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1장 재편되는 북방
1. 진나라의 두 재상
건숙의 아들, 건병
공자 칩은 그 띳집 앞에서 수레를 멈췄다. 그리고 데리고 온 시종을 시켜 집안의 사람을 부르게 했다. 곧 기척이 들리더니 사립문이 반쯤 열리고 조그만 동자 하나가 얼굴을 내밀며 물었다.
"손님은 어디서 오셨습니까?"
공자 칩이 대답했다.
"나는 건숙 선생을 찾아뵈러 왔노라."
"할아버지께서는 지금 집 안에 계시지 않습니다."
"선생이 어디로 가셨느냐?"
"이웃에 사는 노인들과 함께 냇물을 보시려고 돌다리에 가셨습니다. 그러니 멀지 않아 돌아오실 것입니다."
공자 칩은 감히 집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문앞 돌 위에 앉아서 선생이 올 때를 기다렸다. 시간이 약간 지났을 때였다. 장대한 젊은 사람 하나가 저편 논둑으로 뻗은 서쪽 길에서 오고 있었다. 그 장정은 눈썹이 굵고, 눈은 고리눈으로 등글고, 얼굴은 네모가 지고, 키가 훨씬 컸다. 그 장정은 등에 사냥하여 잡은 죽은 사슴 두 마리를 메고 당당하게 걸어왔다. 공자 칩은 그 장정의 용모가 비범한 걸 보고 일어나서 맞이했다. 그 장정은 메고 온 사슴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공자 칩에게 정중히 허리를 굽혔다. 공자 칩이 공손히 답례하고 물었다.
"존함이 누구시옵니까?"
"나의 성은 건씨며 이름은 병이며 자(字)를 백을(白乙)이라고 합니다."
"건숙 선생과 혹 인척간이 아니신지요?"
"예, 그 어른은 바로 저의 부친이십니다."
공자 칩이 다시 정중히 말했다.
"실로 오랫동안 뵈옵고자 했습니다."
장정이 물었다.
"그대는 누구십니까? 어찌 귀한 몸으로 이 곳까지 오셨는지요?"
"선생과 전부터 친하신 백리해 선생께서 지금 진(秦)나라에 계시온데, 그 어른께서 저에게 편지를 써 주시며 건숙 선생께 갖다 드리라고 하셨기에 왔습니다."
건병이 권했다.
"그러시다면 저 초당으로 들어가시지요. 조금만 앉아서 기다리시면 부친께서 돌아오실 것입니다."
얼마 후 동자가 들어오며 아뢰었다.
"할아버지께서 오십니다."
한편 건숙은 이웃 노인 두 사람과 함께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자기 집 문 앞까지 와서야 귀한 신분의 사람이 타는 수레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우리 마을에 어찌 이런 수레가 있을까?"
이 때 건병이 집 안에서 나와 손님이 오셨다는 걸 자세히 아뢰었다. 건숙은 동네 두 노인과 함께 초당으로 들어갔다. 건숙이 공자 칩과 인사를 마치고 자리를 정한 후에 말했다.
"나의 아우 백리해의 서찰을 가지고 왔다 하니 어서 보여 주시오."
공자 칩은 즉시 백리해의 서찰을 바쳤다. 건숙이 봉함을 뜯고 보았다.
- 저는 형님의 말씀을 듣지 않다가 우나라가 멸망하는 데 같이 묻혀 버릴 뻔했습니다. 다행히 진후(秦侯)가 인물을 널리 구하던 때여서 소를 기르고 있던 이 몸을 빼내어 이제 정사를 맡기심이라.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형님의 식견과 재주를 따를 수 없습니다. 이제 형님께서 오시어 함께 진나라 앞길을 열어 주시옵기 바랍니다. 이미 진후는 형님의 이름을 듣고 형님이 오시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진후는 대부 공손 칩에게 명하사 폐백을 가지고 형님을 모시러 간 것입니다. 오직 바라건대 세상에 나오사 평생 품으신 뜻으로 진나라를 도와 주십시오. 만일 형님께서 산림을 사랑하사 그냥 머물러 계시겠다면, 저도 벼슬을 버리고 즉시 명록촌으로 가서 평생을 형님과 함께 살겠습니다.
