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1장 재편되는 북방
2. 진목공의 꿈
두씨의 노래
백리해와 건숙을 기용하여 나라의 기틀을 잡게 된 진목공은 타국에서 더 많은 인재를 등용할 생각이었다. 이에 공자 칩은 서걸술이 어진 것을 알고 천거했다. 진목공은 서걸술을 등용했다. 백리해는 전부터 진(晋)나라 사람인 유여가 큰 경륜을 품은 인물이란 걸 들었으므로, 공손지에게 그의 현재 상태를 물어봤다. 공손지가 대답했다.
"유여는 진나라에 있을 때 불우했습니다. 지금 서융에서 벼슬을 살고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백리해는 자신의 과거가 생각나 너무나 애석해 하며 거듭거듭 탄식했다. 한편 백리해의 아내와 아들은 그 후 어찌 되었는가? 백리해의 아내 두씨(杜氏)는 남편이 출세의 길을 찾아 타국으로 떠난 뒤 날마다 베틀에 올라 베를 짜서 팔아 생계를 이으며 세월을 보냈다. 설상가상으로 그 뒤 흉년을 당하자 이제는 살아갈 길이 아득했다. 두씨는 어린 아들의 손목을 이끌고 타국으로 떠났다. 그러나 별 수 있을 리 없었다. 어머니와 아들은 타국 땅을 정처없이 떠돌아다니며 잡일을 하여 입에 풀칠을 하거나 걸식을 했다. 뜨내기 신세로 걸식을 하며 돌아다니던 그들은 마침내 진(晋)나라로 들어갔다. 두씨는 빨래꾼이 되어 그날 그날을 유지했다. 그 아들의 이름은 시(視)며 자(字)는 맹명(孟明)이었다. 이 땐 아들 시도 장성한 연후였다. 그러나 시는 날마다 동네 청년들과 어울려 사냥이나 하고 씨름이나 할 뿐 도무지 생계를 위해 힘쓰려 하지 않았다. 두씨는 누차 아들을 타일렀으나 아들은 도무지 모친의 말을 듣지 않았다. 백리해가 진(奏)나라 재상이 되자, 두씨는 비로소 남편 이름을 소문에 들었다. 그래서 두씨는 아들을 데리고 진나라로 갔다. 마침내 두씨는 거리에 나가서 재상이 수레를 타고 궁으로 들어가는 것을 유심히 봤다. 그러나 수레의 규모도 대단하려니와 수많은 구종배들이 감싸고 가는지라 수레 속에 탄 사람의 모습을 알아볼 수가 없었다. 수레 속의 백리해는 설마 아내가 길거리에 서 있으리라곤 생각도 못하고 궁으로 들어갔다. 그 후, 때마침 정승의 부중에서 빨래하는 여자를 모집했다. 두씨는 그 기회에 빨래하는 여자를 자원하여 남편의 부중으로 들어갔다. 부중에 들어간 두씨는 다른 여자들보다도 부지런히 일했다. 부중 사람들은 나이도 많은 두씨가 남보다 배나 일을 잘한다고 좋아했다. 그러나 두씨는 한 번도 백리해와 직접 얼굴을 대면할 기회를 얻지 못하고 있었다. 하루는 백리해가 당상에 앉아 있었고, 악공들이 당 아래서 음악을 연주중이었다. 두씨가 부중 사람에게 말했다.
"이 늙은이는 음악을 잘 압니다. 원컨대 한 번만 저 악공들 있는 곳으로 데려가 주십시오."
부중 사람은 두씨를 데리고 가서 악공들에게 소개했다. 그 중 악공 한 사람이 물었다.
"할머니는 전에 무슨 악기를 배웠나요?" 두씨가 대답했다.
"거문고도 하며 노래도 부릅니다."
악공은 두씨에게 거문고를 내줬다. 두씨가 거문고를 안고 탄주하니 그 소리가 참으로 애절하고 처량했다. 악공들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들었다. 악공들은 두씨가 거문고를 마치자 노래를 청했다.
"이번엔 노래를 해보세요, 할머니." 두씨가 대답했다.
"제가 이 곳에 온 뒤로 한 번도 노래를 부른 일이 없습니다. 바라건대 상군께 말씀드려 당 위에 올라가서 노래하게 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악공이 당 위에 올라가서 그 뜻을 백리해에게 품했다. 백리해는 머리를 끄덕이며 승낙했다. 두씨는 당 위에 올라가서 기등 왼편에 자리를 잡았다. 두씨가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노래를 불렀다.
백리해. 염소 가죽 다섯 장이여
이별하던 그 옛날을 잊으셨는가
알 밴 암탉을 삶고 양념을 찧고
문짝으로 밥을 끓이던 그날을
오늘날 부귀하시니 나를 잊으셨는가
백리해. 염소 가죽 다섯 장이여
아버지는 좋은 음식을 먹건만
자식은 배가 고파서 우는도다
남편은 좋은 비단 옷을 입고 있건만
아내는 품삯받고 빨래하는 천한 몸일세
슬프다. 부귀하시니 나를 잊으셨는가
백리해. 염소 가죽 다섯 장이여
지나간 그 옛날, 그대 떠날 때 나는 울었소
지금 그대는 높이 앉았건만 나는 섰으니 슬프도다
오늘날 부귀하시니 나를 잊으셨는가
백리해는 그 노래를 듣고 깜짝 놀랐다. 그는 두씨를 자기 앞으로 불렀다. 틀림없는 자기 아내였다. 자나깨나 잊지 못하던 아내였다. 마침내 백리해와 두씨는 서로 붙들고 통곡했다. 겨우 울음을 진정하고 백리해가 물었다.
"우리 아자(兒子)는 어디 있소?"
두씨가 흐느껴 울면서 겨우 대답했다.
"마을에서 사냥을 하고 있습니다."
백리해는 즉시 사람을 보내어 자기 아들을 불러오게 했다. 이날, 백리해는 여러 해만에 늙은 아내와 장성한 아들과 만났다. 진목공은 백리해가 처자와 만났다는 걸 듣고서 곡식 백 수레와 황금과 비단 한 수레를 그들에게 하사했다. 이튿날 백리해는 아들 백리시(百里視)를 데리고 궁에 들어가서 진목공께 사은했다. 진목공은 백리시에게 대부 벼슬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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