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0장 교만해지는 제환공
4.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우나라의 멸망
진헌공이 안내를 받고 성 안으로 들어가면서 우공에게 청했다.
"우리 나라 군대가 이미 괵나라를 평정했다는 걸 여기 와서야 알았습니다. 안 와도 될 걸 공연히 와서 폐만 끼치게 됐소이다. 군후께서 바쁘지 않으시면 우리 사냥이나 한번 합시다."
우공이 멋도 모르고 기꺼이 승낙했다.
"그거 참 좋은 생각입니다. 우리 나라 기산은 사냥터로 꽤나 유명합니다. 군후와 과인은 서로 패를 나누어 가지고 내기 사냥을 합시다."
우공은 진헌공에게 자기 나라의 무술 솜씨를 한바탕 자랑하고 싶었다. 그런데 진헌공은 연신 미소하며 우공에게 감사하다고만 했다. 그 이튿날이 되었다. 우공은 또 자기 나라 위세를 이 기회에 자랑하려고 성 안 무기와 수레와 좋은 병차들을 모조리 기산으로 총동원시켰다. 우공은 반드시 사냥 시합에 이겨야겠다는 승벽에서, 도성의 모든 군대를 사냥터에 투입하고 진헌공과 함께 말을 달리며 사냥하는 데에만 골몰했다. 진시에 시작한 사냥은 신시가 되어도 끝나질 않았다. 사냥이 계속되고 있을 때였다. 한 보발군이 급히 달려와서 우공에게 놀라운 소식을 아뢰었다.
"멀리 성 안에서 불길이 오르고 있습니다."
진헌공이 먼저 대답했다.
"민간에서 불이 났겠지요. 곧 사람들이 끌 것이오. 이왕 시작한 것이니 한번만 더 짐승을 몰아 봅시다."
백리해가 가만히 우공에게 아뢰었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성 안에서 심상치 않은 난(亂)이 일어났다고 합니다. 서둘로 가 보셔야 하겠습니다. 이 곳에 더 머무를 여가가 없습니다."
우공은 진헌공에게 먼저 돌아가 봐야겠다며 성 쪽으로 급히 달려갔다. 도성 쪽으로 절반쯤 갔을 때였다. 백성들이 떼를 지어 도망쳐오고 있었다. 피난 가는 백성들이 우공을 보자 아뢰었다.
"이미 진군은 주공이 나가신 뒤 쳐들어와서 도성을 점령하였습니다."
그제야 우공은 속은 줄 알고 분격했다.
"속히 병차를 몰아 진군을 공격하여라!"
우공은 시위병들을 거느리고 성 앞에 당도했다. 성루에 한 장수가 난간을 의지하고 서 있었다. 그 장수는 번쩍거리는 투구를 쓰고 갑옷을 입고 위풍이 늠름해 보였다. 그 장수가 성 밑을 굽어보고 우공에게 말했다.
"지난번은 군후께서 우리에게 괵나라를 내주는 길을 빌려 주셨고, 이번은 다시 우리에게 나라까지 송두리째 내주시니 감사하오이다."
우공은 분노를 참을 수 없어 곧 성문을 부수려 했다. 동시에 성 위에서 그 장수가 손짓을 하자 둥둥둥 하는 요란한 북소리가 울렸다. 순간 화살이 빗발치듯 날아왔다. 우공은 하는 수 없이 병차를 성벽에서 멀리 후퇴시키고 좌우에 분부했다.
"사냥 갔던 군사들은 아직도 다 안 왔느냐? 가서 속히 이리로 불러오너라!"
저편에서 한 병사가 급히 말을 달려왔다.
"주공의 뒤를 따라오던 군사들은 진후의 습격을 받아 죽었고, 살아 남은 자는 다 투항했습니다. 진후는 우리 병차와 말을 몰수하고 대군을 거느리고서 지금 이리로 오는 중입니다."
이젠 앞으로 나아갈 수도 뒤로 물러설 수도 없는 처지가 되고 말았다. 우공이 가슴을 치며 길이 탄식했다.