백리해의 서신을 다 읽고 건숙이 말했다.
"저의 아우가 되는 백리해가 어떻게 해서 진후께 벼슬을 살게 되었는지요?"
공자 칩은 백리해가 신부의 남자 종으로서 초나라로 도망친 것과, 진후가그 비범한 인물인 것을 듣고 염소 가죽 다섯 장으로 빼내온 자초지종을 다 말하고 덧붙였다.
"그런데 우리 주공께서 상경 벼슬을 주셨건만 백리해는 사양하여 말하기를, '자기 재주가 선생만 못하니 반드시 선생이 진나라에 오셔야만 감히 벼슬을 살겠다'면서 굳이 받질 않았습니다. 이에 우리 주공께서 폐백을 저에게 내주시며 속히 선생을 모셔오라고 하시기에 저는 주야를 가리지 않고 이렇게 명록촌으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따라온 시종들에게 분부했다.
"속히 수레에 있는 예물을 이리로 들여오너라."
시종들은 가져온 예물을 가지고 집 안으로 들어와 초당 위에 늘어놓았다.
건숙, 진나라로 가다
이웃에 사는 노인 두 사람은 다 산야의 농부인 만큼 이런 굉장한 물건을 처음 보기 때문에 서로 놀랐다. 그리고 두 노인이 건숙에게 권했다.
"진나라가 이렇듯 어진 분을 존중하니, 귀인을 헛걸음하게 할 수 없습지요."
건숙이 한동안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지난날 우공은 백리해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끝내 나라를 잃고 말았소. 만일 진후가 참으로 훌륭한 사람을 알아 보고 쓴다면 백리해 한 사람만으로도 부족할 것이 전혀 없을 것이오. 이 몸은 이제 늙어서 세상 일에 대하여 생각이 끊어진 지 오래니 죄송하나 함께 갈 수 없겠소. 이 예물을 거두시고 이대로 돌아가시기 바라오. 가거든 백리해에게 우리의 안부나 잘 전해 주시오."
공자 칩은 당황했다.
"선생이 가시지 않으면 백리해 선생도 우리 진나라를 떠나실 것입니다."
건숙은 무엇을 생각하는지 한동안 대답이 없었다. 이윽고 그는 탄식했다.
"백리해는 큰 재주를 품고도 아직 기회를 못 얻어 시험해 보지 못하였음이라. 오랫동안 벼슬을 구하다가 이제야 훌륭한 임금을 만났으니 내 가서 그의 뜻을 성취시키는 데 도와 주지 않을 수 없도다. 그러니 내 다만 백리해를 위해서 진나라로 가긴 가겠으나, 오래지 않아 이 곳으로 다시 돌아와 밭을 갈면서 여생을 보내겠소."
그 때 동자가 들어와서 고했다.
"음식이 다 마련되었습니다."
"새로 익은 술과 사슴 족을 들여오너라."
술상이 들어오자, 공자 칩은 서쪽 자리에 앉고 이웃 두 노인은 건숙의 좌우에 앉았다. 그들은 술잔에 술을 따라 서로 권하며 나무젓가락으로 사슴 족을 집어올려 뜯었다. 그들은 흔연히 취하고 배불리 먹느라고 어느덧 날이 저무는 것을 몰랐다. 공자 칩은 초당에서 그날 밤을 편히 쉬었다. 이튿날 아침에 이웃 두 노인이 술통을 가지고 왔다. 건숙 선생을 전송하는 의미에서 한 잔 하자는 것이었다. 그들이 전날처럼 취했을 때 건병의 무예가 뛰어난 것을 들은지라, 공자 칩은 건병의 재주를 칭찬하고 이번 길에 같이 진나라로 갔으면 좋겠다고 청했다. 곰곰이 생각하던 건숙은 마침내 그 아들과 함께 진나라로 갈 것을 허락하고 진후가 보낸 예물을 이웃 두 노인에게 나눠 주면서 일일이 부탁했다.
