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으로 곧은 길은 굽어보이는 법이다 - 사마천
1. 오직 천명에 따를 뿐이다(강태공)
폭군의 횡포
은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은 원래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다. 머리가 좋고 말재주도 뛰어났으며, 게다가 맹수를 맨손으로 때려잡을 정도로 힘이 장사였다. 그래서 초기에는 대규모로 영토를 확장하는 등 번영을 누렸다. 하지만 갈수록 자기 머리와 재주만 믿고 교만해졌다. 특히 절세의 미녀 달기를 얻고부터는 전형적인 폭군이 되어 갔다. 사치와 향락만을 일삼고 정사를 내팽개쳤으며, 신하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비난하는 사람은 무조건 처형시켜 버렸다.
충신의 운명
당시에 백성들로부터 존경받는 3공이 있었는데, 바로 구후와 악후, 그리고 서백창이라는 충신들이었다. 그런데 폭군 주왕은 구후의 딸을 아내로 맞았으나 그녀가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죽였으며, 이에 구후가 맹렬히 항의하자 그를 죽여 소금에 절여버렸다. 또 이를 악후가 비난하자 악후도 죽여 육포를 만들었다. 그리고는 그 육포를 서백창에게 보내, "너도 눈밖에 나면 이 모양이 될 것이다."라고 겁을 주었다. 서백창은 그 육포를 보고 기가 막혔다. 그래서 하늘을 우러러보며 탄식해마지 않았다. 한편 육포를 가져왔던 사자가 주왕에게 돌아와 서백창이 탄식했다는 소식을 전하자, 주왕은 크게 노했다. 그리고는 곧장 서백창을 붙잡아 유리라는 벽지로 유폐시켜 버렸다. 그 후에도 주왕의 폭정은 그치지 않았다. 달기와 함께 죄없는 신하들을 '포락지형'에 처해 그 타죽어 가는 모습을 보며 즐겼고, 또 '주지육림'을 벌여 벌거벗은 남녀들의 집단 정사를 즐기기도 했다.(사기 1권 '경국지색의 여인들' 편 참조) 더구나 자기 말을 안 듣는다고 만삭의 임산부까지 찔러 죽이는 만행을 일삼았다. 이때 은나라에 비간이라는 충직한 왕자가 있었다. 그는 주왕의 계속되는 폭정을 두고만 볼 수 없다고 생각해 주왕을 찾아갔다. "폐하, 지금이라도 마음을 돌리시고 나라를 지키소서, 지금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 있고 민심은 크게 흔들리고 있습니다. 통촉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주왕은 들은 척하지도 않았다. 비간이 몇 번에 걸쳐 호소했지만, 듣지도 않고 자리를 떠 버렸던 것이다. 그렇지만 비간은 이미 죽음을 각오하고 있었다. 그는 그대로 자리에 꿇어앉아 일주일 동안이나 있으면서, 계속하여 호소하였다. 그러자 주왕은 드디어 크게 화를 냈다. "네가 나를 이렇게 괴롭힐 수 있느냐. 그럼 좋다. 네가 그렇게 성인이란 말이냐. 내가 알기로 성인의 심장에는 일곱 개의 구멍이 있다는데, 오늘 확인해 보겠다." 그러면서 비간을 죽이고 심장을 도려냈다. 한편 비간 왕자가 주왕에게 간하다가 궁궐 밖으로 쫓겨나 계속 호소한다는 소식이 널리 퍼졌을 때, 현명한 선비로 이름높았던 기자가 비간을 구하기 위해 궁궐로 찾아갔다. 그러나 자기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비간 왕자가 처형된 뒤였다. 기자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했다. "아! 이 나라는 정녕 끝났는가!" 그러면서 머리를 풀어 헤치고 미친 사람으로 변장한 채 거리를 유랑하였다.
천하를 낚아올린 강태공
강태공은 동해의 어느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는 학문을 좋아해서 집안일을 돌보지 않고 학문에만 열중했다. 그래서 원래 가난한 집이었지만, 나중에는 끼니조차 이을 수 없을 지경이었다. 그러자 그의 아내조차도 견디지 못하고 몰래 도망쳐 버렸다. 그래도 그는 학문에만 매달렸다.