"내 지난날에 궁지기가 간하는 걸 듣지 않다가 나라를 잃고 이 꼴이 됐구나."
곁에 있는 백리해를 돌아보며 물었다.
"그 때 경은 왜 과인에게 간하지 않았느냐?"
백리해가 대답했다.
"주공은 궁지기의 간하는 말도 듣질 않으셨는데 어찌 제 말인들 들으셨겠습니까. 그 때 신이 말하지 않은 것은 다만 이 곳에 머물러 오늘까지라도 주공을 가까이서 모시려 한 것입니다."
우공은 사세가 몹시 궁하게 되었다. 그 때 누군가 소리쳤다.
"뒤에서 병차 한 대가 달려옵니다."
병차가 가까이 이르러 멈추면서 진나라에 항복한 괵나라 장수 주지교가 내렸다. 우공은 주지교를 대하기가 부끄러웠다. 주지교가 우공 앞에 가서 아뢰었다.
"군후는 보물에 눈이 어두워 괵국을 진나라에 팔았습니다. 그 결과 군후도 모든 걸 잃었습니다. 이제 이 지경이 된 이상 타국으로 도망가시느니보다는 차라리 진나라에 사정이나 하십시오. 진후는 덕이 있고 관대한 분이므로 반드시 군후를 섭섭치 않게 후대할 것입니다. 의심마시고 이번에 진후에게 귀순하십시오."
우공은 냉큼 결정을 짓지 못했다. 이러는 동안에 진헌공이 뒤따라 당도했다. 진헌공은 사람을 보내어 우공에게 만나자고 청했다. 우공은 싫어도 가지 않을 수 없었다. 진헌공은 우공을 보자 만면에 미소를 띠었다.
"과인이 여기 온 것은 다만 빌려 준 보물 구슬과 말을 도로 찾기 위함이었소."
진헌공은 한 신하에게 명하여 우공을 수레에 태웠다. 이리하여 우공은 진나라 군중에 억류당했다. 백리해는 잠시도 우공 곁을 떠나지 않았다. 한 군사가 그를 비웃자 백리해가 대답했다.
"나는 우나라 국록을 오랫동안 받은 몸이다. 어찌 주공을 버릴 수 있으리오. 이렇게 주공을 따라다니는 것은 내가 마지막으로 지난날의 은혜에 보답하려는 것이다."
진헌공은 성 안으로 들어가서 백성들을 안심시켰다. 순식은 우나라 부고를 열고 왼손에 구슬을, 바른손에 말고삐를 잡고서 진헌공 앞에 나타났다.
"신은 계획했던 일을 성취했으므로 이제 구슬을 부고에 돌려주고 말을 마구간에 반환합니다."
진헌공은 크게 기뻐했다. 진헌공은 귀순한 우공을 죽일 작정이었다. 그러자 순식이 간했다.
"그는 정말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내버려 둔들 그 처지에 무슨 짓을 하겠습니까."
진헌공은 생각을 돌려 심상한 손님에 대한 예로써 우공을 대우했다. 그리고 진헌공은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구슬과 말을 우공에게 도로 내줬다.
"그대가 우리에게 길을 빌려 준 그 은혜를 과인이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그 후 주지교는 진헌공을 따라갔다. 그리고 진나라에 귀화하여 대부 벼슬을 받았다. 그런데 주지교는 진헌공에게 백리해가 매우 비범한 사람이란 걸 아뢰고 적극 천거했다. 진헌공은 백리해를 등용하고자, 주지교로 하여금 교섭하게 했다. 그러나 백리해는 거절했다.
"우리 주공이 생존해 계시는 한 아직 다른 나라를 섬길 생각은 없소이다."
주지교가 돌아간 뒤, 백리해는 자신의 처지를 탄식했다.
"군자가 다른 곳으로 떠날지언정 어찌 원수의 나라에 가 벼슬을 살 수 있으리오."
며칠 후 주지교는 백리해가 이런 넋두리를 했다는 소문을 전해 들었다.
"별 되지 못한 것이 시건방만 떠는구나. 그렇다면 어디 두고 보자."
이렇게 주지교는 속으로 앙심을 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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