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2장 슬프도다, 관중이여
1. 이오 즉위
제환공의 착병
한편 제환공은 관중의 보고로 진(晋)나라가 혼란에 빠져 있다는 걸 알자 모든 나라 제후를 모아 대책을 세우려고 친히 고량 땅으로 갔다. 그 곳에서 제환공은 진(奏)나라 군대가 이미 진(晋)나라를 위해 출동했다는 것과 또한 주혜왕(周惠王)이 대부 왕자 당과 군사를 역시 진(晋)나라로 보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래서 제환공은 공손 습붕을 보내어 왕군과 진(素)나라 군대와 합세하게 했다. 공손 습붕은 고량을 떠나 주, 진 두 나라 군사와 합세하고 함께 이오를 진(晋)나라 군위에 앉히기로 합의했다. 또한 여이생도 굴성으로부터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그들과 합세했다. 진(晋)나라 일이 이렇게 일단락되는 걸 보고야 공손 습붕은 고량에서 제나라로 돌아갔다. 공손 습붕이 귀국하자 관중이 물었다.
"이번 진나라 군위는 누구로 정하셨소?"
공손 습붕이 대답했다.
"이오 공자로 정해졌습니다."
이 말을 들은 관중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공자 중이가 아니고 분명히 이오라 하셨소?"
습붕이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이오라 했습니다."
관중이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다면 진나라 내분은 끝난 것이 아니오. 진나라 백성이나 대부들이 모두 공자 중이를 받들어 모시기를 원할 텐데, 어찌 된 일인지 심히 궁금하오."
한편 진(晋)나라에선 이극, 비정부가 국구인 호돌에게 등극하는 절차를 지시해 줍소사 하고 청했다. 호돌은 모든 신하를 거느리고 법가를 갖추어 가지고 진나라 경계까지 나가서 이오를 영접했다. 이오는 법가를 타고 강도에 당도하는 즉시로 즉위했으니, 그가 바로 진혜공(晋惠公)인 것이다. 그리고 즉위한 그 해를 진혜공 원년으로 삼았다. 이 때가 바로 주양왕(周襄王) 2년이었다. 원래 진나라 백성들은 어질기로 이름 높은 공자 중이를 사모했기 때문에 책나라에서 중이를 모셔다가 임금으로 추대하기를 바랐었다. 그런데 백성들은 중이 대신 이오가 군위에 오르게 되자 매우 실망했다. 진혜공은 즉위하자, 곧 그의 아들 어(御)를 세자로 세웠다. 그리고 호돌, 괵사를 상대부로 삼고 여이생, 극예를 중대부로 삼고 도안이를 하대부로 삼았다. 그 나머지 모든 신하들은 모두 예전 벼슬 자리에 그대로 있게 했다. 진혜공은 양유미로 하여금 왕자 당을 따라서 주(周)에 가게 하고 제나라로 돌아가는 공손 습붕에겐 한간을 딸려 보내어, 이번에 자기를 군위에 오르도록 도와 준 두 나라에 각각 감사를 드렸다. 다만 진(秦)나라 공손지만이 약속된 하서의 다섯 성을 받으려고 남아 있었다. 그러나 진혜공은 약속은 했지만 국토를 떼어 주기가 싫어서 모든 신하를 불러 놓고 상의했다. 괵사가 눈짓으로 여이생에게 암시를 보냈다. 여이생이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상감께서 진나라에게 뇌물을 주겠다고 약속한 것은 우선 귀국해야만 군위에 오를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젠 이미 귀국하사 이 나라가 상감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진에게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하여 진후(秦侯)가 상감을 어찌하겠습니까."
이극이 반대의 뜻을 말했다.
"주공이 나라를 얻은 시작부터 이웃 강국에게 신용을 잃어서는 안 됩니다. 기왕 약속한 바에야 아깝지만 다섯 성을 줘 버리십시오."
극예가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반박했다.
"다섯 성을 내주면 우리 진(晋)나라 반쪽이 없어집니다. 진(奏)이 아무리 강한 병력을 가졌대도 우리에게서 다섯 성을 뺏지는 못할 것입니다. 더구나 선군께서 생명을 걸고 오랜 세월 고초 끝에 비로소 마련한 땅인데 어찌 그냥 버릴 수 있습니까."