서백창과의 만남
한편 유폐되어 있던 서백창은 그 와중에서도 오히려 학문에 정진하여 드디어는 고금의 명저 "주역"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던 중 서백창의 부하들이 서백창을 구해내기 위해 주왕에게 미녀와 명마들을 뇌물로 바쳤다. 그러자 주왕의 입이 벌어졌다. "뭘, 이런 선물을 가져오는가. 명마들에 미녀까지. 이제 서백창도 많이 뉘우쳤겠지." 그러면서 서백창의 유폐를 풀어 주었다. 그리하여 서백창은 풀려나 자기 영지인 주나라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 후 서백창은 정치를 훌륭히 펼쳐 주나라의 세력은 날로 커지게 되었다. 또한 서백창은 나라를 더욱 발전시키려면 인재가 무엇보다도 중요함을 알고 천하의 인재를 찾아 나섰다.
어느 날 강태공이 시장에 나갔다가 서백창이 널리 인재를 구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날부터 강태공은 강가에 나가 낚싯대를 드리우기 시작했다. 이때 강태공의 나이는 이미 70세가 넘은 상태였다. 하지만 강태공은 하루 종일 한 마리의 고기도 낚지 못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강태공은 모자도 팽개치고 옷까지 벗어버리며 화를 터뜨렸다. 지나가다 이 모습을 본 어부가 다가오더니, "서둘지 말고 천천히 해 보시오."라고 말했다. 이에 강태공이 시키는 대로 하니 과연 잉어가 걸려들었다. 그리고 그 잉어의 배를 갈라보니, "장차 큰 귀인이 될 것이니라."라는 글귀가 나왔다.
한편 서백창은 사냥을 즐겼다. 하루는 사냥에 나가기 전에 점을 쳐보니, "얻은 것은 용도 아니고 호랑이도 아니며, 큰 곰도 아니다. 사냥에서 얻는 것은 천하를 얻는 데 필요한 신하이로다."라는 점괘를 얻었다. 그날 따라 한 마리의 짐승도 잡지 못했다. 저녁 무렵에 그냥 돌아오려는데, 멀리 강가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이 보였다. 멀리 보기에도 풍채가 범상치 않았다. 서백창이 바로 달려가 그 사람과 몇 마디 얘기해 보니 과연 뛰어난 인물이었다. "선조들께서 우리 집안에 머지 않아 큰 성인이 나타나 나라를 일으킬 것이라 말씀하셨는데, 당신이 그 성인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면서 그를 궁궐로 모셔서 스승으로 삼았다. 그 사람이 바로 강태공이었다. 서백창은 그에게 태공망이라는 호를 지어 주었는데, 이 말은 서백창의 아버지인 태공이 바라던 인물이라는 뜻이었다. 이후 강태공은 서백창을 도와 주나라를 크게 융성하게 했으며, 특히 군사력을 강화시켰다. 그래서 강태공이 썼다는 병법책은 오늘날까지 전설적인 병법으로 전해지고 있다.
천명에 따를 뿐이다
그 후 서백창은 대업을 채 이루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뒤를 이어 무왕이 즉위했는데, 그 역시 강태공을 스승으로 받들었다. 무왕이 즉위한 지 9년 되던 해, 무왕은 서백창의 위패를 수레에 싣고 동쪽으로 원정을 나갔다. 출정할 때 강태공이 전군에게 명령을 내렸다. "모두 출정하도록 하라. 늦는 자는 목을 베리라." 그러자 전군은 일사분란하게 대오를 갖췄다. 군대가 막 황하를 건너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무왕이 탄 배에 흰 고기가 뛰어 올랐다. 무왕은 이 고기를 잡아 하늘에 제사지냈다. 이윽고 무왕이 강을 건너자, 이번에는 강 상류쪽에서 불길이 일어나더니 쏜살같이 내려왔다. 그러더니 무왕 앞에서 붉은 까마귀로 변했다. 당시에 은나라의 상징색은 흰 색이었고 주나라는 붉은 색을 상징으로 하고 있었다. 그러니까 흰 고기가 무왕에 잡힌 것은 은나라가 무왕에게 멸망당함을 의미했고, 붉은 까마귀가 날아든 것은 주나라가 천하를 잡으리라는 징조였던 셈이다. 더구나 미리 약속이나 한 것처럼 사방에서 제후들이 모여들기 시작해 그 수가 무려 8백 명에 이르렀다. 그들은 입을 모아, "지금 당장 은나라를 쳐버립시다."하고 요청했다. 그러나 무왕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오. 아직 천명이 은나라를 떠나지 않았소." 그리고는 군대를 되돌렸다. 2년 후 드디어 무왕은 전국에 포고문을 발표했다.
