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5. 천하가 붙잡아도 나의 길을 가련다(노중련, 추양)
2) 여자는 질투받기 쉽고 선비는 모함받기 마련이다(추양)
추양은 제나라 사람으로 위나라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그런데 양승이라는 사람이 추양을 시기하여 위나라 효왕에게 모함했다. 그러자 효왕은 노하여 추양을 잡아넣고 죽이려 했다. 추양은 자기 한몸 죽는 것은 그렇다치고 남의 중상을 받아 죽은 후 까지도 명을 쓰게 될 것이 두려워 옥중에서 왕에게 편지를 올렸다.
진실이 의심받는다
"'충성된 자는 보답을 받지 못하는 일이 없고, 진실한 자는 의심을 받는 일이 없다'라는 말이 있는데, 지금껏 저는 이 말이 진리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이것은 헛된 말에 지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옛날 형가는 연나라 태자 단의 신의를 흠모하여 단을 위해 진나라에 들어가 시황제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태자 단은 형가가 진나라에 가지 않을 것이라고 의심했습니다. 옛날 변화는 초나라 왕에게 보물 구슬을 바쳤지만 그것이 돌이라 하여 오히려 발을 잘리었고, 이사는 충성을 다했으나 호해 때문에 극형에 처해졌습니다. 기자가 미치광이를 가장하고 접여가 세상을 피한 것도 이런 일이 있을 것을 두려워 했기 때문입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변화, 이사의 마음을 살피시고 초왕이나 호해와 같이 참언을 받아들이지 마셔서, 제가 기자, 접여와 같은 웃음거리가 되지 않게 해주십시오. 또한 비간이 가슴을 찢기우고 자서가 말가죽 자루에 그 시체가 싸여져 장강에 버려진 일도 그때에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는데, 지금에 와서는 그들의 진실이 밝혀진 것입니다. 바라옵건대 대왕께서는 깊이 생각하시어 조금이라도 은혜를 베풀어 주십시오."
여자는 질투받기 쉽고 선비는 모함받기 마련이다
속담에 '백발이 되도록 사귀어도 처음 만나는 것처럼 차디찬 교제가 있는가 하면, 거리의 수레 그늘에서 한 마디 나누었건만 옛 친구를 만난 것 같은 교제도 있다'고 했습니다. 무릇 교제의 깊이는 세월의 길고 짧음에 관계치 아니하고 상대방 마음을 아느냐 모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옛날 번어기는 진나라를 피해 연나라로 가서 연나라 태자 단을 위해 자기 목을 형가에게 주어 진나라로 가지고 가라고 할 정도로 정성을 다했습니다. 제나라를 버리고 위나라로 갔던 왕사는 자기를 잡으려고 달려온 제나라 군사의 면전에서 성에 올라가 스스로 목을 찔러 위나라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했습니다. 왕사와 번어기는 원래 고국인 제나라와 진나라를 싫어했고 연나라나 위나라를 좋아했던 것은 아닙니다. 고국을 떠나서 남의 나라 임금을 위해 죽은 것은, 그 두 임금의 처사가 각각 두 사람의 뜻에 맞아서 그의 외로움을 사모하는 마음이 지극했기 때문입니다. 또 소진은 가는 곳마다 신임을 받지 못했었지만 오직 연나라에서만은 미생과 같이 신의를 지켰고, 백규는 중산국의 장수로서 여섯 성을 잃고 도망한 다음 위나라를 위해 중산국을 무찔렀습니다. 이런 일들은 오직 군주와 신하 사이에 서로 이해가 깊었기 때문입니다. 소진이 연나라 재상이 되었을 때, 소진을 왕에게 모함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왕은 칼을 만지며 그 모함하는 자를 혼냈고, 소진에게는 준마를 잡아서 크게 잔치를 베풀어 주었습니다.
