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자요록
제8장 북방 토벌
5. 북벌 성취
북방 한해
밀로의 군사까지 거느리고 제군에게 찾아간 황화는 밀로의 목을 바치고 아뢰었다.
"답리가는 나라를 망치고 사적(砂績)이란 곳으로 달아나면서 외국의 군사를 청해와 원수를 갚겠다 맹세했습니다. 그 간 신이 여러 번 투항을 권고했으나, 듣지 않고 달아났기에 밀로의 목을 베어 가지고 이렇게 왔사옵니다. 바라옵건대 불쌍히 여기시어 거두어 주시면 답리가의 뒤를 추격하는 길잡이가 되어 군후를 안내하겠습니다."
밀로의 목을 가져와 항복하는 황화를 믿은 제환공은 황화를 전부군으로 삼아 대군을 거느리고 전진했다. 제군이 무체성에 이르러 성 안이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황화의 말이 거짓이 아니었음을 믿게 됐다. 제환공은 답리가가 멀리 달아나지 않을까 걱정이 돼 연장공이 일지군을 거느리고 무체성을 지키게 하는 한편, 나머지 병사들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황화의 안내를 받으며 답리가의 뒤를 쫓았다.
"신이 앞장 서서 살펴 길이 어디로 났는지를 파악한 후 보고하겠습니다."
제환공은 황화의 말에 허락을 내리고, 고혹에게 명해 대군이 그 뒤를 따르게 했다. 제나라 군마가 사적에 이르니 제환공은 좀더 빨리 가라고 군사들을 재촉했다. 그러나 아무리 가도 앞서 간 황화는 돌아오지 않고 어느덧 해는 지기 시작했다. 앞에는 망망한 사막이 나타났다. 싸늘한 안개가 천겹 만겹으로 자욱히 꼈다. 듣기만 해도 온몸이 오므라드는 처절한 귀신들의 울음 소리가 이곳저곳에서 일어났다. 어지러운 바람이 감돌았다. 춥고 무서워서 모든 군사의 머리털이 치솟았다. 점점 바람은 미친 듯이 땅을 할퀴었다. 사람과 말이 다 놀라 비명을 질렀다. 군사와 말이 한기와 독기에 걸려 쓰러지기 시작했다. 이 때 제환공과 관중은 말을 나란히 타고 갔다. 관중이 제환공에게 아뢰었다. "신이 일찍이 듣건대 북방에 한해(旱海)가 있다 합니다. 그 곳은 흉악한 독기가 있어 들어만 가면 누구나 해를 입는다고 합니다. 이 곳이 바로 그 한해나 아닌지 두렵습니다.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생각을 마십시오."
제환공은 즉시 군사를 후퇴시켰다. 그러나 이 땐 이미 전대, 후대가 거의 반이나 죽고 행방 불명이 된 후였다. 모두 횃불을 켜들었으나 억센 바람에 곧 꺼졌다. 다시 횃불을 켰으나 타지를 않았다. 관중은 제환공을 모시고 말머리를 돌려 급히 달렸다. 그 뒤를 따르는 군사들은 일제히 금(金)을 울리고 북을 두드렸다. 그 첫째는 밀려오는 음기(陰氣)를 막기 위해서이며, 그 둘째는 행군하는 군사들이 그 소리를 듣고 대열에서 이탈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완전히 해는 졌다. 하늘과 땅이 캄캄하다. 동서남북을 분별할 수 없었다. 제나라 군사는 어디를 얼마나 허둥지둥 달렸는지 몰랐다. 이윽고 바람이 멈추고 안개가 흩어졌다. 공중에 새로운 조각달이 나타났다. 모든 장수는 금과 북소리를 듣고 속속 뒤따라 모여들었다. 그들은 한곳에다 둔치고 날이 새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장수와 군사를 점호했다. 장수 중엔 습붕 한 사람만이 보이지 않았다. 군사와 말은 반이나 없었다. 다행히 겨울이어서 독사가 없고 군사들의 아우성에 맹수들이 숨어 버렸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많은 병사가 죽었거나 살아 남았다 할지라도 다 사지 하나쯤은 온전치 못한 병신이 되었을 것이다. 시간이 흘러 새벽이 되었다. 관중은 모든 병사들에게 한기를 쫓기 위해 서로 뭉쳐 있으라고 명했다. 모두들 그렇게 하자 한기를 이길 수 있었다. 제환공은 사면을 둘러봤다. 산곡이 매우 험악해서 도저히 사람이 다닐 곳이 아니었다. 제환공은 군사에게 명하여 각기 척후병을 내보내 속히 이 곳을 빠져나갈 길을 찾도록 했다. 그러나 척후병들은 길을 찾을 수 없었다. 동으로 가면 동쪽이 막히고 서쪽으로 가도 역시 앞이 막혔다. 산은 첩첩하고 골은 꼬불꼬불 휘감겨서 도무지 빠져나갈 도리가 없었던 것이다. 제환공은 불안하고 초조했다. 관중이 제환공 곁으로 가서 아뢰었다.
