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0장 교만해지는 제환공
5. 백리해, 언제 때를 만나랴
진(秦)과 진(晋)의 통혼
한편 진목공(奏穆公) 임호(任好)는 즉위한 지 6년이 지났으나 아직 정실 부인이 없었다.그는 대부 공자 칩을 진나라로 보내어 혼인을 청했다. 그는 진헌공(晋獻公)의 큰딸이며 세자 신생의 여동생인 백희를 아내로 맞이할 생각이었다. 진헌공은 진목공의 청혼을 받자, 태사 소에게 허혼하는 것이 좋을지 어떨지 시초점을 쳐 보게 했다. 태사 소가 시초점을 치자 괘효가 나타났다.
士卦羊 亦無盲也
女承筐 亦無賂也
西 責言 不可償也
장사가 염소를 찔렀으나 웬일인지 피가 나지 않네.
여자가 대광주리를 받았으나 또한 들어 있는 물건이 없네.
서쪽 이웃이 책임을 묻건만 갚을 길이 없도다.
태사 소는 효사를 보고 말했다.
"진(秦)나라는 우리 나라 서쪽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효사에 책임을 물었다는 말이 있으니 이건 두 나라 사이가 앞으로 좋지 못할 징조입니다. 그러니 이 혼사는 달리 생각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주공은 이 혼사를 절대로 허락하지 마십시오."
진헌공은 다시 태복 곽언에게 거북점을 쳐보게 했다. 태복 곽언은 거북이 등뼈를 불에 구워 그 금간 모양새를 자세히 살폈다. 나타난 징조는 길했다. 태사 소는 시초점이 옳다 하고, 거북점은 맞지 않는 것이라고 우겼다. 태복 곽언은 시초점보다 거북점이 영험하니 이를 믿어야 한다고 했다. 이렇듯 두 사람이 서로 다투는 걸 보고서 진헌공은 허혼을 결심했다.
"시초점보다 거북점이 낫다. 이미 거북점에 통혼(通婚)하는 것이 길하다고 났으니 서로 다툴 것 없다. 더구나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진나라는 꿈에 백제의 명을 받고 그 뒤로 점점 강대해졌다고 한다. 그러니 그들의 청혼을 굳이 거절할 것 없다."
마침내 진헌공은 공자 칩에게 청혼을 받아들여 혼사하겠다는 승낙을 했다. 공자 칩이 사명을 성공리에 마치고 진(秦)나라로 돌아가던 도중이었다. 길가의 밭에서 상당히 비범하게 생긴 한 농부가 땅을 뒤집어 갈고 있었다. 그 농부의 얼굴빛은 피를 바른 듯이 붉고, 수염은 용틀임처럼 힘있게 뻗쳐 있었다. 더구나 그 농부는 팽이로 땅을 파는데, 괭이가 한번 땅에 박히면 몇 자씩 흙을 파헤쳤다. 공자 칩이 수레를 멈추고 한동안 구경하다가 곁으로 다가가서 정중하게 청했다.
"그 괭이 좀 한번 구경해 봅시다."
농부가 괭이를 가지고 가까이 와서 보이는데 그 크기가 생각보다 엄청나게 컸다. 공자 칩은 시종들에게 그 괭이를 한번 높이 들어올려 보라고 했다. 시종들은 서로 높이 들어올리려 했으나 팽이는 허리 높이 이상 올라가지를 않았다. 공자 칩은 그 농부가 천하 장사란 걸 알았다.
"그대 성씨와 이름이 무엇이오?"
농부가 대답했다.
"성은 공손이며, 이름은 지, 자(字)를 자상이라고 하오. 우리 진(晋)나라 주공의 먼 일가뻘이지요."
공자 칩이 되물었다.
"그대와 같은 인재가 어찌 이런 시골 땅에서 아깝게 일생을 보내고 계시오?"
그 농부는 머뭇거리며 대답했다.
"아무도 주공에게 천거해 주는 사람이 없으니 어쩔 수 없지요."
공자 칩이 정중히 청했다.
"나와 함께 우리 진나라에 가서 함께 강산 유람이나 하면 어떻겠소?"
공손지가 선뜻 대답했다.
"군자는 몸을 사릴 때는 죽은 듯 숨죽여 있지만 자기를 알아 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쳐 죽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만일 대부께서 나의 앞날을 돌봐 주신다면 참으로 이 이상 더 다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렇게 되어 마침내 공자 칩은 공손지를 자기 수레에 태우고 함께 진나라로 돌아갔다. 공자 칩은 귀국하자 즉시 진목공에게 혼사에 대한 승낙을 받았다는 것과, 도중에서 공손지를 데리고 오게 된 경과를 소상히 아뢰었다. 진목공은 소소한 질문 한마디도 물어보지 않고 공손지에게 대부 벼슬을 줬다. 진목공은 진(晋)이 이미 허혼했기 때문에 다시 공자 칩을 진헌공에게 보내어 폐백을 바치니 진목공은 드디어 진(晋)나라 백희(伯姬)를 아내로 맞이하게 되었다. 한편 진헌공이 신하들에게 물었다.
"이번 신부가 시집으로 갈 때 데리고 갈 남자 종은 다 뽑아 뒀는가?"
주지교가 앞으로 나아가 아뢰었다.
"백리해는 우리 진나라에서 벼슬을 살지 않겠다고 거절했습니다. 그 속맘을 도무지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자는 별수 없이 가까이 두지 말고 먼 곳으로 보내 버리는 것이 상책일까 합니다. 그러니 신부가 데리고 갈 남자 종으로 백리해를 보내는 것이 어떠하오리까?"
백리해를 미워하게 된 주지교는 이렇게 그를 곤경에 몰아 넣을 생각이었다. 장차 백리해의 운명은 어찌 될 것인지? 남자 종이 되어 끌려갈 것인지 아니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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