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6. 고목나무가 꽃을 피우다(춘신군 2/2)
춘신군의 전성시대
춘신군이 초나라의 재상이 되었을 무렵에 전국 4공자라 하여 제나라에는 맹상군이 있었고, 조나라에는 평원군이 있었으며, 위나라에는 신릉군이 있어서 바야흐로 앞을 다투어 선비들을 예우하여 식객으로 삼았다. 그리하여 서로 남을 기울게 하고 자신의 나라를 돕고, 권력을 유지하려고 했던 것이다. 춘신군이 초나라의 재상이 된 지 4년 후에 진나라는 장평싸움에서 조나라 군사 40만을 격파했고, 이듬 해에는 조나라의 한단을 포위한 일이 일어났다. 이때 조나라가 초나라에 위급한 사정을 호소하였으므로 춘신군은 군사를 이끌고 가서 구원하게 되었는데 마침 진나라 군대가 물러났기 때문에 춘신군도 귀국하였다. 춘신군은 재상이 된 지 8년 만에 북벌을 감행하여 노나라를 멸망시켰다. 이때에 초나라는 다시 강성해졌다. 어느 날 평원군이 춘신군에게 사신을 보냈는데 춘신군은 그를 임금의 객사에 머물게 하였다. 그런데 그 사신은 자기를 과시하고 싶어서 대모로 만든 비녀와 주옥으로 장식한 칼집을 가지고 춘신군의 식객들을 불러서 만났다. 그런데 춘신군의 식객은 3천 명으로 그 중의 많은 수가 모두 구슬로 장식한 신을 신고서 사신을 만났으므로 그 사신은 오히려 크게 부끄러워했다.
춘신군이 재상이 된 지 14년이 되었을 때 진나라의 장양왕이 왕위에 오르고 여불위를 재상으로 삼았다. 춘신군이 재상이 된 지 22년 후에는 제후들이 진나라의 공격과 정벌이 그칠 날이 없음을 우려하고 서로 합종을 하여 서쪽으로 진나라를 정벌하기로 하였다. 이때 초나라의 왕이 책임자가 되고 춘신군이 그 실무를 담당하였다. 연합군이 함곡관에 이르렀을 때 진나라가 군대를 보내 공격을 하자 제후의 군대가 모두 패하여 달아났다. 고열왕은 그러한 일을 춘신군의 잘못으로 돌렸다. 이 일로 인하여 춘신군은 왕과 거리가 멀어졌다. 이때 춘신군의 빈객 중에 주영이라고 하는 자가 있었는데, 그는 춘신군에게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은 모두 초나라는 강대한데 나으리께서 나약한 군대로 만들어 사용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선왕 시절에 진나라와 친선을 한 기간이 20년이 되는데도 진나라가 우리를 공격하지 않은 것은 무슨 까닭이겠습니까? 진나라가 요새를 넘어서 공격하는 것이 불편하며, 동주, 서주에게 길을 빌리고, 한, 위를 등지고 우리 나라를 공격한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사정이 다릅니다. 위나라는 아침, 저녁으로 망할 형편이므로 허땅을 할양하여 진나라에게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진나라 군대가 우리 나라의 수도인 진성과 160리 정도의 짧은 거리를 두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제가 보는 바로는 앞으로는 진나라와 초나라가 날마다 전쟁을 하리라는 것입니다."
춘신군은 이 말을 옳다고 여겨 왕에게 말하니, 초나라는 드디어 수춘으로 수도를 옮겼다.
꽃을 나무에 접붙이다
초나라의 고열왕은 아들을 낳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원래 춘신군은 이를 걱정하여 아들을 나을 만한 부인을 구하여 왕에게 바쳤으나 끝내 아들을 낳는 데 실패하였다. 그때 조나라 사람인 이원이 누이동생을 데리고 와서 왕에게 바치려고 하였다. 그런데 왕이 아이들 낳을 수 없다는 말을 듣고 오래도록 사랑을 받지 못할까 우려를 하였다. 그리하여 이원은 우선 제도가였던 춘신군을 섬기어 그의 가신이 되었다. 얼마가 지나자 그는 귀국을 하였다가 고의로 돌아오는 기일을 늦추었다. 그리고는 되돌아오니 춘신군이 늦게 된 사정을 물었다. 그러자 이원은 답하였다.
"제나라 왕이 사자를 보내어 신의 누이동생에게 구혼하여 그 사자와 술을 마시느라고 좀 늦게 되었습니다."
이에 춘신군이 물었다.
"누이를 들여보내기로 하였는가?"
"아직 드려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얼마나 미인인가 궁금하여 춘신군이 물었다.
"그럼 내가 한번 누이를 볼 수 있겠는가?"
이에 이원이,
"물론 볼 수는 있지요."
하고 곧 그의 누이동생을 바쳤다. 그의 누이동생은 과연 절세의 미인이었고, 곧 춘신군의 사랑을 받았다. 이원은 누이동생이 임신을 한 사실을 알고 누이동생이 임신을 한 사실을 알고 누이동생과 계략을 짰다. 이원의 누이동생은 한가한 틈을 타서 춘신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지금 왕이 나으리를 대우하고 사랑하는 정도는 형제라 하더라도 그렇게 깊지는 못할 것입니다. 지금 나으리께서 재상이 되신 지 20여 년이 흘렀습니다마는 왕께서는 아들이 없습니다. 그래서 왕께서 돌아가시고 난 뒤에는 다른 사람을 세울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니 나으리께서 어떻게 오래도록 사랑을 받으실 수 있겠습니까? 이것뿐만이 아닙니다. 나으리께서는 이제까지 왕의 형제들에 대하여 실례를 범한 것이 많습니다. 그리하여 그 형제들이 만일 왕위에 오른다면 화가 장차 나으리에게 닥칠 것이니, 나으리께서는 무엇으로 재상의 자리와 강동의 땅을 지키실 수 있겠습니까?"