老馬之智
"신이 듣건대 늙은 말은 길을 안다 하더이다. 무종(無終)과 산융(山戎) 접경 지대의 말은 거의 막북(漠北)에서 온 것입니다. 그러니 호아반을 시켜 늙은 말 몇 필을 골라 그 말들이 가는 곳을 뒤따라가게 하십시오. 가히 길을 얻을 수 있으리이다."
제환공은 관중이 시키는 대로 늙은 말 몇 마리를 놓아 맘대로 가게 했다. 그리고 모두 그 뒤를 따라갔다. 꼬불꼬불 이리 틀고 저리 틀어 나아가니 제군은 마침내 깊은 산곡을 벗어났다. 한편 황화원수는 답리가가 있는 양산 땅을 향해 제나라 장수 고흑을 이끌고 지름길로 달렸다. 고흑은 후대가 아직 보이지 않고, 대군이 오지 않자 황화원수에게 자기 의견을 말했다.
"이 곳에서 우리 본대의 군마가 뒤따라오길 기다렸다 함께 전진합시다."
"아닙니다. 한시도 지체할 수 없으니 속히 갑시다."
고흑의 말에 황화원수가 재촉을 하니 고흑은 그제야 황화 원수의 태도에 의심이 갔다. 그래서 멈추고 움직이지 않으니, 황화원수의 부하들이 몰려들어 말 위에 있는 고흑을 끌어내렸다. 말에서 끌려내린 고흑은 결박을 당하고, 황화원수에게 속은 것을 알았다. 사로잡힌 고흑은 포승에 묶인 채로 고죽의 수령 답리가가 있는 양산으로 끌려갔다. 답리가 앞에 나타난 황화원수는 밀로의 일을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
"밀로는 마편산에서 적과 싸우다 불행하게도 전사했습니다. 그리고 신은 계책대로 제군을 유인하여 한해에 몰아 넣었습니다. 또한 제나라 장수 고흑이란 자를 사로잡아왔으니 주장께서 처분을 내리십시오."
답리가가 고흑을 보고 말했다.
"네가 내게 항복하면 너를 높은 벼슬에 등용하리라."
"내 대대로 제나라 은혜를 입었거늘 어찌 개 돼지 같은 네 놈의 신하가 될 수 있느냐."고흑은 눈을 부릅뜨고 답리가를 쳐다보며 소릴 지르고, 황화원수를 돌아보며 크게 꾸짖었다.
"네 놈의 술책에 속아 내 여기까지 왔으니, 내 몸 하나 죽는 것은 아깝지 않다만, 우리 주공이 오시면 너희들은 나라를 망치고 죽어 없어질 것이니 후회해도 소용없으리라!"
이에 답리가는 다시 군사를 거느리고 돌아가 무체성을 공격했다. 연장공은 빈 성을 적은 군사로 능히 지킬 수 없게 되자 사방에 불을 질렀다. 연장공은 타오르는 불길로 혼란해진 틈을 타서 적을 무찌르며 성을 빠져나가 단자산으로 달아났다. 한편 제환공의 대군이 흉악한 산곡을 벗어나, 한 십 리쯤 갔을 때였다. 저편에서 일지군마가 오는 것이 보였다.사람을 보내어 염탐한 결과, 바로 공손 습붕(公孫 濕朋)이 군사를 거느리고 오는 것임을 알았다. 이에 군사를 합친 후 제환공은 일로 무체성을 향해 전진했다. 그런데 늙은이를 부축하고 어린 걸 업은 백성들이 분분히 가지 않는가. 관중이 백성에게 물었다.
"무슨 일로 어디를 가는가?"
젊은 백성이 대답했다.
"고죽국의 주공이 연나라 군사를 몰아내고 이미 무체성에 돌아왔습니다. 그래서 저희들은 산곡에 피난했다가 이제 성으로 돌아가는 중입니다."
관중이 제환공에게 아뢰었다.
"신에게 한 계책이 있습니다. 반드시 답리가를 격파하겠습니다."
그리고는 호아반을 불러 귓속말로 지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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