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종장 : 한 시대의 별은 떨어지고
1. 권력 무상
포숙아의 기용
그 뒤 제환공은 관중의 유언대로 공손 습붕에게 나라의 일을 맡겼다.그런데 습붕은 국사를 맡아본 지 한 달도 못 되어 병이 나서 세상을 떠났다. 제환공이 길이 탄식했다.
"우리 중부는 성인이었던가. 습붕이 과인을 오래 섬기지 못할 것을 어찌 알았던가!"
제환공은 포숙아를 기용해서 다시 나랏일을 맡기기로 했다.
"저는 적임자가 아닙니다. 분부를 거두소서."
그러나 포숙아는 굳이 사양했다. 제환공이 간곡히 부탁했다.
"이제 조정에 경만한 사람이 없거늘 그렇다면 경은 누구를 천거할 생각이오."
포숙아가 대답했다.
"신이 지나치게 선을 좋아하고 악을 미워한다는 것은 죽은 중부도 말한 바 있고, 주공께서도 잘 알시는 바입니다. 청컨대 주공께서 역아, 수작, 개방 등 소인배를 가까이 하지 않고 멀리하시겠다면 저는 기꺼이 주공의 분부대로 거행하겠습니다."
제환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중부도 전에 그런 말을 하였소. 과인이 어찌 경의 말을 따르지 않을 수 있으리오."
그날로 제환공은 역아, 수작, 개방 세 사람을 밖으로 내몰고 다시 궁성에 들어오지 못하게 했다. 이리하여 포숙아는 간신배를 궁중에서 내쫓고 나서 관중 습붕에 이어 제환공 치하에서 세 번째로 정승이 되어 제나라 정사를 맡아보게 되었다. 이 때 오랑캐가 기(杞)나라를 침범했다. 기나라 사람은 곧 제환공에게 가서 구원을 청했다. 제환공은 즉시 송(宋), 노(魯), 진(陳), 위(衛), 정(鄭) 허(許), 조(曹) 7국 군후를 소집해서 그 병차들로 연합군을 편성하여 거느리고 위기에 빠진 기나라에 친히 가서 오랑캐 회의를 거쳐 무찔렀다. 그리고 기나라 도읍을 연릉 땅으로 옮겨 줬다. 이렇듯 모든 나라 제후가 아직도 제환공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은 제나라가 포숙아를 기용하고 지난날 관중이 펼쳤던 우호 선린 정치를 버리지 아니한 때문이었다.
포숙아의 죽음
제환공이 지난 해에 나라 정사를 포숙아에게 맡기고, 관중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수작, 역아, 개방을 몰아냈지만 그들 세 사람을 궁 밖으로 몰아낸 이후로 제환공은 모든 흥취를 잃었다. 밥을 먹어도 맛이 없고 잠을 자도 편안하지가 않았다. 그래서 농담을 하는 일이 없고 웃는 일도 없었다. 장위희가 보다 못해 딱해서 아뢰었다.
"상감께선 수작 등 세 사람을 내보내신 뒤로 나랏일은 돌보지 않으시고 얼굴이 매우 수척해졌습니다. 아마 좌우 신하들이 상감의 뜻을 기쁘게 못해 드리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이럴 바에야 왜 수작 등 세 사람을 다시 불러들여 곁에 있게 하지 않으십니까?"
제환공이 힘없이 대답했다.
"과인도 그러고 싶은 생각이 없지는 않으나, 한 번 내쫓은 세 사람을 다시 불러들이면 포숙아가 싫어할 것이요. 그래서 주저하고 있소."
장위희가 다시 아뢰었다.
"포숙아인들 어찌 자기 좌우에 시중드는 사람을 두지 않았겠습니까. 더구나 상감은 늙으셨습니다. 왜 이렇게 힘을 잃고 계십니까. 구미가 없어서 음식을 맡아 보게 하려고 역아를 다시 불렀다고 하십시오. 그러면 수작이나 개방도 차차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제환공은 장위희의 권고대로 역아를 불러들여 음식을 맡아 보게 했다. 이를 알자 포숙아가 곧 제환공에게 간했다.
"주공은 지난날 중부의 유언을 잊으셨습니까. 어찌하사 역아를 다시 궁내로 불러들였습니까?"
제환공이 희미한 눈을 치켜뜨고 대답했다.
"그 세 사람은 과인에게 도움이 되면 됐지, 국가에 조금도 해를 끼칠 자들이 아니오. 중부의 유언이 좀 심했다고 생각되오."
제환공은 포숙아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그 뒤 제환공은 역아뿐만 아니라 개방, 수작까지도 다 복직시키고 좌우에서 시중을 들게 했다. 그런 지 얼마뒤에 포숙아는 울분을 참지 못해서 병이 생기니 그대로 세상을 떠났다. 이 때부터 제나라는 기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제환공이 관중의 유언을 저버리고 세 사람을 다시 등용한 뒤로 포숙아가 여러 번 간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아서 울화병으로 죽고 보니, 이제야 역아, 수작, 개방 세 사람의 눈앞엔 도무지 걸릴 것이 없었다. 그들은 늙고 힘 없는 제환공을 요리조리 속이면서 마침내 모든 권력을 행사하기 시작했다. 그 세 사람에게 복종하는 자는 누구나 부자가 되지 않으면 높은 벼슬을 받아서 귀하게 되었다. 그 대신 세 사람에게 거역하는 자는 역적으로 몰려 죽지 않으면 국외로 내쫓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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