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10장 교만해지는 제환공
4.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우공의 배신
궁지기가 대답했다.
"그러면 우리 우나라는 반드시 망하오. 이제 곧 망할 나라에 더 이상 머물러 있을 것 없소. 우리 함께 다른 곳으로 갑시다."
백리해가 대답했다.
"떠나고 싶거든 궁대부 혼자서 떠나시오. 나까지 데리고 떠나면 궁대부의 죄는 더 무거워질 것이오. 궁대부께서 먼저 떠나면 나는 곧 기회를 보아 다른 곳으로 떠나겠소."
그날 밤으로 궁지기는 살림을 꾸려 집안 식구를 모두 데리고 어디론지 떠났다. 그러나 아무도 궁지기가 간 곳을 아는 사람은 없었다. 한편 진나라 순식은 어렵지 않게 목적을 이루고 우나라를 떠나 본국인 진나라로 돌아갔다. 그는 돌아가자 즉시 진헌공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우공이 구슬과 말을 받고, 괵나라를 치려는 우리 병사들에게 길을 빌려 주기로 승낙했습니다."
진헌공은 친히 괵국을 치기 위해 서둘렀다. 이극이 궁에 들어가서 아뢰었다.
"일이 이쯤 되면 괵을 치는 것은 용이합니다. 번거롭게 주공께서 친히 출전하실 건 없습니다."
진헌공이 물었다.
"그럼 괵을 치는데 어떤 계책을 세워야 하겠는가?"
이극이 대답했다.
"괵은 상양에 도읍하고 있고 그 입구가 하양 땅입니다. 하양만 격파하면 괵은 무너집니다. 신이 비록 재주는 없으나 이 일을 맡아 하겠습니다. 그러고도 만일 성공하지 못하면 그 죄를 달게 받겠나이다."
이에 진헌공은 이극을 대장으로 삼고, 순식을 부장으로 삼아 병차 4백 승을 일으켰다. 진군이 출발하기 전에 순식은 한 번더 우나라에 가서 진군이 올 때를 알렸다. 우공이 순식에게 간절하게 말했다.
"과인이 귀중한 보물을 선물받고도 갚을 길이 없는지라, 이번 기회에 우리도 군사를 일으켜 귀국을 원조하겠소."
순식이 대답했다.
"군후께서 군사를 일으켜 우리를 돕는 수고를 하느니보다는 하양관이나 우리에게 주십시오."
우공이 어리둥절했다.
"하양관은 괵나라 땅이라 과인이 주고 싶어도 남의 나라 땅이니 어떻게 줄 수 있겠소."
순식이 조용히 대답했다.
"신이 듣건대, 지금 괵공은 견융과 상전에서 크게 싸우는 중인데 아직 결말이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니 군후께선 괵공에게 병차를 보내어 원조하겠다 하시고 그 대신 우리 진나라 군사를 비밀히 보내만 주시면 우리가 가서 하양관을 쉽사리 함몰하겠습니다. 신에게 철엽차 백 승이 있습니다. 군후께서 명령만 하시면 우리는 다 우나라 병차로 가장하고 갈 수 있습니다."
우공은 순식이 시키는 대로 괵나라에게 구원병을 보내겠다는 뜻을 전했다. 하양관의 수장 주지교는 우나라 군사가 원조왔다는 말을 곧이듣고 관문을 활짝 열었다. 열려진 관문 안으로 우나라에서 온 병차가 열을 지어 들어갔다. 물론 그 병차 속엔 진나라 무장군이 가득 들어 있었다. 진나라 군대는 완전히 관문 안으로 들어가서야 일제히 병차에서 뛰어내렸다. 그제야 주지교는 크게 속은 줄 알고 서둘러 관문을 닫으려 했으나 때는 이미 늦었다. 이극은 군사를 몰고 성 안을 좌충우돌하면서 괵나라 군사를 시살해 갔다. 주지교는 도저히 진군의 예봉을 감당할 수 없었다. 하양관을 잃게 된 주지교는 장차 괵공에게 처벌당할 것이 두려워서 드디어 군사를 거느리고 이극 앞에 스스로를 포승줄로 묶어 항복했다. 이극은 손수 주지교의 포승줄을 풀고 항복한 적장이 아니라 빈객으로 대접했다. 그리고 주지교를 길 안내하는 앞잡이로 세우고, 이번엔 상양 땅을 향해 나아갔다. 이 때 괵공은 상전에서 견융과 싸우는 도중에 진나라 군사가 하양관을 함몰하고 주지교의 항복을 받았다는 보고를 받자 서둘러 도성으로 향했다. 견융은 기세가 등등해져, 돌아가는 괵군 뒤를 사정없이 시살하며 추격했다. 마침내 괵공은 병사의 태반을 끌고 크게 패하여 정신없이 달아났다. 괵공이 상양에 도착했을 때는 뒤를 따르는 병차가 겨우 수십 승에 불과했다. 괵공은 상양에 돌아가 성을 굳게 닫고 지키기만 했다. 그는 그저 막연하기만 할 뿐 아무런 계책도 세울 수 없었다. 진군은 차차 상양성 밖에 모여들었다. 그런데 진군은 상양성을 공격하지 않고 몇 마장 먼 곳에 영채를 세우고 겹겹으로 에워싸기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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