이극이 굽히지 않고 말했다.
"이미 선군의 땅인 걸 알았다면 왜 문서까지 내주셨소. 주겠다 하고 안 주면 진(奏)이 그냥 있겠소. 또 선군이 나라를 곡옥에 세웠을 땐 이 나라가 조그만 땅에 불과했소. 다만 몸소 정치에 힘쓰셨으므로 능히 다른 조그만 나라들을 정복해서 오늘날의 진(晋)나라를 세우신 것이오. 이제 주공께서 능히 정치에 힘쓰시고 이웃 나라와 의좋게 지내신다면 다섯 성 쯤 없어지는 걸 걱정할 것이 있습니까."
극예가 눈썹을 곧추세우면서 이극을 흘겨보며 언성을 높였다.
"이극의 말은 진(秦)나라에 대한 우리의 신의를 위해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 사람은 주공께서 준다고 하신 분양 땅 백만 평을 혹 받지 못할까 염려하고 공연히 진(奏)나라를 입에 올려 중언부언하는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이극은 대로하여 극예에게 달려들려고 했다. 이 때 뒤에서 비정부가 재빨리 이극의 소매를 잡아당겨 참으라는 암시를 줬다. 이극은 말을 참고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진혜공이 뭇 신하를 향해 물었다.
"안주면 신(信)을 잃고, 주면 우리의 힘이 약해질 테니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겠구나. 그렇다고 그냥 있을 수 없으니 성을 하나나 둘쯤 주면 어떠할까?"
여이생이 급히 대답했다.
"성을 하나나 둘쯤 준다고 우리가 신(信)을 지킨 것으론 안 됩니다. 도리어 진(秦)나라 비위만 거스르고 맙니다. 그러니 차라리 딱 잘라 거절하십시오."
진혜공의 배신
진혜공은 여이생에게 진나라로 보낼 국서를 쓰게 했다. 그 국서의 대략은 다음과 같았다.
- 처음에 이오는 하서(河西) 다섯 성을 군후께 드리기로 하고, 이제 다행히 본국에 돌아와서 사직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오는 군후의 하해 같은 은혜를 잊을 수 없어 곧 약속한 바를 실천할 작정이었는데 대신들이 다 말하기를 '국호는 선군의 땅이니 주공은 타국에 망명하여 어찌 맘대로 국토를 남에게 허락하셨나이까' 하고 말을 듣지 않는지라, 과인이 대신들과 이 때문에 다투었으나 아직 뜻을 이루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군후께선 앞으로 기한을 좀 늦추어 주십시오. 과인은 하해 같은 은혜와 전날 약속한 바를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국서를 쓰긴 썼는데 갈 사람이 마땅치 않았다. 진혜공이 물었다.
"누가 능히 과인을 대신해서 이 국서를 가지고 진나라에 갔다오겠느냐?"
이에 비정부는 자기가 가겠노라 자청하고 나섰다. 진혜공은 쾌히 허락했다. 원래 진혜공은 귀국하기 전에 비정부에게도 부규 땅 70만 평을 주기로 약속했었다. 이제 진나라에 대해서도 다섯 성을 주지 않는 터이니 어찌 이극과 비정부에게 한 약속을 지킬 리 있으리오. 비정부는 비록 말은 못하나 속으로 약속을 지키지 않는 진혜공을 깊이 원망했다. 그래서 비정부는 겸사겸사 진나라에 가서 여러 가지로 호소할 작정이었다. 비정부는 공손지를 따라 진나라로 갔다. 비정부는 진목공 에게 국서를 공손히 올렸다. 진목공이 국서를 다 읽자, 노발대발 화를 내면서 안상을 치며 호령했다.
"내 원래부터 이오가 임금될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더니 과연 그 놈에게 속았구나. 이런 글을 가지고 온 저 진나라 사자 놈부터 참하여라!"
공손지가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이는 비정부의 죄가 아닙니다. 바라건대 주상께선 그를 용서하십시오."
진목공이 호령했다.