또 백규가 중산국을 친 공으로 위나라에서 벼슬 자리에 나아갔을 때 위나라 문후에게 모함을 하는 중산국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문후는 이 모함을 받아들이지 않고, 백규에게 야광벽을 내렸습니다. 이런 일들은 두 임금, 두 신하가 각각 흉금을 터놓고 서로가 믿고 있었기 때문이니, 어떻게 뜬 말에 마음이 흔들릴 리 있겠습니까. 여자는 미인이건 추한 여자건 궁중에 들어가면 질투를 당하게 마련이고, 선비도 어질건 어리석건 조정에 들어가면 시기를 받게 마련입니다. 옛날 사마회는 송나라에서 다리를 잘렸는데 마침내는 중산국의 재상이 되었으며, 범수는 위나라에서 늑골을 꺾이고 이가 뽑혔지만 마침내는 응후가 되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언젠가는 누명이 벗겨지고 자기의 뜻을 펼 날이 돌아올 것을 확신하고 홀로 몸을 세워 나아갔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질투심이 많은 자들의 미움을 피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은나라의 충신 신도적은 스스로 강물에 몸을 던졌고, 서연은 돌을 지고 바다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비록 세상에서 인정은 받지 못했지만 임금의 마음을 혼란하게 하는 짓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에 백리해 거리에서 걸식을 하고 있었건만 진나라의 목공은 그에게 정사를 맡겼고, 영척은 수레 밑에서 소를 기르고 있었지만 제나라 환공은 그에게 국정을 맡겼습니다. 이 두 사람은 처음부터 조정에서 벼슬을 하면서 주위의 칭송을 받아 목공이나 환공에게 발탁되었던 것이 아닙니다. 임금과 신하가 서로 마음이 통하고 행동이 일치되면 아교나 옻칠보다도 더 굳게 맺어져, 형제간이라 할지라도 그 사이를 갈라 놓을 수는 없습니다. 하물며 뭇 사람들의 말에 현혹이 될 리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한 쪽 말만 들으면 간계가 생기게 되고 한 사람에게만 정사를 맡기게 되면 반란을 불러 오게 되는 것입니다.
뭇 사람의 말은 쇠라도 녹이고, 쌓이는 욕은 뼈라도 녹일 수 있습니다. 진나라는 서융인 유여를 써서 중국의 패자가 되었고 제나라가 월나라 사람 몽을 써서 위왕, 선왕을 강하게 한 것은, 이 두 나라가 속습에 얽매이지 않고 세정에 이끌리지 않았으며 아첨과 편파적인 말에 흔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의견을 공정하게 듣고 모두의 마음에 따라 그 이름을 당세에 떨치려면, 오랑캐나 월나라 사람이라도 마음만 맞으면 형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유여나 몽이 그 좋은 예입니다. 뜻이 맞니 않는다면 골육이더라도 멀리하고 쓰지 않습니다. 임금된 사람이 참으로 도리에 맞는 방법을 쓰면서 편벽된 방법을 물리친다면, 오패나 삼왕에 맞먹는 큰 공을 세우는 것도 쉬운 일입니다.
주 무왕은 가슴을 찢긴 가슴을 찢긴 충신 비간의 아들을 등용하고 배를 찢긴 임산부의 무덤을 가꾸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공적은 천하를 뒤덮었는데, 임금이 선을 구하되 억압하는 일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나라의 환공은 원수였던 관중을 등용하여 천하를 바로잡았습니다. 그것은 마음이 인자했고 충심으로 그들을 받아들였기 때문입니다. 마음에도 없는 반말로써 일시적으로 이용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러나 진나라는 상앙의 법을 써서 동쪽의 한, 위나라를 약하게 만들고 천하의 강국을 만들었는데도 끝내는 상앙을 거열형에 처했습니다. 월나라는 대부 종의 계략을 써서 오나라 왕 부차를 포로로 잡아서 중국의 패자가 되었건만 마침내 종을 주살했습니다. 그러므로 손숙오는 세 번 재상의 자리를 얻었어도 기뻐하지 아니했고, 세 번 그 자리를 물러나도 후회하는 일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제 임금이 교만한 마음을 버리고 공이 있는 사람에게는 보답할 마음을 가지고 끝까지 신하와 곤궁영달을 함께 하며 선비에게 관작봉록을 아낌없이 준다면, 폭군 걸왕의 개라 하더라도 성왕 요에게 짖을 수가 있고, 더척의 자객일 지라도 허유를 척살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물며 성왕의 명령이라면 누가 응하지 않겠습니까. 형가가 자신의 죄에 연좌되어 칠족을 죽게 한 일이라든가, 요리가 자신의 희생으로 자기 처자를 불타 죽게 한 것은 말할 필요조차 없겠습니다.