그러자 춘신군이 다가오며 물었다.
"그럼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나도 실은 그것이 걱정이었네."
이에 그녀가 귀엣말로 이렇게 얘기하는 것이었다.
"이제 나으리께 처음으로 말씀드리는 것이지만 지금 첩은 나으리의 아이를 가졌어요. 하지만 다른 사람은 전혀 이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말씀드리는 것인데...."
그러자 춘신군이 재촉했다.
"무슨 말이건 두려워 말고 말해 보라."
그녀는 할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오해마시고 들어보십시오. 황송스런 말씀이오나 첩을 이제 왕에게 바치면 어떨까요? 나으리의 높은 지위로 첩을 왕에게 바친다면 왕은 반드시 첩을 사랑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첩이 하늘의 도움으로 아들을 얻게 된다면 이는 나으리의 아들이 왕이 되는 것이고, 나라를 모두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헤아릴 수 없는 죄에 걸려 드는 것에 비하면 낫지 않겠습니까?"
춘신군은 처음엔 깜짝 놀랐으나 한참을 생각해 보더니 드디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그는 곧바로 이원의 누이동생을 자기 집에서 내보내 근신하게 하고 왕에게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하였다. 왕은 그녀를 그 아들을 태자로 삼고, 이원의 누이동생을 왕후로 삼았다. 또한 왕은 이원을 가까이 하여 이원이 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다.
결단하지 못하면 도리어 당한다
이원은 그의 누이동생을 왕실에 들여보내어 왕후를 만들고, 그 아들을 태자로 세운 뒤 춘신군이 그러한 사실을 누설하고 더욱 교만해질까 두려워하여 은밀하게 암살자를 양성하여 춘신군을 죽임으로써 그의 입을 막고자 하였다. 그러나 사람들 가운데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는 자가 상당수 있었다. 춘신군이 재상이 된 25년 후에 고열왕이 병이 들었다. 이에 주영이 춘신군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세상에는 뜻밖에 찾아드는 복이 있고, 또 뜻밖에 찾아드는 화도 있습니다. 지금 나으리께서는 뜻밖의 일이 벌어지는 세상에 처하여 뜻밖의 일을 당할 왕을 섬기고 계시니 어찌 뜻밖의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어서야 되겠습니까?"
춘신군이 물었다.
"뜻밖에 찾아드는 복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주영이 대답하였다.
"나으리께서 재상이 되신 지 20여 년 동안 나으리의 위치는 실은 초나라의 왕이셨습니다. 지금 왕이 병이 들어서 아침 저녁 나절에 돌아가실 것입니다. 그러할 경우 나으리께서는 어린 군주를 모시게 되어 그의 대리로 왕의 자리에 서서 나라를 다스리게 될 것입니다. 이때 만일 이윤, 주공과 같이 하신다면 왕이 장성한 뒤에 국정을 되돌려 주시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나라를 차지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이른바 뜻밖에 찾아든 복입니다."
춘신군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뜻밖의 화란 무엇인가?"
"이원은 나라를 다스리지도 않은 사람으로서 나으리의 원수입니다. 그는 군대를 맡고 있는 것도 아닌데 암살자를 양성하고 있는 지가 이미 오래 되었습니다. 만약에 왕이 돌아가신다면 이원은 반드시 먼저 궁궐에 들어가 정권을 잡고 나으리를 죽임으로써 입을 막으려 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뜻밖의 화입니다."
이에 춘신군이 물었다.
"그렇다면 뜻밖의 사람이란 무엇인가?"
"나으리께서 신을 낭중의 자리에 임명하시면 왕이 돌아가신 뒤에 이원이 분명히 먼저 궁궐에 들 것인즉 신이 나으리를 위하여 이원을 죽이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뜻밖의 사람입니다."
이 말을 듣고 춘신군은 이렇게 말하였다.
"선생은 이제 그만하시오. 이원은 나약한 사람이고, 또 내가 그를 잘 대우하였는데 어떻게 그가 이러한 일까지 하겠소?"
주영은 자신의 계획이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알고 화가 자기 자신에게까지 미칠까 두려워하여 도망하여 초나라를 떠났다. 그리고 이런 일이 있은 뒤 17일 만에 고열왕이 죽었다. 이원은 과연 먼저 궁궐에 들어가 자객을 잠복시켰다. 드디어 춘신군이 문상하기 위해 궁궐로 들어오자 이원의 자객이 춘신군을 곁에서 부여잡고 찌르고는 그의 머리를 베어 궁궐 밖으로 던져 버렸다. 그리고 관리를 시켜 춘신군의 집안을 완전히 멸족시켰다. 한편 이원의 누이동생이 왕궁에 들어가서 낳은 아들이 마침내 왕이 되었으니 이 사람이 바로 유왕이다. 그러나 초나라는 춘신군이 죽고 나서 국력이 급속히 기울었으며, 결국 15년 만에 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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