"그럼 어떤 놈이 이오에게 속닥거려 과인에게 약속한 바를 배신하라고 시켰느냐. 내 그 놈을 알아내어 한칼에 목을 참하고 말겠노라."
비정부가 무릎을 꿇고 아뢰었다.
"군후께선 좌우 사람들을 잠깐 물러가게 해주십시오. 신이 아뢸 말씀이 있습니다."
진목공의 얼굴빛이 약간 부드러워지더니 좌우 신하들을 둘러보고 분부했다.
"경들은 주렴 밖으로 물러나가오."
진목공이 비정부 앞으로 나서며 물었다.
"무슨 말인가?"
"우리 진나라 모든 대부는 다 군후의 은덕에 깊이 감명하여 하서 다섯 성을 바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여이생, 극예 두 사람만이 이를 반대하고 있습니다. 군후께선 많은 폐물을 보내고 좋은 말로 그 두 사람을 부르십시오. 그리고 두 사람이 오거든 잡아 죽이십시오. 군후께서 중이(重耳)를 밀어만 주신다면 신과 이극은 이오를 몰아내고 국내에서 군후와 호응하겠습니다. 저희들의 뜻이 이루어지면 대대로 군후를 섬기겠습니다. 뜻에 어떠하오신지요?"
진목공이 연신 머리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 계책이 묘하오. 실은 내가 원래부터 중이의 어짐을 알고 바라던 바요."
진목공은 대부 냉지에게 많은 폐물을 가지고 비정부를 따라 진나라에 갔다오도록 분부했다. 진목공은 여이생과 극예를 감언이설로 유인해서 장차 죽일 작정이었다. 한편, 이극은 어떠했는가. 비정부가 진(秦)나라로 가서 이렇듯 계책을 꾸미고 있을 때 이극은 화도 치밀고, 가슴도 답답하여 부중으로 돌아와 안절부절하고 있었다. 더욱이 생각만 해도 울화가 치미는 것은 처음에 생각한 그대로 안 되었다는 점이었다. 원래 이극의 생각은 공자 중이를 모셔오는 데 있었다. 그런데 중이는 사양하고 귀국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러던 참에 이오가 이극에게 많은 땅을 줄 테니 자기를 귀국시켜 달라고 인편에 청해 왔다. 이극은 모든 사람들의 의견도 있고 해서 마지못해 이오를 군후로 받아들였을 뿐이었다. 그런데 이오는 즉위한 뒤 전날 약속했던 땅은 전혀 주려고 하지도 않고 괵사, 여이생, 극예 등만 중히 쓰고, 지난날의 중신들을 푸대접했다. 그래도 이극은 적어도 국가의 공적 신뢰를 위해서 진(秦)나라에 약속했던 땅 다섯 성을 주라고 권했던 것이다. 그런데 극예는 자신에게 사리 사욕을 위해서 그런 소릴 한다고 반박했었다. 이극은 억울한 생각이 들어서 분했다. 속에서 끓어오르는 울화를 참자니 속이 편할 리 없었던 것이다. 이극은 할말이 없지 않았으나 잠자코 조문을 나와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니 이극의 안색이 좋을 리 없었다. 한편 극예 등은 비정부가 스스로 자원해서 진나라에 갔다 오겠다는 데 대해 의심했다. 혹 비정부와 이극이 무슨 공모라도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심복 부하를 보내어 그 두 사람의 행동을 감시시켰다. 비정부도 극예 등이 사람을 보내어 자기 행동을 살피지나 않을까 하고 의심했다. 그래서 비정부는 이극을 만나지 않고 바로 진(奏)나라로 떠났다. 한편 이극은 비정부와 상의하려고 사람을 보내어 그를 청했다. 심부름 갔던 사람이 돌아와서 아뢰었다.
"비대부께선 벌써 진나라로 떠나시고 없더이다."
이극은 말을 타고 비정부를 뒤쫓아갔다. 이극은 성 밖까지 갔으나 비정부를 뒤따르지 못하고 돌아왔다. 이극의 일거 일동을 감시하던 자가 즉시 극예에게 가서 이 사실을 보고했다. 극예가 즉시 관복으로 갈아입고 궁에 들어가서 진혜공께 고자질로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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