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0장 교만해지는 제환공
5. 백리해, 언제 때를 만나랴
도망치는 백리해
그러나 그는 우공에게 충성을 바치는 것마저 자기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즉 주지교의 농간으로 말미암아 진헌공은 백리해에게 우공과 헤어져 남자 종으로서 신부를 모시고 진(秦)나라로 가게 된 것이다. 백리해는 기가 막혔다.
"내 천하를 건질 수 있는 재주를 품었건만 세월을 잃고 훌륭한 주인을 만나지 못해 큰 뜻을 한번도 펴지 못했고 입신의 자리도 만들지 못한 채 늙고 말았도다. 이제는 늙은 몸으로 진나라로 시집가는 여자의 종이 되다니 이보다 더한 창피가 어디 있으리오."
백리해는 마침내 신부의 행차를 따라 종으로서 진나라로 끌려가다가 도중에서 기회를 살펴 슬며시 빠져나와 남쪽으로 도망쳤다. 그는 송(宋)나라로 달아날 작정이었다. 그러나 길이 막혀 다시 초나라를 향해 걸었다. 그가 완성 가까이 이르렀을 때였다. 완성 사람들은 사냥을 하다가 때마침 지나가는 백리해를 보고서 혹 다른 나라에서 온 간첩이 아닌가 의심했다. 완성 사람들은 곧 그를 붙들어 결박했다. 백리해가 자기 신분을 말했다.
"나는 우나라 사람이오. 나라가 진나라에 망했기 때문에 도망쳐 이 곳까지 왔을 뿐이오."
완성 사람들이 물었다.
"그대는 뭘 잘하는가?"
백리해가 대답했다.
"소를 기를 줄 아오."
완성 사람들은 그의 결박을 풀어 주고 그 곳에서 소를 기르게 했다. 백리해가 돌보는 소들은 나날이 살이 찌고 윤기가 돌았다. 완성 사람들은 매우 기뻐했다. 그 뒤 백리해가 소를 잘 기른다는 소문이 초왕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초왕은 궁으로 백리해를 불러 물었다.
"소를 잘 기르려면 무슨 방법이라도 있느냐?"
백리해가 아뢰었다.
"때를 어기지 않고 넉넉히 먹이며, 힘을 낭비하지 않도록 잘 아껴 주면 됩니다. 그러기에 기르는 사람의 마음과 소가 서로 어긋나지 말고 늘 한결같아야 합니다."
초왕이 이 말을 듣고 감탄했다.
"착하도다. 그대의 마음이여! 그대의 말은 비단 소를 기르는 데만 합당한 것이 아니라, 또한 말을 기르는 데도 매우 적합하겠다."
이렇게 해서 초왕은 백리해를 말을 돌보는 어인으로 삼고 동해에 가서 말을 기르게 했다. 백리해는 하는 수 없이 동해로 갔다. 한편 진목공(秦穆公)은 진(晋)나라 백희(伯姬)를 아내로 맞이했다. 그리고 아내가 진나라에서 보내온 여자 종과 남자 종의 명단과 실물을 대조해 보니 백리해가 명단에는 있건만 당사자를 볼 수 없었다. 진목공이 공자 칩을 불러 물었다.
"명단엔 백리해라고 적혀 있는데 실물은 볼 수 없으니 어찌 된 것인가?"
"그는 우나라 사람입니다. 그런데 우리 나라로 오다가 도중에 도망쳤다고 합니다."
진목공이 곁에 있는 공손지에게 물었다.
"그대는 진(晋)나라에 있었으니 백리해란 사람을 알겠군. 그는 어떤 사람인가?"
공손지가 아뢰었다.
"그는 비범하고 어진 사람입니다. 지난날 그는 우공을 간해도 소용없을 걸 알고 간하지 않았으니 그것만으로도 그의 지혜를 알 수 있습니다. 또 우공을 따라 진(晋)나라에까지 왔으면서도 진나라의 신하되길 거부했으니 이것만으로도 그의 의리와 충성을 짐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는 원래 천하를 경영할 만한 재주를 가졌으나 다만 지금까지 불우했을 따름입니다."
진목공이 머리를 끄덕였다.
"과인이 어떻게 하면 백리해를 우리 진나라 사람으로 쓸 수 있겠느냐?"
그날로 진(秦)나라 사자는 초나라로 떠나갔다. 그 후, 그 사자가 돌아와서 진목공에게 보고했다.
"백리해는 동쪽 바닷가에서 초나라 임금을 위해 말을 기른다고 합니다."
진목공이 말했다.
"과인이 많은 폐백을 초에게 주고 그를 보내달라면 초왕이 승낙하겠는가?"
공손지가 대답했다.
"그러면 그는 영영 우리 나라로 오지 못합니다."
"어째서 그렇게 생각하는가?"
"초왕이 백리해에게 말을 기르게 한 것을 보면 아직 초왕은 백리해의 인품을 모르는 모양입니다. 주공께서 많은 폐백을 주고 그를 달라면 그들은 백리해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따라서 초왕이 그를 기용해서 중히 쓰면 썼지 우리에게 넘겨 줄 리 있겠습니까?"
"그럼 어찌하면 좋겠는가?"
"주공께선 도망간 종놈을 처벌하기 위해서 그를 잡아가야겠다고 초왕에게 말하십시오. 지난날 포숙아도 관중을 데려올 때 이와 같은 계책을 써서 노나라 울타리를 무사히 벗어났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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