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3. 만약 그가 살아있다면 기꺼이 그의 마부가 되겠다(안영)
안자의 이름은 영으로, 보통 안영이라 불리웠다. 그는 춘추시대 때 제나라에서 상국이라는 높은 벼슬에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근면하고 검소하며 충실해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다. 식사 때 반찬도 두 가지를 넘지 않았고, 부인도 비단옷을 걸치지 못하게 했다. 또한 친구를 오래 사귀어 많은 결점이 보여도 결코 경의를 잃지 않았다.
음탕한 도둑놈인가, 임금인가
당시 제나라 군주는 장공이었는데, 매우 호색한이었다. 한번은 장공이 대신인 최서의 집에 가게 되었는데, 그의 아내가 절세의 미인인 것을 보고 매우 마음이 동했다. 그 후 장공은 기어코 그녀와 정을 통하고야 말았다. 그리고 일부러 사람들 앞에서 최서의 관을 벗겨 다른 사람에게 주면서 그를 모욕하기도 했다. 최서는 기필코 복수하기로 결심했다. 어느 날 최서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장공은 이때야말로 그의 아내와 밀통할 수 있는 기회로 여겼다. 그래서 곧바로 장공은 최서의 집으로 갔다. 그리고는 바로 부인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최서는 일이 이렇게 될 줄 알고 아내와 함께 방 안에서 문을 굳게 닫고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있었다. 그러자 장공은 애인이 자기 온 줄을 몰라 가만히 있는 것으로 알고 기둥을 잡고 휘파람 소리를 냈다. 이때 최서와 미리 짜고 대기하고 있던 최서의 친구인 가거가 대문을 닫아 걸고 왕의 호위병을 떼어 놓았다. 그리고 옆방에 숨어 있던 최서의 부하들이 손에 손에 무기를 들고 쏟아져 나왔다. 장공은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정원으로 도망쳤다. 그러나 이내 완전 포위당하고 말았다. 그러자 장공이 소리쳤다.
"나는 너희들의 임금이다. 냉큼 비키거라!"
그러나 부하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우리가 잡으려는 건 음탕한 도둑놈이다. 임금 같은 것은 우린 모른다."
그러면서 모두 달려들어 장공을 무참하게 죽여 버렸다. 조정 대신들이 이 소식을 듣고 모두 문을 걸어 잠근 채 두문불출했다. 하지만 안영은 서둘러 최서의 집으로 달려갔다. 그러나 문은 굳게 닫혀 있었다.
"군주가 나라일로 죽었다면 신하 또한 충성을 다해 죽겠지만, 군주가 사사로운 욕심으로 죽었다면 사랑받던 사람이 아니고서는 장례지낼 수 없지 않은가!"
안영이 이렇게 외치니 최서도 문을 열어줬다. 안영은 바로 달려 들어가 시체 위에 엎어져 통곡했다. 그리고는 일어나 세 번 발을 동동 굴러 애도하고 서둘러 나왔다. 그 때 최서의 부하들은,
"이번 기회에 저 안영이라는 자도 아예 없애버리는 것이 어떻습니까? 명령만 내리십시오." 하고 최서에게 거듭 권했다.
하지만 최서는, "아니 된다. 안영은 지금 세상의 인심을 얻고 있는 사람이다. 그를 없애면 천하도 잃게 될 뿐이다."하면서 부하들을 말렸다.
그 후 최서는 장공의 동생을 군주의 자리에 앉히니, 그가 바로 경공이었다. 그리고는 최서와 경공은 신하들을 한 명씩 불러내 충성을 서약받았다. 신하들은 모두 벌벌 떨면서 꼼짝 못하고 서약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안영의 차례가 왔는데, 그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꼿꼿이 서서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대답해 나가는 것이었다. 그러자 최서와 경공도 그의 높은 인품과 학식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그 후 경공은 안영을 상국으로 등용해 나라를 다시 맡겼다.
예의가 없으면 친구도 없다
그런데 그 나라에 월석보라는 품행이 단정하고 재주가 뛰어난 인물이 있었다. 그가 한번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그가 감옥으로 끌려 가던 도중에 마침 안영이 나들이 나왔다가 그를 발견했다. 안영이 월석보와 한참 얘기해 보고는 자기가 타고 온 말을 죄값으로 바치고 그를 풀려나게 했다. 그리고는 월석보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곧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 얼마 뒤 월석보는 안영을 찾아가 절교 선언했다. 이에 안영이 깜짝 놀라 의관을 갖추고 나와 물었다.
"나는 별 것 없는 사람입니다만, 귀하를 곤경에서 벗어나게 한 적이 있었는데 왜 나와 절교하겠다는 것인지요?"
그러자 월석보가 대답했다.
"군자의 가장 따분한 일이 지기가 없는 것이고, 가장 기쁜 일이 지기를 얻는 것이라 합니다. 전에 내가 잡혔던 것은 그들이 오해했기 때문인데, 당신이 나를 바로 보셔서 구해 주셨으니 당신은 지기입니다. 하지만 나를 예의로써 대하지 않았으니 진정한 친구라 할 수 없소. 차라리 구해주지 않고 그냥 둔 것만 일이오."
안영은 그 말을 듣고 나자, 그를 모셔들여 정중하게 예의로 대접했다.
마부와 아내
하루는 안영이 외출을 하는데, 마부의 아내가 문틈으로 자기 남편을 살펴보았다. 그랬더니 남편이 안영의 말을 모는데, 채찍을 휘두르면서 마치 자기가 재상인 양 의기양양해 하는 것이었다. 이윽고 저녁 때 남편이 돌아오자, 그녀는 남편에게 헤어지자고 말했다. 남편이 그 이유를 물으니 그녀는 이렇게 대답하는 것이었다.
"안영 어른은 키가 6척도 안되건만 재상으로 그 이름을 천하에 떨치고 계신데, 그 분을 보니 생각에 잠겨 겸손한 모습입니다. 그런데 당신은 8척이나 되는 몸을 가지고, 기껏 남의 마차나 끄는 처지에 잘난 체는 혼자 다 하고 있으니.... 그래서 헤어지기로 한 것입니다."
그러자 마부가 사과하며 말했다.
"당신 말이 옳소. 다시는 안 그럴 것이니 용서하구료."
그 후 마부의 태도는 몰라보게 겸손해졌다. 안영은 마부가 달라진 것을 느끼고 그에게 이유를 물었다. 마부로부터 자초지종을 듣게 된 안영은 자기 잘못을 반성해 고칠 줄 아는 점을 높이 평가해 군주에게 그를 추천했다. 그리하여 마부는 대부 벼슬에 오르게 되었다. 사마천은 이렇게 말한다.
"안영은 장공이 신하에게 죽음을 당했을 때, 그 시체 앞에 엎드려 곡하고 애도했으나 곧바로 자리를 떠 버리고 모반자를 치지 않았다. 그가 의를 보고도 행하지 않은 비겁자였던가? 그렇지 않다. 그는 임금에게 충간할 적에는 조금도 굽히지 않았다. 이는 참으로 '나아가서는 충성을 다할 것을 생각하고, 물러와서는 허물을 고칠 것을 생각한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만약 안영이 오늘 살아 있다면 나는 기꺼이 그의 마부가 되어도 무방할 만큼 그를 흠모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