증강하여 함곡관에 이르렀을 때에는 이미 전차 1천 대, 병졸 수십 만으로 불어났다. 그리하여 주문은 단숨에 함곡관을 돌파하고 희 지방에 진을 쳐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이 때 진나라에서는 장군 장항이 죄인들과 노예로 구성한 부대를 이끌고 나와 맞섰다. 그런데 이 전투에서 실전 경험이 부족했던 주문은 적은 군사로 너무 깊숙이 적진으로 들어감으로써 장한 군대의 반격에 말려 3개월을 버티다가 패했으며, 다시금 면지 지방까지 철수하게 되었다. 면지 지방에서도 10여 일간 싸우다가 결국 패배한 주문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병사들은 흩어져 버렸다.
반란군의 분열
한편 조나라 공격을 명령받았던 무신 일행은 조나라 평정에 성공하자 진승과 상의도 없이 스스로 조나라 왕이라 칭하고 진여를 대장군에, 그리고 장이를 승상에 임명했다. 이 소식을 들은 진승은 크게 노하여 그들의 남아 있던 가족들을 잡아들여 처형하려 했다. 그러자 신하들이 말렸다.
"지금 큰 적인 진나라도 아직 무찌르지 못했는데, 그들의 가족을 죽이는 것은 적을 또 하나 만들뿐입니다. 차라리 기분좋게 승인해 주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
이 말을 들은 진승은 사신을 파견하여 무신의 즉위를 축하하고 그 가족들도 잘 대해 주었다. 그런 후 진승은 무신에게 즉시 진나라 공격에 나설 것을 명령하였다. 그러자 무신은 회의를 소집하여 방법을 논의하였다. 그 자리에서 부하들이 이렇게 말했다.
"지금 폐하께서 즉위하신 일을 진승은 결코 달가워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만약 진나라를 멸망시킨다면 반드시 그 공격의 방향이 우리 나라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차라리 북쪽의 연나라를 평정하여 세력을 확대하는 편이 가장 좋을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비록 진승이 진나라를 멸망시킨다 하여도 우리 나라를 쉽게 공격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이 의견에 동조한 무신은 연나라 출신이었던 한광에게 많은 군사를 주어 연나라 평정의 임무를 맡겼다. 그런데 한광이 연나라를 평정하자, 그곳의 유지들이 한광에게 간청하고 나섰다.
"초나라와 조나라에는 이미 왕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 기회에 우리 나라에도 왕이 계셔야 합니다. 바라옵건대 장군께서 우리의 왕이 되어 주십시오."
한광은 몇 번이나 사양했지만, 결국 그 뜻을 받아들여 연나라 왕에 즉위하였다. 그리고 위나라 공략에 나섰던 주시는 위나라 평정에 간신히 성공했는데, 그곳에서도 주시를 왕으로 세우려는 운동이 일어났다. 주시는 한사코 사양하다가 결국 옛날 위나라 왕손이던 구를 대신 왕으로 세우고, 자신은 재상이 되었다. 이렇게 하여 반란군은 제각기 독립하여 분열되어 버렸다.
한 점 불꽃이 광야를 불사르다
한편 반란군들이 뿔뿔이 흩어져 진승의 군대에 패색의 기운이 감돌자 갖가지 음모가 일어나고 있었다. 특히 형양에서 머뭇거리고 있던 오광의 부하들 중에서는 오광을 없애려는 음모까지 생겨났다. 어느 날 오광의 부하들이 모인 자리에서 전장이라는 장수가 이렇게 제의했다.
"엊그제 주문의 군사도 대패하여, 주문이 자결하였다. 그 주문을 이긴 장한의 군대는 반드시 이쪽으로 쳐들어올 것이다. 이제까지 우리는 이곳 형양에서 한 치도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데, 장한의 군대가 나타난다면 우리 패배는 불보듯 뻔하다. 우선 형양을 포위할 병력을 최소화하고, 나머지 정예군은 장한의 공격에 대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가 이다. 바로 오광이란 작자이다. 그 작자는 욕심만 태산처럼 많을 뿐, 병법에는 일자무식이다. 도무지 얘기가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우선 오광부터 없애야 한다. 오광이 있는 한, 우리는 개죽음 당할 뿐이다."