"내가 없는 동안에 집이나 잘 보살펴 주오. 이번에 가긴 가나 멀지 않아 다시 만나게 될 것이오."
이윽고 이웃 두 노인은 건숙에게 잘 다녀오시라며 작별 인사를 했다. 건숙은 수레에 올랐다. 그리고 건병은 고삐를 잡고 부친이 탄 수레를 몰았다. 공자 칩은 다른 수레를 타고 나란히 명록촌을 떠났다. 그들은 밤이 되면 주막에 들어가 자고, 새벽마다 일찍 일어나 계속해서 진나라를 향해 달렸다. 진나라 교외 가까이 당도하자 공자 칩은 먼저 수레를 달려 궁에 들어가서 진목공께 아뢰었다.
"건숙 선생이 이미 교외에 당도했습니다. 그 아들 건병도 또한 훌륭한 장수의 재주가 있기에 신이 함께 데리고 왔습니다."
진목공은 크게 기뻐했다. 즉시 백리해에게 교외에 나가서 건숙을 영접하도록 명했다. 백리해와 건숙, 두 의형제는 여러 해만에 진나라 교외에서 서로 만났다. 건숙이 궁으로 들어가자, 진목공은 뜰에까지 내려와서 영접했다. 그리고 건숙을 전상으로 안내해 들어가서 자리에 앉힌 뒤 예의를 갖춰 말했다.
"백대부가 여러 번이나 선생의 현명함을 말하였소. 선생은 장차 패업을 이루는데 무엇으로써 과인을 깨우치고 지도 하시려오?"
건숙이 정중히 대답했다.
"진나라는 중원과 떨어진 서쪽에 위치하고 융적과 이웃간에 있습니다. 땅은 험하고 군사는 강하여 나아가면 족히 싸울 수 있고 물러서면 족히 지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중원에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는 주공의 위엄과 덕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위엄이 없으면 어찌 그들이 진(奏)을 두려워할 리 있으며, 덕이 아니면 어찌 그들로 하여금 우리 나라에 진심으로 복종하게 할 수 있겠습니까. 그들이 위엄을 두려워하고 덕에 따르지 않는다면 진나라가 어떻게 패업을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건숙의 말을 열심히 듣고 나서 진목공이 다시 물었다.
"진실로 선생의 말처럼 하면 마침내 우리 진나라가 천하의 패권을 잡을 수 있겠소?"
건숙이 옷깃을 여미고 대답했다.
"우리 진은 나라를 서융에까지 확대시키느냐 못하느냐가 장차 국운(國運)의 융성과 쇠퇴를 가르는 판가름 길이 됩니다. 이제 제나라의 관중도 늙었고, 제환공도 사치에 빠져 그 위력이 점차 줄어들고 있습니다. 당연히 제나라의 패업이 시들어 갈 것입니다. 이 때를 당하여 주공께선 진실로 옹위의 백성에게 덕을 베풀고 나아가서는 오랑캐들까지도 감화시킨 뒤에 그들을 거느리고서 복종하지 않는 오랑캐를 치십시오. 모든 오랑캐가 복종하게 되거든 병사를 거두고 중원에 변동이 있기를 기다려 제나라가 남긴 것을 줍고 덕과 의를 펴십시오. 그러면 주공께서 비록 패업을 원하지 않으시더라도 사양하지 못할 것입니다."
진목공이 감탄했다.
"과인이 얻은 두 노인은 참으로 서민의 장이로다!"
드디어 진목공은 건숙을 우서장(右庶長)으로 삼고 백리해를 좌서장(左庶長)으로 삼았다. 이리하여 두 노인의 위(位)는 다 상경(上卿)에 올랐다. 그 뒤로 진나라에서는 건숙과 백리해를 합쳐서 이상(二相)이라고 불렀다. 진목공은 또한 건숙의 아들 건병에게도 대부 벼슬을 주어 병사들을 거느리게 했다. 이후 이상(二相)은 함께 정사를 보며 법을 세워 백성을 가르치고 나라를 일으키면서 모든 재난을 막았다. 그 뒤로 진나라는 크게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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