"백성들에게 고한다. 옛말에 암탉아 울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다. 그런데 지금 은나라 주왕은 달기의 말만 받아들이고 있다. 그러면서 하늘을 공경할 줄 모르고 포악한 정치를 일삼아 백성들은 도탄에 허덕이고 있다. 나는 이제 천명을 받들어 은나라를 토벌하려 한다. 지금 토벌하지 않으면 천하가 더욱 혼란에 빠질 것이다. 호랑이처럼 용감하게 싸워라. 도망하는 적은 죽이지 말고 우리 나라 일꾼으로 만들라. 모두 일어서라!"
그리하여 주나라의 10만 병력은 은나라 공격에 나섰다. 총사령관은 강태공이었다. 강태공은 군대를 이끌고 은나라 서울 근교에 있는 목야에 진을 쳤다. 이 소식을 들은 주왕은 코웃음을 쳤다. "아니, 제까짓 놈들이 나를 친다고!" 그러면서 70만 대군을 이끌고 목야로 나갔다. 그런데 주왕의 군대는 주로 노예들로 편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싸울 의사가 없었고, 오히려 주나라가 이기면 자기들도 자유롭게 풀려날 것이라고 생각하는 병사들이 많았다. 강태공은 정예병 백 만으로 선제 공격을 했다. 그러면서 사기를 높인 후 일제히 쳐들어갔다. 이에 은나라 병사들은 모두 무기를 거꾸로 메고 나가 오히려 주나라 군대에게 길을 열어 주었다. 순식간에 승패는 결정되었다.
주왕은 간신히 도망쳐 궁궐에서 달기와 함께 스스로 불에 뛰어 들어 목숨을 끊었다. 이렇게 하여 은나라는 망하고 폭군 주왕도 죽었다. 무왕은 주왕이 죽은 곳으로 가서 먼저 그 시체에 화살 3개를 쏘고 다시 칼로 친 다음 황금으로 만든 도끼로 목을 잘라 흰색 깃대에 걸었다. 그리고 나서 구후, 악후, 비간의 무덤에 제사를 모셨으며 무참하게 죽은 임산부도 잘 거두어 묘소를 만들어 주었다. 또 기자의 아들을 찾아내 벼슬을 주었다. 은나라 백성들은 이러한 무왕의 처사에 크게 감동하게 되었다.
궁팔십 달팔십
'궁팔십 달팔십'은 강태공이 80년을 가난하게 살다가 80년을 영광스럽게 살았다는 데서 나온 말이다. 강태공은 주나라가 천하를 평정하는 데 일등공신으로 인정되어, 고향인 상동 지방에 있는 제나라의 제후로 임명되었다. 강태공은 제나라로 가면서 서두르지 않은 채 느릿느릿 가고 있었다. 그러자 어느 길 가던 노인이 말했다. "때란 얻기는 어려우나 잃기는 쉽습니다. 이렇게 늑장만 부리시다니 큰 일을 하러 나선 분 같지 않소." 이 말을 들은 강태공은 한밤중임에 불구하고 부하들을 당장 깨워 출발 명령을 내려 서둘러 달려가도록 했다. 날이 밝을 무렵 강태공 일행은 제나라 땅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오랑캐 군대가 쳐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하여 양측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간신히 오랑캐들을 격퇴한 강태공은 그 고장의 풍습을 존중하면서 제도를 정비했다. 그리고 특산물인 소금생산과 수산업을 크게 장려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제나라에는 수많은 백성들이 모여들어 번성을 자랑하게 되었다.
엎지러진 물은 다시 담을 수 없다
어느 날 강태공이 수레를 타고 시찰을 나갔다. 어떤 거리를 지나치고 있는데, 낯이 익은 노파의 초라한 모습이 눈에 띄었다. 그래서 수레를 돌려 살펴보니 옛날 자기를 버리고 도망친 아내가 아닌가! 그녀는 다시 같이 살 수 없겠느냐고 애원했다. 그러자 강태공은 물을 한 그릇 가져오도록 했다. 그리고는 땅바닥에 물을 쏟은 후 그녀에게 그릇에 다시 주워 담으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담을 수가 없었다. "한번 엎지른 물을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오. 마찬가지로 한번 끊어진 인연도 다시 맺을 수 없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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