이 제의에 나머지 장수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은 즉시 행동을 개시하여 오광을 죽이고, 그 머리를 진승에게 바쳤다. 진승은 매우 화가 났으나 모든 장수들이 들고 일어난 일인지라 할 수없이 전장에게 장군의 자리를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그 뒤 전장은 정예군을 이끌고 형양성을 빠져 나가 장한의 군대와 일전을 벌였다. 그러나 전장은 여지없이 패하고, 자신도 전사했다. 전장을 격파한 장한은 여세를 몰아 진승의 척후대를 궤멸시켰으며, 계속하여 진승의 본부대까지 공격해 들어왔다. 이에 진승도 손수 출전하여 독려했으나, 기울어진 전세를 뒤집을 수는 없었다. 크게 패배한 진승은 후퇴에 후퇴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진승은 자신의 수레를 끌던 마부 장가라는 사람에게 목숨을 빼앗기고 말았다. 장기는 진승을 죽인 후 진승의 시체를 들고 진나라에 항복했다. 그러나 얼마 후 진승의 부하였던 장군 여신이 다시금 군대를 조직하여 점령당했던 영토를 되찾고 장가를 처형시켜 원수를 갚았다. 그리하여 진승은 왕이 된 지 불과 6개월 만에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그는 진나라를 멸망의 길로 빠뜨린 주역이었다. 실제 그가 각 지방에 파견했던 장군들이 곳곳에서 진나라를 격파하고 있었다. 비록 그는 스스로 완성을 시키지는 못했지만 진나라 붕괴의 서막을 열어젖히는 반란의 불꽃을 피워냈던 것이다. 그래서 결국 이 불꽃은 유방에 이르러 천하제패의 결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런 이유로 유방은 천하 통일 이후 진승의 묘를 크게 짓고 제사도 성대히 모시도록 하였다.
옛 친구를 잃으면 천하를 잃는다
진승이 왕으로 있을 때의 이야기이다. 일찍이 머슴살이를 할 때 함께 일했던 옛 친구 하나가 진승이 왕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왔다. 그는 궁궐의 문을 두드리며,
"진승을 만나고 싶다."라고 청했다.
"웬 놈이냐. 냉큼 사라지지 못할까."
수문장의 서릿발 같은 호령이 떨어졌다. 그러자 그 친구는 자기가 진승과 매우 친했다는 등 계속 떠벌렸다. 하지만 수문장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그 친구는 계속 문 앞에 있다가 외출하려는 진승을 보았다.
"승! 날세."
진승도 그를 금방 알아보았다. 그리고는 자기 수레에 그를 태워 궁궐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궁궐을 처음 본 그 친구는 이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야! 기막힌 곳이구나. 승이도 정말 출세했군. 도대체 이 집은 어디까지 계속되는 거야?"
진승은 빙그레 웃을 뿐이었다. 그날부터 그 친구는 마음대로 궁궐을 출입하며 멋대로 행동했다. 또 아무에게나 진승과 같이 머슴살이 하던 시절의 이야기를 떠벌리고 다녔다.
이윽고,
"그 시골 사람은 곤란합니다. 할 말 못할 말 가리지 않고 마구 지껄이고 다녀 대왕의 위엄을 땅에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진승은 결국 그 친구를 잡아 처형시켜 버렸다. 그러자 진승의 옛 친구들은 모두 궁궐에서 자취를 감추고, 진승은 외로운 처지가 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진승은 주방과 호무라는 두 사람에게 감찰업무를 맡기고 있었다. 그런데 그 두 사람은 무슨 일이든 엄격하게 문초하는 것이 충성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장군이 승리하고 돌아올 때에도 왕의 명령을 완전히 따르지 못했다고 죄인으로 취급하여 포박하려고 덤빌 정도였다. 그리고 그런 두 사람을 진승은 무조건 신뢰하였다. 그래서 모든 장군들이 진승을 가까이 하지 못했다. 이것이 진승의 패인이었던 것이다. 실로 가까운 친구로부터 신뢰를 얻지 못한다면 천하를 얻을 수 없다는 옛말은 진실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