참된 인재를 구하려면
'명월주라든가 야광벽도 어두운 길을 걷는 사람에게 던지면 칼을 잡고 노려보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무런 인연도 없는데 눈 앞에 날아왔기 때문이다. 마구 꼬인 나무뿌리가 너무 굽어 있어 아무 소용 없을 것 같지만, 군주 그릇이 되는 것은 좌우에 있는 사람이 우선 그 뿌리를 조각하고 장식을 하여 군주에게 바쳤기 때문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무 인연도 없는데 눈 앞에 날아오면 야광벽일지라도 원한을 살 뿐, 덕이 될 수는 없습니다. 이와 반대로 누군가가 먼저 소개를 해 주면 마른 나무나 썩은 등걸을 바치더라도 공로가 있다 하여 잊혀지지 않는 법입니다. 오늘날 포의 곤궁한 선비로서 그 신분이 빈천한 사람은 비록 요, 순의 도를 안고, 비간의 뜻을 가지고 당시의 임금에게 충성을 다 하려고 해도, 마음과 생각을 다하여 임금의 통치를 보필하려고 해도 임금은 칼을 잡고 노려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일은 포의의 선비를 마른 나무나 썩은 등걸만도 못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군이 세상을 거느리고 풍속을 바로잡을 때는 뜻대로 세상을 교화시키고, 비천하고 혼탁한 말에 이끌리거나 근거없는 참언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아야 하는 것입니다. 진나라의 시황은 몽가의 말에 현혹되어 형가의 말만 믿다가 몰래 감춰 둔 비수에 찔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습니다. 이와는 달리 주나라의 문왕은 경수, 위수가에서 사냥을 하다가 강태공을 수레에 태우고 돌아와서 그의 도움으로 천하의 왕이 되었습니다. 진시황은 좌우에 있는 사람을 믿다가 죽을 변을 당할 뻔했고, 문왕은 새가 우연히 나무에 날아들 듯이 우연하게도 만난 사람을 써서 왕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문왕이 자신을 견제하는 말에 초연하고 특이한 포부를 세우며, 공명정대한 관점에 서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임금이 된 사람들은 아첨하는 소리에 빠지고 신첩에게 견제되며, 마치 하늘에라도 뛰어오를 수 있는 것 같은 인재들을 소나 말처럼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포초가 세상을 원망한 나머지 부귀의 팽개친 이유입니다. '정장을 하고 조정에 입궐하는 사람은 사사로운 이욕으로 도의를 저버리는 일이 없고, 명예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사람은 사욕 때문에 행실을 해치지 않는다'란 말이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현의 이름이 승모란 이유 한 가지 때문에 효자인 증자는 그 땅을 밟지 아니했고, 읍의 이름을 조가라 한다 해서 음악을 싫어하던 묵자는 수레를 되돌렸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임금들은 천하의 식견과 기량이 다 같이 위대한 선비들을 권력 앞에 무릎을 끓게 하여, 세력에 눌려 짐짓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고, 행실을 더럽혀 가면서까지 아첨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섬기게 하며, 좌우에 있는 사람들에게 친하고 가깝게 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래가지고는 뜻있는 선비는 험악한 바윗굴 속에 엎드려서 죽는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충과 신을 다하여 조정으로 향하려 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이 편지가 위나라의 효왕에게 바쳐지자, 효왕은 사람을 보내어 추양을 옥에서 데려다가 마침내 상객으로 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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